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 특성으로 최강 네크로맨서 (264)
니켈 라이프힐
덜그럭.
니켈은 삐걱거리는 몸을 억지로 움직였다.
바로 앞에는 괴물에게 붙잡혀 거꾸로 매달려 있는 아드리아스가 보였다.
딱.
나아가야 한다.
구해야 한다.
아드리아스, 나의 주군.
생각한 대로 움직이지 않는 몸을 억지로 끌었지만 발목 밑이 부서져 있었다.
결국 넘어지며 바닥을 기었지만 까마득하게 먼 거리로 인해 아드리아스에게 닿을 기미가 안 보였다.
따악.
절망감.
되살아난 이후 단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했던 감정이 니켈을 좌절케 만들었다.
그동안의 노력과 꾸준함만으로는 부족했다.
아드리아스를 구하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했다.
[특수 기술 ‘나태’를 사용하시겠습니까?]
삐익―.
[거절되었습니다.]
어째서.
의문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그는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아드리아스가 위험했기에.
딱딱.
아드리아스.
처음 그가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웠을 때.
자아를 가지고 있었지만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잘 부탁한다, 니켈.’
그가 불러 준 이름을 듣게 된 순간.
자신이 누군지 떠올렸다.
니켈 라이프힐.
보잘것없는 하급 기사.
한때 헌신했던 영주에게조차 버림받은 하찮은 사내.
스륵―.
니켈은 땅을 짚고 일어서려 노력했다.
그의 주군을 구하기 위해서라도 누워 있을 수는 없었다.
설령 두 다리가 없더라도 일어서야 했다.
‘니켈, 오랜만이야. 일단 옷부터 입자.’
‘니켈, 혹시 나한테 검술 좀 알려 줄 수 있냐?’
‘니켈, 괜찮아? 어디 이상한 데는 없어?’
생전에는 단 한 번도 받아 본 적 없던 온정.
자신을 인정하고 챙겨 주었던 유일한 사람.
그랬던 주군이 괴물에게 붙잡혀 죽어 가고 있었다.
으드득!
무리하게 일어나자 금이 갔던 쇄골이 부러졌다.
넝마가 되어 더 이상 갑옷 역할을 할 수 없는 검은 갑주를 벗어 내며 절박하게 움직였다.
구해야 한다.
설령 이 모든 뼛조각이 재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딱딱딱.
땅을 짚으려 움켜쥔 주먹 사이로 흙이 집혔다.
덜덜 떨리는 몸이 더 이상은 무리라고 말했다.
딱!
그러나 필사적으로 몸을 일으켜 세우는 데 성공한 니켈은 만변을 품에 안고 나아갔다.
철벅― 철벅―.
언젠가 새로 들어온 신입과의 대화가 떠올랐다.
크리브마허라고 했나.
―네놈은 다른 녀석들과 다르군. 근데 왜 티를 내지 않는 거지?
다른 언데드들도 자아가 있었지만 니켈과는 달랐다.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소환된 탓일까.
니켈의 자아는 크리브마허의 그것과 유사했다.
딱! 딱!
그러나 단 한 번도 그 사실에 대해서 티를 냈던 적이 없었다.
―답답한 놈.
크리브마허가 뭐라 생각하든 상관없었다.
이미 자신을 인정해 주는 주군을 만났고 그를 위해 움직인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했으니까.
핑!
퍼걱!
아드리아스를 붙잡은 괴물이 니켈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그리고 곧바로 날아온 인지조차 할 수 없는 공격.
[심각한 피해로 역소환됩니다.]
[거절했습니다.]
고통은 없었지만 가슴에 구멍이 뚫렸다.
사람에게는 치명상이었겠지만 니켈은 상처를 무시한 채 계속해서 나아갔다.
자신의 주군, 아드리아스를 위해서.
퍼걱!
다시 한 번 날아온 공격에 왼쪽 어깨가 그대로 날아갔다.
들고 있던 만변이 하나 남은 팔에 처량하게 매달렸다.
“그냥 날 죽게 내버려…….”
아드리아스가 죄악을 사용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 반동으로 죽을 수 있다는 것도.
딱딱!
내가 가고 있다! 삶을 포기하지 마!
니켈은 아드리아스의 다가오지 말라는 명령도 무시한 채 그를 구하기 위해 다리를 움직였다.
무모하다는 것도 알고 도움이 되지 않을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니켈은 포기하지 않았다.
니켈은…….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띠링!
[‘근면한 나태’가 숙주의 의지를 읽습니다.]
[‘근면’이 개화하기 시작합니다.]
알 수 없는 문구가 니켈의 앞을 가렸으나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망가진 몸을 이끌고 앞으로, 그저 앞으로 나아갈 뿐.
우와아아아앙――――――――――!
그때 밝은 빛이 뿜어져 나오며 엄청난 양의 마나가 휘몰아쳤다.
그 직후 들려오는 하나의 목소리.
“잘 버텼어.”
조력자의 등장을 눈치챈 니켈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분명 자신이 구했었던 여인과 비슷한, 아니 똑같은 여인이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서 있었다.
“디에네?”
“역시 아드리아스. 바로 알아보네? 이번에는 내가 구하러 왔어.”
니켈의 짐작이 맞았다.
그 여인은 디에네 알븐.
하지만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니켈 라이프힐. 너도 수고했어.”
마치 알고 있다는 듯 이름을 부르는 디에네에게 니켈은 고개를 저었다.
자신은 아직 수고했다는 말을 들을 자격이 없었다.
그리고 다시 발걸음을 내디뎠다.
“이때도 여전했네.”
디에네의 얕은 웃음이 들려왔다.
위이잉――.
피비비빙!
순식간에 전개된 마법.
공간이 수십 분할로 나뉘며 쪼개졌다.
[“아! 아! 아!”]
그리고 화신 또한 그만큼 쪼개졌다.
덕분에 아드리아스가 혓바닥에서 풀려나며 바닥에 떨어졌다.
“크흠.”
그의 몸 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아드리아스가 조금이라도 회복할 시간을 벌어 주기 위해 니켈은 열심히 나아갔다.
그리고 마침내 아드리아스에게 도달할 수 있었다.
“니켈.”
아드리아스가 죽어 가는 모습으로 불렀다.
니켈은 재빨리 그런 아드리아스를 부축하고 뒤로 물러났다.
“일단 포션부터 먹여!”
디에네의 외침에 아드리아스는 가방을 지니고 있는 용아병을 소환했다.
곧바로 가방에서 포션을 꺼낸 니켈은 아드리아스에게 천천히 포션을 먹이기 시작했다.
“이미 들어서 알고 있겠지만 난 오랫동안 못 있어.”
두 눈에 새겨진 마법진이 빛나고 있는 디에네가 여전히 괴물 같은 마법을 전개하며 말했다.
“결국 저 화신을 해결해야 하는 건 여기 있는 사람들이야.”
“미래에서 왔습니까.”
“그래. 네가 가라고 해서 온 거야. 그것보다 좀 살 만한가 봐? 그런 걸 물어볼 때가 아닐 텐데?”
화신은 디에네의 괴랄한 마법에도 끊임없이 재생했다.
그런 화신을 상대로 여유 있게 말을 하는 디에네도 상당한 괴물이었다.
니켈은 멀쩡하지 못한 몸으로 애써 아드리아스의 앞을 지켰다.
비록 몸은 불편해도 한 번이라도 아드리아스를 지키면 그걸로 만족한다는 태도.
“조언이나 충고는 없었습니까.”
“어.”
디에네의 몸이 점차 투명해졌다.
그녀의 말대로 그녀가 있을 수 있는 시간은 잠깐뿐이었다.
“그렇다면 제가 여기서 무슨 선택을 하든 살아 있다는 거네요.”
“너, 이상한 생각하지 마.”
둘의 대화가 이어지는 가운데, 화신의 혓바닥들에게 당했던 남궁일영과 가넷이 성치 않은 모습으로 나타났다.
니켈을 제외한 언데드들은 이미 모두 역소환된 지 오래.
“잘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
드디어 디에네가 끝을 고했다.
그러나 그녀는 사라지기 직전에 마지막 마법을 선사했다.
“이런 곳에서 쓰게 될 줄이야.”
온몸이 마법진으로 뒤덮였다.
각막에까지 새겨진 마법진들은 이내 기묘한 빛을 뿜으며 디에네와 공명했다.
“니켈 라이프힐.”
니켈이 디에네를 바라봤다.
“아드리아스를 지켜 줘.”
당연한 소리.
니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곧이어 느껴지는 알 수 없는 마나의 기운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 오리지널 마법 중 하나. 하지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던 마법.”
“아……!”
아드리아스의 놀란 음성이 들리고 이내 니켈은 생소한 감각을 느꼈다.
아니, 그것은 생소한 게 아니었다.
이미 익히 알고 있던 감각.
그러나 잊고 있었던 감각.
니켈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살색 피부가 보였다.
인간이면 당연히 지니고 있어야 할 멀쩡한 손가락들도 보였다.
“가장 찬란했던 시기로의 역행.”
니켈은 자신이 생전의 모습을 되찾았음을 깨달았다.
동시에 지금이라면 오러 비기를 아무런 구애 없이 사용할 수 있음을 알았다.
그는 자신이 오러 마스터가 되었던 때로 돌아왔다.
“니켈……?”
아드리아스의 음성에 니켈은 고개를 돌렸다.
자신의 젊은 주군이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놀란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신, 니켈 라이프힐.”
목소리가 나왔다.
“주군을 뵙습니다.”
니켈이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런 그의 눈가에서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언젠가 꼭 아드리아스에게 해 주고 싶었던 말.
그 말을 직접 할 수 있었다.
“니켈.”
“주군과 조금 더 많은 대화를 나누고 싶지만…….”
니켈은 일어났다.
그리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뒤를 돌아 화신을 바라봤다.
“전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았습니다.”
말을 잃은 아드리아스가 멍하니 니켈을 바라볼 때, 그는 앞으로 달렸다.
멀쩡해진 신체를 가진 니켈은 사라지는 디에네의 옆을 지나며 눈짓했다.
“고맙다.”
이게 비록 자신의 마지막이 될 수 있어도.
후회는 없었다.
우우웅――.
손에 들린 만변이 울음을 토했다.
이전과는 다른 강대한 힘이 느껴졌다.
‘이 감각…….’
자신이 처음 오러 비기를 깨달았던 당시에 느꼈던 기운.
니켈이 화신의 앞에서 그대로 검을 내려 벴다.
오러 비기였지만.
화려한 수식어도, 아무런 기교도 없는.
그저 단순한 내려 베기.
훵!
마치 허공을 벤 듯 바람 소리밖에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화신의 반응은 극적이었다.
[“――――――――――――!”]
이해할 수 없는 의지의 향연.
디에네의 마법으로도 만들 수 없었던 반응이 터져 나왔다.
화신의 신체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었다.
그럼에도 이러한 반응이 나오는 이유.
“심검? 아니야. 그것보다는 보다 근본적인 걸 벴다. 영혼을 베는 검?”
남궁일영이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러나 니켈의 공격은 끝이 아니었다.
‘이전이었으면 한 번밖에 사용하지 못했겠지만…….’
생전의 모습을 되찾은 니켈은 상상 이상의 강자였다.
훵! 훵! 훵!
여전히 무언의 비명을 지르고 있는 화신을 향해 정확히 세 번의 검격이 더 이어졌다.
간결하고 단순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막지 못하는 검.
그리고 그 결과는 곧바로 드러났다.
쩌적!
화신을 보호하는 수십 개의 혓바닥 대부분이 잘리고 한쪽 팔마저 떨어져 나가며 재생되지 않았다.
그나마 엄청난 속도를 이용해 피했기에 머리부터 쪼개지지는 않았다.
“아쉽구나.”
니켈은 만족할 수 없었지만 그것이 자신의 한계임을 명확히 알고 있었다.
이미 디에네도 사라지고 없는 상황.
그녀의 마법이 풀리고 있었다.
“충분했다.”
피부가 가루가 되어 흩어져 갔다.
본래의 모습을 되찾아 가는 니켈에게 수고했다는 듯 다가온 남궁일영이 검을 치켜들었다.
[“죽버여릴야거.”]
전투는 끝나지 않았다.
흥분한 화신에게서 거대한 기파가 뿜어져 나오며 대기가 진동했다.
피잉!
다시 한 번 압도적인 속도로 주변을 휩쓸었다.
다만 혓바닥들은 없었기에 전과 달리 초근접의 싸움.
콰앙!
남궁일영과 화신이 격돌했다.
[“잘근잘근잘근잘근잘근씹어씹어씹어씹어…….”]
“흐읍.”
콰지지직!
뇌전이 튀며 속도와 속도가 맞붙었다.
니켈은 그 모습을 보며 천천히 물러났다.
다시 돌아온 자신의 신체는 화신에게 당했을 때로 돌아와 형편이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아드리아스를 지키기 위해 뒤를 돌았다.
‘……?’
아드리아스가 없었다.
콰앙――――!
“크헉.”
남궁일영이 각혈을 하며 물러났다.
[“고작고작고작! 조각조각조각!”]
결국 남궁일영이 패했다.
혓바닥도 없고 한쪽 팔도 날아갔지만 화신은 여전히 강대했다.
[“조각조각!”]
화신은 남궁일영을 무시한 채 시선을 돌렸다.
그 시선이 향한 곳에는 니켈이 서 있었다.
[“죽음!”]
파앙!
화신이 엄청난 속도로 니켈에게 다가오고 곧이어 주먹을 휘두르는 순간.
탁!
전혀 어울리지 않는 가벼운 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의문에 가득 찬 화신의 의지.
[“관찰자?”]
“하아…….”
니켈은 자신의 눈앞에서 일어난 일을 보며 절망했다.
화신의 주먹을 가볍게 붙잡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왕관을 쓴 자신의 주군.
그리고 그 모습이 무얼 의미하는지 그는 알고 있었다.
“때려죽여 주마.”
아드리아스의 눈에서 광기가 폭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