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 특성으로 최강 네크로맨서-294화 (294/415)

< 294화. 10가지의 시험 >

스스스스--

기묘한 이명과 함께 주변을 가득 채우는 존재감이 느껴졌다.

이제는 거의 익숙해지기까지 한 그 압박감은 초월자의 등장을 의미했다.

“허?”

모두가 움직이지도 못할 때, 샤히 샤마드의 일원이 든 50cm 크기의 뚜껑 열린 정사각형 상자에서 무언가가 나오기 시작했다.

스르륵!

그것은 손이었다.

내부가 시커먼 상자에서 나온 손은 스멀스멀 기어 나오더니 상자의 모서리를 움켜잡았다.

슬쩍 보이는 손의 안쪽에는 닫혀있는 눈꺼풀이 존재했는데 눈이 달려있는 듯했다.

[“나모라다나다라야야.”]

이내 초월자의 음성이 들려오며 상자 안에서 수많은 손들이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쏘세요.”

“어, 에?”

“지금 바로 쏘세요.”

이미 늦은 감이 있지만 나는 곧바로 아가타에게 활을 쏘라고 말했다.

아가타는 내 명령에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을 뒤로 한 채 습관처럼 화살을 쏘아 보냈다.

피잉-

퍽!

정확히 샤히 샤마드의 머리에 박힌 화살이 부르르 떨렸다.

샤히 샤마드의 신도는 여전히 기괴하게 웃고 있는 모습 그대로 쓰러졌다.

털컥!

상자가 바닥에 떨어지며 요란한 소리를 내었다.

그럼에도 튀어 나온 손들은 아무 반응 없이 상자의 가장자리를 움켜쥐고 있을 뿐이었다.

스르륵--

무수히 많은 손이 바글거리며 튀어나왔다.

그 모습이 퍽이나 징그러웠고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철컥!

피이잉----

그때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던 무토가 개벽을 사용하며 상자를 단숨에 베어냈다.

기괴한 모습을 보이던 상자는 아무 저항도 없이 붉은 검기에 잘려나갔다.

“뭐야, 별 거 아니잖아. 괜히 쫄게 만들고 있어.”

무토가 중얼거리며 검을 다시 집어넣는 순간.

촤르르륵----

산산조각이 난 상자에서 붉은 액체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양은 상식을 벗어난 규모였다.

콸콸콸콸---------!

“루나, 주변에 보호마법을!”

급하게 루나에게 부탁한 뒤 나도 덩달아 마법을 준비했다.

‘심상치 않아.’

아직 초월자의 기운은 사라지지 않은 상태였다.

부서진 상자는 검은 속을 내보인 채 피와 같은 액체를 쏟아 주변을 전부 뒤덮고 있었다.

‘진짜 피다.’

짙은 혈향이 느껴졌다.

그것도 오래되지 않은 신선한 피의 냄새였다.

“보호 마법!”

나와 루나가 동시에 마법을 전개했고 파이시도 뼈의 장막을 다시 세웠다.

그때 우리의 뇌리를 무언가가 강렬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살바보다남바바마라미수다감”]

뜻을 알 수 없는 문자들의 배열.

그것은 마치 주문과도 같았다.

아니, 정확히는 경전을 읊는 소리에 가까웠다.

[“마라미마라아마라몰제예혜혜”]

피의 물결이 우리가 있는 곳으로 돌진해왔다.

“흐읍!”

“으랴!”

나와 루나가 마법을 펼치고 이타야와 무토가 오러 비기를 사용했지만 몰려오는 파도를 막을 수 없었다.

이내 피의 물결은 홍수와도 같이 불어나더니 순식간에 우리를 감싸버렸다.

**

똑! 똑!

[“그대들은 어찌하여 이곳에 왔는가.”]

목탁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머리속을 가득 채우는 근엄한 목소리.

정신을 차리며 눈을 뜨자 어느새 뒤바뀐 풍경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피로 잠긴 온통 붉은색 일색의 풍경.

우선은 일행들이 무사한가 살피기 위해 주변을 둘러봤다.

‘비비안, 루나, 그리고 아가타.’

나머지는?

바닥이 핏물로 이루어져 있는 공간에 나를 제외한 셋은 눈을 감은 채 누워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보이지가 않았는데 아무래도 무언가 잘못된 것 같았다.

[“다시 묻겠다. 그대들은 어찌하여 이곳에 왔는가.”]

“오고 싶어서 온 게 아니라 휘말렸습니다.”

[“아니. 그것은 잘못된 대답이다.”]

뭐라는 거야.

우리도 최선을 다해서 그 핏물을 막았다고.

간신히 대답했지만 들려오는 동문서답에 머리가 아찔해졌다.

[“이 장소에 도달했다는 것 자체가 그대와 나의 연이 닿았다는 뜻. 특히 그대, 연자여. 그대는 인과율을 건드리고 있구나.”]

“무슨 소린지 모르겠습니다. 그것보다 어떻게 하면 저희를 풀어주실 생각입니까.”

일단은 침착하게 상황을 파악하려 애썼다.

상대의 모습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대화는 통할 것 같은 초월자였기에 최대한 정보를 수집해야 했다.

자칫 잘못하면 개미가 밟혀죽듯이 순식간에 한줌의 핏물로 전락할 터.

[“그대가 가진 날개, 그것이 바로 인과율을 건드린 결과. 아무래도 그대는 긴 여정을 치르고 있는 모양이야.”]

아까부터 자꾸 이상한 소리만 해대는 게 점점 불안해진다.

날개가 뭘 의미하는지는 알지만 인과율이니 여정이니 하는 게 불안한데.

[“연자여, 그대가 이리 멀쩡히 서있는 것도 그 날개 덕분이도다.”]

“그렇습니까. 그것보다 대화를 나누기 전에 혹시 성함을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속세의 이름은 버린지 오래라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대답하자면 천수관음(千手觀音)이라 불리고 있지.”]

천수관음······불교?

이 세상에는 없는 종교였다.

아니 애초에 지구에만 있는 종교 아니었어?

‘역시 초월자들은 차원을 넘나드는 건가.’

이 가설은 탑에서 미리 짐작 했었다.

썩은 희망을 속삭이는 자도 말투를 보면 무림 출신의 초월자 같았지.

아마 남궁일영의 말대로 신선이었을 거다.

‘근데 분위기가 내가 알던 천수관음이 아닌데······.’

내가 알기로 천수관음은 곧 관세음보살이었다.

자비롭기로 유명한 보살이 이런 풍경에서 나와 저런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게 희한한 일이지.

“으음······.”

그때 비비안과 루나가 머리를 부여잡고 일어났다.

다행히 몸에 이상은 없는 듯했다.

“괜찮으십니까?”

“아드리아스?”

“예, 접니다.”

“여기가 어디······?”

비비안이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시에 루나도 눈을 뜨며 중얼거렸다.

“친구? 비비안?”

그녀는 이내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더니 눈을 크게 뜨며 외쳤다.

“여긴 어디야!”

[“죽음을 인도하는 자여, 그대가 속한 곳은 이곳이 아니건만 휘말려버렸구나.”]

루나한테 하는 말 같은데 영 뚱딴지같은 소리만 해댄다.

대화가 안 통하는군.

“관세음보살, 보살님이라고 불러도 되겠습니까?”

[“오랜만의 울림이구나, 허한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습니까?”

[“이곳에 들어온 이상 시험을 치러야한다. 여기는 그대들이 익히 알고 있는 나락, 곧 지옥이니라.”]

······쓰벌?

갑자기 웬 지옥?

갑자기 터무니없는 이야기가 나온 탓에 입이 떼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관세음보살은 신경 쓰지 않고 말을 이었다.

[“10가지의 시험을 통과하면 나갈 수 있다. 이것은 본인의 의지도 아니며 그저 그러한 이치. 단, 본인이 관여할 수 있는 것이 한 가지 있다.”]

“······그게 뭡니까.”

[“단 한 명이 다른 이들을 위해 희생할 수 있다.”]

“조금 더 정확히 설명해주실 수 있습니까?”

[“이곳에 온 이들은 무조건 시련을 받아야한다. 하지만 그걸 오롯이 한 명이 짊어질 수 있지. 그 한 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시련을 받지 않고 이곳에서 그 한 명이 통과할 때까지 기다리기만 할 수 있다.”]

사고가 따라가질 못하겠다.

샤히 샤마드의 신도가 미친놈처럼 이상한 상자를 들고 오더니 갑자기 핏물에 잠겼다.

근데 핏물에 잠긴 후 정신을 차려보니 여기가 지옥이고 나랑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게 관세음보살이라고?

“하아.”

일단 뭐가 됐든 나가는 게 문제였다.

10가지의 시험? 그게 뭐가 됐든 통과를 해야 한다는 건가.

말하는 걸 보니 관세음보살도 막을 수 없는, 그저 나가려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필수 코스인 모양이었다.

[“더 이상의 질문은 없나?”]

“우리가 왜 지옥에 왔는지가 궁금합니다.”

[“앞서 말했듯이 그저 인연이 닿았던 것. 그 자연스러운 이치를 언어로 표현할 수는 없다.”]

열 받네.

지옥에 갈만한 짓도 안했는데······.

‘했나?’

생각해보니까 뭔가 죽이기도 많이 죽이긴 했다.

어쩌면 필연이었을지도.

“시험은 언제 시작합니까.”

[“그대들이 준비가 되는대로.”]

언제든 시작할 수 있는 건가.

나는 시선을 돌려 비비안과 루나, 그리고 아직까지 정신을 잃은 상태인 아가타를 보았다.

“난 준비됐어.”

비비안이 아무렇지 않게 말해왔다.

하지만 난 그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난 불교의 지옥을 알고 있다.’

동양인치고 불교가 뭔지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

자세하게는 몰라도 대충 불교의 지옥이나 자잘한 상식을 알고 있었다.

이미 알고 있으니까 하는 말이지만 그런 지옥을 비비안과 루나가 겪게 둘 수는 없었다.

“보살님.”

[“듣고 있다, 연자여.”]

“보살님의 힘으로 한 명에게 몰아주기가 가능하다고 했죠?”

[“그렇다.”]

나는 심호흡을 한 차례 하고 말했다.

“제가 시험을 몰아 받겠습니다.”

“아드리아스!”

비비안이 놀란 음성으로 나를 부르며 어깨를 잡았다.

막을 거라고는 생각했다.

하지만 막지 못할 거야.

“가능하죠?”

[“가능하다.”]

“안 돼! 내가 받을 거야! 내가 대신 받을게!”

비비안이 급한 목소리로 허공에 대고 소리쳤다.

하지만 관세음보살은 비비안의 음성에는 답해주지 않았다.

[“모든 것은 인연. 이미 한 차례 윤회의 굴레를 겪은 연자가 감당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그동안 쌓여온 진흙이 깨끗하게 정화될 것이다.”]

“안 돼! 아드리아스, 안 돼!”

“친구? 왜? 무슨 일인데?”

피잉-

갑자기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비비안과 루나의 목소리가 점차 멀어져만 갔다.

[“부디 모든 시련을 통과하고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눈이 감겨왔다.

**

툭!

누군가가 내 몸을 건드렸다.

나는 반사적으로 일어나 검을 뽑아들었다.

‘검이······.’

그러나 내 허리춤에는 갈락슈르가 없었다.

어찌된 영문인지도 확인하기 전에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어났구나. 그럼 시작해볼까.”

내 눈앞에는 나를 건드린 것으로 보이는 작은 소년이 존재했다.

하지만 그 소년의 기척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누구냐.”

“나? 난 진광.”

스르릉---

주변에서 갑자기 수많은 칼들이 허공에 떠올랐다.

내가 서있는 곳은 무협에서나 볼법한 동양풍의 연무장 위.

“첫 번째 시험을 담당하는 왕이다.”

“시험······아.”

맞다. 10가지의 시험.

이제야 떠올릴 수 있었다.

내가 지금 지옥에 있다는 사실도.

“지금부터 치러질 시험은 간단해.”

후웅- 후웅-

칼들이 매서운 소리를 내며 허공을 날아다녔다.

그 숫자가 까마득했는데 눈대중으로만 비추어보면 거의 천 단위가 넘을 것만 같았다.

“내가 시작이라고 외치면 그 순간부터 7일 동안 넌 아무 목소리도 내면 안 돼. 만약 목소리를 내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이야. 계속 참지 못하면 넌 영원히 이곳에 있어야겠지.”

“목소리?”

“시작.”

후우우우웅------------!

허공을 날던 칼들이 전부 나를 향해 쏟아졌다.

갑작스런 시작에 나는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아, 참고로 이 연무장을 벗어나도 안 돼. 그럼 다시 처음부터야.”

이 개 같은 꼬맹이가.

규칙은 제대로 설명하고 시작하라고.

후우웅!

콰가가가각!

내가 피한 자리에 검들이 틀어박혔다.

그 아찔한 광경에 나는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음을 직감했다.

왜냐하면 지금의 나는 마나를 사용할 수 없었기에······.

‘마나도 없고 검도 없다.’

말 그대로 육체 밖에 없는 상태.

퍼버벅!

결국 피하지 못한 검들이 내 몸을 파고들었다.

“커억!”

“저런. 소리를 냈네. 다시 시작이야.”

푸슉!

검들이 다시 몸에서 뽑혀나갔다.

죽는 건가?

“크히히히. 너 뭐해? 빨리 움직여.”

“아?”

“어? 소리냈으니까 다시 처음부터야.”

죽지 않았다?

난 검이 찔렸던 몸을 내려다보았다.

분명 생생한 고통이 느껴졌음에도 내 몸은 멀쩡했다.

‘이건······.’

생각할 겨를도 없이 다시 검들이 내 몸을 꿰뚫었다.

퍼버버버벅!

“뭔가 착각하는 것 같은데, 여긴 지옥이라고. 넌 이미 죽은 몸이야.”

진광이 소악마같은 미소를 지으며 양손을 펼쳐보였다.

“도산지옥(刀山地獄)에 어서와.”

< 294화. 10가지의 시험 > 끝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