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 특성으로 최강 네크로맨서 (276)
멈추지 않는 암계(暗計)
‘재확인 결과, 씬과 아가타의 접촉 여부는 확실함. 아가타의 씬 합류 여부는 아직 밝혀진 바가 없음.’
아가타가 씬에 들어갔다면 골치 아파진다.
씬의 창립 의도나 목적 자체는 인간을 제외한 이종족들의 평화와 안정이라는 긍정적인 방향이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리고 어느 단체도 그러하듯 뜻대로 흘러가지 못했다.
지금의 씬은 인간에 대해 극단적인 혐오를 지닌 범죄 집단이 되어 있었다.
“아, 그리고 또 하나.”
“또 하나?”
“지금 제파르 교단이 아카데미에 들어와 있어. 확인된 인물은 제레드 테이슨.”
“아까 봤어.”
제레드는 사실 아까 전에 확인했었다.
겉으로는 대륙 5대 상단 중 하나인 제레드 상단의 주인이니 주변에서 아양을 떠는 귀족들이 많아 당연 눈에 띄었다.
“그리고 제레드가 호넨도 데려왔어.”
……호넨도 같이 있는 줄은 몰랐네.
분명 내가 봤을 때는 주변에 없었다.
지금까지 확인한 정보로는 아직 제파르 교단에 입단하진 않은 모양인데 함께 왔다는 건 썩 좋은 신호가 아니었다.
“확인했다.”
안 그래도 이번 유적 원정에 제파르 교단이 관계되었는데 머리가 더 복잡해졌다.
“노아, 에반은 지금 어디 있지?”
“남부 왕국 연합.”
제파르 교단은 그렇다 치고 씬에 관해서는 플레이어블인 아가타가 연관되어 있으니 에반이 직접 움직여 줬으면 좋겠지만 무리일 듯싶었다.
남부 연합 왕궁의 일도 이번 유적의 일 못지않게 중요했으니까.
“일단은 씬에 대한 정보가 더 필요해. 아가타가 씬에 소속된 건지도 확실한 정보가 필요하고. 네가 좀 해 줄 수 있나?”
“그래. 근데 그 전에 하나만 물어봐도 돼?”
“물어봐.”
“전부터 궁금했는데 그 아가타라는 혼혈한테는 왜 그렇게 관심이 많은 거야?”
노아의 물음에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내 편으로 만들고 싶어.”
“……애인 갈아 치우게?”
“비비안한테 말할 거다.”
“농담이야.”
말은 그렇게 했지만 노아는 정말로 궁금하다는 표정이었다.
왜 내 편으로 만들고 싶은 건지가 궁금하겠지.
“재능을 봤어.”
“재능?”
“어. 아가타는 재능이 있어. 아무도 알아보지 못한 원석을 미리 가지고 싶거든.”
“그게 씬하고 대적할 정도야?”
“난 내가 가지고 싶은 건 어떻게든 가질 거다.”
노아는 흐릿한 눈동자로 나를 잠시 바라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우리 고용주님께서 원하신다는데 구해 드려야지.”
“고맙다.”
“난 그럼 일이 바빠서 가 볼게.”
노아가 자연스럽게 나가려 하자 나는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그리고 우뚝 멈춰 세워진 그녀를 향해 나직하게 말했다.
“아이비도 보고 가고 토너먼트도 보고 가. 농담 아니야.”
“……하아.”
갈등을 억지로 해결한다는 게 그리 좋은 방법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회피만 한다고 나아지는 것도 아니기에 억지로 부딪히게 해 볼 생각이었다.
노아에게는 조금 미안했지만 이런 식으로 내 주변 사람들이 서로 갈등을 지니고 있는 게 싫었다. 몰랐으면 몰라도 뻔히 아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누누이 생각하지만 난 내 행복이 최우선이니 내 밑에 있고 싶으면 해결하고 넘어가야 할 문제였다.
결국 나와 함께 대경기장으로 향하는 노아는 차갑게 굳은 얼굴로 말도 없이 내 뒤를 따라 걸었다.
“삐졌냐.”
“…….”
대답 없는 노아를 놔두고 다시 걸었다.
그러고 보니 곧 있으면 비비안이 올 시간인데 노아한테는 여러모로 최악의 시간이겠군.
다시 들어간 대경기장은 3위전이 끝나고 휴식 시간이 이어지고 있었다.
결과가 어떻게 됐는지 살짝 궁금한 가운데 원래 있던 내 좌석으로 걸어가자 어느새 만석이 된 자리들을 볼 수 있었다.
“아! 아드리아스 교수님, 가셨던 일은 잘 해결되셨나요?”
나를 가장 먼저 발견한 내 옆자리의 미쉘이 밝은 표정으로 나를 반겼다.
그런 그녀의 반응을 통해 나는 적어도 에이다가 지지는 않았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미쉘의 인사 덕분에 내가 돌아온 걸 확인한 사람들이 모두 나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겁나 따끔거리네. 설마 진짜로 에이다가 이긴 건가?
“예. 잘 해결했습니다.”
“옆에 계신 분은?”
“이번에 영지의 소식을 전해 주러 온 제 동료입니다. 마침 결승전이니 같이 보자고 데려왔습니다.”
“아, 그렇군요. 안녕하세요? 미쉘 리바인이라고 합니다.”
노아와 간단히 인사를 나눈 미쉘은 이내 다소 흥분한 기색으로 조잘대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다른 분들이랑 교수님께서 예측하신 결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어요.”
“에이다가 이겼습니까?”
“아니요! 무승부예요!”
미쉘이 부담스러운 눈빛을 보내왔다.
그나저나 무승부였다니 직접 확인하지 못한 게 아쉽네.
“도대체 교수님께서는 어떻게 그리 잘 파악하신 거죠? 아마 여기 계신 분들 중 누구도 무승부를 예측하지는 못했을 거예요.”
“글쎄요. 저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실제로 난 누가 이길지 모른다고 했을 뿐이었다.
무승부를 짐작하지 못한 건 나도 마찬가지였지만 예측 당시의 뉘앙스랑 결과가 운 좋게 맞아떨어졌을 뿐.
“그렇다면 다음 경기의 결과도 세레나 학생이 이길 수도 있겠네요. 많은 분들이 크리스 학생이 이길 거라고 예상하고 있거든요.”
“결과는 봐야 알겠죠. 저도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세레나와 루이스에게는 무결을 알려 주었다.
타이밍이 맞지 않아 크리스에게는 알려 주지 못했지.
2년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어도 무결 정도의 검술이라면 지금의 그들에게 있어서 최종 스킬급 기술이었다.
‘오히려 왜 사람들이 크리스가 이길 거라 생각하는지 의문이네.’
근래의 3인방을 나는 잘 몰랐다.
하지만 여기 있는 교수들은 내가 못 본 사이에 계속해서 보아 왔을 터.
분명 크리스가 이길 거라는 근거가 있으니 대부분이 그가 이길 거라 생각하는 거겠지.
“저야 마법학부 교수라 잘 모르지만 대부분의 기사학부 교수님들은 크리스 학생에게 거는 기대가 더 크시더라고요.”
“크리스도 강하죠. 아마 박빙일 것 같습니다.”
그때 조용히 대화를 듣고 있던 노아가 나를 건드리며 턱짓했다.
“나온다.”
시선을 돌리자 연무장에서 눈인사만 나누었던 크리스와 긴장했는지 굳은 표정의 세레나가 등장하는 것이 보였다. 그들의 등장에 관중석의 열기가 순식간에 뜨거워졌다.
“그나저나 아쉽네요. 루이스 학생이 기권을 했다는 게 아직도 믿기지가 않아요.”
미쉘이 그 환호성을 들으며 중얼거렸다.
나도 아쉽기는 마찬가지였다.
원래였으면 여기서 우승을 차지하고 보상을 받았어야 할 녀석이 내 시험을 통과하겠다고 결국 토너먼트를 기권해 버렸다.
내가 볼 때는 이미 자기 나름대로의 해석이 끝났는데 벤자민의 모습을 보고 자극받아 버린 모양이었다.
아마 부족한 점을 메워서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도전할 생각인 것 같았다.
“요새 검룡이라고 불린다고 들어서 조금 기대했는데 놓쳤네.”
“이따가 만나 보든가.”
“됐어. 어차피 비비안이나 너보다 약하잖아.”
딱히 부정은 못 하겠다.
내심 루이스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지만 내가 그에게 질 것 같지는 않았다.
비비안이라면…….
‘비비안도 검으로만 따지면 나랑 엇비슷하니 루이스보다 강하지 않을까.’
비비안이 이렇게까지 강해질 줄은 나도 생각조차 못 했다.
어쩌면 내가 미처 살피지 못했던 인물들도 비비안과 같은 잠재력을 지녔을 수도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와아아!”
“시작한다!”
미쉘과 대화를 나누고 노아의 말을 생각하는 사이 어느새 경기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심판이 규칙을 다시 간략하게 두 참가자에게 명시하고 이내 경기가 시작되었다.
콰앙!
처음부터 힘을 빼지 않는 세레나의 공격이 내 눈에는 위태로워 보였다.
‘오늘따라 조급한데.’
나와 싸울 때보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혹시나 싶어 고개를 돌려 귀빈석을 살펴보자 아니나 다를까 에레스티얼 후작이 와 있었다.
유노르 후작이나 에레스티얼 후작은 게임 속에서 단 한 번도 아카데미에 방문한 적 없는 인물들인데 무슨 바람이 들어서 왔는지 모르겠다.
결국 내가 어디서 뭔가를 바꾼 거겠지.
채캉―――!
“아아!”
전투는 나름 대등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내 눈에는 침착한 크리스가 세레나의 체력을 갉아먹고 있는 게 눈에 보였다.
‘노련해졌네.’
혼자만 틀어박혀 수련을 하기에 걱정을 좀 했더니 그런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뛰어난 실력이었다. 역시 플레이어블은 플레이어블인가.
“잘하네.”
지켜보고 있던 노아가 중얼거렸다.
그런 노아를 향해 은근슬쩍 물었다.
“너랑 싸우면 누가 이길 것 같아?”
“내가 이기지.”
그녀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그리고 그런 자신감의 발로가 어디서 나타나는 건지 아는 나도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검술 자체로만 보면 저 둘이 더 뛰어날 수도 있지만…….
노아는 괴물 같은 신체 능력이 있었기에 지금 당장은 둘을 이길 수 있을 것이다.
“저 둘이 저 정도면 검룡도 그다지 기대가 안 되는데?”
“글쎄.”
“글쎄? 걔는 좀 다른가 봐?”
“그러니까 직접 확인해 보라고. 실망하지는 않을 거야.”
내가 말을 하는 사이 점점 경기의 결과가 드러나고 있었다.
크리스의 환검에 휘말린 세레나는 결국 체력과 마나를 많이 소모한 모양인지 움직임이 전보다 둔해졌다.
“크리스 학생이 이길 것 같군요.”
“역시 그렇죠. 비검이라는 칭호가 괜히 붙은 게 아닌 화려한 검술입니다.”
사람들의 말이 들려왔다.
마치 내게 들으라는 듯이 큰 목소리로 말하는데 딱히 신경 쓰이지는 않았다.
누가 이기든 둘 다 내게는 중요한 인물이었으니까.
그나저나 유노르 후작하고 에레스티얼 후작 둘 다 왔는데 누가 지더라도 문제겠네.
둘의 가문은 오래전부터 유명한 라이벌 가문이었는데 하필이면 둘 다 참석한 바람에 어떻게든 말이 나올 것 같았다.
“음?”
귀빈석을 살펴보며 둘의 표정을 확인하려 할 때 내 눈이 멈췄다.
우연이라고 해야 할까. 어렴풋이 시야에 들어온 한 인물에 시선이 꽂혔다.
조금 전에도 보았던 제레드 테이슨.
제파르 교단의 고위 간부이자 대륙 5대 상단 중 하나인 제레드 상단의 주인.
그리고 그런 그의 옆에는 아까 전까지만 해도 없었던 인물이 어느새 앉아 있었다.
‘호넨.’
밀레니엄 아카데미의 호넨.
지금은 아카데미를 졸업했을 녀석은 이후 제파르의 화신이 되는 녀석이었다.
“잠깐 확인 좀 하고 올게.”
“어디?”
“저기.”
내 눈이 향한 곳을 본 노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경기의 진행 여부는 신경 쓰지 않고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제레드와 호넨이 자리하고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사람들은 경기에 집중하느라 내가 움직이는 것도 몰랐고, 그렇게 제레드의 근처로 다 와 갈 때쯤 기척을 느꼈는지 제레드가 내게로 시선을 돌렸다.
“아드리아스 크롬웰?”
감추지 못하고 살짝 당황한 표정.
그리고 느껴지는 그의 불규칙한 맥박과 호흡.
단숨에 읽어 낸 정보를 통해 나는 그의 상태가 뭔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챘다.
단순히 나를 봐서 그런 게 아닌 나를 보기 전부터 긴장을 하고 있었다는 이야기.
무엇에 대한 긴장?
결승전의 결과에 대한 긴장일 리는 없었다.
‘상대는 제파르 교단…….’
그리고 나는 자연스럽게 단어 하나가 떠올랐다.
아니, 설마 또?
“테러?”
“흑!”
일부러 찔러본 단어에 제레드가 티를 내지 않으려 했지만 숨을 급하게 들이켰다.
그리고 동시에 제레드의 옆에 있던 호넨이 나를 돌아봤다.
“어이, 뭐야. 오랜만이네?”
“너……!”
난 나를 돌아본 호넨의 목 주변에 어렴풋이 보이는 무언가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성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