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5화. 축제 동반 >
“흐아아암.”
마법 서적들을 양손 위로 잔뜩 든 루시아가 하품을 하며 걸었다.
휘청휘청 걸어가는 모습이 위태로워 보였지만 정작 본인은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루시아, 그러다 넘어진다. 적어도 마법으로 책들을 옮겨.”
그런 그녀를 지나치던 한 마법사가 조언했지만 루시아는 여전히 감은 눈으로 걸어갔다.
“에휴, 들리지도 않는 거냐? 어이! 루시아 에버라스트!”
“으응?”
귀에 대고 소리를 치고서야 게슴츠레 눈을 뜬 루시아가 돌아봤다.
“아? 부탑주님?”
“아, 부탑주님이 아니잖아. 적어도 걸어 다닐 때는 눈을 뜨고 다녀.”
“네엥.”
가볍게 대답한 루시아는 졸린 눈을 하고 다시 위태롭게 걸어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부탑주 크리스티앙은 다시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조금 전에 포트리온에서 니바스의 선택을 공표했어. 알고 있나?”
“넹?”
“이번에 아드리아스 크롬웰이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고. 반응을 보니 못들은 모양이군.”
“네엥?!”
갑작스러운 소식에 루시아의 반쯤 뜨인 눈이 만개했다. 놀라움으로 가득 찬 그 모습을 보며 크리스티앙이 헛웃음을 흘렸다.
“나도 아직까지 믿기지가 않는다. 베리얼 카스테로 이후로 최연소 워록의 기록은 깨지지 않을 거라 믿었건만······.”
최연소를 따지자면 루나 펜드래곤도 존재했지만 이브 밀레니엄의 마법을 계승만 한 그녀를 다른 마법사들이 인정해주지 않았다.
그렇기에 지금까지 최연소 워록의 칭호는 전(前)마법학부장인 베리얼 카스테로의 몫이었다.
“아드리아스 선배가······워록?”
“너도 분발해라.”
이미 워록인 크리스티앙은 웃으며 루시아의 머리를 헝클어뜨리고 사라졌다. 홀로 남은 루시아는 여전히 멍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워록? 오리지널 마법? 선배가?”
언제부터였을까.
포션을 처음 같이 제조했을 때부터 묘한 경쟁심을 가졌던 그녀였다. 그러나 항상 재능만큼은 자신이 우위에 있음을 의심치 않았었다.
타다닥!
루시아는 언제 졸았냐는 듯 책을 들고 뛰었다.
그리고는 재빨리 개인 연구실에 책을 내려놓고 다시 나왔다.
‘언제쯤 돌아오지?’
알고 싶었다.
도대체 무슨 마법을 만들어낸 건지.
아드리아스만의 오리지널 마법이 무엇인지.
‘선배가 돌아오는 걸 알려면 일단 선배의 조교수인 애덤을 찾아가서······.’
생각을 하며 정신없이 마탑을 내려와 1층에 들어섰을 때.
“오? 루시아. 마침 찾아가고 있었는데.”
아드리아스가 있었다.
“선배? 선배가 왜 여기에······.”
“너한테 할 말이 있어서 왔어.”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는 아드리아스가 얄미웠다.
그동안 오리지널 마법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숨긴 주제에 뭘 잘했다고······.
“니바스의 선택! 진짜에요?!”
“워록? 어.”
대수롭지 않은 반응에 더 열이 뻗쳤다.
그러나 옆에 있는 비비안에게 눈치가 보여 차마 쏘아붙이지는 못했다.
“하아, 비비안 언니. 언니는 알고 계셨어요?”
“응?”
“선배가 워록인 거요!”
“글쎄.”
비비안의 애매한 반응에 다시 한숨을 내쉰 루시아는 팔짱을 끼고 눈을 게슴츠레 떴다.
“평가 때문에 두 분 다 나갔다고 들었는데 언제 돌아오신 거예요?”
“방금 왔어.”
“오자마자 절 보러 오신 거예요?”
루시아가 머리 위로 물음표를 띄우며 말했다.
“어. 니바스 축제 때문에.”
“니바스 축제? 그거랑 절 보러 온 거랑 무슨 상관이에요?”
“너만 괜찮으면 같이 가려고. 한 번 물어보러 왔지.”
“네?”
니바스 축제? 내가 아는 그 니바스 축제?
루시아는 잠시 니바스 축제에 대해 떠올렸다.
대륙 각지에 있는 워록들을 초대하는 마법사들의 축제. 참가 자격은 오직 워록이라는 사실 하나.
물론 포트리온 자체는 마법사라면 누구나 방문할 수 있는 도시지만 심층부에서 개최되는 니바스 축제는 오직 워록만 참가할 수 있었다.
‘워록은 조교를 한 명 대동할 수 있었지.’
한 가지 사실을 떠올린 루시아는 아드리아스에게 물었다.
“조교 자격으로 데려가시려고요?”
“어. 그동안 도움 받은 것도 있고, 너한테도 좋은 기회겠다 싶어서.”
루시아는 아드리아스의 제안에 오히려 냉정해졌다. 분명 마법사로서 너무나 좋은 기회였지만 감히 자신이 참가해도 될까 의문이 생겼다.
“그런 거라면 디에네 언니랑 가는 게 더 낫지 않아요? 디에네 언니도 선배한테 도움 많이 줬잖아요.”
“디에네는 마탑주님이 계시니까 언제든 참가할 수 있잖아. 실제로 가본 걸로 알고 있고.”
그때 이야기를 듣고 있던 비비안이 루시아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언니?”
“아드리아스를 부탁해.”
“아!”
루시아는 그제야 비비안이 함께 갈 수 없다는 사실을 눈치 챘다.
니바스 축제는 조교의 출입까지는 허용하지만 마법사가 아닌 이들은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럼······알았어요. 같이 가요.”
“그래. 가는 걸로 알고 있을게.”
아드리아스는 이제 막 도착했기에 할 일이 많다며 어색하게 웃었다.
“다음에 다시 또 얘기하자. 지금은 좀 바빠서······.”
“네.”
“아드리아스, 루시아랑 잠깐 얘기하고 돌아갈게.”
비비안의 말에 아드리아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저도 용무가 끝나면 집무실에 가있겠습니다.”
아드리아스가 손을 흔들며 사라지자 루시아가 기쁜 표정으로 비비안의 손을 맞잡았다.
“그동안 둘이서 이야기할 시간이 별로 없었네요, 언니. 졸업 이후로 처음인가?”
“응.”
둘은 이내 루시아의 개인 연구실로 향했다.
마탑의 개인 연구실은 연구실의 용도뿐만 아니라 주거 환경까지 갖춰져 있었기에 둘은 느긋하게 자리에 앉아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처음에는 조금 당황했어요. 아드리아스 선배가 워록이라니······. 그럼 아드리아스 선배는 오러 마스터에다가 워록이기까지 한 거네요?”
“으음. 초인 증명은 취소됐으니까 오러 마스터는······.”
“아! 그 이야기도 듣고 싶었어요. 초인 증명이 깜깜무소식이었는데 취소가 된 거예요?”
아드리아스로부터 가문에 얽힌 진실과 황궁의 비밀을 듣게 된 비비안은 곤란한 표정으로 머리카락만 만졌다.
“나도 정확히는 못 들었어. 황궁에 사정이 생겨서 미뤄졌나봐.”
“아쉽네요.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수도 있는 일이었는데.”
과자를 집어먹으며 루시아가 중얼거렸다.
실제로 검과 마법 두 분야의 정점에 선다는 것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을 일이었기에 큰 소란이 될 수도 있었다.
아마 지금쯤 밖은 이미 난리가 났겠지.
초인 증명이 공표되지는 않았지만 이미 오러 마스터인 게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니.
“그나저나 요즘 매일 같이 선배랑 둘이서 붙어 다니시는데 좋은 소식은 없어요?”
“좋은 소식?”
비비안이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좋은 소식?”
“아니, 뭐. 그, 있잖아요.”
루시아가 배시시 웃으며 말을 돌리자 비비안은 더욱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미간을 좁혔다.
“선배가 좋아서 선배 곁에 있는 거 아니었어요?”
“응. 맞아.”
너무나 담백하게 인정하는 비비안의 말에 루시아의 가슴이 간질거렸다.
“그래서 저는 둘이 잘 되고 있는 줄 알았죠.”
“난 지금도 행복해.”
“우와. 아니, 언니. 제가 볼 때 언니는 조금 더 욕심을 내도 된다니까요?”
저런 게 진짜 사랑인 걸까.
루시아는 비비안의 지고지순한 모습에 속으로 감탄까지 하고 말았다.
“루시아.”
“네.”
“나는 오히려 지금이 너무 소중하기 때문에, 무서운 거야.”
비비안이 쓰게 웃었다.
“한 발자국을 위해서 지금까지 걸어온 모든 길을 무너트릴 수도 있는 거잖아.”
“글쎄요. 무너질 일 없을 것 같은데······.”
“그리고 너한테는 말 안했지만 이미 고백한 적 있어.”
“네?!”
비비안의 말에 루시아의 심장이 요동쳤다.
억누를 수 없는 두근거림이 그녀의 맥박을 뒤흔들 때, 비비안이 다시 미소 지었다.
“아드리아스도 같은 생각인가 봐.”
“뭐, 뭐가요?”
“한 발자국 더 내미는 게 두려운 거.”
비비안이 후련하게 말했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대. 그런 아드리아스한테 내가 계속 붙어 있으려면 부담을 주지 않아야겠지.”
“아아······.”
“그리고 이미 말했지만 난 이걸로도 만족해. 오히려 너무 행복해. 그 사람을 위해서 내가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나의 요정님······.
작게 중얼거리는 비비안을 루시아가 그저 멍하니 바라만 보았다.
**
갑작스레 일이 생겨버렸다.
‘니바스 축제라니······.’
평소였으면 생각해볼만한 이벤트였지만 최근 너무 자주 아카데미를 비운 탓에 신경이 쓰이던 참이었다.
게다가 맥스웰에게도 무언가 있다는 걸 알게 된 지금은 이번 축제 자체가 의심스러워졌다.
‘그렇다고 내뺄 건 아니지만.’
똑똑.
“들어오세요.”
교장실을 찾아온 나는 안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문을 열고 들어갔다.
“평가를 끝마치고 복귀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여기 앉으시죠.”
데오스는 평가가 끝나는 대로 직접 찾아와 경과를 보고해달라고 처음부터 부탁해왔었다.
물론 적당히 둘러댈 생각이었지만 하필 도중에 니바스의 선택이 터져 버려서 애매해졌네.
“평가는 어땠죠?”
“마을을 위협하던 몬스터를 퇴치했습니다. 학생들에게 실전을 쌓기 좋은 기회가 됐습니다.”
막시민을 통해서 애들하고는 미리 입을 맞춰뒀기에 거짓을 말하는데 스스럼없었다. 실제로 알리바이를 위해 진짜 용병 의뢰를 받아 처리까지 했지.
“아주 좋군요. 그런데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무척 평범한 평가입니다.”
“그렇습니까?”
거창하게 나간 것 치고는 결과가 우스워 보일 수는 있겠다.
“그럼 평가 건은 그렇게 알고 있겠습니다. 그것보다 아드리아스 교수님.”
“예.”
“저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만 니바스의 선택에 교수님의 성함이 올라가 있더군요.”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놀랐습니다.”
“교수님 본인도 말씀이십니까?”
“니바스의 선택은 축제 도중에 발표된다고 들었는데 그렇지 않아서 말입니다.”
“아, 그걸 놀라신 겁니까. 그러면 본인이 워록이라는데에는 이견이 없는 거겠죠?”
사용을 안했으면 몰라. 이미 대놓고 오리지널 마법을 사용해왔는데 굳이 숨길 필요도 없었다.
“예.”
“허허. 거 참 놀랍군요. 교수님께서 올해로 나이가 스물다섯이었나요?”
“그렇습니다.”
“이전의 마법학부장이셨던 베리얼 경께서도 31살에 워록이 되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역대급 기록이라고 주변의 칭송이 자자했는데 그걸 깨부술 줄은 짐작도 못했습니다.”
“과찬이십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데오스가 차를 홀짝이는 소리만 종종 들려오는 가운데,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교장님. 니바스 축제에 다녀와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죠! 워록이 되셨는데 이런 경사를 놓치면 인생의 손해입니다.”
허락은 해줄 거라 짐작하고 있었다.
아카데미를 며칠 빠진다고 지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자랑할 만한 기회였으니까.
‘로들렌 아카데미의 최연소 교수는 최연소 워록이라고 말이지.’
아마 굉장한 홍보 효과가 되지 않을까.
그리고 나를 교수로 임명한 데오스의 안목도 동시에 띄워질 테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축제 기간을 제가 확인하지 못했군요. 언제 가십니까?”
“다음 주에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주말에는 미리 출발할 예정입니다.”
“좋군요. 가서 실컷 축제를 즐기고 오세요.”
축제를 즐기고 오라고?
뭐,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축제라는 이름이 붙었으니 놀러가는 것처럼 보이겠지.
하지만 니바스 축제는 말만 축제지 학술 강연회나 마찬가지였다. 온갖 곳에서 모여든 워록들이 서로의 지식을 뽐내는 자리.
심지어 흑마법사도 참가하는 대규모 모임이었다.
“이야기는 이걸로 끝난 것 같군요. 부디 조심해서 다녀오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순탄하게 대화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자 곧바로 느껴지는 정령의 기운에 마나로 떨쳐냈다.
매번 이러는 걸 알면 내가 눈치 채고 있다는 걸 깨달을 때도 되지 않았나?
“포트리온을 가게 됐군.”
마법사들의 도시, 포트리온.
언젠가는 가보겠지 싶었는데 그게 지금이 될 줄은 몰랐네. 간 김에 아티팩트나 마법 도구들을 싹쓸이하고 와야겠다.
‘근데······.’
과연 아무 일도 없을까?
루시아를 데려가는 선택이 맞는 건지 조금 걱정스러워졌다.
‘아니지.’
최근에 느꼈던 후회.
플레이어블들을 너무 온실 속의 화초처럼 기르려고 했다. 덕분에 그들의 성장을 내가 막게 된 셈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루시아는 그 누구도 따라가지 못하는 마법적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 세 번째 플레이어블이자 탑에서 가공할 신위를 보였던 디에네보다도 더 뛰어난 재능.
“믿어야지.”
그녀의 재능을 나만큼 잘 아는 사람도 이 세상에 없다. 그러니 만약 시련이 닥쳐도 그녀는 그 시련을 발판 삼아 도약 할 수 있을 거다.
······루시아의 곁에는 내가 있으니까.
< 325화. 축제 동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