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 특성으로 최강 네크로맨서 (268)
반년 후
정돈이 잘되어 있는 방 안.
한 사내가 옷을 입고 있었다.
역삼각형으로 발달된 상체 위로 검은색 정장 재킷이 입혀졌다.
호리호리한 체격에 딱 맞는 스리피스 맞춤 정장.
“…….”
남자는 뭔가가 부족하다는 걸 깨닫고 뒤늦게 침대 위에 놓여 있는 넥타이를 발견했다.
“옷 입는 것도 일이네.”
투덜거리던 그의 방문 앞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곧이어 작은 노크 소리가 들리며 누군가가 바깥에서 말했다.
“오빠, 아직이야?”
“곧.”
남자, 아드리아스 크롬웰은 셔츠의 칼라를 피며 넥타이를 둘렀다.
그러나 밖에서는 기다려 줄 생각이 없는지 다시 한 번 방문을 노크했다.
“혼자 입는다고 고집부리더니 늦었잖아. 들어간다?”
“다 끝났어.”
넥타이를 매는 아드리아스의 입가에 미소가 새겨졌다.
에이미의 잔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그는 이렇게 웃고는 했다.
벌컥!
결국 열린 문틈으로 에이미의 얼굴이 반쯤 드러났다.
“뭐야, 다 입었잖아.”
“그래서 말했잖아.”
이내 활짝 열린 문을 통해 에이미와 비비안이 보였다.
비비안도 있을 거라고는 생각 못 했던 아드리아스는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기다리고 계셨군요.”
“……아니야.”
비비안의 반응이 한 박자 느렸다.
그녀의 초점은 흐릿하게 변해 정장을 입은 아드리아스만을 멍하니 응시하고 있었다.
“뭐야, 넥타이 매고 있었어? 이리로 와 봐.”
“내, 내가 해 줘도 될까.”
에이미가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아드리아스에게 다가가자 비비안이 다급히 말했다.
그 모습을 본 에이미는 오히려 잘됐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둘이서 같이 있을 거니까 언니가 해 주시는 게 낫겠네요.”
에이미의 말에 표정이 밝아진 비비안이 쭈뼛쭈뼛 아드리아스에게 다가갔다.
아드리아스는 그런 둘을 향해 말했다.
“저 혼자 할 수 있습니다.”
“내가 해 주면 안 돼?”
초롱초롱한 비비안의 눈망울을 본 아드리아스는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 비비안에게 목을 내주었다.
이내 비비안이 조심히 손을 움직이며 넥타이를 매 주었다.
가끔씩 손이 목에 닿을 때마다 움찔거리는 비비안을 느낀 아드리아스가 어색하게 고개를 돌렸다.
“둘이 뭐 하는 거야?”
에이미가 그런 둘을 향해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비비안이 화들짝 놀라 급하게 넥타이를 당겼다.
“커억.”
“미, 미안.”
마무리까지 완벽한 둘을 보며 에이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시간 늦겠어. 빨리 가.”
“원래 주인공은 늦게 등장하는 법이야.”
“뭐래. 어쨌든 가서도 연락 줘. 주말에는 돌아올 거지?”
“봐야지. 할 일이 많을 수도 있으니까.”
아드리아스는 선물로 받은 회중시계를 들어 시간을 확인한 후 정장 포켓에 집어넣었다.
“그럼 가 볼까요.”
“응.”
비비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앞서 가는 아드리아스를 뒤따랐다.
* * *
봄을 알리는 라프란디스꽃이 흐드러지게 폈다.
전년도에 있었던 일식 사건으로 인해 생태계에도 영향이 있지 않을까 걱정했던 사람들의 불안을 안식시키는 풍경이었다.
“쟤야?”
“그렇겠지. 검을 저렇게 많이 들고 다니는 사람은 유일하니까.”
신입생 입학식이 있는 날.
강당에 들어서는 신입생들을 바라보는 재학생들의 눈길이 누군가를 좇고 있었다.
“검룡보다 높은 성적으로 졸업했다지?”
“시험 내용이 다르고 채점 기준도 그때랑은 달라서 비교는 안 되지.”
“야, 야. 그래도 넘었다는 게 어디야. 남들은 안 넘고 싶어서 안 넘었냐?”
“그렇긴 해. 그래도 난 검룡의 손을 들어 주고 싶다.”
“무슨 이야기 중이신가요?”
대화를 나누고 있던 학생들 틈으로 누군가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학생들이 뭐냐 싶은 표정으로 그 인물을 보다가 왼쪽 어깨에 차여진 완장을 보고 놀랐다.
“하, 학생회.”
“그냥, 그, 신입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흐음. 그래요? 그렇게 겁먹으실 필요 없으세요.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거니까.”
마치 감은 것과 비슷한 실눈이 학생들을 훑었다.
그리고는 이내 그들의 대화 주제였던 인물에 대해 물었다.
“혹시 루이스 선배님 보셨나요?”
“검룡? 아, 아니 루이스 선배님이라면 저 반대쪽에서 본 것 같기도…….”
“고마워요. 아, 학생회는 바쁘네요. 저도 여러분처럼 그냥 행사를 즐기고 싶은데. 재밌게 즐기세요!”
실눈의 여자아이는 손을 흔들며 반대편을 향해 걸어갔다.
걸을 때마다 흔들리는 왼팔의 완장이 유독 눈에 띄었다.
붉은 바탕에 로들렌을 상징하는 검은 용이 그려진 완장.
“쫄았다.”
“나도.”
“예전에는 학생회가 이런 분위기는 아니었는데 말이지.”
“예전이라고 해도 우리 고작 2학년이잖아.”
“그렇지. 히히.”
최근 2년 사이에 급변한 학생회는 이전과 같이 유명무실한 단체가 아니었다.
철저히 실력 위주로만 뽑히는 학생회 일원은 이제 아카데미 권력의 상징과 같았다.
왼팔에 찬 완장은 그들이 일반 학생과 다르다는 걸 나타내는 증표와 같았으며 아카데미 최상위 12인을 가리키는 것과 같았다.
“내년에는 나도 노려 봐야지.”
“하아, 말은 누구나 하지. 말석인 카심만 해도 난 따라잡을 엄두가 안 난다.”
“야, 갑자기 궁금해지는데 저 신입이면 카심을 이길 수 있을까?”
“에이, 설마…….”
마침 단상으로 올라서는 신입생 대표는 눈에 띄는 차림이었다.
총 다섯 개의 검을 지닌 소년.
얼굴에는 풋풋한 기운이 남아 있지만 몸은 이미 완성에 가까웠다.
“……세 보이는데.”
“세 보이는 게 아니라 세겠지. 모나스 수석인데 약하겠냐.”
모나스 수석은 매년 나왔지만 이번은 조금 달랐다.
무려 검룡 루이스 아트만의 기록을 경신한 수석 입학생.
검룡이 지닌 무게와 의미를 아는 로들렌 아카데미의 학생들로서는 얕볼 수가 없었다.
“방금 마릴린 선배가 검룡을 찾은 것도 혹시 쟤 때문인가?”
“그건 너무 갔다. 이제 막 들어온 애 때문에 학생회에서 검룡까지 찾아간다고?”
한참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이 어느새 신입생 대표 인사가 끝났다.
재학생 대표 인사는 이미 그전에 진행되었기 때문에 남은 건 교수진 소개 및 인사.
“올해도 별다를 거 없겠지.”
“그 누구더라? 재작년까지 조교수 했다가 작년에 개인 사정으로 잠깐 쉬었던 분이 이번에 교수로 채용됐다던데.”
“재작년? 아! 아이비 클레어?”
“뭐야, 알고 있었어?”
“그럼, 모르는 게 말이 안 되지! 우리 기사학부의 영원한 아이돌!”
“뭔 소리야.”
시답잖은 이야기가 흘러가는 중에도 교수들의 인사가 이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이 말한 아이비 클레어가 모습을 드러냈다.
“오오…….”
“저 탄탄한 근육! 건강하게 그을린 피부! 저분이 우리 기사학부의 아이돌이 아니면 누가 아이돌이냐!”
“난 처음 봤어. 애초에 너도 재작년에는 없었으면서 어떻게 안 거냐?”
“로들렌 아카데미 잡지에서 봤지! 꼭 봐라, 두 번 봐라. 우리 아이비 교수님 특집 편도 있다.”
호들갑을 떨면서도 학생들의 시선은 아이비에게 떨어지지 않았다.
자극적인 옷차림도 한몫했지만 그들도 기사학부생들이라 아이비의 완성된 근육들에 깊은 감명을 얻고 있었다.
“한번 대련해 보고 싶다.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을까?”
“아이비 교수님은 조교수 때부터 강하다고 소문났었어. 아마 학생회장도 못 이기지 않을까?”
“그 정도라고?”
“당연하지! 물론 교수님들이라고 무조건 학생들보다 강한 건 아니지만 아이비 교수님은 저 젊은 나이에 교수가 되신 만큼 강함으로 증명했겠지.”
“어? 생각해 보니까 아이비 교수님이 최연소로 교수가 된 거 아니야? 왜 교장 선생님은 그렇게 소개를 안 했지?”
“굳이 할 필요 없었던 거 아닐까?”
그때 마지막 차례라고 생각했던 아이비가 자리로 돌아가고 교장인 데오스가 단상으로 나왔다.
“마지막으로 여러분들에게 소개할 분이 한 분 더 계십니다.”
그의 말에 단상 뒤편에 앉아 있던 교수들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끝자리에 앉아 있는 건 이번에 새로 교수가 된 아이비 클레어.
그 옆에는 자리가 없었다.
“어쩌면 파격이라고 볼 수 있겠군요. 그도 얼마 전까지는 여러분과 같은 학생이었으니 말입니다.”
거기까지 들은 누군가가 2층의 좌석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누군가는 검룡, 루이스 아트만.
현 아카데미의 공식 최강자였다.
학생회 소속은 아니지만 그 누구도 최강임을 부정하지 못하는 인물.
그런 그가 마치 소개할 인물이 누군지 아는 것처럼 반응하자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보아하니 우리 루이스 학생께서는 누군지 짐작하신 모양입니다.”
“제 짐작이 맞다는 말씀이십니까?”
“직접 확인해 보시죠.”
데오스는 거기까지 말하며 입구를 향해 양팔을 벌렸다.
“저희 아카데미 최연소 교수님으로 초청되었습니다. 모두 환영해 주십시오, 기사학부와 마법학부의 자유 지도를 담당할 아드리아스 크롬웰 교수님이십니다.”
쿵!
문이 열렸다.
어두웠던 실내에 밝은 빛이 들어오며 학생들의 뒤로 누군가가 걸어 들어왔다.
단정하게 묶어 올린 녹빛이 감도는 검은 머리카락.
딱 맞는 정장에서는 그의 몸이 여실히 드러나 날렵하지만 근육이 들어찼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뚜벅.
묵직한 발걸음.
그가 걷자 근처에 있던 신입생들은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아아!”
학생회는 2층에서도 따로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학생회 중 일부가 아드리아스를 알아보고 감탄을 흘렸다.
“아! 아드리아스 선배님…….”
아드리아스를 처음 본 이들은 반대로 학생회장의 감탄을 보며 놀라워했다.
하지만 학생회장은 그런 시선에도 개의치 않고 여전히 감탄을 금치 못하며 아드리아스를 주시했다.
“흥.”
학생회와는 동떨어진 2층의 다른 쪽 구석에서는 크리스 유노르가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 드리워진 미소는 감출 수가 없었다.
“형님!”
신입생 대표로서 가장 앞에 있던 벤자민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반겼고.
“하! 미리 말이라도 좀 해 주지.”
조금 전에 단상에 올랐던 아이비가 고개를 저으며 미소 지었다.
탁!
마침내 단상에 올라선 아드리아스가 몸을 돌려 학생들을 응시했다.
차갑게 내려앉은 그의 얼굴은 차마 눈을 마주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했다.
“반갑습니다. 마법학부와 기사학부의 자유 지도를 담당할 아드리아스 크롬웰입니다.”
꿀꺽.
이전에 나왔던 다른 교수들 때와는 달리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묘한 긴장감이 맴도는 가운데 아드리아스가 말을 더했다.
“들으셨다시피 전 마법학부와 기사학부 가리지 않습니다. 다만 제게 지도를 받고 싶으시다면 그만한 자격을 갖춰야 할 겁니다.”
오만한 선포.
그 말을 끝으로 아드리아스는 그대로 뒤돌아 단상 뒤편에 있는 뒷문으로 퇴장했다.
그가 나가자 학생들은 드디어 침묵에서 깨어났다.
“와, 씨. 뭐야?”
“소름이다. 저분이 그분 맞지? 로들렌의 괴물이라고 불렸던 분.”
“그래도 그렇지, 미친 거 아니냐? 재작년까지만 해도 학생이었던 사람이 어떻게 교수가 될 수 있지?”
“그것도 그건데 저 자뻑 섞인 말은 또 뭐냐. 지도를 받고 싶으면 자격을 갖추라고?”
등장과 동시에 짧은 몇 마디 말로 대강당을 뒤흔들어 놓은 사내.
그를 두고 재학생들부터 신입생들까지 대화의 열기가 식을 줄을 몰랐다.
“건방집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희랑 같은 학생이었던 주제에.”
학생회 임원 중 하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러나 그 말을 들은 부회장, 디트리히 페터가 차분히 말했다.
“입조심해라, 카심.”
“선배님들은 저 양반과의 추억이 있나 보지만 전 그런 거 없습니다. 만약 제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면 학생회의 권력을 이용해서라도 내쫓을 거예요.”
카심의 발언에 임원들은 각자 달리 반응했다.
학생회장은 그런 카심을 향해 말했다.
“마음대로 해 봐. 오히려 궁금하네. 네가 얼마나 빠른 시간 안에 선배님에게 굴복할지.”
“회장님까지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반응이 다들 그러니 호기심이 더 생기는데요.”
이제 2학년인 카심을 제외하면 학생회 임원 중 아드리아스를 모르는 이는 없었다.
그렇기에 대부분은 그런 카심을 귀엽다는 눈초리로 바라봤다.
“오늘 있었던 일정은 전부 취소. 선배님한테 인사를 하러 가야겠어.”
“알겠습니다, 회장님.”
학생회장, 세레나 에레스티얼이 어깨에 건 외투를 흔들며 일어났다.
외투의 왼팔에는 학생회장임을 알리는 완장이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