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1화. 아드리아스의 평가 >
대부분의 학생들이 중간평가를 마치고 자유를 되찾은 금요일.
공용 연무장에는 비장한 얼굴로 모여든 4명의 인물이 있었다.
“와, 씨. 다 모였네.”
“면면들이 워낙 화려해야 말이지.”
모여서 기다리고 있는 이들은 기사학부 내에서도 가장 유명한 학생들.
당연하게도 그런 그들을 보기 위해 모여든 인파도 상당했다.
“새벽 4시인데도 사람이 많네.”
루이스가 어색하게 웃으며 운을 뗐다.
그러자 전혀 반응하지 않을 것 같던 크리스가 입을 열었다.
“평소에도 4시에 일어나는 녀석이 할 말인가?”
“그건 그렇지만 이렇게 사람이 많은 모습은 못 봤지.”
그때 인파 속에서 누군가가 소리 질렀다.
“회장님, 화이팅! 기 죽지 마세요!”
“내가 왜 기 죽어!”
세레나가 들려온 외침을 향해 소리치자 까르르 거리는 웃음소리가 퍼졌다.
학생회 임원들이 보러 왔음을 안 세레나는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철없는 놈들.”
“보기 좋네.”
“뭐가 보기 좋아. 저렇게 생각이 없는데.”
흐뭇하게 세레나와 그 추종자들의 모습을 지켜본 루이스는 한쪽에서 우두커니 서있는 인물에게 다가갔다.
“벤자민.”
“예, 선배.”
“긴장돼?”
벤자민은 루이스의 말에 슬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의외의 반응에 오히려 루이스가 놀라서 물었다.
“긴장이 된다고? 네가?”
“예, 교수님과 선배들하고 같이 평가를 떠난다고 생각하니 긴장이 됩니다.”
솔직한 벤자민의 말에 역시 어른스러워 보여도 어리다는 걸 깨닫는 루이스였다.
“너무 걱정하지 마. 교수님도 우리 수준을 알고 계실 테니 무리한 평가는 치르지 않을 거야.”
“그래서 긴장이 됩니다.”
“응?”
“교수님은 절대 저희를 과소평가하지 않을 겁니다. 오히려 그 어떤 교수님들보다 저희를 자세히 알고 계실 수도 있어요.”
들어보니 맞는 말이었다.
게다가 지금까지 있었던 기사학부 평가들은 성적이 고만고만한 다른 이들도 함께 치렀던 시험.
이번에 치를 아드리아스의 평가는 오직 4명만 참가하니 지금껏 치른 시험과는 비교도 안 되게 난이도가 높을 수도 있었다.
“갑자기 나도 긴장되는데?”
“적당한 긴장은 도움이 되겠죠.”
루이스는 벤자민이 어려보인다고 착각한 자신을 자책했다. 벤자민은 역시 애어른이었다.
“오신다!”
누군가의 외침에 인파가 갈라졌다.
그와 동시에 아드리아스와 비비안이 느긋하게 걸어들어왔다.
탁!
“새벽 4시부터 구경꾼들이 많군.”
도착한 아드리아스가 앞에 서자마자 내뱉은 한 마디였다.
갑작스레 한기가 느껴지는 분위기에 학생들이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여유가 있나 보지? 그럴 시간에 검이라도 한 번 더 휘둘렀으면 내 강의를 들을 수 있었을 텐데 말이야.”
차갑게 쏟아지는 폭격에 학생들은 고개를 숙이며 은근슬쩍 연무장을 이탈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학생회 임원들과 몇몇 자신 있는 인물들을 제외하고 모두가 나가자 아드리아스가 턱짓했다.
“너넨 뭐지?”
“구경꾼입니다!”
마릴린이 자랑스레 말했다.
그런 그녀를 학생회 1석 피오네 아르디가 막았다.
“죄송합니다, 교수님. 회장을 배웅해주려는 마음에······.”
“피오네, 오랜만이네.”
아드리아스가 아는 척을 하자 피오네의 표정이 밝아졌다.
“미리 인사를 못 드려 죄송합니다.”
“저번에 인사했잖아. 알고 있어.”
스쳐지나가며 인사를 한 경험이 있기에 아드리아스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하지만 피오네는 그 말을 듣고 뿌듯해지는 감정을 느꼈다.
“어쨌든, 자. 준비는 끝났나?”
“예!”
벤자민이 힘차게 대답했고 나머지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바로 출발한다.”
“교수님! 평가 내용은 언제 알려주시나요?”
“열차에서.”
아드리아스는 대답을 끝마치자마자 곧바로 움직였다. 그런 그를 학생들이 급히 따라붙었다.
순식간에 열차에 탑승하게 된 네 명의 학생들은 이내 살며시 긴장한 얼굴로 아드리아스를 바라봤다.
하지만 좌석에 앉은 아드리아스는 태연하게 품에서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교수님?”
“음?”
결국 맞은편에 앉은 세레나가 나섰다.
“평가 내용을 설명해주신다고······.”
치이이익----!
세레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열차가 출발했다. 그 모습을 본 아드리아스는 책을 살며시 덮으며 말했다.
“평가 내용이라······궁금해?”
“네.”
“예!”
세레나의 옆에 앉은 벤자민도 호응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옆 건너편 좌석에 앉은 루이스와 크리스도 고개를 돌린 채 아드리아스의 말을 기다렸다.
“우린 지금부터 흑마법사 사냥을 간다.”
“······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야기에 세레나가 되물었다. 그러나 아드리아스는 마치 그 모습을 못 봤다는 듯 다시 태연하게 책을 펼쳤다.
“지금이라도 빠지고 싶은 사람은 빠져도 좋아. 내 평가는 성적에 반영되지 않고 그저 실전 경험을 쌓기 위해 나서는 평가니까.”
너무나 갑작스러운 아드리아스의 말에 일행들은 말을 잊었다.
하지만 벤자민이 곧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안 빠질 겁니다.”
“오냐.”
아무렇지 않게 고개만 끄덕인 아드리아스가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빨리 결정하는 게 좋아. 이미 열차는 출발했으니까 돌아가는 길이 멀어질 거야.”
“······.”
벤자민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오히려 심각한 표정으로 고뇌에 빠진 모습들이었다.
“흑마법사의 위치를 알아낸 건가요?”
그나마 넷 중에서는 똑 부러지는 세레나가 다시 질문을 던졌다.
“어.”
“왜 하필 저희죠?”
“뭐가?”
“흑마법사라면 제국에 신고를 해서 조사단을 파견하는 게 먼저잖아요. 왜 우리를 데리고 흑마법사를 공격하러 가는지 의문이에요.”
텁!
아드리아스가 책을 덮었다.
“내가 무서운 이야기를 좀 해줄까.”
“갑자기요?”
“제국은 곧 전쟁을 일으킬 거야. 그리고 사방에서 흑마법사들이 날뛰겠지.”
“네?”
흑마법사 사냥이라는 평가 내용부터 지금 나오는 이야기들까지 영문 모를 소리를 해대는 아드리아스에게 사인방의 시선이 꽂혔다.
“그걸로 끝이 아니야. 전쟁을 이용해서 온갖 사교도와 이교도 놈들이 괴물들을 소환하지. 대륙은 혼란으로 치달을 거다.”
“아까부터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난 너희들이 그 혼란 속에서 살아남았으면 한다. 이건 일종의 모의 연습이라고 치자. 미리 흑마법사를 상대해보며 대비를 하는 거지.”
“교수님! 전 장난치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묻는 거예요!”
세레나의 말에 분위기가 삭막해졌다.
벤자민이 은근히 세레나에게 눈치를 주었지만 그녀는 듣지 않았다.
“그 말들, 제국의 귀에 들어가면 단순한 우스갯소리로 치부되지 않을 거예요. 어쩌면 형벌을 받을 수도 있는 말들이라고요.”
“날 가르치려는 거냐?”
아드리아스가 미소 지으며 물었다.
그러나 그 미소에 담긴 싸늘함을 느낀 세레나는 흠칫했다.
“난 그냥 무서운 이야기를 했을 뿐이야.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각자의 몫이겠지만. 그리고 흑마법사와의 전투는 귀중한 경험이 될 거야. 항상 숨어 다니는 놈들을 이런 때가 아니면 언제 또 상대해보겠어?”
뻔뻔하게 말한 아드리아스는 창밖을 확인했다.
“곧 내려야겠네. 준비해.”
“어? 표는 타밀까지인데요?”
벤자민이 이야기를 듣다가 표를 재확인하며 말했다.
“우린 다음 역에서부터 마차를 타고 이동한다. 흑마법사를 잡으러 가는 거니까 조금 돌아서 갈 거야.”
아드리아스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일행들은 주섬주섬 자리를 정리했다.
평가를 할지 말지 결정하라던 말도 이제는 아득히 잊혀진지 오래였다.
곧바로 열차에서 내린 후 아드리아스는 마차를 잡았다.
“모글란 방향으로.”
“예이.”
얼떨결에 마차까지 탑승한 4인방은 어벙한 표정으로 마차가 출발하는 걸 지켜봤다.
“모글란이면 국경 지대네요?”
“어.”
“사실 그 근처에 제 고향이 있습니다.”
루이스가 뒤늦게 목적지를 확인하고 말했다.
나도 이미 알고 있다, 인마.
“그래? 근데 최종 목적지는 아니야.”
“그렇습니까.”
“평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잠깐 들렀다 가던지.”
“아닙니다. 저번 방학 때도 들렀었으니 괜찮습니다.”
루이스가 말만으로도 감사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참 예의바른 청년이 아닐 수가 없었다.
“마법사를 실전에서 상대하는 건······처음인 것 같군.”
그때 조용히 있던 크리스가 입을 열었다.
이미 각오를 다진 듯한 말이었는데 긴장한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말은 루이스나 세레나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평가, 할 거야?”
“당연한 소리. 오히려 왜 물어보는지 모르겠군.”
세레나의 물음에 크리스가 삐딱한 태도로 답했다.
“아드리아스 교수님이 아무 생각 없이 우리에게 실전 경험을 쌓아주려는 건 아니겠지.”
너무나 정석적으로 말하는 크리스에게 루이스와 세레나가 의외라는 시선을 보냈다.
뻔뻔하게 말한 아드리아스는 창밖을 확인했다.
“곧 내려야겠네. 준비해.”
“어? 표는 타밀까지인데요?”
벤자민이 이야기를 듣다가 표를 재확인하며 말했다.
“우린 다음 역에서부터 마차를 타고 이동한다. 흑마법사를 잡으러 가는 거니까 조금 돌아서 갈 거야.”
아드리아스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일행들은 주섬주섬 자리를 정리했다.
평가를 할지 말지 결정하라던 말도 이제는 아득히 잊혀진지 오래였다.
곧바로 열차에서 내린 후 아드리아스는 마차를 잡았다.
“모글란 방향으로.”
“예이.”
얼떨결에 마차까지 탑승한 4인방은 어벙한 표정으로 마차가 출발하는 걸 지켜봤다.
“모글란이면 국경 지대네요?”
“어.”
“사실 그 근처에 제 고향이 있습니다.”
루이스가 뒤늦게 목적지를 확인하고 말했다.
나도 이미 알고 있다, 인마.
“그래? 근데 최종 목적지는 아니야.”
“그렇습니까.”
“평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잠깐 들렀다 가던지.”
“아닙니다. 저번 방학 때도 들렀었으니 괜찮습니다.”
루이스가 말만으로도 감사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참 예의바른 청년이 아닐 수가 없었다.
“마법사를 실전에서 상대하는 건······처음인 것 같군.”
그때 조용히 있던 크리스가 입을 열었다.
이미 각오를 다진 듯한 말이었는데 긴장한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말은 루이스나 세레나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평가, 할 거야?”
“당연한 소리. 오히려 왜 물어보는지 모르겠군.”
세레나의 물음에 크리스가 삐딱한 태도로 답했다.
“아드리아스 교수님이 아무 생각 없이 우리에게 실전 경험을 쌓아주려는 건 아니겠지.”
너무나 정석적으로 말하는 크리스에게 루이스와 세레나가 의외라는 시선을 보냈다.
“왜 그런 눈으로 쳐다보지?”
“네가 그런 말을 하는 게 신기해서. 너 다른 평가 볼 때는 왜 이딴 걸 하는지 모르겠다고 투덜댔잖아.”
“사실을 말했을 뿐이다. 그건 쓰레기 같은 평가였지. 실력향상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쓰레기.”
신랄한 크리스의 비판에 내 가슴도 저려왔다. 분명 도움이 되라고 흑마법사 사냥을 나서는 거긴 한데 다른 목적도 있어서인지 괜히 찔리네.
“좋은 경험이 될 거다.”
결국 한 마디 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아, 어차피 여기까지 온 마당에 안한다고 할 수도 없죠.”
세레나가 한숨을 내쉬었다.
루이스는 고구마 같은 성격 탓에 딱히 아무 생각이 없어보였고, 벤자민은 내가 가서 드래곤을 잡아오라고 해도 달려갈 기세였다.
“이 멍청한 것들하고 같이 그런 위험한 평가를 치러야한다니······.”
마부가 앞에 있기에 차마 흑마법사라는 단어를 꺼내지 못하는 세레나가 한숨을 내쉬었다.
“흥, 우리한테 업혀가지나 마라.”
“······뭐? 한 판 붙어볼래?”
크리스와 세레나가 티격태격하는 사이 날이 저물어갔다.
1차 목적지까지 예상 이동 거리는 대략 이틀.
거기서 또다시 흑마법사가 있는 곳은 하루 정도가 걸렸다.
‘지금쯤 다들 출발했겠네.’
계획은 이미 시작됐다.
**
이틀 동안의 마차 이동이 끝났다.
나는 마차 삯을 주며 마부를 돌려보냈다.
“이런 곳에서 내릴 줄은 몰랐는데요.”
세레나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녀의 말대로 이곳은 아무것도 없는 숲 속 한복판.
“준비해둔 마차가 있어. 그걸 타고 가면 된다.”
“철저하시네요.”
세레나가 혀를 내둘렀다.
다른 이들은 그냥 멍했는데 세레나가 아니었으면 심심할 뻔했다.
‘진짜 검밖에 모르는 바보들 같네.’
속으로 조용히 생각하다 우연히 비비안과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검에 대한 생각보다 다른 생각으로 가득 찬 것 같지만 그냥 넘어가자.
수풀을 헤치며 약속된 장소로 향했다.
마침내 숲 속의 작은 공터를 발견한 우리는 그곳에서 또 다른 마차를 볼 수 있었다.
‘아니, 근데······!’
이건 예상 못했는데······.
내가 당황한 사이 아카데미 4인방이 마차로 다가갔다.
“음? 마부?”
그러다 문득 누군가를 발견하고는 중얼거렸다.
“교수님! 이 마부도 교수님이 고용하신 거죠?”
“······어.”
아니, 분명 내가 모습을 바꿔서 오라고 했었는데 왜 그냥 온 거야!
그러나 애써 내색하지 않았다.
상대의 정체를 애들이 알게 되면 또 난리가 날 게 뻔하니까······.
“어?”
루이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더니 순식간에 경계하는 기색으로 몸의 근육을 긴장시켰다.
“강해, 이 사람.”
“애송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이 젖비린내 나는 것들은 뭐고.”
마부, 아니 막시민이 눈살을 찌푸리며 내게 물었다. 사실 마차를 준비하라고 말만 한 뒤 뭘 할 지에 대해서는 막시민에게 전달하지 않았었다.
끼익-
그때 마차 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얼굴을 드러냈다.
“오셨어요?”
어느새 완전히 팔이 고쳐진 아가타였다.
“두 분 다 오랜만입니다. 지금부터 애들을 데리고 제가 말했던 목표를 완수하면 됩니다.”
“확인했습니다.”
“······지금 나보고 보모 노릇을 하라는 거냐?”
아가타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인 데 반해 막시민은 인상을 썼다.
“한 번만 부탁하면 안 되겠습니까? 그리고 재능이 뛰어난 아이들입니다. 어쩌면 저보다 더요.”
“하! 너보다 더?”
막시민과 대화를 나누고 있자 4인방은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다 문득, 크리스가 중얼거렸다.
“막시민 크로넬?”
그 한 마디에 애들이 얼어붙었다.
이래서 내가 모습을 바꿔 오라고 한 건데······.
“자, 오늘부로 너희들의 평가 담당이 되실 막시민 크로넬 님이다. 말 잘 들어라.”
에라, 모르겠다.
< 321화. 아드리아스의 평가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