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 특성으로 최강 네크로맨서 (258)
등장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별다른 변화도 없었다.
한정된 공간에서만 지내야 하는 탑 안의 사람들은 점점 지쳐 갔다.
“탈출도 안 돼. 우린 여기서 모두 죽을 거야.”
“어떻게 좀 해 봐! 뭐라도 좀 해 보라고!”
로들렌 세력의 크라이슨 솔은 건물 안에서 사람들의 아우성을 바라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미쳤군.”
“이대로 가다간 분위기가 극단적으로 치달을 겁니다. 뭔가 강구해야…….”
케이레스에서 온 조단이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런 조단을 바라보며 크라이슨은 비꼬듯 내뱉었다.
“흥. 황자라는 위치 외에는 별 능력도 없는 그대가 무슨 수를 강구하겠다는 건가.”
“지금 싸우자는 거요?”
“사실이 그런 걸 어쩌라는 거냐?”
크라이슨의 공격적인 말투에 안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모든 인물의 안색이 굳었다.
불안한 건 밖에 있는 사람들뿐만이 아니었다.
수뇌부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던지라 말은 하지 않았지만 모두들 불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크라이슨, 조금 자제하시죠.”
“뭘?”
“당신이 그렇게 공격적으로 말하면 이 상황이 더 악화될 뿐입니다.”
룬 세력의 미르바가 나직하게 경고했다.
그러나 크라이슨은 코웃음을 치며 무시했다.
“아주 기고만장하군. 왜? 네 능력으로 이 영역을 구축하니 뭐라도 된 것 같아?”
“그만하세요.”
미르바가 차분하게 말했다.
“하! 이모탈들은 좋겠어? 우리랑 달리 죽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을 테니까. 그러니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있을 수 있겠지.”
“오히려 반대입니다. 저희는 여러분보다 오래 살 수 있기 때문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더욱 크죠. 그리고 그렇게 저희를 깎아내리는 것은 이롭지 못한 일입니다. 지금은 이 상황에 대한 의논을 먼저…….”
“하아.”
남궁일영의 한숨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이곳에 있는 이들 중 유일하게 검은 물체에 상처를 입혔던 남자.
“시끄럽군.”
그의 단 한마디에 좌중이 조용해졌다.
크라이슨도 차마 남궁일영에게만큼은 아무 말도 못 한 채 고개를 돌렸다.
“미리 말하지만 난동을 부리면 무력으로 제압하겠다.”
남궁일영이 선언하듯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번 일만 끝나면 탑에서 나가야겠군.”
“탑에서 나간다고?”
“왜? 좋은가?”
놀란 듯 되묻는 크라이슨을 향해 비웃듯 말한 남궁일영은 그대로 방을 나갔다.
방에 남은 이들은 남궁일영의 퇴장을 멍하니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일단 중원 세력이 치안 유지를 맡기로 했으니 이 회의는 끝내도록 하지.”
“지금 가장 문제인 곳이 너희 로들렌하고 케이레스인 거 알지? 잘 좀 관리해라, 엉?”
곰 수인, 칸이 크라이슨과 조단을 비웃으며 나갔다.
조단은 안색을 굳혔고 크라이슨은 그 도발을 향해 노발대발하며 따라 나갔다.
“뭐, 이 짐승 놈아? 이리 와서 내 면전에 대고 똑바로 얘기해!”
“하! 실력도 없는 놈이 꼴에 자존심만 강한 주제에.”
밖에서 이어지는 소란을 들으며 이모탈들과 조단은 난색을 표했다.
“스트레스가 심한 모양이야.”
“능력 부족이죠, 뭐.”
“으아아악!”
“꺄아악!”
그때 그동안 이어진 소란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비명이 울려 퍼졌다.
방 안에 남아 있던 이들은 드디어 크라이슨이 일을 저질렀구나 생각하며 다급히 밖으로 나왔지만 의외로 크라이슨은 아무 일도 저지르지 않은 채 비명이 들려온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뭐야?”
의아함이 가득 담긴 음성으로 크라이슨이 먼저 앞장서서 비명이 들린 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소리가 들려온 곳은 건물의 밖.
문을 열며 바깥의 시야를 확인한 크라이슨은 이내 황급히 문을 닫았다.
“뭐야! 뭔데?”
“이, 이상한 것들이…….”
“나와 봐!”
칸이 크라이슨을 밀어내며 다시 문을 열었다.
그렇게 드러난 광경은 터무니없었다.
“도, 도망쳐! 공격이 통하지 않아!”
“괴물들이다!”
구축된 영역의 밖에서 검은 형체의 인간들이 질퍽거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검은 인간들은 검은 땅에서 실시간으로 생겨나고 있었다.
“이런 미친…….”
칸이 중얼거리며 달려 나갔다.
그런 칸의 뒤를 산양의 뿔이 달린 차강제르가 뒤따랐다.
서겅!
칸의 수극이 강렬한 파쇄음을 만들어 내며 검은 인간에게 틀어박혔다.
그러나 검은 인간은 질척거리는 소리만 내며 멈추지 않고 움직였다.
후웅―.
퍼어어억!
그때 차강제르가 달려와 회전을 이용한 발 차기로 잡혀 있던 검은 인간을 후려쳤다.
공기가 터져 나가며 검은 인간의 배에 구멍이 뚫렸다.
“기분이 더러운데.”
검은 파편을 뒤집어쓴 칸이 중얼거렸다.
그러나 차강제르는 신경도 쓰지 않고 도도도 달려가 다른 상대를 걷어차고 있었다.
“어이! 아무나 가서 일영이나 데려와! 요것들은 그래도 좀 상대할 만하네!”
그동안 근질거렸던 칸이 신이 난 듯 소리쳤다.
그리고는 차강제르와 함께 밀려오는 검은 인간들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즐길 때가 아닌 것 같은데…….”
멜라토가 자신의 철사 같은 머리카락을 빳빳하게 세우며 말했다.
멜라토의 말대로 적의 수는 영역을 전부 에워쌀 정도로 많았고, 무엇보다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있었다.
신이 나서 달려 나간 것치고는 칸도 간신히 한 마리씩 처리하는 걸 보며 결국 멜라토는 발길을 돌렸다.
“내가 남궁일영을 데려오지.”
“도망치는 거냐!”
크라이슨이 두 눈을 부라리며 말하자 멜라토의 머리카락이 상대를 찌를 듯 세워졌다.
“흥! 마음대로 생각해라.”
꾸어어억!
퍼엉!
그들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도 상황이 계속해서 급변하고 있었다.
“어어?”
검은 인간들을 상대하던 칸은 점차 강해지기 시작하는 적들에게 둘러싸여 당황스러워했다.
“이거 뭐야? 얘네 왜 이래?”
“빨리 빠져나와라!”
멜라토가 소리쳤다.
그사이 크라이슨이 검을 뽑아 들고 직접 칸과 차강제르가 있는 곳으로 달리고 있었다.
“다른 곳들도 난리가 났겠어!”
크라이슨의 황토빛 오러가 검은 인간을 갈랐다.
하지만 검은 인간의 몸은 다시 복구되며 반격을 가했다.
빠르지는 않지만 힘이 실린 그 반격을 크라이슨이 간신히 빗겨 내며 소리쳤다.
“멜라토! 빨리 남궁일영을 데려오든가, 돕든가 결정해라!”
멜라토는 상황을 살펴보고 고민에 휩싸였다.
아무리 보아도 남궁일영을 데려올 때쯤이면 모두가 당해 있을 것 같았다.
“하는 수 없군.”
결국 알리러 가는 것을 포기하고 기술을 준비했다.
멜라토의 감정 기술은 오로지 공격.
서겅!
거대한 가위가 허공을 유영하며 검은 인간들을 잘라 나가기 시작했다.
공격이 잘 통하는가 싶었지만 멜라토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감정을 너무 많이 소모해.”
소모하는 감정에 비례하여 기술의 위력은 올라간다.
검은 인간들을 쉽게 베어 넘기기 위해서는 상당한 감정을 요구했기에 멜라토는 결국 소리쳤다.
“길을 텄으니 어서 빠져나와라!”
“미르바는 대체 어디 간 거야!”
“나도 모르니 일단은 빨리 나와!”
멜라토의 도움으로 빠져나온 칸과 차강제르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위기에서 빠져나온 듯싶었지만 검은 인간들은 꾸물거리며 주위를 포위한 상황이었다.
“다른 곳도 다 비슷한가?”
“큰일이군.”
그때 한쪽에서 거대한 폭음이 터져 나왔다.
꽈아앙!
“다른 곳도 역시 난리가 난 모양이야.”
“죽겠다, 죽겠다 했더니 정말 다 죽게 생겼군.”
“우선 소리가 난 방향으로 가 보지. 남궁일영이 그쪽에 있을 수도 있으니.”
일행들은 서둘러 몸을 움직였다.
시시각각 조여 오는 검은 인간들은 멜라토가 무리한 기술의 운용으로 간신히 뚫어 냈다.
콰아앙!
“1차 저지선 물러나세요!”
소음이 들리는 곳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리고 그들을 지휘하는 건 디에네였다.
“디에네 알븐!”
“아! 오셨군요. 크라이슨은 저기 2차 저지선을 도와주세요. 그리고 수인 두 분은 저쪽에 있는 케찰 세력 저지선을 맡아 주시고요. 멜라토? 많이 힘들어 보이시네요. 일단 저기 미르바랑 다프란이 있는 곳으로 가 주세요.”
순식간에 이루어진 명령에 일행들은 자연스레 몸을 움직였다.
명령을 받는다는 거부감도 없었고 그저 당연하다는 듯이 그녀의 말을 듣게 되었다.
“이런.”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달은 크라이슨이 뒤를 돌아보았으나 디에네는 더블 캐스팅으로 마법을 사용하며 명령까지 내리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그 모습을 보자 도저히 지휘권을 빼앗을 자신이 없어진 크라이슨은 결국 저지선을 도우러 갔다.
“비비안!”
“응.”
디에네의 외침에 단숨에 그녀의 의도를 눈치챈 비비안이 전장을 누볐다.
그녀의 날카로운 칼날은 검은 인간들에게 충분히 통하고도 남았다.
깡!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돌발 상황이 발생했다.
처음으로 질척이는 느낌이 아닌 마치 강철을 때린 듯한 충격을 받은 비비안이 서둘러 물러났다. 곧이어 그녀가 사라진 자리 위로 검은 인간의 주먹이 내리꽂혔다.
쿵!
이전과는 다른 내구력과 속도.
유독 강한 개체는 비비안의 앞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퍼억!
“크억.”
갑자기 나타난 강력한 검은 인간들로 인해 저지선이 붕괴되기 시작했다.
그 수는 고작 셋 정도에 불과했지만 그 어떤 공격도 통하지 않아 막아 낼 수가 없었다.
“비비안! 일단 물러나!”
디에네가 냉철하게 판단하며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비비안은 주위를 둘러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내가 물러나면 여긴 다 죽어.”
“우선은 물러나야 돼!”
“미안.”
비비안은 마나를 최대한 활성화시켰다.
거의 눈에 보일 듯 마나의 기운이 그녀의 주위로 아른거렸다.
“난 의미 있는 행동을 해야 해.”
아드리아스를 위해서…….
흐릿하게 이어진 뒷말이 폭발적인 그녀의 움직임에 의해 흩어졌다.
이내 굉음이 터지며 검은 인간과 비비안의 전투가 시작되었다.
‘한 걸음 반, 왼쪽으로 45도 틀고 다시 15도…….’
그녀의 머릿속에서 그동안 남궁일영을 보며 배운 발동작이 구현되고 있었다.
그러자 압도적인 민첩성으로 검은 인간의 공격을 모두 회피해 내며 카운터를 날리게 되었다.
깡! 까가가강!
문제라면 상대에게도 공격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
비비안은 인내했다.
두드리다 보면 약점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계속해서 공격을 이어 나갔다.
―우웨지.
순간 말을 한 검은 인간으로 인해 비비안의 집중이 흔들렸다.
말을 한다고?
―강의 눈썰미를 먹다가 강박이 춤을 뱉어 유일해.
이해할 수 없는 단어들의 나열.
애써 무시하며 검을 계속 휘두르는 순간.
―관찰자가! 관찰자가!
갑자기 다른 곳에 있던 나머지 두 명의 개체들도 비비안을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비비안은 당황했지만 내색하지 않으며 오히려 숨을 골랐다.
유독 강한 세 명의 인간들을 모두 불러들였으니 다른 곳은 그만큼 여유가 생길 거다.
‘내가 사람들을 구하는 거야.’
비비안은 주먹을 움켜쥐고 움직임에 속도를 가했다.
쿵! 쿵! 쿵!
“비비안!”
디에네의 마법이 정밀하게 보조를 해 왔다.
덕분에 간신히 적들의 공격을 넘겨 낸 비비안은 마치 귀신과도 같은 움직임으로 검을 휘둘렀다.
콰가가가가가각―――――――――!
초고속의 베기가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빠르게 적들의 몸을 훑었다.
불똥이 튀며 모두의 이목이 단숨에 비비안에게로 끌렸다.
―포근하고 뛰어 저녁 보면 등장하지 않아 대담한 탄력!
비명과도 같이 내질러지는 의미 모를 단어의 조합과 함께 드디어 적 하나의 몸에 상처가 생겼다.
그 사실을 눈치챈 비비안의 눈에서 귀기 어린 빛이 나오며 집요하게 그 상처만을 노렸다.
까드드드득!
갈수록 발전해 나가는 그녀의 움직임을 이제 더 이상 검은 인간들은 따라잡지 못했다.
디에네의 보조조차 필요 없을 정도로 귀신과도 같은 움직임을 선보인 비비안은 결국 한 놈을 그대로 갈라 냈다.
콰지직!
―끄어어.
단말마의 비명과도 같은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상대가 쓰러졌다.
그와 동시에 남은 둘은 갑자기 멈춰 서서 비비안을 가만히 바라봤다.
“하아, 하아.”
해냈다는 고양감이 비비안의 가슴 속에 피어났다.
그녀는 적들이 멈춘 틈에 잠시 숨을 고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저지선은 다시 복구되었고 여유가 생겼는지 몇몇 이들은 비비안을 향해 환호를 내지르고 있었다.
“해냈어.”
―쿰척.
불길한 소음.
비비안이 고개를 돌리자 두 명의 검은 인간이 쓰러진 개체를 뜯어 먹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 기괴한 나머지 비비안은 순간 숨을 멈췄다.
―아, 아. 말이 돼. 말이 돼? 말이 돼!
―아! 나는 생각났어! 나는 생각! 하하!
하나를 모두 먹어 치운 둘은 이내 비비안을 보며 소름 끼치게 웃었다.
―이제 너도 먹어! 우리, 너도 먹어!
콰앙!
빨라졌다!
느낀 순간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퍼어어엉!
상대의 주먹을 맞고 날아간 비비안은 금세 다가오는 기척에 고통을 참으며 몸을 피했다.
꽈아아앙!
흙먼지가 일어나며 바닥이 마치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흔들렸다.
오러를 이용해 몸을 보호한 덕에 치명상까지 입지는 않았지만 갑자기 강해진 상대로 인해 비비안의 안색이 차갑게 식었다.
‘이길 수 없어.’
하나라면 어찌저찌 버틸 자신은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녀라도 둘은 무리였다.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었기에 이를 악물고 일어났다.
꽈강!
퍼어엉!
간신히 막아 낸 공격의 뒤로 다른 개체의 공격이 빈틈을 노리고 다가왔다.
결국 다시 한 번 공격을 허용한 비비안은 피를 흘리며 날아갔다.
“비비안!”
디에네가 급하게 그녀를 보조하기 위해 마법을 사용했다.
“안 돼!”
그러나 비비안이 그런 디에네를 말렸다.
“주의는 내가 끌고 있어. 마법을 사용하면 디에네가 위험해.”
“무슨 헛소리야! 네가 죽어 가고 있는데…….”
“난 너라도 지켜야 해. 그게 약속이야.”
비비안의 귀기는 꺼지지 않았다.
마치 마지막 불꽃을 태우듯 강렬한 마나의 차징을 일으킨 비비안은 디에네에게 다시 한 번 경고했다.
“마법은 다른 곳에 사용해. 나를 도와주면 놈들이 단숨에 너를 죽여 버릴 거야.”
“비비안.”
공간 이동 마법이 있다고 말하고 싶지만 디에네도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적들은 비비안의 움직임조차 우습게 따라가는 이들.
공간 마법의 캐스팅보다 그들의 반응 속도와 공격이 훨씬 빠를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날 믿어 줘. 난 아드리아스의 목숨을 짊어졌어. 여기서 죽지 않아.”
파앙!
적들은 비비안의 말을 기다려 주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움직임을 이미 예측하고 있던 비비안은 검을 휘둘렀다.
카가가각――――――!
검과 적들의 몸 사이에서 불꽃이 튀었다.
더욱 단단해진 듯한 느낌에 결국 비비안도 자조 섞인 웃음이 흘러나왔다.
‘미안. 아드리아스.’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이제 최대한 시간을 끄는 것밖에 없었다.
퍼억!
“크흡.”
내장이 파열되는 듯한 고통과 함께 비비안이 비틀거렸다.
하지만 쓰러지지 않고 계속해서 발을 놀렸다.
최대한 버티고 버텨서 다른 이들이라도 살려야…….
그러나 이미 그녀의 발은 한없이 무거워진 상태였다.
퍼억! 퍼엉!
비비안이 날아가며 바닥에 나뒹굴었다.
그럼에도 부들부들 떨며 몸을 일으키려 노력했다.
결국 참지 못한 디에네가 마법을 사용하려고 캐스팅을 준비하는 순간.
“아!”
누군가를 발견하고 그대로 멈췄다.
우우우웅―――――.
강렬한 마나의 기운.
비비안은 이 강렬한 기운을 언젠가 느꼈던 적이 있었다.
‘남궁일영?’
홍월루를 무너트렸던 마지막 일격.
그것과 비슷한 기세가 그녀의 등 뒤에서 느껴졌다.
남궁일영이 왔다는 생각에 비비안은 조금 안도할 수 있었다.
그는 두말할 것 없는 강자. 적어도 탑 안에 있는 그 누구보다 강한 존재였기에 믿을 수 있었다.
꽈앙!
검이 휘둘러지고 검은 인간 하나가 그대로 갈라졌다.
아니, 짓뭉개졌다.
마치 거대한 압력에 당한 듯한 모습.
“아직, 잡아먹기 전에 빨리…….”
비비안은 조금 전에 일어났던 일을 떠올리며 말을 해 주기 위해 시선을 돌리다 그대로 멈춰 버렸다.
“아?”
잘못 본 건가?
아니면 내가 죽어서 저승에 왔나?
비비안의 두 눈에 담긴 인물은 남궁일영이 아니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익숙한 존댓말.
그리고 이어지는 부드러운 손길.
“비비안한테는 항상 신세만 지는군요. 이제부터는 제가 해결하겠습니다.”
가볍게 볼을 감싸는 손이 믿기지가 않았다.
“아드리아스?”
죽은 줄 알았던 그가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