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 특성으로 최강 네크로맨서 (256)
비극
“가넷?”
뮤줄라의 목소리에 가넷이 뒤를 돌아보았다.
의문에 가득 찬 그 눈빛을 마주한 가넷은 여전히 믿기지 않는 그 광경에 잠시 넋을 잃었다.
뮤줄라가…….
“방금 무슨 일이야?”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기는! 기술을 사용해 놓고…….”
“뮤줄라, 괜찮아. 괜찮으니까. 그니까 조금만 더 이대로 있게 해 줘.”
“그게 대체 무슨…….”
당황한 표정의 뮤줄라를 가넷이 아련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뮤줄라.
유일한 반려.
감정이 모두 소모될 때까지 영원을 살아가는 이모탈들은 평생의 반려를 맞이하는 관습이 있었다. 인간의 세월로 따지면 몇백 년을 함께 하게 되는 존재.
“가넷? 왜 슬픈 표정을 짓고 있어? 혹시 저 녀석이 너한테 뭔 짓을 한 거야?”
“아니, 아니야. 저분은 아무 잘못이 없어.”
탑에 들어온 이유.
또한, 그동안 탑을 졸업하지 않았던 이유.
가넷은 지금 이 순간을 포기할 수 없었다.
* * *
꾸득―!
주변을 메는 징그러운 소음에 눈이 천천히 뜨였다.
그리고 이내 드러난 광경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주르륵―.
꾸덕―!
공간을 가득 채운 검은 액체들.
그것들은 내 몸에도 들러붙어 있었다.
더욱 혐오스러운 건 그 액체들이 마치 살아 있듯이 움직이고 있다는 점.
[“험담을 떨어뜨려 균은 잘될까 역사는 우정이 맑아 뱉었어.”]
그와 동시에 영문을 알 수 없는 헛소리가 전해졌다.
“쫓는 자?”
[“유독 붉은 뛰어넘기를 뱀이 몰락해서 버들잎을 인정해.”]
지독한 정신 상태다.
머리가 지끈거리는 와중에 저 미친 의지가 강제로 때려 박히니 속까지 매스꺼웠다.
주르륵―.
꿀렁― 꿀렁―!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검은 액체들은 누워 있는 내 몸 위를 점차 덮어 나가기 시작하더니 이내 입과 귀, 코 그리고 눈을 통해 들어오기 시작했다.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끔찍한 기분으로 억지로라도 마나를 쥐어짜려 노력했다.
하지만 내 몸은 마치 물속에 잠긴 타인의 신체처럼 느껴졌다.
‘이 개같은…….’
두려운 감정은 없었다.
그를 대신해서 들어차는 건 분노뿐.
‘적당히 하지?’
그 순간.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흐업.”
식은땀이 느껴졌다.
나는 내가 잠에서 깨어났다는 걸 일어나자마자 깨달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본 적이 있는 방 안.
가넷의 집에 있는 방이었다.
‘뒤통수 맞았네.’
수많은 게임 플레이 중에도 단 한 번도 가넷이 돌발 행동을 한 적은 없었다.
그렇기에 더욱 믿음을 줄 수 있는 캐릭터였는데 이런 변수가 생길 줄이야.
이건 모두 탑을 악질적으로 변형시킨 초월자의 탓이었다.
“가넷!”
나는 곧바로 몸을 일으키며 방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마주한 풍경에 할 말을 잃었다.
“이건 또 뭔…….”
가넷의 집을 제외한 도시가 전부 파괴됐다.
마치 폐허처럼 변한 도시는 골목마다 파괴의 흔적으로 점철되어 있었고 살아 있는 그 무엇도 느껴지지 않았다.
애초에 이모탈도 살아 있는 게 아니지만 아무런 움직임도 포착되지 않았다.
“일어나셨어요?”
“가넷?”
자연스럽게 내 감지를 뚫어 내고 나타난 가넷은 여전했다.
투명한 피부에 아름다운 적발, 그리고 친절한 미소까지.
그러나 나는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이번 층의 테마는 가넷.
가넷이 곧 보스나 마찬가지인 셈이니.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 할까요. 일단 이 풍경은 제가 한 거예요.”
“가넷.”
“하아, 그래도 안 되더라고요. 가장 소중한 것, 그건 역시 단 하나만을 지칭하는 거였어요. 만약 도시를 파괴하는 것만으로도 이 층이 클리어가 됐으면 아드리아스만 나가고 딱 완벽한 거였는데.”
“……그래서 이제 어쩌실 겁니까.”
가넷의 폭력성은 나조차 놀랄 정도였다.
이 폐허를 가넷이 직접 만들었다니 솔직히 믿기지가 않네.
하지만 그만큼 절실하다는 반증이라 곤란함과 동시에 긴장감이 더욱 고조되었다.
“전…… 아무래도 포기할 수가 없어요. 이것이 만들어진 가짜 세상이라 할지라도 말이에요.”
“저는 나가야 합니다.”
“죄송합니다.”
그녀의 주변으로 묘한 기류가 반짝였다.
기술의 사용, 그 전조가 일어나자 나는 곧바로 검을 뽑아 들었다.
“무슨 사연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 의미도 없는 행동입니다. 이 현상이 영원히 지속될 거라 보십니까.”
“대화를 해 보실 생각이시라면 틀린 선택이라고 말하고 싶네요.”
바닥에서 사람의 현상을 한 무언가가 꾸물꾸물 일어났다.
형형색색의 난쟁이들.
그들은 각자 춤을 추며 날 감싸려 했다.
스와악――――.
갈락슈르가 검은 오러에 휩싸이며 주변을 쓸었다.
날카롭게 정제된 오러가 난쟁이들의 상, 하체를 분리했다.
“소용없어요.”
가넷이 직접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감정을 소모할 때 나타나는 다채로운 색상의 빛무리가 그녀를 휘감았다.
상, 하체가 분리되었던 난쟁이들이 다시 재생되고 주변이 점차 몽환적인 색감으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콰드드드득!
주변으로 흙의 벽을 세웠다.
동시에 냉기를 쏟아 바닥을 얼려 버렸다.
상대는 이모탈.
물리 피해 내성과 원소 마법의 저항이 뛰어난 종족.
고로 이 냉기는 의미가 없을 수도 있었지만 애초에 상대에게 피해를 입히려고 사용한 것은 아니었다.
‘춤을 추기 어렵게만 만들어도 된다.’
단순한 이유.
단순하지만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가넷이 만들어 낸 난쟁이들은 바닥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가넷 본인은 미끄러워진 땅에 중심을 잃었다.
퍼버버벅―――!
세상이 터져 나갔다.
가넷의 기술은 한 가지로 정의하기가 어려웠다.
감정을 소모해 소모한 감정만큼의 변화를 만든다고 해야 할까.
다른 이모탈과 달리 자신이 원하는 대로 다재다능하게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었기에 상대하기 까다로웠다.
특히나 가넷이 직접 춤을 추며 다가올 때는 각오를 해야 했다.
투앙―――――!
‘지금처럼.’
바닥을 박차고 허공을 유영한 가넷이 내게 다가왔다.
여전히 유려한 동작들을 취하는 상태에서 가넷의 감정이 터져 나왔다.
우웅!
투두두두둑!
머리를 찌르는 강렬한 정신 공격과 동시에 암기 파편들이 쏟아졌다.
허공에서 빙글빙글 돌며 쏟아 내는 암기는 보통의 상황이었으면 보잘것없었지만 감정 기술을 이용한 정신 공격으로 인해 대처하기가 힘들었다.
피슉!
미처 막지 못한 암기들이 얕은 상처를 만들며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그 상처들은 이내 엄청난 통증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항복하세요.”
가넷이 춤을 멈추며 말했다.
“항복하시지 않는다면 그 고통은 계속될 겁니다.”
확실히 평범한 통증은 아니었다.
아마 가넷의 감정이 섞여 있는 거겠지.
하지만 가넷은 알지 못하는 사실이 두 가지 있었다.
우웅――――.
“……어?”
하나.
나는 이미 이보다 더한 고통을 진화 실패 페널티로 겪어 본 적이 있다.
그것도 잠시 동안이 아닌 몇 년 단위로.
둘.
나는 아직까지 언데드를 사용한 적이 없다.
그리고 언데드에게는 감정 기술이 통하지 않는다.
쿠웅!
루도의 거대한 팔이 튀어나와 가넷을 기습했다.
곧이어 내 주위로 칠흑색의 아공간이 여기저기 생성되며 크리브마허를 제외한 언데드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이건 도대체?”
“가넷.”
나는 다시 한 번 가넷의 이름을 불렀다.
“우리의 삶은 계절 따위가 아닙니다. 그저 기다리기만 한다고 바뀌는 건 없어요.”
―크르르.
진화한 모습의 티무르가 온몸에 문신이 새겨진 모습으로 목울대를 울렸다.
몸집은 조금 더 커지고 외형은 위협적으로 변했다.
“이곳은 초월자의 농간으로 만들어진 장소.”
고통에도 끄떡없는 나를 가넷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당신이 원하는 해답은 여기 없습니다.”
“이게 제가 원하는 해답이라면?”
“오답입니다.”
스륵―.
콰아아앙―――――――!
어느새 다가간 니켈이 거침없이 검을 휘둘렀다.
그의 애검, 만변이 호쾌한 곡선을 그리며 가넷에게 닿았다.
뒤이어 미리내의 그림자 마법이 니켈에게 맞고 날아가는 가넷에게 적중했다.
그 자리에 속박이 된 가넷은 감정 기술로 미리내의 마법을 풀어냈지만 그 잠깐의 시간으로도 충분했다.
후웅!
커진 몸집과는 달리 훨씬 민첩해진 티무르가 어느새 가넷의 코앞에 서 있었다.
―크릉.
근육이 꿈틀거리며 폭발적인 힘이 짧은 정권에서 터져 나왔다.
꽈아아아앙―――――――――!
제대로 먹혀들었지만 방심하지 않았다.
이모탈의 물리 내성은 상당했다.
특히나 가넷의 경우는 더 강했기에 아마 조금 전의 공격으로도 치명타를 입히지는 못했을 거다.
……분명 그럴 터였다.
‘왜지?’
가넷은 자신이 파괴한 도시의 폐허 속에 날아가 묻힌 채 일어나지를 않았다.
의아함을 느끼며 언데드들을 이끌고 다가가자 그제야 고개를 든 가넷이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끝내 주세요.”
“…….”
그 처량한 미소가 내 미간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저도 알고 있었어요. 이게 다 소용없는 짓이라는 걸.”
난 해 줄 말이 없었다.
“도시를 파괴하면서 충분히 느꼈어요. 그리고 가슴이 아팠죠. 이 도시는 제 고향이니까, 본인의 손으로 고향을 부순다는 건 생각보다 끔찍한 일이더라고요.”
“그만큼이나 뮤줄라가 소중했던 거겠죠?”
“이모탈의 문화를 알고 계신지는 모르겠지만 저희는 거의 영원의 시간을 함께할 반려를 선택하고 일평생을 살아요. 저희를 창조한 인간을 모방하는 셈이죠.”
“알고 있습니다.”
“제 반응을 보면 아시겠지만 현실의 뮤줄라는 없어요. 아니, 있지만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상태거든요.”
이모탈의 죽음.
그것은 감정의 말소.
감정이 없는 이모탈은 죽은 것, 아니 그 이상의 취급이었다.
“제가 탑에 들어온 이유, 그리고 지금까지 나가지 못했던 이유.”
“탑에서 정답을 찾으려 하셨던 겁니까.”
“맞아요. 하지만 보기 좋게 시간만 보내고 말았죠.”
가넷은 더 이상 전의를 보이지 않았다.
난쟁이들도 다시 바닥에 가라앉은 상태.
그러나 여전히 아무렇지도 않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웃으려고 노력하는데 잘 안 되네요. 이 가짜 세상이 제게는 너무 큰 희망 고문이었나 봐요.”
“가넷. 아까도 말했지만 가만히 있는다고 변하는 건 없어요.”
“제게 설교하실 생각이세요? 고작 20년밖에 살지 않은 인간이시면서?”
“전, 당신이 상상도 못 한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난 내 세상의 종말을 본 적이 있다.
비록 게임이었다고 할지라도 그건 분명 지금의 내가 존재하는 세계였다.
그와 함께 다양한 신비와 비밀들을 알게 됐지.
“그리고?”
“저희의 세계가 만날 수 있게 된 것처럼 가넷이 모르는 온갖 일들이 존재합니다. 지금 이 공간과 같이 말도 안 되는 일도 일어나죠. 그중에 하나라도 뮤줄라의 감정을 되살리는 방법이 없겠습니까?”
“너무 허황된 꿈이에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이모탈은 거의 영원에 가까운 수명을 지닌 존재라고 알고 있는데 노력도 안 해 보실 생각이세요?”
“그런 허황된 일에 심력을 쏟으면 저도 금세 감정을 모두 소진하고 말 거예요.”
나는 한쪽 무릎을 꿇어 가넷의 어깨를 잡았다.
그리고 자신 있게 말했다.
“허황되지 않습니다.”
“……어째서 그렇게 확신하시는 거죠?”
“저도 도울 거니까요.”
내 말에 가넷이 다소 김이 빠진 듯 표정을 풀었다.
“말도 안 돼요. 탑을 나서면 로들렌에 갈 당신이 저를 어떻게…….”
“이 세상에는 초월적 존재들이 있었습니다. 지금 이 탑을 만든 자와 저번에 보았던 검은 액체를 쏟으며 우리를 이곳에 보낸 존재가 그들이죠. 그리고 그들의 흔적은 저희 세계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습니다. 룬 대륙에도 있을 수 있겠네요.”
가넷은 말없이 내 이야기를 경청했다.
“제가 탑에서 나가더라도 탑에는 계속 사람이 들어갑니다. 들어가는 인물을 통해 제가 계속해서 정보를 제공하죠. 초월자의 관한 정보나 감정의 복구와 관련된 정보를요.”
“초월자라는 존재에게 해답이 있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예.”
가넷은 한동안 말없이 주저앉아 있기만 했다.
이미 전의를 잃은 상태라 싸울 여지는 없었기에 나는 가넷이 결국 결정을 내릴 거라 믿었다.
“정말, 정말로 초월자라는 존재들에게서 단서를 구할 수만 있다면…….”
드디어 입을 연 가넷에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이런 세계도 창조할 수 있는 능력자들입니다. 이모탈 하나의 감정을 되살리는 것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가능하겠죠.”
“확실히 이런 세상을 창조해 내는 것보다 그게 더 쉽겠네요.”
가넷이 내게 손을 내밀었다.
손을 맞잡자 가넷이 일어나며 내 귀에 자신의 얼굴을 붙이며 속삭였다.
“믿어도 되는 거죠?”
“탑에서 나간 뒤에도 무조건 도와드리겠습니다.”
“……알겠어요.”
가넷이 처량하게 미소 지었다.
“뮤줄라는…… 제가 처리하고 올게요. 잠시만 여기서 기다려 주시겠어요?”
“……예.”
나도 마음이 무거웠다.
비록 가짜라고는 해도 되살아난 연인을 직접 처리한다는 건 나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 가슴 아픈 일이었다.
차라리 내가 처리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었지만 가넷의 두 눈에 담긴 감정은 말조차 꺼내지 못하게 만들었다.
잠시 후, 가넷이 사라진 지 얼마 되지 않아 메시지가 발랄하게 나타났다.
[-72층 클리어!]
뮤줄라의 죽음을 알리는 메시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