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 특성으로 최강 네크로맨서 (259)
천재의 급
―우적.
검은 액체가 후드득 떨어졌다.
쓰러진 녀석을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는 검은 인간에게 곧장 검을 휘둘렀다.
‘제왕검형.’
남궁일영이 보여 줬던 검술.
그걸 난 아무렇지도 않게 따라 사용하고 있었다.
위력 면에서는 남궁일영에 비할 바 못 되어도 어느 정도는 따라 하기가 가능했다.
꾸웅!
바닥이 내려앉으며 주위의 공기가 무거워졌다.
그리고 내 검을 따라서 태산과 같은 기운이 내려쳐졌다.
―관찰자. 찾았다. 헤헤헤.
하지만 모습이 울렁거리며 변하기 시작한 검은 인간은 내 검에도 멀쩡한 모습으로 미소 지었다.
“징글징글하네.”
콰앙!
내 말에 이제는 완전히 근육질의 검은 광택을 지닌 인간으로 변한 녀석이 주먹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급하게 막아 냈지만 엄청난 충격이 뒤따르며 몸을 울렸다.
괴물은 밀려난 내게 순식간에 다가오며 여전히 웃는 얼굴로 말했다.
―관찰자. 놀자.
“흐읍.”
난 혼자가 아니었다.
촤르르륵!
순식간에 휘감아지는 형형색색의 실이 괴물의 움직임을 묶었다.
가넷이었다.
그사이에 나는 융합 검술을 준비했다.
―베여라.
언령 마법과 섞은 검.
무결과 무아검까지 뒤섞인 내 검술은 이제 그 형태의 원형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변해 버렸다.
이제는 나만의 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그리고 이제는 남궁일영에게서 창천일검까지 베껴 왔으니 잡탕이라고 볼 수 있었다.
콰직!
괴물의 몸에 검이 닿는 순간 스파크가 튀었다.
그와 함께 어마어마한 양의 마나가 검으로 흘러 들어갔다.
‘무리인가.’
언령 마법은 만능이 아니었다.
다재다능한 대신 효율이 쓰레기라 별것 아닌 한마디에도 엄청난 양의 마나를 잡아먹기도 하고 생각보다 제약이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베리얼에게서 역천의 회로를 뜯어 오고 살렘의 도움을 받아 문신까지 새겼지만…….
콰창!
괴물의 방어를 뚫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아예 효과가 없는 것도 아니어서 흠집이 새겨졌다.
―재밌어?
마치 나와 놀아 주고 있는 것처럼 말한 괴물은 가넷의 실을 전부 끊어 냈다.
그리고 곧바로 내게 다가오려 했지만 방해가 들어왔다.
창천일검(蒼天一劍) 제1식 제왕검형(帝王劍形).
그 진짜 주인이 나타났다.
꾸아아아앙―――――――――――――!
내가 휘둘렀던 제왕검형과는 비교도 안 되는 검압이 괴물을 짓눌렀다.
역시 저번에 나를 상대로 사용했을 때는 봐줬던 모양인데.
“아드리아스 크롬웰.”
검을 휘두르면서도 태연하게 입을 연 남궁일영이 괴물은 무시한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 검을 베낀 건가.”
“따라 해 봤습니다.”
“당당한 이유를 모르겠군. 죽다 살아나서 눈에 뵈는 게 없나.”
가문의 비전이나 마찬가지인 무공을 베껴서 화난 건가?
그렇다고 보기에 그의 표정이 흥미로웠다.
남궁일영은 미소 짓고 있었다.
“화내실 겁니까?”
“화? 고작 화만 낼 것 같나?”
―넌 뭐야.
쿠웅!
대화를 하던 사이 괴물이 튀어나와 남궁일영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남궁일영은 여유롭게 공격을 막아 내며 말을 이었다.
“일단 이번 일이 끝나고 제대로 대화를 나눠 보도록 하지.”
그의 검이 번개처럼 움직였다.
비유가 아닌 실제로 검에서 뇌전이 흐르며 기묘한 움직임을 그렸다.
제왕검형의 묘리와는 아예 뿌리가 다른 검법.
그는 마치 내게 보여 주려는 듯 잘 보이는 각도에서 검을 뿌렸다.
“따라 해 봐라. 못하면 널 가문의 비전을 훔친 대가로 단전을 파괴하겠다.”
저건 또 뭔?
농담이라고 받아들이기에는 그의 움직임이 진지했다.
괴물은 뛰어난 신체 능력을 바탕으로 남궁일영에게 대적했지만 그런 괴물을 마치 어린아이 다루듯 하는 남궁일영은 계속해서 내게 검술을 보여 줬다.
“창천일검 3식 궁뇌일우(穹雷一遇).”
……같은 창천일검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
남궁일영은 초식명을 읊으며 그대로 검을 들었다.
마치 여러 갈래의 벼락이 한곳으로 모여들 듯 순식간에 분열된 검이 일점을 노리고 내리쳐졌다.
꽈르릉!
역시나 괴물은 단단했다.
남궁일영의 검을 맞고도 멀쩡한 녀석은 마치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몸짓을 하며 발작을 일으켰다.
―죽여 버린다!
이렇게 보니 결국 서로가 서로에게 결정적인 피해를 입히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기술의 차이로 남궁일영은 괴물을 아이 다루듯 했지만 그뿐이었다.
“다시 한 번 보여 주겠다.”
남궁일영은 궁뇌일우를 다시 사용했다.
여러 갈래의 번개가 일점으로 모여들며 내려 찍히는 압도적인 검술.
확실히 무술에 관한 건 중원이 로들렌보다 위 줄이었다.
콰르릉――――!
엄청난 소음을 일으키며 괴물이 튕겨 나갔다.
허옇게 김까지 머리 위로 올라오고 있었지만 그 어디에도 생채기 하나 나지 않은 듯했다.
“이제 네 차례다.”
남궁일영을 관찰하면서도 여유가 생긴 동안 기절한 비비안을 옮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되든 안 되든 일단 저 녀석을 처리하는 게 급선무.
“네 마법, 그걸 방금 보여 준 내 검으로 활용해 봐라.”
고작 두 번만 보여 줘 놓고 바라는 게 너무 큰 거 아니냐.
하지만 투덜거릴 때가 아니었다.
상대는 지금 나사가 빠진 듯하지만 그 본체는 초월자.
방심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이렇게였나.’
정말 우습게도 고작 두 번밖에 보지 못한 남궁일영의 검술이 자연스럽게 펼쳐졌다.
그냥 감으로 알 수 있었다.
이게 바로 검술 천재 재능.
말 그대로 난 천재였다.
쿠르릉―.
은은한 뇌명과 함께 내 검에 뇌전이 흘렀다.
이제 보니 공기와의 마찰로 만들어 낸 소음과 스파크였군.
그 원리를 알았으니 이제는 언령 마법의 차례.
역천의 회로가 다시금 뜨겁게 달아올랐다.
―꿰뚫어라.
주문을 걸었다.
사용된 마나는 현재 보유한 마나의 반절.
그리고 남궁일영에게 달려들고 있는 괴물에게 그대로 쏘아져 나갔다.
꽈르르릉―――――――!
남궁일영이 만들어 낸 벼락은 18개.
하지만 난 고작해야 4개였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끄어어어어!
“크윽.”
처음에 반절이나 사용했던 마나로도 부족하다는 경종이 울렸다.
자동적으로 새어 나가는 마나는 이내 내 마나 회복을 앞지르고 모든 마나를 앗아 갔다.
그러나 결과만 보면 싸게 먹혔다.
털썩.
괴물의 정수리에서 허연 김이 올라왔다.
그리고 그 김 사이로 자그마한 구멍이 머리 중앙에 나 있었다.
“흐으.”
분명 싸게 먹힌 건 맞지만 더 이상 몸을 지탱할 수가 없었다.
저번에 비비안을 지켰을 때보다는 덜했지만 의식이 깜빡거리기 시작했다.
“잘했다.”
그런 나를 향해 남궁일영이 아무렇지도 않은, 마치 당연히 내가 해야 할 일을 했다는 표정으로 다가왔다.
“나보다 더한 천재가 있을 줄은 몰랐군.”
그의 목소리가 아련히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 * *
“다행이야.”
오염된 층을 클리어하자마자 다시 기절을 하게 된 터라 썩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내 옆에서 눈물을 보이는 비비안을 보자 그런 생각은 금세 사라졌다.
사실상 그녀 때문이라도 가넷을 뚫고 나올 생각을 했었으니까.
“몸은 괜찮으세요?”
“응. 아드리아스는?”
내 몸 구석구석을 이미 한 번 살펴 놓고 다시 살피려는 비비안의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다행히 언령을 꽤 거칠게 사용한 것치고는 바로 말도 나오고 컨디션도 나쁘지 않았다.
“나머지 분들은 밖에 계신가요?”
“응. 아직 안 끝났어.”
“소란스럽더니 그래서였군요.”
그 괴물을 죽였는데도 아직 끝나지 않은 건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초월자가 나, 정확히는 내 몸 안에 있는 원죄를 노리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아드리아스, 조금만 더 쉬어.”
“괜찮습니다. 마나 고갈이라 쓰러졌던 거지, 몸은 멀쩡해요.”
“그래도…….”
창가에 다가서서 밖을 보자 검은색의 땅은 여전했다.
그리고 이전보다는 현저히 줄어들었지만 아직까지 검은 인간들이 땅에서 올라오고 있는 게 보였다.
‘일이 꼬였어.’
남궁일영을 파티에 포함시키고 그대로 탑을 졸업할 예정이었는데 완전히 틀려 버렸다.
이미 원죄에게 경고를 들었기에 존재는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대놓고 초월자가 나올 줄은 몰랐다.
[“착각했다.”]
‘뭐?’
깨어 있었던 거냐?
갑자기 내게 말을 건 원죄는 그 말 한마디를 끝으로 한동안 말이 없었다.
‘뭘 착각했다는 건데?’
[“……네가 저 가넷이라는 이모탈과 함께 있던 공간, 그건 저 검은 녀석의 짓이 아니었어.”]
의외의 정보에 의아함을 느꼈다.
그럼 누구 짓이라는 거야?
[“이 탑의 주인, 썩은 희망을 속삭이는 자. 그 녀석이 널 도와준 거였어.”]
‘날 도와줘?’
[“정확히는 저 검은 덩어리를 방해했다고 보는 게 맞겠지.”]
‘그렇다는 말은 지금 이 공간 안에 탑의 주인이라는 작자도 있다는 거냐?’
[“……모른다.”]
상황이 더 복잡해지고 있었다.
애초에 초월자는 내 적인가?
지금 저 쫓는 자라는 초월자의 의도도 솔직히 모르겠다.
원죄를 노리는 것 같으면서도 굳이 저렇게 희한한 행동을 하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았고 이 탑의 주인의 생각도 모르겠다.
애초에 초월자가 적이라면 이 세상의 최종 스펙으로도 이길 자신이 없었다.
“미치겠네.”
일단 밖으로 나가 봐야겠다.
비비안을 대동하고 밖으로 나오자 저번보다는 여유로운 분위기가 느껴졌다.
마침 디에네가 한쪽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가 나를 발견하고는 다가왔다.
“몸은?”
“괜찮습니다.”
“가넷한테 대충 들었어. 강제로 이상한 층을 등반했다면서?”
“예.”
가넷의 이야기가 나오자 문득 걱정스러워졌다.
멘털은 괜찮으려나. 나오자마자 정신없이 싸운 바람에 가넷이 본인의 손으로 뮤줄라를 처리한 걸 잊고 있었다.
“가넷은 어디 있죠?”
“쉬지도 않고 싸우고 있어. 이모탈들은 지치지 않으니까 우리 대신 열심히 싸우더라고.”
다행히 안에서 있었던 일은 가넷에게도 그다지 좋았던 일은 아니라 이야기를 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덕분에 내가 언데드를 사용한 것도 조용히 묻혔네.
일단은 가넷을 찾아갈까 싶던 찰나에 디에네가 내게 뜻밖의 소식을 전해 왔다.
“남궁일영 님이 너 깨어나면 바로 자기를 찾아오라고 하셨어.”
“남궁일영이요? 알겠습니다.”
가넷이 걱정되기는 하지만 오히려 내가 찾아감으로써 안 좋은 기억을 떠올릴 수도 있었다.
일단은 남궁일영에게 먼저 가기로 하고 곧바로 그를 찾아갔다.
디에네에게 위치를 듣고 간 곳에는 남궁일영이 나른하게 누워 있었다.
남들은 전쟁 통인데 혼자서 정자에 누워 있는 모습을 보자 여기만 딴 세상 같았다.
“왔나.”
그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말했다.
“부르셨다고 들었습니다.”
“이번 일이 끝나면 나는 바로 탑을 나갈 거다.”
갑작스러운 그의 말에 일단 듣기만 했다.
“원랜 늙어 죽을 때까지 이곳에 있을 예정이었지. 하지만 이번 일로 생각이 바뀌었다.”
“이번 일이라면 저 검은 괴물들 말씀이십니까?”
“네가 나와 마주친 순간부터 지금까지 전부 다.”
나 때문에?
내 의문을 느꼈는지 남궁일영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네가 내 변화의 시발점이 되었다는 건 확실하다. 가장 큰 이유는 내 친우의 죽음이지만 말이야.”
“친우분의 일은 죄송합니다.”
“그래. 널 설득하러 가다가 죽었으니 결국 그것도 네가 원인이지.”
갑자기 내 탓을 하지만 뭐라 할 수는 없었다.
애초에 저 초월자를 불러들인 게 나인 걸 나는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잘잘못을 따지면 내가 주된 원인이겠지. 애초에 내가 일찍 탑을 나갔으면 될 일이니까. 그러니 네 탓은 아니다.”
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검은 대지를 바라봤다.
“떠나기 전에 내 친우와 너에게 사죄의 뜻을 밝히고 싶다.”
“사죄…… 말씀이십니까?”
“그래. 내 친우가 널 찾아갔던 건 나와 탑의 등반을 함께 해 주길 원해서였지. 네가 내게 직접 제안을 하면 받아들이겠다는 조건이었으니까. 하지만 난 등반을 포기하고 기회가 되면 바로 나갈 생각이다. 그러니 내 친우는 개죽음이었던 거지.”
결론적인 이야기였지만 나는 묵묵히 그의 말을 들었다.
“너와도 탑을 등반하지 못하니 약속을 못 지킨 셈이지. 그러니 사죄의 의미로 너에게 내 검을 보여 주려고 한다.”
남궁일영이 정자에서 내려왔다.
그리고는 칼집을 움켜쥐더니 검은 대지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 사달이 끝날 때까지 부디 최선을 다해 우리 남궁세가의 검을 훔쳐 보거라.”
남궁일영이 다가서자 괴물들을 막던 사람들이 물러났다.
그리고 곧이어 그가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기본 검술로 보이는 검부터 그의 비전이라고 할 수 있는 창천일검까지.
“보아라. 이게 바로 창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