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2화. 시체들의 왕국, 두 번째 시련 >
퍼억!
차진 타격음과 함께 학생회 말석의 카심이 날아갔다.
대련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그 모습에 감탄을 흘렸다.
“오오!”
“역시 7석의 마릴린. 강하다.”
카심을 날려 보낸 장본인인 기사학부 3학년 마릴린 프란체는 쓰러진 그에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차례대로 올라와야지, 후배님아.”
“크윽.”
9석과 8석을 건너뛰고 바로 7석에 도전한 대가는 참담했다.
하지만 카심으로서는 당연한 선택이었다.
“후욱, 마법학부에 도전하는 건 제 성미에 맞지 않습니다.”
“마법학부인 게 뭐 어때서? 볼튼 선배님이나 메이 선배님이 너보다 강할 걸?”
8석과 9석은 마법학부의 4학년 학생들이었다.
하지만 자존심이 강한 카심은 차마 기사학부로서 마법학부에게 도전할 수 없었다.
“너 되게 웃긴다. 재작년까지만 해도 이 아카데미에서 제일 강한 학생이 누구였는지 알아?”
“······크롬웰 교수님.”
“그래. 크롬웰 교수님이 마법학부 출신인 건 알지?”
“하지만 교수님께서는 마법보다 검 실력이 더 뛰어났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건 네가 마법학부에서 일어난 일에 관심이 없어서 그렇게 알고 있는 거고. 그쪽 학계에서는 크롬웰 교수님이 작성한 졸업 논문이 아직도 화제인 건 알고 있어?”
카심은 몸을 추스르며 고개를 저었다.
“관심 없습니다.”
“거봐. 더 강해지고 싶으면 조금 더 열린 마음을 가지는 게 좋을 걸.”
마릴린이 웃으며 말하자 카심은 굳은 표정으로 짐을 챙겼다.
2학년 유일의 학생회 임원으로서 자존심이 강한 카심은 마릴린의 조언이 마치 잔소리처럼 들릴 뿐이었다.
“1년 뒤에는 제가 선배님을 따라잡을 수 있을 겁니다.”
“오오, 그래? 기대할게.”
여유롭게 대답하는 마릴린을 보며 카심이 애써 분한 마음을 삭혔다.
그때 그들을 지켜보던 다른 학생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야, 대장 신입 왔다.”
“벤자민 아니키우스?”
연무장에 등장한 인물은 아드리아스 크롬웰과 관련하여 연일 화재를 일으켰던 벤자민이었다.
그는 언제나처럼 수많은 검을 몸에 달고 있었는데 마침 대치하고 있던 카심과 마릴린을 향해 다가갔다.
“뭐지? 왜 다가가는 거지?”
“설마······.”
사람들이 숨을 죽인 채 그의 행동을 관찰하고 있는 가운데 벤자민이 카심과 마릴린의 앞에 멈춰 섰다.
“카심 선배님, 마릴린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뭐야, 우리 귀염둥이 벤자민 아니야?”
마릴린이 능글맞게 벤자민을 맞이하며 그를 끌어안으려 했다.
하지만 교묘하게 그녀의 움직임을 피해낸 벤자민은 차갑게 카심에게 말했다.
“이제 슬슬 제 자신을 증명할 때가 온 것 같아서 찾아왔습니다.”
“건방진 놈.”
카심의 두 눈에 불이 붙었다.
안 그래도 첫 만남부터 벤자민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카심은 고개를 끄덕이며 응수했다.
“그래, 나한테 도전하러 온 거냐? 마침 잘됐네. 샌드백이 필요했거든.”
“학생회장님에게는 미리 허락을 받아왔습니다.”
일반 학생의 학생회 가입, 그 과정은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평부원으로 학생회 내의 자잘한 업무와 잔일을 하는 것.
나머지 하나는 임원에게 도전하여 그 자리를 빼앗는 것.
물론 누구나 도전이 가능한 건 아니었고 부회장이나 회장에게 허가를 받아야만 했다.
“그럼 내가 봐줄게. 한 번 둘이 붙어봐.”
학생회가 개편된 이후로 학생들 간의 대련은 학생회 임원의 참관 하에도 진행이 가능하게 변했다. 학생회의 위상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러고 보니 네 잘난 후견인이신 크롬웰 교수님께서는 요새 많이 바쁘신 가봐? 아카데미 내에서 볼 수도 없군.”
“교수님의 시험도 통과하지 못한 분이 왜 그리 관심이 많으십니까.”
“뭐야?”
아드리아스를 제외하면 언제나 차가운 벤자민이 카심을 비웃었다.
“제가 선배님에게 대련을 요청하는 이유도 교수님께서 저를 선택했다는 사실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기 위함입니다. 그 외의 이유는 없어요.”
“몇 번 느꼈던 거지만 넌······.”
카심이 대련용 검을 벤자민에게 던지며 말했다.
“싸가지가 없어.”
“칭찬 감사합니다.”
신경전이 오가는 사이 마릴린이 손을 올렸다.
“둘 다 준비 됐지? 시작한다?”
구경하던 학생들도 긴장하며 지켜보는 가운데, 마릴린의 손이 내려갔다.
“시작!”
“먼저 덤벼라, 병아리.”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과연 얼마나 버티실지 궁금하군요.”
학생회 임원 자리가 걸린 대결.
벤자민과 카심이 격돌했다.
**
내가 말했던 약속 시간이 다 되어가자 사람들이 하나둘 돌아오기 시작했다.
내 일행이 아닌 키네인 용병단도 복귀하고 파이시도 돌아왔다.
“샤히 샤마드가 안 보여.”
무토가 짐으로 챙겨온 고기를 뜯으며 중얼거렸다.
“싸우는 애들이 아니라 지원에 강한 애들이라고 해서 데려왔는데 조금 이상하긴 하네.”
파이시도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이 구입한 물건을 살폈다.
샤히 샤마드, 내가 마지막으로 키웠던 캐릭터인 타르만과 연관된 세력.
타르만은 수도승이었고 샤히 샤마드는 그가 지내는 수도원에 숨겨진 암적인 존재였다.
‘잘만 하면 타르만하고도 엮일 수 있겠지만······.’
솔직히 조금 꺼려진다.
다른 플레이어블과 달리 타르만은 조금 독특한 캐릭터.
수도승인 만큼 다루기도 어려웠고 단숨에 강해지지도 않는 인물이었다.
타르만에 대해 고민하던 사이 무토가 손을 저으며 말했다.
“뭐, 상관없겠지. 그것보다······.”
그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호기심이 가득한 표정에 내가 그를 바라보자 곧바로 물음이 날아왔다.
“뭐 좀 샀나?”
“아직 모으고 있습니다.”
“그렇겠지, 뭐. 보니까 가격들이 장난아니더만.”
제대로 익혀지지 않아 피가 흐르는 고기를 물어뜯으며 무토가 웃어보였다.
내가 만개가 넘는 돌조각을 가지고 있다는 걸 모르니 할 수 있는 소리겠지.
난 결국 아이템 구입을 보류했다.
당장 구입할 수 있는 게 많았지만 아직 해금이 되지 않은 물건들도 많았고 이제 곧 2차 시련이 시작되는 걸 알기에 모을 생각을 할 수 있었다.
“한 입 할래?”
“오시기 전에 먼저 먹었습니다.”
“그래? 맛있는데 아쉽네.”
그래, 아쉬울 거다.
이제 곧 밥 먹을 시간도 없을 거거든.
쿠구구구구구구--------!
갑자기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지진과 같은 전조에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건물 밖으로 피신하기 시작했다.
“밥 먹는데 이게 또 뭔 일이야!”
“형님, 전 굽기만 하고 입도 대지 못했습니다.”
무토와 스잔이 투덜거릴 때 저 멀리 안개에 가려진 무언가가 빛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빛을 본 나는 곧바로 말했다.
“화산입니다.”
“뭐?”
“화산이 폭발한 모양이에요.”
안개에 가려져 보이지는 않았지만 벌써부터 은은한 유황냄새가 맡아지기 시작했다.
“미친. 화산?”
“화산섬인 모양이네.”
파이시가 곧바로 언데드를 소환했다.
오크로 만든 언데드로 동그란 덩치에 등에는 가마가 얹어져있었다.
파이시는 오크 언데드의 등에 올라타며 말했다.
“일단 해안가로 물러나야 되겠어.”
“메쥬르는 괜찮나? 아직 아무것도 못 바꿨는데.”
무토가 아깝다는 표정을 지으며 뒤를 돌아봤지만 점차 강해지는 진동에 결국 용병단을 이끌고 이탈하기 시작했다.
“절대 저와 떨어지지 마십시오.”
길을 떠나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우리 일행을 세워두고 확실히 말했다.
이번 시련은 저 화산 폭발이 전부가 아니었다.
“이거 미리 챙겨두세요.”
나는 감정 증폭을 억제시키는 포션을 골고루 분배한 다음에 출발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일행 중에 내 말을 거스를 사람은 하나도 없었기에 아무 문제가 없었다.
라고가 끼어있다는 것만 제외하면.
‘왜 파이시를 안 따라간 거야.’
라고는 통제 불능의 캐릭터라는 인상이 강해서 같이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이미 자연스레 대열에 합류해있었다.
루나가 있으니까 괜찮겠지.
“저희도 해안가로 가겠습니다.”
해안가로 가겠다는 파이시와 무토의 결정은 틀리지 않았다.
다만 앞으로 일어날 일을 모를 테니 큰 피해를 입을 수도 있지.
‘이번에는 좀 도와줘야겠어.’
이 이상의 전력 손실은 막아야했다.
이미 이 유적의 보스와 한판하기로 마음먹은 상황이니 최대한 전력을 보존해야 했다.
이미 탑에서 초월자의 화신체와 싸워보기까지 한 몸.
유적의 보스가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초월자의 화신체만 할까.
······확신은 못하겠다.
휘유우웅---
콰아앙!
하늘에서 화산 폭발로 인해 터져 나간 바위들이 운석처럼 떨어져 내렸다.
나는 일행의 머리 위로 보호막을 펼치며 그대로 달려갔다.
“우와아아아!”
루나가 머리 위에서 일어나는 화려한 폭발에 박수를 치며 좋아했고 그런 루나를 비비안이 옆구리에 끼며 달렸다.
어느새 왕국의 입구인 성문까지 도달한 우리는 드디어 두 번째 시련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으윽.
성문 밖의 숲.
어느새 수많은 언데드들이 에워싸고 있었고 먼저 출발했던 파이시와 키네인 용병단이 길을 뚫고 있었다.
흔들리는 땅으로 인해 정신이 없을 법도 했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길을 텄다.
“이것들이 미쳤나! 아까처럼 몰려들고 지랄이야!”
건물을 사용하는 꼼수를 사용할 수 없게 일부러 제작자가 이렇게 했구나 싶었지만 지금은 게임이 아닌 현실.
무토의 말대로 지랄 같은 현실이었다.
휘유우우웅----
꽈아아앙!
화산의 분출은 끝날 기색이 없었다.
어느새 안개마저 가릴 정도의 잿더미가 밀려오는 게 식별이 될 정도.
“아드리아스! 루나! 너희들 마법 믿는다!”
“그래!”
뻔뻔하다고 말하려는 찰나 루나가 먼저 활기차게 대답했다.
어쨌든 키네인과 합세해서 길을 뚫은 끝에 해안선에 다다르는데 성공한 우리는 또 다른 위험을 마주할 수 있었다.
-끄드득.
-우어어.
바다 속에 있던 언데드들이 전부 해안가로 걸어 나오고 있었다.
시야를 가득 채우는 그 숫자는 첫 번째 시련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
“이놈들도 돌조각을 떨구는 건 좋은 데 지울 시간도 없네.”
파이시가 전력으로 언데드를 소환하며 말했다.
이전에 보았던 데스나이트부터 온갖 언데드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숲에서 몰려오는 적들과 바다에서 올라오는 적들.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상황.
“한 번 해보자고!”
북부인, 이타야가 호쾌하게 대검을 휘두르며 말했다.
아가타를 플레이했을 때는 없었던 3명의 오러 마스터는 든든하기 그지없었다.
스릉-
아가타도 오는 동안 화살이 다 떨어져 결국 단검을 꺼내들었다.
그렇게 모두가 뭉쳐서 적들의 공세를 대비할 때 내가 나섰다.
“후우.”
불완전한 사령 지배.
현자의 돌을 흡수하면서 얻은 특성.
나는 크게 심호흡을 하며 특성을 발동했다.
[불완전한 사령 지배가 발동됩니다.]
[파악되는 개채 수······37,546구.]
[불완전한 효과로 마나 소모가 두 배로 듭니다.]
-그어어?
다가오던 녀석들이 걸음을 멈췄다.
긴장하며 무기를 치켜 들던 사람들은 갑작스런 사태에 당황했다.
“뭐, 뭐야? 고장 났어?”
우리를 공격하기 위해 돌진하던 모든 놈들이 제자리에 멈춰 선 진귀한 광경이 펼쳐졌다.
< 292화. 시체들의 왕국, 두 번째 시련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