<327화. 입장 그리고 만남 >
포트리온은 대륙에서도 동쪽 끝에 위치한 도시였다. 대륙 중앙에 있는 제국에서도 그 거리가 상당한 만큼 열차로 이동을 해도 이틀 가까이 걸렸다.
“저 이 열차는 처음 타 봐요. 엄청 좋네.”
“그만큼 돈을 많이 냈지.”
이틀 가까이 걸리는 열차 여행인데다가 포트리온까지 향하는 열차는 지금 우리가 탄 스틸라이트라는 이름의 열차 밖에 없었다.
대륙 5대 상단 중 하나인 스틸라이트 상단에서 운행 중인 고급 열차 중 하나였다.
“평범한 열차를 타고 갔으면 엄청 갈아탔겠죠?”
“아마 3배는 늦게 도착하지 않을까.”
우리는 열차 내에 있는 고급 개별실에 있었다.
귀족가의 응접실과 비슷한 형태에다 거대한 창문도 나있었기에 바깥 풍경이 제대로 보이는 특등석이었다.
나와 비비안은 창가 근처의 탁자에 앉아있었고 루시아는 방에 들어오자마자 침대 위에 누워 입만 움직이고 있었다.
“언니는 그러면 포트리온 직전 역에서 내리는 거예요?”
“응. 파르텐 역.”
“축제가 2주 가까이 되는데 지루하겠어요.”
루시아가 침대 위에서 뒹굴 거리며 말했다.
그러나 비비안은 표정 변화 없이 고개를 흔들었다.
“괜찮아. 그동안 수련이라도 하고 있으면 되니까.”
“기념품 많이 사가지고 나올게요.”
“응.”
2주라는 걸 다시 확인해보니까 정말 길긴 길었다. 그 시간동안 기다리고 있어야 할 비비안에게 괜히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혹시 원하시는 물건이라도 있습니까?”
내 질문에 비비안은 잠시 날 바라보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글쎄.”
“아티팩트 장비가 보이면 되는대로 사볼게요. 이런 기회가 아니면 또 못 구할 수도 있으니까.”
“난 아드리아스가 사주는 거라면 뭐든 좋아.”
그렇게 말하면 부끄러워진다.
나는 루시아의 시선을 의식하며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고개를 끄덕였다.
“크흠. 알겠습니다.”
비비안은 이미 벤시나이트가 지니고 있던 레어 아이템인 ‘단크’라는 검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니 굳이 구하려면 방어구 쪽이 낫겠지.
‘귀걸이도 계속해서 차고 다니는 걸 보면 이번에 선물할 물건도 계속 지니고 다니겠지.’
그러니 이왕이면 가격이 얼마가 나가든 최대한 좋은 걸로 구해다줘야겠다.
“생각해보니까 너도 돈 걱정은 없겠다.”
“저요? 뭐, 일단 아버지께 말씀드려서 적당히 용돈을 받아오긴 했는데 또 모르죠.”
나도 돈 걱정은 없었다.
북부와의 전쟁으로 크롬웰 상단이 대박을 터트리고 라스틸리아와의 무역 덕분에 이제 돈과 관련된 문제는 없다시피 했다.
“부족하면 나중에 좀 빌릴게요.”
“얼마나 쓰려고 벌써부터 그런 말을 하냐.”
“제가 언제 또 니바스 축제에 참가해보겠어요. 온 김에 다 쓰고 가야죠.”
루시아는 모르겠지. 자신이 미래에 가장 강력한 마법사 중 한 명이 된다는 사실을.
그때는 와달라고 해도 귀찮아서 니바스 축제에 참가하지 않을 거다.
“그래. 후회 없이 즐기다 가자.”
제스터가 맥스웰에 대한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지만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실제로 아카데미에 직접 방문해서 만났던 맥스웰은 생각보다 이상한 사람도 아니었고.
‘약간의 경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필요 없다.’
최근 들어 시체들의 왕국과 지옥, 그리고 제스터의 일까지 홍역만 치르다 보니 조금 쉬고 싶은 마음도 간절했다.
그리고 니바스 축제는 내 모자란 지식을 채워줄 꿀 같은 행사인 만큼 편안하게 탐구만 하고 싶었다.
“흐아아. 일찍 일어났더니 너무 졸리네요. 저 먼저 잘게요.”
뻔뻔하게 말한 루시아가 그대로 눈을 감고 새근새근 호흡을 뱉어냈다.
나로서도 그녀가 축제 때 자는 것보다 차라리 지금 마음껏 자두는 게 낫겠다 싶어 그저 지켜만 보았다.
“귀여워.”
비비안의 이해할 수 없는 감상을 들으며 나는 앞으로 이틀 남은 열차 여행을 만끽했다.
**
포트리온과 인접한 국경 도시 파르텐에서 비비안과 헤어지고 나와 루시아도 곧 포트리온에 입성할 수 있었다.
“신분을 증명할 만한 물건이 있으십니까?”
“여기, 초대장입니다.”
니바스의 선택이 공표된 이후 특급으로 배송이 된 초대장을 행정 직원에게 전했다.
‘여기는 일개 직원도 수준이 높네.’
당연한 이야기지만 포트리온에 거주하는 모든 이들은 마법사였다. 어찌 보면 일반인들에게 너무 폐쇄적인 게 아닌가 싶었지만 나름 잘 굴러가는 걸 보면 그 특수성이 인정받은 모양이었다.
“아! 아드리아스 크롬웰 공이셨습니까! 포트리온에 입성하시는 걸 환영합니다. 여기 발부된 출입증과 증명서입니다. 옆에 계신 분은 조교입니까?”
“예. 루시아 에버라스트 양입니다.”
“잠깐 확인 가능할까요?”
이내 루시아도 검사가 끝나고 출입증과 증명서가 발급되자 직원이 성문 쪽을 가리켰다.
“출입증을 입구의 아티팩트에 태그하시면 됩니다. 아직 개최기간까지 시간이 남으셨으니 포트리온을 마음껏 즐겨주십시오.”
“감사합니다.”
안내를 듣고 나와 루시아는 곧장 성문으로 걸어갔다.
“생각보다 평범한 외형이네요.”
“포트리온?”
“네.”
“이건 위장이야. 안에 들어가면 놀랄 걸.”
“네? 선배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어떻게 알기는. 조금만 관심 있으면 이미 포트리온을 방문해본 마법사들이 하루 종일 떠드는 게 안쪽의 풍경이니 당연히 알 수밖에 없지.
삐익!
“돈 좀 들었겠는데.”
“성문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었네요.”
성문 근처에는 사람 하나가 들어갈 만한 원통형의 구조물들이 주르륵 나열되어 있었다.
직원이 말한 아티팩트가 이거인 듯 한데 그 중 하나에 출입증을 대자 불이 들어오며 마나가 돌기 시작했다.
“들어가면 되는 거죠?”
“어.”
각자 하나씩 구조물에 들어가자 이내 사방에서 마법진이 빛나며 공간 이동 마법이 시전되었다.
우웅---
“음.”
기술이 그리 뛰어난 아티팩트는 아니었는지 약간 어지러웠다.
그러나 그런 어지러움도 잠시,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자 나도 모르게 입이 벌어졌다.
‘실제로 보니까 정말 별세계네.’
하늘은 낮임에도 불구하고 밤인 듯 검었다.
하지만 그 검은 도화지를 배경삼아 펼쳐진 알록달록한 마법진들이 하늘을 수놓았다.
“우와.”
어느새 옆에 나타난 루시아가 양손으로 입을 가린 채 감탄을 토해냈다.
“내가 말했지.”
“정말 대단해요. 저 마법진 좀 봐요. 균열, 평형, 집합도 보이고······역순, 빛의 원소? 진짜 대단하네요.”
······풍경에 놀란 게 아니라 마법진 자체에 놀란 거였어?
나는 조금 뻘쭘한 기분으로 주변을 잠시 둘러보았다. 역시 니바스 축제가 하루를 앞둔 상황이라 수많은 마법사들이 거리를 걸어 다니고 있었다.
‘건물들도 개성이 넘치네.’
언뜻 보면 복잡해보일 정도로 특이한 외형의 건물들이 이리저리 얽혀있었다. 어떤 건 공중에 떠있기까지 했는데 굳이 저렇게까지 해야 했나 의문도 들었다.
“일단 방부터 잡자.”
축제가 시작되면 초대된 워록들을 위한 방이 심층부에 따로 있었지만 지금은 들어갈 수 없었다.
축제가 아닐 때는 오직 디바우러만 출입이 가능했다.
“다른 워록들도 왔을까요?”
“아마 우리가 제일 먼저 왔을 걸.”
심층부에는 축제 기간에만 들어갈 수 있기에 대부분의 워록들은 축제가 시작한 다음에 도착했다. 굳이 먼저 와서 우리처럼 방을 따로 잡기에는 자존심이 상하겠지.
“어이, 거기 둘.”
그렇게 숙소를 잡기 위해 움직이려는 때에 갑자기 누군가가 우리를 불렀다.
“딱 보니까 초행인 것 같은데 우리가 여길 안내해주마. 싸게 받을 테니까 어때?”
전혀 예상치 못했던 호객 행위에 이건 뭐하는 놈들인가 하며 바라보고 있자 루시아가 내게 말했다.
“괜찮은데요? 한 번 받아보죠?”
“그럴까.”
초면에 반말을 뱉어대는 게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크게 신경 쓰이지는 않았다.
“좋아요. 안내해주세요.”
“좋아, 좋아. 호튼! 네가 안내해라!”
“예. 갑니다, 가요.”
딱 봐도 우리 같은 사람들만 골라서 호구 잡는 사람들인 것 같았는데 어느 정도 이해는 갔다.
‘마법사는 상위 1%를 제외하고는 항상 가난에 시달리지.’
실력이 좋은 마법사여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마법사의 연구와 실험은 그만큼 돈을 잡아먹는 괴물이었으니까.
아마 이 사람들도 어떻게든 빌어먹고 사는 마법사들이겠지.
“전 호튼이라고 합니다. 지금부터 포트리온을 안내해드리죠.”
그래도 이 사람은 싹수가 있네.
그런데 호튼이라······내가 아는 그 호튼인가?
“두 분은 포트리온이 처음이십니까?”
“네, 처음이에요.”
“안내는 하루 동안 이어지고 가격은 인당 50만 윌입니다.”
생각보다 가격이 비쌌다.
하긴 생각해보면 멀쩡한 마법사를 하루 종일 데리고 다니는 셈이니 비싸지 않을 수가 없기는 했다.
“상관없어요. 선금인가요?”
“미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열차에서 이틀 내리 잠을 자 컨디션이 좋은 루시아가 그 자리에서 현금으로 지불했다.
나도 주섬주섬 돈을 계산해서 건네주자 호튼이 꾸벅 고개를 숙여왔다.
“감사합니다. 혹시 관심이 있는 분야가 따로 있습니까?”
“선배, 뭐 관심 있는 거 있어요?”
사실 아티팩트 쪽에 더 관심이 있었지만 우리를 안내하는 사람이 호튼이라는 걸 알았으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포션 관련 구역이 있습니까?”
“포션은 제 전문이죠. 바로 가시겠습니까?”
“부탁드립니다.”
역시 내가 생각했던 호튼이 맞았다.
게임 내에서 포트리온의 NPC로 나온 캐릭터라 가물가물했는데 용케 기억해냈다.
“포트리온의 포션은 뭐가 좀 다를까요? 그래봤자 선배가 더 위일 것 같은데.”
“혹시 모르지.”
루시아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 호튼이 웃으며 말했다.
“이곳은 마법사들의 도시입니다. 바깥에서 유통되는 마법물품들과는 차원이 다른 물건들이 즐비해있죠. 제가 손님을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아마 보시면 깜짝 놀랄 겁니다.”
나도 포트리온의 포션 리스트는 대충 알고 있었다. 실제로 루시아를 플레이하기 전까지는 포트리온의 포션에 신세를 많이 졌었지.
‘포션에 관해서는 루시아의 플레이 전후로 많이 바뀌었지. 루시아 때문에 비약이라 불리는 엘릭서도 만들어봤으니까.’
그걸 알 리 없는 호튼이니 저리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거지. 실제로 지금의 내 포션 제조 실력이면 여기서 포션 제조로 가장 유명한 마법사도 한 수 접고 들어올 거다.
그럼에도 내가 굳이 포션 관련 구역으로 가자고 한 이유는 사실 따로 있었다.
‘히든 피스.’
포트리온에서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횡재가 그곳에 있거든.
“자, 이쪽으로 따라오시면 됩니다. 그나저나 제가 손님 분들의 성함을 물어보지 않았었군요. 혹시 어디서 오셨습니까?”
“제국에서 왔어요.”
루시아가 천진하게 대답하고는 이내 씨익 웃었다.
“그리고 이 분은 무려 워록이죠.”
“워록?”
호튼이 갸우뚱하더니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는 손사래를 치며 웃었다.
“에이, 손님. 그런 농담은 여기서 하시면 안 됩니다. 진짜 워록들이 들으면 화를 낼 거라고요.”
“그렇다는데요, 선배?”
소악마 같은 모습으로 웃는 루시아가 골치 아팠다. 내가 아드리아스 크롬웰인 걸 밝히려면 진즉에 밝혔지.
“그냥 농담이니 이해해주십시오.”
“하하. 알겠습니다.”
내가 그냥 조용히 넘어가려고 하자 루시아가 볼을 부풀렸다.
그 표정은 뭔데. 뭐, 어쩌자고.
“우왁!”
“으어!”
“기, 길 비켜!”
루시아의 표정을 보며 어떻게 놀려줄까 고민을 하던 도중 갑자기 이상한 비명이 들리며 거리가 소란스러워졌다.
“음? 무슨 일이지?”
호튼도 그 소란에 눈을 가늘게 뜨며 앞을 살폈다. 그리고 이내 사람들이 호들갑을 떤 원인을 발견했다.
“어?!”
“우와, 인형 같다.”
호튼의 놀란 탄성과 루시아의 감상.
그곳에는 은백색의 머리를 지닌 소녀가 총총걸음으로 거리를 누비고 있었다.
“응?”
그때 시선을 느낀 듯 소녀가 고개를 돌려 우리를 발견하더니······.
“흠!”
갑자기 콧김을 내뿜고는 우리에게 도도도 달려왔다.
“선배, 어떡해요. 인형이 저희한테 와요.”
저게 왜 인형이냐, 사람이지.
그리고 쟤는 왜 말도 없이 여기를 왔냐. 분명 내가 니바스 축제에 참가한다는 걸 알았을 텐데.
‘미리 말이라도 좀 해주지.’
이내 달려온 소녀는 내 앞에 멈춰서며 방긋 웃었다.
“친구!”
< 327화. 입장 그리고 만남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