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 특성으로 최강 네크로맨서 (272)
열 번째 플레이어블
크롬웰에서의 볼일이 끝난 나는 곧바로 움직였다.
내가 향한 곳은 이제는 꽤나 익숙해진 항구 도시, 뮤리엘이었다.
“처음 와 봤어.”
비비안이 활기찬 도시의 풍경 뒤로 끊임없이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며 감탄했다.
바다 자체를 처음 본 건가?
“바다는 처음이십니까?”
“응.”
“이왕 여기까지 온 거 하루만 묵었다가 갈까요?”
“그래도 돼?”
“괜찮습니다. 여유는 있어요.”
아직 아카데미 쪽에서 온 연락은 없으니 여유가 있었다.
벌써 이틀째 자리를 비우고 있는 거긴 하지만 이틀 만에 내가 남긴 검흔을 해석한 녀석은 없을 거다.
“그럼 하루만.”
“알겠습니다.”
비비안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미누스가 알려 준 적이 있는 고급 여관으로 향했다.
‘……잠시만.’
자연스럽게 움직였지만 생각해 보니 내가 주군 아닌가?
뭔가 반대로 된 듯한 기분이…….
“용병은 언제 고용할 거야?”
“방만 잡고 바로 가죠.”
뮤리엘까지 온 이유는 다름 아닌 한 용병 때문이었다.
비비안에게는 그저 내가 아는 용병이 이곳에 있어서 의뢰를 하나 맡긴다 말하며 왔지만 사실 의뢰보다 그 용병에게 용무가 있었다.
‘10번째 플레이어블 캐릭터.’
수인과 인간의 혼혈인 용병 캐릭터.
마침 남부 왕국 연합에서 이제 막 제국에 도착했을 시기였다.
원래대로라면 파이시가 발견한 이번 유적은 그녀가 해결할 에피소드였다.
하지만 내 행동으로 인해 미래가 바뀐 탓에 일정이 바뀐 것은 물론이고 예정에 없던 세력들까지 모이게 되었다.
그러니 겸사겸사 찾아가 봐야지.
“그랜드 필립스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혹시 예약이 되어 있으십니까?”
여관에 도착하자 건물 안에 있던 종업원이 우리를 반겼다.
경영자가 있지만 실소유주는 모하임 가문인 고급 여관이었는데 현대의 5성 호텔이라고 생각하면 될 듯했다.
“아드리아스 크롬웰입니다.”
“크롬웰 각하셨군요. 안쪽으로 들어오시죠.”
그리고 난 미누스의 편의로 이 여관을 아무런 부담 없이 누릴 수 있었다.
종업원은 내 신원에 대해서 별도의 확인을 하지 않았다.
확인이 필요하면 미누스가 뮤리엘에 오면 쓰라고 줬던 카드를 보여 주려고 했지만 필요가 없네.
아마 미리 언질을 받아서 내 얼굴을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우리는 가장 좋은 방으로 안내받고 이내 짐을 풀었다.
짐이라고 해 봤자 별것 없었기에 조금 둘러본 뒤 바로 나왔다.
“열쇠는 저희에게 맡겨 주시면 돌아오셨을 때 다시 드리겠습니다. 즐거운 여행 되십시오.”
돈이 모이는 항구 도시답게 으리으리한 여관이었다.
종업원의 배웅을 받으며 밖으로 나온 나와 비비안은 그 길로 곧장 용병 길드로 향했다.
온갖 물류가 모이고 일거리가 많은 만큼 용병 길드도 활발할 수밖에 없었는데 역시나 다른 곳과 비교해서 훨씬 거대한 길드 건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서 옵쇼!”
사람이 끔찍할 정도로 많았다.
그 와중에도 우리가 들어온 걸 확인한 접수처 직원이 인사를 건넸다.
“그쪽 팀은 이번에 무슨 의뢰 받았나?”
“아래쪽으로 내려가 봐야 돼.”
“수송선 호위는 물 건너갔군?”
“으, 그런 게 아니야. 이제 그냥 바다가 질렸어.”
복장이나 대화를 들어 보니 대부분은 용병으로 보였다.
간간이 의뢰를 하러 온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과 귀족의 사용인이 보였는데 용병들에 비하면 그 수가 적었다.
나는 그대로 가로질러 접수처에 다가갔다.
“무슨 일로 오셨을까?”
“용병을 하나 찾고 있습니다.”
“이름은?”
“아가타.”
“4만 윌이오.”
내가 돈을 건네자 접수 직원은 곧바로 어딘가를 향해 소리 질렀다.
“어이, 아가타! 손님이다!”
그러자 저 구석에서 후드를 뒤집어써 모습이 가려진 용병이 다가왔다.
짐승의 귀 때문에 항상 후드가 달린 망토를 쓰고 있었지.
“당신이 아가타입니까?”
“맞는데 어떻게 알고 왔지?”
경계 어린 기색이 물씬 풍기는 음성이었다.
그녀가 수인족 혼혈임을 알고 있고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다는 배경도 알고 있지만 예상보다 경계심이 짙었다.
“전 아드리아스 크롬웰이라고 합니다.”
“……크롬웰 백작?”
내 이름도 이제 좀 유명해진 건가?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후드 속에 감춰진 눈으로 나를 유심히 살피던 아가타는 고개를 저었다.
“크롬웰 백작은 로들렌 아카데미의 교수로 임명됐다고 알고 있는데.”
“맞습니다. 용무가 있어서 잠깐 밖으로 나왔죠.”
“증명할 수 있어?”
생각해 보니 딱히 증명할 방법이 없네.
크롬웰의 인장 반지도 에이미에게 있었다.
“어떻게 증명하면 될까요?”
“그걸 왜 나한테 묻지? 네가 알아서 증명해야지.”
곤란하네.
아카데미 교수를 나타내는 배지도 아직 만들어지고 있는 중이라 신분을 증명할 만한 물건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때 옆에서 지켜만 보고 있던 비비안이 나섰다.
“귀족 능멸죄.”
“뭐?”
“무릎을 꿇고 빌어라. 주군께서 용서해 주시면 살려 주마.”
비비안이 대뜸 검을 뽑아 들었다.
갑작스러운 발검에 용병 길드 내부의 시선이 전부 우리에게로 몰렸다.
“뭐야? 싸움이야?”
“귀족인가?”
상황이 복잡해지는 가운데 아가타가 아무렇지도 않게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는 무뚝뚝하게 용서를 구했다.
“설마 정말로 각하이실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결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일어나세요.”
솔직히 비비안의 말을 무시할 줄 알았다.
내가 진짜 아드리아스 크롬웰이라는 증거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귀족 사칭은 사형에 처할 수도 있는 엄중한 죄였다.
그런 만큼 비비안의 배짱, 아니 카리스마가 먹힌 거겠지.
“용서에 감사드립니다, 각하.”
나와 아가타의 대화를 지켜보던 비비안이 검을 다시 집어넣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재밌는 구경을 놓쳤다는 듯 아쉬운 표정으로 돌아섰다.
“혹시 저를 어찌 찾아오셨는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실력이 좋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혹시 맡으신 일이 있으십니까?”
“없습니다만…….”
“혹시 제 의뢰를 받아 주실 수 있습니까?”
아가타는 여전히 미심쩍은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다 건물 밖을 눈짓했다.
“장소를 옮겨서 대화를 나눠도 되겠습니까? 조용한 장소에서 의뢰를 들어 보고 싶습니다.”
“그렇게 하시죠.”
아가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길드 건물 밖으로 나왔다.
그녀의 뒤를 따라 조용한 찻집으로 향하는 와중에도 미심쩍은 기분이 들었다.
‘뭔가 잘못됐어.’
아가타는 이렇게까지 경계심이 많은 캐릭터가 아니었다.
게다가 지금의 행동을 보면 팀원이 없어 보였다.
기본적으로 용병들은 팀 단위로 움직이는데, 혼자라는 것은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뜻이었다.
“사실대로 말하겠습니다. 전 지금 개인 용병이에요. 팀이 없는 상태입니다.”
찻집에 도착하자마자 아가타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마침 생각하고 있던 거라 조용히 그녀의 말을 경청했다.
“저를 어떻게 알고 찾아오셨는지는 몰라도 제게 일을 맡기신다면 의뢰 수행에 문제가 생길 겁니다.”
“그렇군요.”
아무래도 아가타의 흐름이 심하게 꼬인 듯했다.
애초에 그녀 하나만 생각하고 있었던지라 팀이 있든 없든 상관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덜컥 의뢰를 맡기면 괜히 의심만 사겠지.
그러나 용병의 업무라는 것은 다양했다.
꼭 팀이 해결할 수 있는 일만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살짝 운을 떼 보았다.
“사실 제가 맡길 일은 제 호위였습니다.”
“호위…… 그렇다면 더더욱 팀이 필요하겠군요.”
“아니요. 전 오히려 아가타가 개인이라 더 좋습니다. 전 많은 호위를 바라는 게 아니라서요.”
내 말에 아가타의 경계가 살짝 더 올라간 게 보였다.
하지만 난 사실대로 솔직하게 말하고 있었기에 거침이 없었다.
“대략 2주 뒤에 원정이 있을 겁니다. 호위는 당신 말고도 지금 제 옆에 있는 호위 기사와 용병 셋을 더 대동할 거예요.”
“무슨 원정인지는 비밀입니까?”
“예. 이건 계약 후에 알려 드릴 수 있어요.”
“그렇다면 죄송하지만 거절하겠습니다.”
아가타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확실히 내가 알던 원래의 아가타에 비해 조심성이 많아졌네.
“보수 내용이라도 들어 보시지 않겠습니까?”
“아니요. 어차피 거절하기로 마음먹은 의뢰의 보수를 듣는다면 마음만 아플 것 같아서 사양하겠습니다.”
“5억 윌.”
어딜 도망가.
내가 대뜸 말한 액수에 아가타가 멈칫했다.
“……예?”
“선수금 3,000만. 호위 이행 당일 도착 시 1억 7,000. 호위 완료 시 나머지 3억.”
계약을 하기만 해도 무려 3,000만 윌.
그뿐이냐. 무려 총 5억 윌이었다.
이 정도면 의뢰에 따라 특급 용병도 부릴 수 있을 만한 금액.
“많은 걸 바라지 않습니다. 그냥 며칠 동안 옆에서 따라오기만 하면 돼요.”
“…….”
아가타의 눈빛이 어지러운 게 느껴졌다.
저 모습을 보아하니 자금난에 시달리는 모양이군.
나는 여유롭게 탁자에 턱을 괴며 아가타의 모습을 바라봤다.
“아, 인센티브도 있습니다. 그건 계약을 하겠다고 결정하시면 말할게요.”
“으으…….”
후드에 가려져서 보이지는 않았지만 축 늘어져 있을 고양이 귀가 눈에 선했다.
아가타는 잠시 갈팡질팡하더니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어째서 그렇게까지 큰 금액을 부르시는 거죠? 전 그저 그런 용병입니다.”
“그저 그렇지 않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제 사람 보는 눈은 꽤 정확합니다.”
내 말에 아가타가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솔직히 내가 봐도 수상쩍은 의뢰이긴 하다.
실적도 확실하지 않은 용병을 호위라는 명목으로 5억이나 제시했으니.
하지만 실적도 확실하지 않은 용병에게 그 5억이란 무지막지한 금액이었다.
“알겠습니다. 의뢰를 받아들이죠.”
“잘 선택하셨습니다. 지금 바로 계약하실까요?”
“예.”
아가타는 결국 자본에 굴복했다.
내 예상보다 경계심이 올라간 상태라 조금 위험하나 싶었지만 결국에는 해냈네.
우리는 곧바로 용병 길드에 돌아가 계약을 마무리 지었다.
선수금 3,000만 윌도 곧바로 지급하고 의뢰의 정확한 내용도 알려 주었다.
“고대 유적…….”
“함께 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아마 크게 걱정하실 일은 없을 겁니다.”
내가 애써 말했지만 그녀는 뭔가 잘못 걸렸다는 표정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고대 유적이라 함은 어떤 돌발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는 험지라는 의미였으니까.
“하아. 알겠습니다.”
“유적의 발굴을 성공적으로 마치면 제 몫의 배분에서 3%를 떼어 주겠습니다.”
“예.”
아가타는 금세 평정을 되찾았다.
상황에 대한 판단이나 수긍이 빠른 건 여전하네.
그러니 살아남은 거겠지.
“그럼 2주 후에 크롬웰에서 뵙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계약이 끝나고 다시 방으로 돌아오자 어느새 해 질 녘이었다.
그래도 원했던 목적을 이루었기에 마음만은 뿌듯했다.
“도망 안 가겠지?”
비비안이 문득 말했다.
“의뢰 도중에 도망을 가도 업계에서 매장당합니다. 선수금만 챙기고 도망치는 건 훨씬 큰 범죄죠.”
“근데 저 사람은 왜 데리고 가려는 거야?”
“아는 분에게 실력이 좋다고 들었던 적이 있어서요. 마침 제국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온 겁니다.”
“흐음…….”
비비안의 눈빛에 약간의 의심이 서렸다.
그동안 내가 해 온 일들이 있다 보니 그 의심의 눈초리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똑똑!
“크롬웰 각하, 쉬시는 도중에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무슨 일이시죠?”
“각하께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편지?
내가 여기 있는 걸 알았다는 건 집회나 에반, 둘 중 하나일 것 같았다.
나는 곧바로 문을 열고 여관 직원이 내미는 편지를 받았다.
받기 전에 스캔을 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
직원이 사라지고 나는 비비안의 시선을 받으며 편지를 뜯었다.
“에반이 보냈네요.”
다행히 집회에서 부린 수작은 아니었다.
나는 에반이 암호문으로 보낸 편지를 천천히 해석했다.
‘파이시와 보내 주신 세력들에 대한 조사 결과. 말씀하신 대로 각자 음지에서 활발히 움직이고 있음. 특히 씬 소속으로 추정되는 이종족들의 움직임이 다수 포착됨…….’
에반에게는 이것저것 맡겨 놓은 일이 많았는데 그 와중에 정보도 보내왔다.
물론 그 혼자서 하는 일은 아니겠지만 항상 감사할 따름이었다.
‘……추신, 예전에 위치를 파악하라고 하셨던 아가타가 씬과의 접촉 흔적이 있음. 확인해 주시길 바람. 끝.’
……뭐라고?
나는 다시 한 번 추신으로 적힌 부분을 해석했다.
그러나 다시 읽어도 내용은 똑같았다.
“아가타가 씬하고 접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