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 특성으로 최강 네크로맨서 (260)
단서
탑의 생활은 점차 안정되어 갔다.
처음에 비하면 급격히 줄어들은 검은 인간들의 공격에 탑의 인원들은 교대로 쉴 수 있게 되었다.
“많이도 죽었군.”
내 옆에서 서류를 확인한 크라이슨이 중얼거렸다.
“얼마나 말입니까?”
“아, 총 2,210명의 인원들 중 563명이 죽었습니다. 4분의 1이 희생됐군요.”
크라이슨이 내 눈치를 조심히 살피며 말했다.
한 번 교육받은 후로는 내 앞에서 조심조심 행동하는 게 그답지 않았다.
보면 남궁일영한테도 막말하던데 내가 너무 강하게 대했나.
“다른 세력은 어떤 상황인지 아십니까?”
“룬 세력을 제외하면 다들 꽤 피해를 입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룬 세력이야 원래부터 워낙 인원수가 적은 데다 잘 죽지 않아서 피해가 전무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확실히 분위기가 축 처진 느낌이었다.
탑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지냈던 만큼 건너, 건너 알던 사람들이 죽었을 테니.
좁은 땅 안에 모두 모여 있으니 줄었다는 게 티가 안 났을 뿐이었다.
탁!
“복귀…….”
디에네가 반쯤 죽어 가는 표정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남들보다 더 일하는 시간이 길었는데 그녀의 말에 따르면 능력에는 책임이 뒤따른다면서 스스로 고생하고 있는 중이었다.
‘내가 볼 때는 의미 없지만 그게 디에네긴 하지.’
저 검은 땅은 초월자와 관련되었다.
아무리 디에네가 열심히 활약해도 이 상황이 풀릴 것 같지는 않았다.
“수고하셨습니다.”
“어. 나 들어가서 좀 쉴게. 비비안, 나 이거 벗는 거 좀 도와줄래?”
그녀가 자신의 몸을 덮고 있는 체인 메일을 가리키며 말했다.
공간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디에네는 언제부턴가 항상 중무장을 하고 있었다.
“응. 아드리아스, 나 잠깐 갔다 올게.”
비비안이 나를 보며 어디 가지 말라는 표정으로 말했다.
요즘 들어 부쩍 내게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비비안이었지만 잘못한 전적이 있는 나로서는 그녀를 떼어 낼 수가 없었다.
“언제까지 이런 상황이 지속될지 모르겠군요.”
디에네와 비비안이 방으로 사라지자 크라이슨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지금은 나도 딱히 해결책이 없었기에 해 줄 말이 없었다.
‘원죄가 조금만 더 입을 열어 줬으면 좋겠는데.’
이놈은 뜬금없이 나왔다가 갑자기 사라진다.
뭔가를 좀 더 알려 줬으면 좋겠지만 결국 목마른 놈이 우물을 판다고 내가 직접 나서서 살펴봐야겠지.
일단은 녀석들이 원죄를 노리고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행동을 자제하고 있었다.
저번처럼 나나 남궁일영이 직접 나서야 할 정도의 괴물은 나타나지 않고 있지만 여전히 나를 의식하고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었으니까.
쾅!
“크라이슨 님!”
누군가가 급하게 문을 열어젖히며 안으로 들어왔다.
로들렌 세력의 인물이었는데 그는 이내 나도 확인하더니 잘됐다는 표정을 지었다.
“급하게 전달해야 할 정보가 있습니다.”
“뭔데?”
“가넷과 미르바가 검은 땅 안쪽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다는 전언입니다. 지금 당장 각 세력의 수뇌부들은 회의장으로 모이라고도 했습니다.”
“뭔가 발견했다고?”
크라이슨이 습관적으로 나를 쳐다봤다.
뭘 알고 있냐는 듯한 시선이었는데 나도 방금 처음 들은 이야기라 아는 바가 없었다.
“가 보죠.”
이제 막 쉬러 들어간 디에네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녀도 데려가야겠다.
* * *
회의장에는 각 세력의 수뇌부가 이미 모여 있었다.
크라이슨은 그 모습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우리를 가장 늦게 부른 거냐?”
“로들렌 세력에 정보를 전할 인물이 근처에 없었을 뿐이니 괜히 또 열 내지 마라.”
멜라토가 크라이슨을 쏘아붙이며 어서 앉으라는 듯 눈짓했다.
나도 당장 그 정보라는 것을 듣고 싶었기에 크라이슨의 어깨를 살짝 잡았다.
“일단 이야기부터 들으시죠.”
“알겠습니다.”
역시 나한테만은 깍듯하네.
크라이슨이 내 말에 아무 반항도 없이 얌전해지자 주변에서 흥미롭다는 눈길을 보내왔다.
크라이슨,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아온 거냐.
“모두 모인 것 같으니 이제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가넷이 입을 열었다.
깨어난 뒤로 가넷을 몇 번 찾아갔지만 그때마다 나를 묘하게 회피하는 게 마음이 편치 않았는데 지금도 나랑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쓰는 게 보였다.
따지고 보면 나만 아니었음 가넷은 그 가짜 세상에서 계속 지냈을 수도 있었을 거다.
나를 미워하는 것도 당연하겠지.
“미르바와 하루 거리에 있는 검은 땅 안쪽을 탐색했습니다. 결과부터 말씀드리자면 그곳에서 저희는 거대한 원형 구체를 발견했습니다.”
“원형 구체?”
“정확히는 타원형이었습니다. 마치 알과 같더군요.”
알이라…….
묘하게 불길한 느낌이었다.
“크기는 3미터가 조금 넘고 검은 대지와 똑같은 물질이 뒤덮고 있었습니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려 했지만 주위에 너무나 많은 숫자의 괴물들이 지키고 있는 바람에 멀리서 확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괴물들이 유독 많은 데다 지키고 있다는 점에서 수상쩍은데?”
칸이 중얼거렸다.
내 생각에는 수상쩍음을 넘어서 확실한 무언가였다.
모든 일에는 원인과 목적이 있기 마련. 물론 상대가 속내를 알 수 없는 초월자라는 걸 생각하면 아무 의미가 없을 수도 있었지만 적어도 조사를 해 볼 만한 일이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원정을 제대로 꾸려서 탐사를 해 볼 생각입니다. 지원자를 모집할 셈이죠.”
이번에는 미르바가 나섰다.
미르바는 가넷과 멜라토, 그리고 다프란까지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저희 룬 세력의 수뇌부는 전원 참석할 예정입니다. 아무래도 저희는 이모탈인 만큼 이런 극적인 환경에서 더욱 효력을 발휘하니까요.”
“나도 가지. 내가 가면 차강제르도 당연히 가는 거고.”
칸이 말했다.
그의 말이 끝나자 참가를 표명한 인원들이 남은 사람들을 바라봤다.
“아시다시피 저는 무력이 전무합니다. 대신 멘들레인이나 베델을 설득해 보죠.”
케이레스 세력에서 가장 강하다고 알려진 인원들이었다.
조단의 말에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로들렌 세력과 중원 세력에 시선이 집중되었다.
“제 마법은 도움이 될 거예요.”
디에네가 먼저 솔선수범하며 나섰다.
그러면서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이 당연히 내가 참가할 거라고 믿는 눈치였다.
“전 고민을 좀 해 보겠습니다.”
“크흠.”
내 대답이 끝나자마자 여기저기서 곤란한 눈초리를 보내왔다.
마치 예상하지 못했다는 반응들이었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저들은 상대의 정체도 모르고 목적도 모른다.
목적까지는 나도 모르지만 자칫하다 원죄가 그들을 자극할 수 있다는 걸 아는 나로서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아드리아스.”
디에네가 슬며시 내 이름을 불렀다.
“참가를 안 하겠다는 건 아닙니다. 시간을 조금 주십시오.”
모두가 불만스러운 얼굴로 나를 바라볼 때 단 세 명의 인물만 반응이 달랐다.
비비안은 마치 잘 결정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고 남궁일영이 묘한 눈초리로 나를 보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가넷.
오랜만에 눈이 마주친 가넷은 내 시선을 피하지 않고 무표정한 얼굴로 뚫어지게 나를 쳐다봤다.
‘가넷은 적의 정체를 알고 있다.’
그 가짜 세상에서 알려 줬으니까.
내가 뭔가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저렇게 보는 거겠지.
어쨌든 행동을 아예 안 할 생각은 아니었다.
뭐라도 해야 탑을 나가지 않겠나.
아직까지는 내가 계획했던 시간의 오차 범위 안이었지만 더 늦춰지다간 바깥세상에서 일어나는 중요한 에피소드를 조율하지 못한다.
“우리 세력은 참가하지 않겠다.”
그때 들려 온 남궁일영의 목소리에 생각에서 깨어났다.
갑작스러운 그의 발언은 그와 같은 세력 사람들도 놀란 반응을 보일 정도였다.
“도, 도련님?”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지 않습니까?”
오히려 중원 세력의 인물들이 남궁일영에게 반발하고 나섰지만 그는 단호했다.
“그 누구도 참가하지 않는다. 만약 이를 어길 시 내가 직접 목을 치겠다.”
“도련님!”
상황이 이렇게 되자 차마 다른 세력에서 뭐라 할 수가 없었다.
다만 의아함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남궁일영을 바라볼 뿐.
“남궁일영 님, 어째서 그런 선택을 하셨는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그러나 디에네는 달랐다.
당차게 묻는 그녀의 말에 남궁일영은 나른한 시선으로 바라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위험하니까. 그뿐이다.”
“위험한 건 모두 알아요. 하지만 여기서 가만히 있는다고 상황이 해결되는 건 아니잖아요? 다른 분들도 위험을 무릅쓰고 가는 겁니다.”
“이기적이라고 욕하고 싶으면 마음껏 해라. 그래도 우린 참가하지 않을 거다.”
그때 남궁일영을 곁에서 보좌하던 노인이 슬쩍 손을 들었다.
“전 참가하겠습니다.”
“조승.”
남궁일영이 나직하게 그의 이름을 부르며 경고했지만 조승은 굽히지 않았다.
“도련님께서 왜 이런 말씀을 하시는지 알고 있습니다. 구일 때문이겠죠.”
“……조승, 나를 화나게 하지 마라.”
“도련님께서 최근 변화를 보인 모습을 보고 구일 녀석이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릅니다. 그거 아십니까? 구일 녀석은 탑에서 나갈 수도 있다는 사실에 기뻐한 게 아닙니다. 그저 도련님께서 움직이시는 것만으로 좋아했었죠.”
“그 입 닥쳐라, 조승.”
회의장 내부가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남궁일영의 분노는 그 누구도 원치 않은 일이었지만 그 누구도 말리지는 못하고 긴장된 기색으로 둘의 대화를 지켜보았다.
“도련님 휘하의 모든 이들이 그렇습니다. 도련님, 기억나십니까? 처음 도련님을 따라 이곳에 왔을 때는 모두들 도련님을 좋아하지 않았죠. 솔직히 말하면 도련님 때문에 좌천당한 거나 마찬가지였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모두들 도련님을 제 몸처럼 생각합니다.”
남궁일영은 삭막한 얼굴로 조승을 노려봤다.
하지만 고작 눈빛만으로 조승의 입을 막을 수는 없었다.
“도련님이 어떤 분이신지 이제는 모두가 알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런 저희들은 너무 안타까운 심정입니다. 중원에서는 도련님의 진면목을 아는 자가 탑을 졸업한 이들을 제외하면 없으니 말이죠.”
“뭘 말하고 싶은 거냐, 조승.”
“움직이셨으면 합니다. 이런 좁은 세상이 아닌 드넓은 중원 무림에서 도련님이 다시 명예를 되찾길 바랍니다.”
나도 남궁일영의 자세한 내막은 몰랐다.
단순히 탑 안에 중원 세력을 관리 감독하기 위해 왔다고 알고 있었는데 생각해 보면 저렇게 강한 인물이 고작 탑 내부 세력 관리로 쓰인다는 건 비효율적이었다.
분명 그의 가문에서 실력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아니면 그가 그저 돌아가고 있지 않을 뿐이든가.
“저도 조승과 같은 생각입니다, 도련님.”
“신, 곽도영. 같은 의견이옵니다!”
남궁일영의 수하들이 하나둘 부복하며 외쳤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남궁일영은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
“멍청한 놈들. 그렇게 사지로 들어가고 싶더냐?”
“사지라뇨! 주군과 함께하는 곳은 그 어느 곳이든 천당이옵니다. 하하하!”
곽도영의 호쾌한 웃음소리에 함께 부복한 수하들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하아. 모두 들었겠지?”
남궁일영이 고개를 돌려 다른 세력들을 향해 말했다.
“그렇게 됐으니 나와 여기 있는 놈들 다 같이 가도록 하지.”
“현명한 선택이십니다.”
미르바가 반가운 얼굴로 고개를 열렬히 끄덕였다.
탑의 최강자가 함께한다는 건 여러모로 좋은 일이겠지.
그렇게 중원 세력의 참가까지 순식간에 정해지자 이내 다시 시선은 내게로 쏠렸다.
왜, 뭐. 뭘 쳐다보는데.
“그럼 이만 회의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가넷이 적절하게 회의를 끝내 버렸다.
아무래도 나랑 같이 가기 싫은 가넷으로서는 내가 참가하지 않는 게 더 좋겠지.
하지만 어쩌나.
나는 가넷에게 용무가 있었다.
“가넷.”
모두가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려 할 때, 나는 가넷에게 다가가 멈춰 세웠다.
가넷은 내 부름을 무시하려 했지만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느꼈는지 결국 멈출 수밖에 없었다.
“왜 그러신가요?”
“잠깐 둘이서 대화 가능합니까?”
“……알겠습니다. 따라오세요.”
비비안이 쫄래쫄래 따라오려 했지만 잠시 양해를 구한 뒤 가넷과 단둘이 조용한 방에 들어왔다.
“무슨 용무이신가요?”
“가넷, 저번에 제가 말해서 알겠지만 전 이 현상의 원인을 어렴풋이 알고 있습니다.”
“초월자 말씀이시죠.”
“예.”
나는 원죄 때문에 참가하지 못한다는 말을 미뤄 두고 가넷에게 말했다.
“저번에 제가 언데드를 다루는 걸 봤지요?”
“언데드?”
“제가 소환한 제 병사들 말입니다.”
“아, 알고 있죠. 숨기고 계신 건가요?”
“그렇습니다.”
언데드가 뭔지 잘 모르는 모양이네.
오히려 좋았다.
“그 병사들과 관련해서 가넷에게 부탁할 게 하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