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 특성으로 최강 네크로맨서-257화 (257/415)

진화 특성으로 최강 네크로맨서 (257)

아드리아스의 빈자리

“비켜.”

담담하지만 싸늘한 음성이 날카롭게 날아들었다.

그러나 상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비비안…….”

“비켜.”

비비안은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남궁일영을 향해 살기를 드러냈다.

그 모습을 초조하게 지켜보던 디에네는 애써 그런 비비안을 말리려 했다.

“비비안, 아드리아스는 분명 무사할 거야. 지금은 일단 진정하고…….”

“나 때문에 아드리아스가 끌려갔어.”

비비안은 굽힐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내가 지키기로 했는데, 내가 지켜졌어. 난…….”

일렁이는 살기가 마나와 섞여 점차 유형화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만 보던 남궁일영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일촉즉발의 상황.

의외로 먼저 움직인 건 남궁일영이었다.

후웅!

마치 몸이 두 개로 늘어난 듯 잔상을 남기며 순식간에 비비안의 앞으로 나타난 남궁일영이 검을 휘둘렀다.

궁신탄영을 이용한 이형환위.

비비안은 갑자기 나타난 남궁일영에게 당황하지 않고 차분히 맞대응했다.

스캉!

“조금 귀찮지만 녀석이 나올 때까지 내가 상대하고 있어 주마.”

“죽이고 지나갈 거야.”

“할 수 있다면 해 보거라.”

쨍―――――――!

강렬한 기세와 함께 순식간에 주변이 초토화되었다.

디에네는 자신의 주위로 보호 마법을 사용하며 곤란함을 감추지 못했다.

“어쩌다가 이렇게…….”

1층은 전부 검게 물든 상태였다.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시작된 이상 현상.

비비안의 말에 따르면 정체불명의 인물이 갑자기 나타나 사람을 죽이고 검은 액체를 쏟아 냈다고 하는데 아직까지 원인을 규명하지 못하고 있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

1층의 전체를 뒤덮은 검은 물질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거렸다.

닿는 순간 사람을 집어삼키고 이내 백치로 만드는 그 검은 것은 남궁일영의 검에도 피해를 거의 입지 않았으며 디에네의 마법에도 끄떡없었다.

지금 그들이 버틸 수 있는 건 수인들과 이모탈 덕분이었다.

“결국 시작됐군.”

누군가가 디에네의 옆으로 다가왔다.

철사를 꼬아 만든 듯한 머리카락이 인상적인 이모탈, 멜라토였다.

“말릴 생각은 없나?”

“말려 봤지만 소용없었어요. 그리고 말린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었고요.”

“우리 덕분에 멀쩡한 녀석들이 속도 편하군.”

디에네는 멜라토의 말이 조금 거슬렸지만 입을 다물었다.

그의 말이 틀리지는 않았다. 실제로 이곳은 지금 디에네의 마법, 이모탈의 기술, 그리고 수인족 주술사의 힘으로 영역을 만들어 지키고 있었다.

콰르릉!

전투는 점차 격해지고 있었다.

슬슬 디에네도 중간에 끼어들까 각을 보고 있을 때, 드디어 비비안이 튕겨져 나왔다.

“큭.”

분한 듯 이를 깨문 비비안의 모습이 처절했다.

하지만 그런 그녀를 상대하는 남궁일영은 전혀 전투를 치렀다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멀쩡한 모습이었다.

“안타깝지만 그 실력으로 나를 죽이기엔 가망이 없군.”

“비켜.”

“아름답기만 하지 멍청하기 그지없군. 저 검은 것에 먹히면 아드리아스를 만날 수 있다는 보장이라도 있느냐?”

“……비켜.”

비비안이 다시 달려들었다.

그렇게 싸움은 3일이 지속되었다.

워낙 실력의 차이가 극명했기에 걱정했던 사람들도 점차 관심을 잃었고 그에 비례하여 비비안의 안색도 점점 수척해졌다.

“비비안! 이제 그만해. 그러다 정말 죽어!”

매일 먹을 걸 가져오며 그녀를 챙기려던 디에네가 결국 비비안을 말렸다.

하지만 며칠 동안 아무것도 입에 대지 않고 검만 휘두른 탓에 수척해진 비비안은 고개를 저었다.

“안, 돼. 내가, 아드리아스를, 지키기로 했어.”

“아드리아스가 왜 너만 이렇게 살렸겠어? 이런다고 걔가 좋아할 것 같아?”

“내가…… 내가 아드리아스를 지키기로 했는데…….”

결국 비비안이 무너져 내렸다.

주저앉아 버리는 비비안을 보며 남궁일영이 말없이 검을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기다리고 있던 수하가 가져다준 술병을 들어 마시며 말했다.

“그 괴물이 처음에 죽인 녀석은 나와 한평생을 같이 해 온 동료였다. 내가 걸음마를 할 때부터 내 곁에 있어 준 친우지.”

씁쓸한 미소가 그의 입가에 걸렸다.

“너의 슬픔을 희석시키려는 건 아니다. 다만 네 친구의 말대로 개죽음은 피해 봐야 하지 않겠나? 우리를 위해 희생한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의미 있게 살아야 하지.”

“아드리아스는 죽지 않았어.”

“그래. 생사는 나도 모른다. 그러니 네가 믿는 그를 믿어라. 언제 이 현상이 끝날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믿고 견디는 수밖에 없겠지.”

비비안의 두 눈가에 물방울이 맺혔다.

이내 흘러내리는 눈물을 보며 디에네가 비비안을 안아 주었다.

“괜찮아. 아드리아스는 살아 있을 거야.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흐흑…… 나 때문에, 나 때문에 아드리아스가…… 지켜 준다고 했는데…….”

“왜 울어! 울지 마. 살아 있을 거라니까?”

감정은 금방 전염이 되었다.

비비안의 울음에 결국 디에네의 눈시울도 붉어지기 시작했다.

“그 멍청이가 죽기는 왜 죽어! 분명 아무렇지 않게 나타나서 잘난 척할 거라고.”

“으응. 그럴 거야. 아드리아스는, 그럴 거야.”

두 여인의 울음바다를 보며 남궁일영은 조용히 자리를 옮겼다.

그는 걸어가면서 들고 있던 술병을 거꾸로 들어 땅에 쏟아붓고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구열, 이런 못난 도련님을 모시느라 고생했다.”

하필이면 고향도 아닌 타지에서…….

남궁일영은 탑에 들어오고 처음으로 후회라는 감정을 느꼈다.

자신이 조금만 더 부지런했어도, 애초에 빨리 탑에서 나갔으면 구열도 살아 있었을 텐데.

“화경의 경지로도 인간의 감정은 버리지 못하는구나.”

주변에는 초절정이니 뭐니 하며 대충 얼버무렸지만 그의 실력은 이미 그 이상이었다.

지금 당장 무림에 돌아가면 천하제일인도 노려 볼 만한 경지.

하지만 지금의 그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저 조용히 친우의 죽음에 애도를 표하는 것, 그것만이 전부였다.

* * *

오랜만에 모두 모인 로들렌의 공작들은 표정을 굳힌 채 앉아 있었다.

이번 소집의 주최자이기도 한 헥토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바하트 알븐, 그래서 이 일이 마법과는 상관이 없다는 말이오?”

“이미 연락을 통해 전달했지만 우리가 감지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어. 곧 포트리온에서도 연락이 올 거니까 그때까지는 기다려라.”

“대륙 제일의 마탑이라는 명성이 하찮군.”

“뭐라 했지? 죽고 싶다고?”

감정이 순식간에 격해진 둘 사이를 싱클레어가 무겁게 가로막았다.

“그만. 지금은 우리들끼리 싸울 때가 아니다. 이렇게 모인 것도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서였지 않은가.”

“맞는 말인데 저걸 논의한다고 해결할 수가 있습니까?”

미누스가 창밖을 보며 말했다.

창밖은 캄캄했다. 특이한 것은 달빛조차 비치지 않을 정도로 어둡다는 것.

일식이 끝나지를 않고 있었다.

“뭐라도 해 봐야지. 일단 치안을 강화하고 수도까지 통하는 길에 마나등을 설치한다든가…….”

“그 마나등은 누구 돈으로 설치한답니까. 치안 강화는 각자 뭐 잘들 하고 있겠지만 여기저기 난리도 아니더군요. 특히 광신도 놈들이 그리 날뛴다고들 하던데?”

“미누스, 공작이면 처신을 바로 해라. 항상 그런 태도이니 말이 나오는 것 아닌가.”

헥토르의 지적에 미누스가 비웃었다.

하지만 굳이 대답은 하지 않고 묘하게 입꼬리만 올린 모습이었다.

“하아, 머리가 아프군. 그새를 참지 못하고 싸운단 말인가?”

결국 싱클레어가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참 미누스를 노려보던 헥토르가 그런 싱클레어에게 소리쳤다.

“어디 가시오? 이제 막 도착해 놓고.”

“말한 대로 치안을 좀 신경 쓰러 가겠소. 그 편이 여기 있는 것보단 건설적이겠군.”

“아니,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의논이라도 하고 가시오.”

그렇게 정리가 되지 않는 회의장 안에서 바하트가 문득 품을 뒤졌다.

그리고 꺼낸 아티팩트에 신호가 온 것을 보고 마나를 연결했다.

―아, 아. 바하트 마탑주님이십니까?

“그래.”

상대는 포트리온의 디바우러였다.

순식간에 나머지 공작들의 시선이 바하트에게 쏠렸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사실 저희도 이번 일에 대한 현상을 규명하는 게 쉽지는 않아서 시간이 좀 걸렸네요. 아! 로들렌 마탑의 도움도 잘 받았습니다. 덕분에 그나마 빨리 끝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결과는?”

―마나 현상인 것으로 규명되었습니다. 한마디로 자연적인 현상은 아니라는 소리죠.

“지랄 났군.”

바하트가 인상을 찌푸렸다.

자연적인 현상이어도 평범한 일은 아니었지만 마나 현상이라는 것은 상당히 복잡해질 수밖에 없었다.

마나 현상은 결국 누군가가 작위적으로 행한 것이냐, 아니면 그저 자연 발생한 것이냐로 나뉘는데 이를 파악하는 데도 또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맥스웰은 뭐라 하지? 설마 아직도 돌아오지 않은 건가?”

―예, 그렇습니다.

“혹시 맥스웰이 이 일을 벌인 건 아니겠지?”

―설마요. 아무리 맥스웰 님이어도 개인의 힘으로 이만한 현상을 만들어 내는 건 불가능합니다. 잠시 동안이라면 몰라도 말이죠.

태양을 가리는 일식을 혼자만의 힘으로, 그것도 무려 3일이나 지속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바하트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혹여나 맥스웰이 다른 마법사들을 이끌고 이런 터무니없는 짓을 벌였나 의심을 해 보았다.

―일단 조사와 연구는 계속 진행하겠습니다. 보고는 매일 올리도록 하지요.

“알았다.”

이내 연락이 끊기고 세 공작이 바하트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뭘 그렇게 봐! 다 같이 들어 놓고.”

“그러니까 이게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라 마나로 인해 생긴 거라고?”

“그래.”

바하트는 한숨을 내쉬며 태양을 올려다보았다.

검게 가려진 태양은 빛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

“마나 이상 현상이거나 누군가가 만들어 낸 마법적인 힘.”

“미쳤네. 둘 다 장난 아닌 일인데.”

바하트의 말을 들은 미누스가 표정에 짜증을 드러냈다.

사업에 차질이 생길 게 눈에 훤히 보였기에 여러모로 곤란함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은 원인이 나왔으니 대처는 각자 알아서 잘합시다.”

“미누스, 다른 사안들에 대한 논의도 이루어져야 한다. 자리에 앉아라.”

“죄송하지만 제가 급한 일이 있어서 말입니다. 여기도 지나가는 길에 우연히 들린 거거든요. 나중에 논의를 끝내고 제게 전언을 남겨 주시겠습니까? 하라는 건 웬만해서 거절하지 않고 다 하겠습니다.”

“허어. 이보다 더 급한 일이 있다고?”

“황궁에서 불렀습니다.”

“황궁?”

헥토르가 그게 무슨 소리냐는 표정으로 미누스를 바라봤다.

“모르셨습니까? 재상이라면 당연히 알 줄 알았는데. 아무튼 먼저 일어나 보겠습니다.”

미누스는 대답도 듣지 않고 회의장에서 나갔다.

바하트와 싱클레어는 혀를 차거나 다른 생각에 잠겨 있었지만 헥토르는 믿을 수가 없다는 표정으로 미누스가 나간 자리를 노려보았다.

“황궁에서 미누스를?”

“부를 수도 있는 거지 뭘 그렇게 구시렁거려. 어서 회의나 진행하고 해산하자고.”

바하트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헥토르는 그렇지 못했다.

황궁의 대소사는 대부분 재상인 그를 지나쳐 가기에 그가 알지 못하는 일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하물며 공작인 미누스를 황궁에서 부를 정도의 사안이라면 당연히 자신이 알고 있었어야 했다.

‘거짓말? 아니면 정말로 내가 모르는…….’

만약 미누스가 정말로 자신도 모르게 황궁에서 불린 거라면 이는 통제를 벗어났다는 의미.

황궁에서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