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7화. 웨이브 진행 >
“저 건물로 가겠습니다.”
미리 생각해두었던 건물을 가리키며 먼저 달려갔다.
갑작스러운 사태에 일행들도 정신없이 내 뒤를 따라왔다.
“어디 있다가 갑자기 나타난 거지?”
“저 숫자는 아무래도 부담이 되는군.”
갑자기 쏟아져 나오는 언데드들은 그 종류도 다양했다.
가장 하급의 스켈레톤부터 왕궁으로 향하는 길을 막고 있던 리빙아머나 듀라한과 같은 중급 언데드까지.
일단 건물 안으로 들어온 우리는 주변부터 살폈다.
“좋은데······.”
노아가 건물을 훑어보며 말했다.
그녀가 좋다고 말한 이유는 다름 아닌 건물의 외형과 입지에 있었다.
우리가 들어간 건물은 거대한 담장이 일차적으로 둘러져 있었고 안쪽으로는 폭이 좁은 지형들이 있어서 적은 인원수로도 방어하기가 용이했다.
중앙에 위치한 건물에는 옥상도 있어서 마법사인 나와 루나나 궁사인 아가타가 원거리에서 지원을 할 수 있었다.
“북부에서 오신 분들이 각자 동쪽, 서쪽, 남쪽을 막아 주십시오. 북쪽은······.”
“내가 막을게.”
비비안이 나서며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여주고 움직이기 시작하는 인원들에게 말했다.
“위에서 지원 사격을 하겠습니다. 혹시라도 위급해보이면 저나 여기 있는 노아가 도와줄 겁니다.”
“망자들 쯤이야 저 좁은 지형에서 막으면 얼마든지 막을 수 있지.”
이타야가 걱정하지 말라는 듯 말하며 뛰어갔다.
사방을 점유하고 기다리자 곧 언데드들이 쏟아져오기 시작했다.
“하아아.”
나와 함께 옥상으로 올라온 루나가 깊은 숨을 내쉬며 마력을 끌어 모았다.
이내 무언가를 강림시킨 그녀의 눈이 푸른빛으로 물들었다.
쩌저저적----!
순식간에 건물 담장 주위로 푸른 얼음들이 솟아났다.
덕분에 상대할 적의 수가 더 적어진 우리 쪽 사람들이 날뛰기 시작했다.
“이게 다 보상이란 말이지! 오히려 좋군!”
거대한 도끼와 철퇴가 휘둘러지며 언데드의 골통들이 박살났다.
비비안도 한쪽에서 신들린 듯한 움직임으로 적들을 분쇄하고 있었다.
피융!
아가타가 옥상에서 방어력이 약한 언데드만 골라서 화살을 쏘아댔다.
처음에는 엄두도 내지 못했던 숫자의 적이었지만 이제는 마치 물 만난 고기처럼 움직이는 일행들이었다.
콰드득!
나와 루나는 최대한 멀리 떨어진 적들을 향해서만 마법을 쏘며 전력을 보존했다.
“아드리아스, 파이시가 저기 있나봐.”
강림을 해서인지 말투나 성격이 차분해진 루나가 저 멀리 흐릿하게 연기가 피어오르는 장소를 가리켰다.
그녀의 말대로 파이시가 있는 모양인지 강렬한 사기(死氣)가 느껴졌다.
데스나이트라도 꺼낸 모양이네.
“결국 막다보면 숫자가 줄어들 겁니다. 그 후에 한 번 가보죠.”
“응.”
어그로가 잔뜩 끌리긴 했지만 좁은 지형 덕분에 무리 없이 버티는 일행들이 보였다.
이내 시간이 점차 지나고 슬슬 체력 싸움이 되어 갈 쯤, 눈에 띄게 줄어든 언데드의 숫자가 보였다.
“교대 하겠습니다.”
나와 루나, 그리고 노아가 옥상에서 내려왔다.
이미 한나절 가까이 지겹도록 언데드를 상대한 북부인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났다.
“위험하면 바로 나서지.”
“수고하셨습니다.”
비비안의 자리는 니켈로 대신했다.
오랜만에 밖으로 나온 니켈은 반갑게 턱을 부딪치더니 곧바로 자신의 자리로 향했다.
띠링!
[슬로스 팬텀(전설)]
[진화 중······.]
[남은 시간 : 2195시간 30분 30초]
탑에서 화신을 쓰러트린 이후 진화 가능성이 100%가 되었다.
덕분에 바로 진화를 시작했는데 무려 그 시간이 1년이 넘게 찍혔다.
도대체 뭐로 진화를 하려고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는지 몰라도 진화하는 동안 활동하는데 지장이 없었기에 상관없었다.
지금은 시간이 꽤 지나 3달이 남은 상태였다.
‘기대되네.’
탑에서의 활약이 너무나 눈부셨던 탓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진화가 당연히 기대가 될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언데드의 끝판왕이라 불리는 데스나이트로도 진화가 가능하지 않을까.
퍼걱!
거의 기계적으로 몸을 놀리며 언데드들을 부수고 있자 어느새 주변은 파란 돌조각만 무더기로 쌓인 공터가 되어있었다.
“끝?”
옥상에서 바라보던 아가타의 목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그녀가 소리쳤다.
“끝났습니다! 주변에 더 이상 없어요!”
일단 여기는 끝난 모양이었다.
하지만 전부 끝난 건 아니지.
나는 뒤이어 적이 오는지 살피며 이내 안전하다고 판단한 뒤 말했다.
“다친 분 계십니까?”
“우린 없다!”
북부인들은 전원 오러 마스터인 만큼 걱정될 게 없었다.
나머지 사람들도 모두 멀쩡했기에 나는 곧바로 다음 작업을 시작했다.
“우선 돌조각부터 수거하겠습니다.”
“이게 대체 몇 개야!”
언데드를 처치하면 돌조각이 무조건 나오는 건 아니었고 확률적으로 나왔다.
그렇기에 잡은 양에 비하면 적었지만 그럼에도 거의 작은 언덕을 쌓을 만한 양의 돌조각이 모였다.
“메쥬르한테 옮기는 것도 문제겠습니다.”
마법을 사용해서 모은 파란색의 작은 돌조각 동산을 보며 아가타가 중얼거렸다.
그녀는 중반부터 화살이 다 떨어져서 난색을 표하며 내려와서 같이 싸우려고 했는데 내가 말렸었다.
그래서인지 미안함이 묻어 묘하게 말이 많아진 모습이었다.
“옮기는 거야 마법으로 해결하면 문제없습니다.”
“나 공간 확장 아티팩트 있어!”
강림이 풀려 원래의 눈 색깔로 돌아온 루나가 자랑하듯 팔찌를 들어보였다.
돌조각은 다 모았고 옮기는 일도 해결됐으니 문제는 배분이었다.
“처음에는 각자가 사냥한 몫을 알아서 챙기는 분배형식이었지만 이번 만큼은 예외로 두고 싶습니다. 저는 공평하게 나누고 싶은데 모두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상관없다. 계약에 포함된 것도 아니니 의뢰주 마음이지. 오히려 분배를 해주는 것만으로 감사하다.”
북부인들은 생김새답게 시원스레 대답했다.
비비안이야 언제나 그렇듯 내 말에 토를 달지 않았고 노아는 그저 말없이 보고만 있었다.
“전 한 게 없어서 오히려 받기가 부담스럽습니다.”
아가타가 풀이 죽은 모습으로 중얼거렸다.
그런 그녀를 향해 괜찮다고 말하려는 찰나 옆에 있던 루나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
“괜찮아! 나도 한 거 없어! 그래도 받을 거야!”
“네?”
“친구가 나눠주는 건 거절하면 안 돼!”
사실 아가타가 씬과 접촉하지만 않았어도 내 몫을 그녀에게 더 몰아줘서 스펙을 올려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애매한 상황이니 우선은 공평하게 나누기로 했다.
······난 아직도 플레이어블 캐릭터인 아가타를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
‘아가타가 씬에 들어갔다면? 씬을 부수면 된다.’
내게 있어서 플레이어블이란 그 정도의 의미였다.
“돌을 다 챙기고 나면 동쪽으로 조금 가보겠습니다. 처음 이 건물 옥상에 올라왔을 때 다른 일행들의 기운이 느껴졌어요.”
“다른 곳은 잘 버텼을지 모르겠군. 우리야 운 좋게 이 건물을 발견했지만 다른 녀석들은 그러지 못했을 테니.”
운이 아니라 내가 일부러 이곳에 온 거지만 굳이 말하지는 않았다.
그나저나 이 웨이브의 끝을 장식하는 보스가 보이지 않는 게 신경 쓰였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그 녀석이 우리 쪽에 오지 않은 걸 보면 아무래도 키네인이나 파이시 쪽으로 향한 모양이었다.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루나의 아티팩트에 모든 돌조각들을 챙긴 우리는 곧바로 파이시의 기운이 느껴졌던 방향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도 조금씩 남아있는 언데드들이 있었지만 가볍게 부숴주고 길을 열었다.
“보입니다.”
눈이 좋은 아가타가 어딘가를 보며 말했다.
아직 내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나도 강력한 마나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라고가 날뛰었나.’
폭력적인 것을 넘어 흉포하게까지 느껴지는 이 기운은 분명 라고의 것이 분명했다.
제스터의 파벌에 속해있지만 사실상 중립이나 마찬가지인 워록.
그의 강함은 익히 들어 알고 있기 때문에 이번 웨이브에서도 파이시 일행을 걱정하지 않았었다.
“라고! 파이시!”
어느새 저 멀리 보이는 파이시 일행들을 향해 루나가 총총 걸음으로 다가갔다.
조금 전까지도 전투를 치른 듯 주변은 파이시의 언데드들과 묘한 열기로 가득했다.
“무사했네.”
파이시가 후드가 벗겨진 모습으로 내게 말했다.
드디어 그녀의 실물을 직접 보게 된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주위를 살폈다.
“운이 좋았습니다. 그것보다 용병으로 데려온 한 분이 안 보이는군요.”
“라고가 먹었어.”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말하고는 언데드를 소환 해제시켰다.
반은 젊은 여인이고 반은 해골의 모습인 그녀가 저런 말을 하니 더욱 섬뜩하게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내 모습을 본 건 처음이겠네. 놀라지 않은 게 신기한데?”
“대부님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습니다.”
“뭐, 내가 하프 리치인건 집회 내에서도 유명한 이야기니까.”
파이시, 그녀가 파벌에 속하지 않고도 존중받고 모른에 이어 두 번째로 강한 네크로맨서가 될 수 있었던 이유.
그녀는 스스로 리치가 되려다 실패한 마법사였다.
그러나 리치의 특성을 어느 정도 물려받아 인간이라고 볼 수 없는 강대한 마력과 수명을 얻게 된 인물이었다.
‘근데 여기에도 그 녀석이 없는 걸 보면······.’
키네인 쪽으로 갔겠군.
마지막에 등장하는 보스급 언데드는 따로 공략법을 만들 정도로 까다로운 녀석이었기에 키네인 용병단의 상태가 살짝 걱정이 되었다.
“키네인을 찾으러 가야겠습니다.”
“그래? 먼저 가봐. 난 뒷정리 좀 해야 해서.”
“알겠습니다.”
파이시와 라고가 있으면 녀석을 상대하기 더 수월하겠지만 딱히 없어도 상관없었다.
상대법을 모르면 까다로운 거지 알기만 한다면 나 혼자서도 잡아낼 자신이 있었으니까.
우웅!
나는 슬쩍 미리내를 소환하고 곧바로 그림자에 숨겨 날려 보냈다.
소음이 들리지 않는 걸 보면 꽤 멀리서 싸우고 있는 것 같은데 미리내가 이럴 때 편하긴 하다.
하지만 내가 미리내를 소환한 건 곧 의미 없는 일이 되었다.
피이이잉--------
콰아아아아앙----------!
귀를 찢는 듯한 이명과 함께 곧이어 거대한 굉음이 터져 나왔다.
“무토 키네인. 오러 비기를 사용했군.”
마력으로 돌조각을 모으던 파이시가 귀를 틀어막고 중얼거렸다.
덕분에 그의 위치를 확인한 난 곧바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키네인을 돕겠습니다.”
“알았다!”
내 뒤를 따라 일행들이 달리기 시작했고 우리는 다시 자잘하게 남은 언데드를 박살내며 굉음이 터진 곳으로 나아갔다.
생각보다 먼 거리에 한참을 달렸지만 용병왕이 질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았기에 큰 걱정은 없었다.
‘단원들은 좀 죽었겠네.’
키네인 용병단의 규모는 굉장히 컸다.
이번에 데리고 온 이들은 그 중에서도 아마 날고 기는 이들만 데려왔을 터.
하지만 오러 마스터조차 질리게 만들 정도의 물량으로 인해 키네인의 최정예라고 해도 약간의 피해는 입었을 게 분명했다.
거기다 지금은 그 까다로운 보스를 상대하고 있으니······.
“먼저 가보겠습니다.”
나는 결국 날개를 사용했다.
활짝 펴진 하나의 새하얀 날개가 내 육체의 힘을 끌어올렸다.
펄럭!
이 틈에 키네인한테 빚을 더 얹어둬야지.
그리고 보스를 처치하면 내가 얻을 거리도 많았다.
첫 번째 웨이브의 보스는 키메라 골렘.
네크로맨서에게는 종합 선물 세트와 같은 녀석이었다.
< 287화. 웨이브 진행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