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 특성으로 최강 네크로맨서 (279)
해명 그리고 움직임
“자네가 보여 주었던 그 하얀 날개, 그게 오러 비기였겠지?”
유노르 후작이 내 대답이 나오기도 전에 결론을 지었다.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사실 사용할 당시에만 해도 마법이라고 둘러댈 생각이었다.
그러나 막상 마법이라고 하면 옆에서 여전히 도끼눈을 치켜뜬 바하트가 뭐라 할 것만 같았다.
‘하네스를 깔끔하게 죽인 건 좋았는데…….’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겨 버렸다.
“어떻게 그 나이에 오러 비기를 깨우친 건지 모르겠군! 정말 대단해!”
“하하하! 제국의 복이구나!”
유노르 후작과 에레스티얼 후작이 양쪽에서 말하자 곁에 있던 사람들도 웅성거리더니 이내 박수를 쳤다.
“오러 마스터에 등극하신 점, 축하드립니다!”
“최연소 아카데미 교수라는 칭호는 아무것도 아니었군요! 최연소 오러 마스터라니!”
“마침 수라한 학부장님께서 최연소 오러 마스터였지 않습니까? 아카데미 관련 인물들이 최연소 칭호를 모조리 독차지하는군요.”
이거 내가 뭐라 할 수도 없는 분위기였다.
그리고 다시 생각해 보니 그냥 오러 마스터라고 거짓말을 해도 딱히 상관은 없을 것 같았다.
‘전력의 3할은 숨기라고 누군가가 그랬지.’
만약 내가 정말로 오러 마스터가 된 이후에는.
내 진짜 오러 비기는 감춰진 전력이 될 수 있었다.
“우연히 깨달은 기술인데 전혀 오러 비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일단은 저들의 기대에 부응해 줬다.
그러자 사람들은 역시나! 하며 내 주위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크롬웰 각하!”
“기사학부를 들썩인 시험도 다 이유가 있었군요. 설마 오러 마스터셨다니!”
나는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서 있었다.
괜히 입을 여는 것보다 때로는 침묵하는 것도 방법이겠지.
사람들이 나를 둘러싼 가운데 바하트는 사라진 하네스의 흔적을 살피고 있었다.
대륙 10인이자 수없이 많은 경험을 해 왔을 바하트에게 오러 마스터란 그저 스쳐 지나가는 과정이겠지.
“인간이 아니었던 건가.”
중얼거리는 내용을 들어 보면 미련을 버리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때 디에네가 바하트를 놔두고 내게 다가왔다.
“아드리아스, 저거…….”
디에네가 확신은 없지만 뭔가 의심스럽다는 눈초리로 하네스가 죽은 자리를 가리켰다.
탑에서 겪은 적이 있는 만큼 화신인 걸 어렴풋이 눈치챈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밀레니엄 아카데미의 호넨이었습니다. 제레드 테이슨 백작이 대동하고 왔었는데 갑자기 가면 같은 게 얼굴을 덮더니 주변을 공격하더군요.”
“호넨? 테이슨 백작?”
우리의 대화를 들은 사람들이 놀란 표정으로 관중석을 살폈다.
아마 제레드를 찾는 모양인데 그는 이미 죽어서 시체도 남기지 못했다.
“본인들을 제파르 교단의 간부들이라고 하더군요.”
“제파르 교단이라면…….”
이미 알 만한 사람들은 알음알음 알고 있는 광신도 집단이었던지라 사람들의 놀란 표정은 더욱 심각해져만 갔다.
“제파르라고?”
그때 분명 저 멀리 있었을 바하트가 순식간에 내 근처로 나타나 얼굴을 들이밀었다.
바하트는 예전에 있던 테러를 알고 있으니 제파르 교단이라면 이를 갈고 있겠지.
“그렇습니다.”
“녀석이 순순히 정체를 말하더냐?”
“예.”
이미 죽은 사람들인데 이 정도 거짓말쯤이야, 뭐.
제레드가 호넨을 데리고 왔다는 사실과 호넨이 갑자기 변해서 연무장으로 뛰쳐나간 걸 본 관중석 증인들이 있었기에 내 말에는 거침이 없었다.
“감히 다시 나타나다니 제정신이 아니군.”
“테이슨 백작가를 조사하면 아마 꼬리를 잡을 수 있을 겁니다. 그만한 대부호가 특정 단체와 연관이 되어 있다면 뭐라도 나오겠죠.”
내 예상보다 제레드를 잡은 게 빨랐지만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바하트가 나서고 제국이 움직이면 제아무리 대륙 5대 상단이라는 제레드 상단도 몰락하겠지.
‘에이미한테 빨리 연락을 해야겠네.’
그래도 아마 늦겠지.
이 소식은 금방 전역으로 퍼질 거다.
미리 준비해 뒀으면 크롬웰 상단으로 훨씬 큰 콩고물을 얻었겠지만 화신을 무리 없이 죽인 걸로 만족해야겠다.
“……제레드 테이슨. 알았다.”
바하트는 이글거리는 눈으로 다시 순식간에 사라졌다.
하여간 괴물 같은 양반이군.
“나도 가 볼게.”
디에네도 한 발자국 물러나며 손을 흔들었다.
그런 그녀를 향해 비비안도 내 옆에서 작게 손을 흔들었다.
“나중에 자세히 들을 테니까, 방금처럼 시치미 떼지 말고.”
……역시 화신이라는 걸 눈치챈 모양이다.
이래서 천재들이란…….
디에네마저 공간 이동으로 사라지고 주변은 이내 사고 수습으로 바빠졌다.
여전히 몇몇 사람들은 최연소 오러 마스터라느니 뭐니 하면서 내게 달라붙었지만 난 정중히 그들을 떼어 놓고 걸음을 옮겼다.
전부는 해 먹지 못해도 조금이라도 빨리 에이미와 에반에게 연락을 하면 이득을 볼 수는 있을 거다.
* * *
“집합이다.”
해수욕을 즐기던 사내의 곁으로 거한이 나타나 말했다.
어찌나 몸집이 큰지 함께 햇볕을 쬐고 있던 사람들을 전부 그림자로 덮을 정도.
“뭐죠, 갑자기 왜 오신 겁니까?”
“여기서 말할 수는 없다. 일단 가서 이야기하지.”
거한은 느끼하게 생긴 금발의 남성을 한 손으로 잡아 어깨에 얹었다.
금발의 남자는 딱히 저항하지 않고 오히려 함께 있던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금방 돌아오겠습니다! 저택에서 뵙죠!”
남자는 인사를 한 뒤 거한의 어깨에서 몸을 돌렸다.
그 표정은 어느새 차갑게 변해 있었다.
“무슨 일이기에 한참 작업 중일 때 방해를 하셨을까요.”
“나도 건드리고 싶지 않았어. 일단 라고도 도착해 있으니 소식은 같이 전달하지.”
“라고가 와 있다고요?”
둘의 속삭임은 마법으로 보호되어 주변으로 퍼지지 않았다.
이내 어느 건물에 도착한 둘은 마법으로 결계를 풀며 안으로 들어갔다.
“진짜로 오셨네요.”
“라고 왔다. 배고프다.”
멍한 얼굴의 남자가 금발의 사내를 보며 중얼거렸다.
금발의 사내, 드라간은 마법으로 순식간에 옷을 입고 자연스레 의자에 앉았다.
“식사는 일단 이야기부터 듣고 드시죠. 그래서 무슨 소식이죠, 메이번?”
“제파르의 화신이 죽었다.”
훅 치고 들어오는 거한의 말에 갑자기 정적이 찾아왔다.
그리고 드라간이 천천히 입술을 벌렸다.
“어떻게, 아니 어째서?”
“개같은 화신 놈이 계획을 다 부숴 버렸어. 우리한테는 말도 없이 아카데미에서 날뛰다가 제멋대로 죽었다.”
“하, 하아…….”
드라간이 외눈의 안경을 벗고 신경질적으로 문질렀다.
그리고는 이내 안경을 깨부쉈다.
콰직!
“이 개같은 놈이!”
“그동안 공들였던 계획이 전부 수포가 됐다.”
“흐으, 흐으.”
분노를 참지 못하는 드라간을 보며 라고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거한, 메이번은 한숨을 내쉬었다.
“에이카 님에게도 소식은 전했다. 우리 잘못은 아니어도 아마 벌을 받겠지.”
“이 씨발! 개같은 놈이 제멋대로 죽어? 당장 제파르 교단 놈들을 전부 처죽여 버려!”
콰작!
콰드드득――――!
드라간이 날뛰자 메이번과 라고는 잠시 그가 진정될 때까지 기다렸다.
평소에는 신사적인 드라간이었지만 괜히 흑마법사가 아니듯 그도 망가진 성격의 소유자였다.
“후우. 그래, 이야기나 들어 봅시다. 그게 다가 아니지 않나요?”
조금은 진정이 된 드라간이 묻자 메이번이 고개를 끄덕였다.
“화신을 죽인 건 아드리아스 크롬웰이다.”
“……아드리아스, 크롬웰?”
드라간의 눈빛이 광기에 물들었다.
미쳐 버린 듯한 그의 표정과 말투에도 메이번은 고개를 끄덕이며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소식에 의하면 오러 비기를 사용해서 화신을 죽였다는군. 물론 혼자가 아닌 바하트 알븐과 여러 오러 마스터가 함께 있었다고 한다.”
“아드리아스 크롬웰, 아드리아스 크롬웰, 아드리아스 크롬웰…….”
“덕분에 녀석은 최연소 오러 마스터라는 칭호와 함께 주변에서 영웅 대접을 받는다고 하더군. 아카데미 내부에서 일어났던 일인 만큼 많은 목숨을 구했다고 말이야.”
드라간은 미친 듯이 아드리아스의 이름을 부르다 돌연 고개를 돌려 라고를 바라봤다.
“라고.”
“라고 듣는다.”
“분명 이번에 파이시와 관련해서 아드리아스가 움직이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라고도 간다. 파이시랑 유적.”
“저도 따라가죠.”
“라고가 말한다. 드라간도 같이 간다?”
라고의 말에 드라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빛은 번들거리고 있었다.
“에이카 님한테 벌을 받는다는 게 당신은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지요. 하여튼 이번에 무조건 따라갈 겁니다. 뒤에서 몰래요.”
“라고 무섭다. 모른이 가만히 있지 않을 거다.”
“이 씨발, 지금 그딴 영감이 중요한 게 아니라고!”
발작하듯 소리친 드라간을 향해 라고가 멍하니 입을 벌렸다.
순간 위험을 느낀 메이번이 그런 둘 사이로 끼어들었다.
“분위기가 너무 격해졌군. 둘 다 진정해라.”
“하아, 죄송합니다. 제가 흥분했군요. 아무튼 전 당신이 뭐라 해도 따라갈 겁니다. 몰래 미행할 거니 큰 걱정은 마세요.”
드라간의 말에도 라고는 여전히 입을 벌린 채 가만히 있었다.
결국 드라간이 어깨를 으쓱하며 뒤돌았다.
“라고, 제가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에이카 님은 가만있지 않을 거예요. 저도 나름 필사적이랍니다.”
이내 건물 밖으로 나간 드라간을 보며 메이번이 머리를 긁적였다.
“완전히 돌아 버렸군. 예전에 아드리아스 크롬웰과 몇 번 마주친 적이 있었다지?”
“라고도 봤다. 아드리아스 크롬웰, 미친놈이다.”
“흐음. 어쨌든 그렇게 됐으니 나도 이만 뭐라도 하러 가야겠군. 에이카 님의 벌도 벌이지만 화신이 죽은 건 큰 손해니까 어떻게든 메꿔야지.”
“메이번.”
드라간의 뒤를 따라 나가려던 메이번은 갑자기 변한 라고의 변한 말투에 우뚝 멈춰 섰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돌려 입을 벌린 라고를 보았다.
“실수했군.”
라고가 배고프다고 했을 때부터 경계하고 있었어야 했다.
드라간도 그걸 눈치채고 먼저……?
아니, 그전에 이야기부터 듣고 식사를 하라던 말이 그럼…….
어느새 라고의 입에서는 침이 주룩주룩 새고 있었다.
“……라고? 난 너랑 싸우고 싶지 않다.”
“메이번. 라고, 배고프다.”
“라고! 멈춰!”
라고의 입이 흉측하게 벌어졌다.
* * *
달리는 마차 안.
나는 여유롭게 책을 읽고 있었다.
“여행! 여행! 씬나는 여행!”
그리고 그런 내 옆에는 마차의 창을 열고 몸을 밖으로 내민 루나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위험한데…….”
비비안이 그 모습을 보며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 볼만했다.
유일하게 비비안이 약한 모습을 보일 때가 귀여운 물체나 생물 앞이었다.
루나가 좀 귀엽긴 하지.
내가 인정한 내 조카답다.
“기분 나쁜데.”
내가 히죽대는 걸 보았는지 맞은편에 앉은 노아가 중얼거렸다.
결국 나는 집중하지 못한 책을 조용히 덮으며 말했다.
“어쩌라고.”
“기분 나쁘다고.”
“그래서, 뭐.”
“나쁘다고.”
유치하다고 해도 할 말 없다.
하지만 언제 또 내가 이런 식으로 유치해져 보나.
마음이 따뜻해지는구먼.
“둘 다 그만.”
결국 비비안이 한 소리 했다.
그리고는 곧바로 노아에게 응징을 시작했다.
“아드리아스한테 그렇게 말하지 말랬지.”
“우우.”
비비안에게 볼살이 잡힌 노아가 자존심 상한다는 표정으로 뭐라 말하려 했다.
노아가 비비안을 꺼리는 이유.
그건 바로 이 모습에서 드러났다.
‘노아는 안 귀여운데…….’
루나는 내 기준에서도 귀엽지만 저놈은 어디가 귀여운 건지 모르겠다.
어쨌든 비비안의 기준에서는 귀엽다는 걸로 판명이 된 노아는 항상 저런 식으로 다뤄졌다.
덕분에 저 손길을 벗어나기 위해서 맹훈련을 하고 있지.
과연 노아가 비비안을 이길 수 있는 날이 올까.
어쨌든 내 일행은 이게 전부였다.
아니지, 한 명 더 있네.
“각하, 앞에 길을 막고 있는 무리가 있습니다.”
마침 마지막 일행이자 말을 몰던 아가타가 소리쳤다.
그녀는 약속을 제때 지키며 나타났다.
이미 출발하기 전에 이 원정의 자세한 내용은 물론 몇몇 인물이 흑마법사라는 것도 미리 전달했기에 위화감이 없었다.
제국 출신이 아닌 데다 본인도 수인 혼혈이라 딱히 흑마법사에 대한 반감은 없었지.
“약속한 사람들인 모양이군요.”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멈춰 주세요.”
마차가 천천히 멈췄다.
여전히 창밖으로 몸을 내밀고 있던 루나가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게 보였다.
“파이시! 안녀엉!”
나는 곧바로 문을 열고 내렸다.
그러자 눈앞에는 길 한가운데에서 한눈에 봐도 수상해 보이는 후드를 뒤집어쓴 사람들이 서 있었다.
“일찍 오셨군요. 그런데…….”
나는 유난히 강렬한 기운이 느껴지는 쪽을 바라봤다.
이미 한 번 겪었던 기운이라 예민한 나는 단숨에 누군지 알아맞혔다.
“듣지 못했던 손님이 계시는군요?”
“뭐야, 바로 알아보는 거야?”
파이시가 슬쩍 나타나 웃음을 흘렸다.
웃음으로 넘기려는 거냐.
나도 웬만해서는 웃어넘기고 싶었지만 데려온 인물이 너무 위험했다.
“라고.”
내가 그의 이름을 부르자 주변이 얼어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