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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 특성으로 최강 네크로맨서-280화 (280/415)

진화 특성으로 최강 네크로맨서 (280)

시체들의 왕국

“라고다!”

분위기를 깨는 목소리가 들려오며 누군가 쪼르르 달려 나왔다.

그리고는 곧바로 라고로 추정되는 인물에게 뛰어들어 안겼다.

“라고!”

“라고는 루나가 반갑다.”

생각해 보니 루나가 있었구나.

사실 내가 라고의 무서움을 알게 된 것도 루나의 죽음 때문이었다.

원래였으면 죽었을 루나로 인해 분노한 라고는 성국을 혈혈단신으로 쳐들어가 반쯤 박살 내 놓지.

물론 이후에는 에반과 성국의 오러 마스터들에게 죽었었다.

‘이제 그것도 없는 이야기가 되는 건가.’

라고는 딱히 게임상에서 나오는 일이 없었다.

그저 강한 워록이라는 사실만 알지 실제로 상대할 일은 없었으니까.

만나 보기도 전에 성국과 거하게 한 판 치르고 죽으니, 뭐.

‘내가 없었으면 루나는 라고랑 다녔겠지.’

친구를 뺏은 셈인가.

하지만 나도 내 조카 같은 루나를 뺏길 생각은 없으니까 의미 없는 가정이었다.

“라고가 온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습니다만.”

“너도 네 맘대로 애들 데리고 왔잖아. 너무 딱딱하게 굴지는 마.”

파이시가 여전히 후드에 가려진 모습으로 말했다.

어차피 게임에서 다 봤었던 외모라 별생각은 없었지만 왜 굳이 저렇게 가리나 싶었다.

딱히 본인의 외모에 불만이 있는 것도 아닌 것 같더구먼.

“전 아직 일행이 더 남아 있습니다.”

“그래? 언제쯤 도착하는데?”

“곧 올 겁니다.”

애초에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했기에 걱정은 없었다.

약속을 어길 사람들도 아니었기에 나는 여유롭게 파이시의 일행들을 살폈다.

‘두 명인가.’

파이시와 라고까지 합하면 4명이었다.

나머지 둘도 후드를 뒤집어썼기에 정체를 파악할 수 없었지만 평범한 인물들 같지는 않았다.

“키네인 용병단이나 다른 곳들은요?”

“여기서 만나기로 한 건 너랑 나밖에 없어. 각자 다른 곳에서 합류한 다음에 목적지로 향할 거야.”

생각보다 철저하네.

나한테도 정보를 숨겼다는 점에서 일단 가산점이었다.

그게 과연 무슨 가산점일지는 두고 봐야 알겠지만…….

“왔군.”

내가 고개를 돌리자 누군가가 걸어오고 있었다.

거대한 덩치의 거한 셋.

모두 외모에 어울리지 않는 복장을 입은 탓에 유독 더 눈에 띄었다.

“여기입니다.”

“네가 아드리아스 크롬웰인가.”

가장 선두에 선 남자가 말했다.

“맞습니다. 임무가 뭔지는 들으셨겠죠?”

“그래.”

갑작스레 등장한 세 명의 거한을 파이시와 그 일행들이 경계 어린 눈으로 바라봤다.

‘경계가 될 수밖에 없겠지.’

내가 데려온 인물들은 다름 아닌 북부 야만족의 오러 마스터들이었다.

북부 전쟁에서의 보상이 드디어 빛을 발하는군.

“대족장과 무슈가 안부를 전했다.”

“확인했습니다. 둘은 잘 지냅니까?”

“잘 지내고 있지. 처음에는 수치스러워했지만 지금은 너에게 감사하고 있다.”

그럼, 그럼. 당연히 그래야지.

처음에는 감정이 격해져 앞이 안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깨달은 거겠지.

내가 그나마 명맥을 잇게 해 주었다는 사실을.

“우리도 개인적으로 네게 감사를 표한다. 이번 일에 한해서는 목숨을 걸고 임무에 임하지.”

“든든하군요.”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파이시가 은근슬쩍 다가왔다.

그리고는 북부인들을 살펴보더니 입을 열었다.

“북부에서 왔구나?”

“알아보시는군요.”

“물론이지. 북부에도 자주 갔었으니까.”

파이시는 흥미롭다는 음색으로 말하더니 나를 응시했다.

“생각지도 못했네. 설마 이런 전력을 데려올 줄이야.”

“고대 유적이니 준비 좀 했죠.”

우리의 대화가 이어지는 사이에 루나가 라고와의 재회를 마치고 돌아왔다.

그 모습을 확인한 파이시가 몸을 돌리며 말했다.

“이제 출발하지. 다른 쪽이랑 합류하려면 빨리 가야 돼.”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일행들에게 손짓했다.

“마차는 놔두겠습니다. 말은 풀어 주고 가죠.”

이제 곧 원정의 진정한 시작이었다.

고대 시대의 유적.

네크로맨서인 파이시가 노릴 만한 던전.

‘고대 네크로맨시 던전, 시체들의 왕국.’

네크로맨서로서의 힘이 진가를 발휘할 때가 왔다.

* * *

똑똑!

연구실에서 한참 시약을 만들던 디에네는 누군가가 두드리는 문에 잠시 손을 뗐다.

“들어오세요.”

로들렌 마탑.

그중에서도 디에네를 찾아올 만한 인물이 그다지 많지 않았기에 찾아온 인물을 확인하지 않고 말했다.

“언니, 바빴어요?”

그리고 그런 디에네의 예상에 맞게 루시아가 얼굴만 빼꼼 내밀고는 문밖에서 물었다.

“아니야. 들어와.”

연구 중에 갑작스레 찾아온 손님이었지만 디에네는 밝게 웃어 보이며 반겼다.

실제로 그녀는 유리히에 이어 그다음으로 친해진 루시아를 무척 아꼈다.

“그런데 갑자기 무슨 일이야? 요즘 바쁘다고 하지 않았어?”

“아니에요. 사실 바쁘다는 건 거짓말이었고…….”

루시아는 그때까지도 등 뒤에 숨기고 있던 손을 꺼냈다.

그런 그녀의 손에는 포장지로 예쁘게 꾸며진 무언가가 들려 있었다.

“그게…… 뭐야?”

“생일 선물이요!”

루시아의 환한 말에 디에네는 그제야 오늘이 자신의 생일임을 기억해 냈다.

아카데미를 졸업하고도 워낙 바쁘게 살아왔던 탓에 까맣게 잊고 있었다.

“고, 고마워…….”

“설마 까먹고 있었어요?”

“어. 나는 오히려 네가 알고 있는 게 신기한데?”

“저 천재잖아요. 주변 사람들 생일은 다 기억하고 있어요.”

농담이 아니라 진지하게 본인을 천재라 말하는 루시아를 보며 디에네가 웃었다.

그리고 선물을 건네받고는 물었다.

“지금 열어 봐도 돼?”

“그럼요!”

이내 조심스레 포장지를 뜯자 책 한 권이 드러났다.

책을 살펴본 디에네는 이내 살짝 눈이 커지며 루시아에게 시선을 올렸다.

“이거! 이거 어떻게 구한 거야?”

“저희 가문의 상단이 힘들게 구했죠. 그래도 언니 생일이라면 이 정도는 해야겠다 싶어서 무리 좀 했어요.”

루시아가 선물한 책은 외부로 유통이 되지 않는 몇몇 포트리온의 책 중 하나였다.

정확히 말하면 디바우러 중 한 명인 매직 마에스트로 크자프의 저서였다.

“솔직히 언니가 구하려고 했으면 더 쉽게 구했겠지만 이것도 다 정성 아니겠어요?”

“무슨 소리야. 나도 크자프의 책은 구하고 싶어도 못 구해.”

디에네는 책을 가슴에 안으며 미소 지었다.

“정말 고마워. 최고의 선물이야.”

“그런 반응을 원했어요. 음, 음.”

고개를 끄덕이던 루시아는 이내 악동처럼 씨익 웃었다.

그 갑작스러운 표정에 디에네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루시아는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기 시작했다.

“여기 하나 더 있어요.”

“선물을 또 준비했다고?”

“아니요. 제 선물이 아니라 아드리아스 선배가 준비한 거예요.”

아드리아스라는 말에 디에네가 잠시 움찔했다.

탑을 다녀온 이후로 보이기 시작한 눈에 띄는 반응에 루시아가 음흉하게 웃었다.

“흐응? 그렇게 좋아요?”

“어? 뭐, 뭐가?”

“흐흐. 비비안 언니가 가만있지 않을 텐데…….”

디에네는 자신이 동요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지만 억누를 수가 없었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며칠 전에 사고가 일어났을 당시에는 경황이 없었지만 지금도 그를 생각하면 탑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떠올랐으니까.

탑에서 일어났던 일들.

그로 인해 알게 된 사실.

‘가면의 검사가…….’

탑에 다녀온 이후로 지금까지 모르는 척 눈감아 줬지만 천재라 불리는 그녀는 깨달았다.

사실은 그 가면의 주인이 누구인지, 그리고 몇 년 전에 있었던 사고로부터 자신을 구한 게 누구였는지.

그렇지만 이걸 본인에게 직접 물어볼 용기는 없었다.

만약 물어봤다가 예측이 사실이라면 자신의 마음도, 주변 사람과의 관계도 어떻게 변할지 몰랐으니까.

그녀는 지금이 행복했다.

이 행복을 깨기 싫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일까?

“그것보다 선배가 준 선물도 책이네요. 그런데 별 희한한 걸 선물이랍시고 줬네요?”

디에네가 초조한 마음을 억누르는 사이에 루시아가 아드리아스의 선물을 잡고 요리조리 둘러봤다.

책이었지만 페이지가 얼마 되지 않는지 얇았기에 아무리 봐도 마법 서적 같지는 않았다.

이내 루시아가 디에네에게 책을 건네며 적혀 있던 제목을 중얼거렸다.

“기사왕 애드의 모험?”

“……어?”

디에네는 책을 받아 들고 급하게 표지를 확인했다.

그리고 삽화와 제목을 확인하고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어, 언니?”

당황한 루시아가 디에네를 걱정했지만 디에네는 떨리는 손으로 책을 넘길 뿐이었다.

“아!”

이내 나직한 감탄이 흘러나오며 이슬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언니, 괜찮아요?”

“어, 응. 괜찮아. 잠시만…….”

디에네는 눈물 맺힌 눈가를 닦아 내며 끄덕였다.

그리고는 천천히 책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책은 아이들이 읽는 동화였다.

솜씨 없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고 내용도 유치하기 짝이 없는 책.

“하아.”

그러나 디에네에게는 그 어떤 그림과 내용보다도 강한 감동이 밀려왔다.

그 책이 맞았다.

이제는 절판이 되고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던 자신의 첫 번째 보물.

“디에네 언니?”

“미안해. 놀랐지? 나도 너무 놀라 가지고 감정이 격해졌네.”

어렸을 적 몰래 마법을 연습하다 방을 몽땅 불태운 적이 있었다.

그 당시에 함께 불에 타 없어졌던 동화책을 이렇게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었다.

‘이 책이 기사를 동경하게 된 계기였지.’

이미 절판된 지 꽤 지났던 동화책.

내용은 전부 기억하고 있었기에 억지로 제본을 떠 만든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제본된 책은 그녀의 불타 버린 마음을 채워 주지 못했었다.

“정말……. 이걸 어떻게 구한 거야, 걔는.”

“구하기 어려운 건가 보죠?”

“응. 인기가 없어서 절판이 된 책이니까. 차라리 인기가 있는 책이었다면 구하기라도 쉬웠을 텐데…….”

생각해 보면 가족들을 제외하고는 아드리아스가 유일하게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어렸을 적에는 자주 같이 어울리며 놀고는 했었으니까.

책을 불태웠을 때 유일하게 위로해 주었던 또래 친구도 어린 아드리아스였었다.

“기억하고 있었구나.”

아드리아스.

나의 가면의 기사.

내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지켜 주는구나.

“언니가 기뻐해서 다행이네요. 사실 아드리아스 선배가 선물을 저한테 맡길 때만 해도 걱정했거든요. 아동용 동화책을 선물하는 게 솔직히 정상은 아니잖아요?”

“추억이 담긴 책이거든. 오해할 만해.”

“저도 그걸 미리 알았으면 오해는 안 했을 텐데 선배가 바쁘다면서 책만 넘겨주고 간 거 있죠? 하여간 혼자서만 바빠요. 아주 짐이란 짐은 혼자 다 짊어졌지.”

투덜대던 루시아는 이내 품에서 과자를 꺼내 먹기 시작했다.

그녀가 종종 스트레스를 받으면 어디다 두었는지 모를 과자를 꺼내 먹었는데 그걸 아는 디에네는 그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우리가 그 짐을 덜어 주자.”

“무슨 짐인지를 알아야 덜어 주든 할 텐데 말해 줄지나 모르겠네요.”

“우리가 강해진다면 언젠가 믿고 말해 주지 않을까?”

루시아도 디에네도 평범한 인물들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항상 옆에서 지켜봤던 아드리아스가 무언가 책임을 짊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강해져야겠죠. 반드시 강해질 거예요. 그 빌어먹을 선배보다.”

“후후. 그러면 좋겠네.”

“그래서 꼭 선배한테 말할 거예요. 그냥 제가 다 해결할 테니까 구석에 찌그러져 잠이나 자라고.”

과자를 한 움큼씩 퍼먹은 루시아가 투덜댔다.

그리고 디에네도 진심으로 생각하며 말했다.

“그래. 언젠가는 꼭…….”

기사님을 위해 활약하는 마법사가 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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