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6화. 포트리온으로 >
상상도 못했던 평가를 마치고 복귀한 루이스는 알븐 스트리트에서 오랜만에 휴식을 취했다.
“뭐 먹을래?”
“전 고기면 뭐든 상관없습니다.”
그리고 그의 주변에는 평가를 함께한 다른 이들이 식탁에 자리를 잡고 앉아있었다.
“그러고 보니 벤자민을 처음 만난 것도 알븐 스트리트였지? 그때는 정말 꼬맹이였는데.”
“언제적 이야기입니까.”
세레나가 웃으며 하는 말에 벤자민이 정색을 했다. 그러나 그런 반응이 도리어 재미있었는지 세레나는 벤자민의 검들을 가리켰다.
“그때는 웬 꼬맹이가 자기 키만한 검에다가 주렁주렁 검들을 매달고 다니는 게 얼마나 웃겼는지 몰라. 지금은 그래도 좀 봐줄만 하네.”
“형님께서 주신 검들입니다. 비웃을 만한 것들이 아니에요.”
“널 비웃은 거지 검들을 보고 비웃은 게 아니야. 하하.”
오랜만에 기분이 좋아 보이는 세레나를 보며 크리스가 나지막하게 끼어들었다.
“세레나, 굳이 그렇게 들뜬 척 할 필요 없다.”
“뭐?”
“예전에도 말한 적 있지만 넌 항상 힘에 부친 일이 있으면 억지로 밝아지더군.”
크리스의 말에 분위기가 급변했다.
세레나는 말없이 크리스를 노려보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들뜬 척이든 뭐든 딱히 상관없잖아.”
“난, 이번 평가가 나름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마침 주문했던 음식이 나오며 탁자 위에 차려지자 크리스가 무뚝뚝하게 나이프를 집어 들며 말했다.
“교수님이 이전에 말씀하신 위기를 믿는 건 아니지만 이번 평가는 분명 좋은 경험이었지.”
“넌······괜찮은 거야?”
루이스가 멀쩡히 고기를 잘라먹는 크리스에게 물었다.
“무슨 말이지?”
“첫 경험······아니었어?”
“사람을 죽인 일 말인가? 생물학적으로 따지면 그 놈들도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내 기준에서 ‘인간’은 아니다.”
확고하게 말하는 크리스를 보며 루이스가 나름 고개를 끄덕였다.
“넌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오히려 그 놈들이 죽였거나 죽이게 될 사람들을 생각하면 뿌듯하기까지 하군.”
“맞는 말입니다.”
벤자민이 동의를 하며 뼈가 달린 고기를 양손으로 잡고 뜯었다.
“전 이미 아카데미에 들어오기 전에 느런 놈들을 상대해본 적이 있어서 오히려 잘됐다 싶더군요.”
“그렇구나.”
세상은 넓고 사람들의 생각은 저마다 달랐다.
루이스는 도저히 식욕이 생기지 않아 그저 멍하니 다른 이들의 식사를 지켜보며 생각에 빠졌다.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 과연 그런 말로 내 살인을 정당화할 수 있을까? 내가 검을 들었던 이유는 대체 뭐지? 난 아카데미에 입학해서 뭘하고 싶었던 걸까.’
그런 루이스의 모습을 지켜보던 세레나가 돌연 화제를 바꿨다.
“그것보다 난 교수님께서 어떻게 ‘그 사람’한테 우리를 부탁할 수 있었던 건지 모르겠어.”
세레나의 ‘그 사람’이라는 말에 모두의 귀가 쫑긋 세워졌다.
차마 제국 내에서는 이름을 꺼내기 두려운 인물, 막시민 크로넬.
“교수님께서 아직 아카데미에 재학 중이실 때 교류가 있었다고 들었지만 설마 그 인연이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었던 건가?”
“다음에 또 보자고 했었지. 생각보다 봐줄만 했다면서.”
악명이 높았지만 그 높은 악명만큼이나 강하기로 소문난 최강의 검사. 그는 생각했던 것보다 사악한 인물이 아니었다.
‘조금 무뚝뚝했지만 나쁜 사람도 아니었어.’
그렇기에 아드리아스도 그와 어울리는 것일까.
무엇보다도 막시민은 은근히 검에 대한 조언도 덧붙여주었다.
“운이 좋았다.”
크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처럼 운이 좋은 녀석들도 없을 거다. 비록 크게 도움을 받은 건 없지만 그와 인연을 맺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지.”
“그래도 들키면 꽤 골치 아플 거야. 특히 가문에는······.”
세레나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귀족 출신이 아닌 루이스와 벤자민이 듣기에도 만약 막시민과 만났다는 사실이 들킨다면 큰 곤욕을 치를 게 분명했다.
“양날의 검이군요.”
“위험한 건 사실이지만 그와 연을 맺기 위해서 가문도 팔아넘길 작자들도 넘친다.”
그때 가게가 갑자기 시끌벅적해졌다.
갑작스런 소란에 일행들의 고개가 자연스레 돌아갔다.
“무슨 일이지?”
“확인하고 오겠습니다.”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난 벤자민이 시끄러운 사람들에게 다가가 물었다.
“혹시 무슨 일이 일어난 겁니까?”
“응? 아, 기사학부 학생이시죠? 조금 전에 마법학부 학생들 전원에게 태블릿으로 메시지가 도착했는데 니바스의 선택이 발표됐거든요.”
“니바스의 선택?”
“새로운 워록이요.”
초인의 탄생인가.
초인이라고 하니 초인 증명의 결과가 나오지 않은 아드리아스가 떠오른 벤자민이었다.
“그리고 무려 그 명단에 아드리아스 교수님이 계셨습니다!”
“······예?”
순간 잘못 들었나 싶어 되물었다.
마침 아드리아스의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머리가 혼선을 빚었다.
“아카데미 최연소 교수님 있잖아요! 요즘 기사학부에서 활동하신다던데 모르세요?”
“알고 있습니다. 잘못 들은 줄 알고요.”
“확실히 놀랍기는 하죠. 무려 최연소 워록이라니! 마법 학계도 난리가 날 거고 이번 니바스 축제에 초대도 되었다니 아드리아스 교수님의 오리지널 마법을 견식하고 싶은 마법사들이 대거 몰려들 거예요!”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벤자민은 이내 고맙다는 말을 남기며 자리로 돌아왔다.
“뭐래?”
“아드리아스 교수님께서 워록이 되셨답니다.”
“뭐?!”
“저도 지금 제가 들은 내용이 사실인지 헷갈리는데 저 분의 말에 따르면 그렇다고 하더랍니다.”
벤자민이 듣고 온 이야기를 들은 일행들은 할 말을 잃었다.
“우리 교수님, 오러 마스터 아니었어?”
“그러면 오러 마스터이면서 동시에 워록인 건가? 역사에 이름이 남을 업적이군.”
“겨우 그 정도 반응이야? 좀 더 놀라지?”
세레나가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짓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다 먹었어. 먼저 가볼게.”
“왜 그렇게 급하게 가?”
“이 소식을 듣고 가만히 있을 수 있어? 난 가서 수련이나 더 해야겠어.”
세레나의 말에 벤자민도 주섬주섬 고기를 양손에 챙겨 일어났다.
“저도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렇게 세레나와 벤자민이 사라지자 탁자에는 루이스와 크리스만이 어색하게 남겨졌다.
“더 이상 먹을 생각이 없으면 너도 먼저 가라.”
“아니야. 있다가 갈게.”
“내가 부담스럽다. 먹지도 않을 거면서 자리 차지하지 말고 저 둘의 뒤나 따라가. 나도 다 먹으면 갈 테니까.”
크리스의 말에 결국 루이스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전히 주변은 소란스러웠는데 온통 아드리아스에 대한 이야기뿐이었다.
“대단하네.”
한 분야의 정점에 서는 것도 남들은 평생에 걸쳐 이룰까 말까했다. 그러나 아드리아스는 그 젊은 나이에 두 분야에서 모두 정점에 선 셈이니 괴물이라는 별명이 어울리지 않을 수 없었다.
‘언젠가 반드시 따라잡겠다고 했었는데······.’
이제는 너무나 멀어져 버린 선배였다.
**
“이것도 챙기고.”
“이미 챙겼어요, 비비안.”
“그럼 이건?”
“그것도요.”
“음, 이거는?”
포트리온으로 떠나기 직전, 내가 머무는 방까지 쳐들어온 비비안이 짐들을 살폈다.
그러더니 어느새 고민하는 표정으로 그녀가 중얼거렸다.
“나도 근처까지만 따라갈까.”
“그러면 저도 좋지만 너무 수고스럽지 않을까요? 포트리온은 여기서도 한참 걸립니다.”
“시간이나 거리는 상관없어. 그리고 가다가 위험한 일이 생기면 내가 지켜주지 못하잖아.”
비비안은 이내 심각한 표정을 짓더니 내게 말했다.
“포트리온 근처까지만 나도 같이 가. 그리고 축제가 끝날 때까지 근처에서 머물다가 돌아갈 때는 같이 돌아가.”
오랜만에 말이 많아진 비비안을 보며 나도 모르게 웃음을 짓고 말았다.
“왜 웃어?”
“너무 귀여워서요.”
“뭐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비비안을 보며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원작과는 달리 살아있다는 것과 나를 좋아해준다는 사실이.
“알겠습니다. 그럼 포트리온까지 같이 가는 걸로 해요. 그럼 지금부터 비비안 짐도 싸야겠네요?”
“응. 그런데 난 준비할 게 별로 없어서 어차피 금방 끝나.”
띠링!
때마침 태블릿이 울렸다.
아마 루시아일 것 같은데 확인해보니 역시나였다.
“루시아는 지금 일어났다고 하네요. 그러면 시간이 많이 남겠는데요?”
“나도 금방 짐 챙겨서 나올게. 루시아한테 먼저 가있어.”
“알겠습니다. 그럼 마탑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나는 준비한 짐을 공간 확장 배낭에 넣고 방을 나섰다. 여전히 아쉬운 게 공간 확장 아티팩트였는데 메쥬르가 가지고 튄 벨트형 아티팩트가 눈에 아른거렸다.
‘파이시가 챙긴 게 아닌 건 확실하게 확인했었지. 메쥬르는 도대체 어디로 간 걸까.’
리치킹을 쓰러트린 당시에 같이 소멸한 게 아닌가 싶었지만 애매했다. 만약 그렇다면 아티팩트들이 사라질 이유도 없어야하니까.
이미 지난 일이니 생각해봤자 아쉬울 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물건쯤은 마음만 먹으면 히든 던전이나 숨겨진 유적에서 구할 수 있었기에 걱정도 없었고.
‘운이 좋으면 포트리온에서 구할 수도 있겠지.’
어느새 도착한 로들렌 마탑으로 입장하자 1층 홀에서 안내를 맡은 마법사가 나를 반겼다.
“오! 아드리아스 님 아니십니까! 오늘은 어쩌신 일로······?”
“루시아를 보러 왔습니다. 니바스 축제에 함께 가기로 했거든요.”
“아! 조교로 루시아를 데려가시려는 거군요. 크으, 루시아가 부럽네요. 바로 올라가셔도 됩니다.”
“감사합니다.”
워록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마법사들 사이에서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확연히 달라졌다.
대놓고 묻지는 않았지만 다들 내 오리지널 마법을 궁금해 하는 눈치였다.
똑똑똑.
이미 몇 번 방문해본 루시아의 연구실 문을 두드리자 안쪽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달칵!
이내 문이 열리며 루시아가 졸린 눈을 하고 나를 맞이했다.
“하아암. 오셨어요?”
“오늘 일찍 출발한다고 말했는데 꼴이 가관이네.”
“준비는 전날에 이미 끝냈어요. 이대로 몸만 가면 돼요.”
루시아가 눈을 비비며 말했다.
나는 여전히 졸려 보이는 그녀를 확인하고 연구실을 둘러보았다.
“요즘에는 무슨 연구하냐?”
“파괴.”
간단한 대답이었다.
다른 사람이 들었으면 그게 뭔데 라고 반문할 만한 답.
그러나 이미 게임 속에서 수십 번이나 그녀를 플레이해본 나는 소름이 살짝 돋았다.
“나중에 한 번 보여줄 수 있어?”
“에에? 훔쳐가게요?”
“뭘 훔쳐. 그런 건 다 같이 쓰고 하는 거지.”
“그게 훔치는 거잖아요.”
루시아와 시답잖은 농담을 하다가 이내 아무데나 자리를 잡고 앉았다.
“뭐에요. 출발 안 해요?”
“비비안도 올 거야. 포트리온 근처까지만 같이 가기로 했어.”
“······그래요?”
반응이 조금 미지근했다.
좋아할 줄 알았는데 의외네.
“그것보다 선배 오리지널 마법은 대체 언제 알려줄 거예요.”
“어어? 훔쳐가게?”
“다 같이 쓰고 그러는 거죠, 뭘 또 훔친다고 말해요.”
그렇게 오랜만에 마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 금세 비비안이 도착했다. 그녀는 정말로 준비할 게 얼마 없었는지 내 방에 왔을 때와 별다른 차이가 없는 모습이었다.
“어서 와요, 언니.”
“응.”
그런데 어째 아까부터 루시아의 반응이 좀 미묘했다. 심심하다고 해야 할까, 뭔가 막 즐거워보이지가 않네.
“출발합시다.”
“네.”
“응.”
아직 졸려서 그런 거겠지. 포트리온에 도착하면 활기차 질 거다.
‘나도 기대 되네.’
마법사들의 도시 포트리온.
평소와는 다른 환경임은 물론이고 이미 게임 속에서 여러 히든 피스나 이스터 에그를 발견했던 도시이기에 기대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만나보지 못했던 네임드 캐릭터들도 이번 기회에 만나볼 수 있겠지.
< 326화. 포트리온으로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