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 특성으로 최강 네크로맨서 (255)
오염된 탑 그리고 가넷
‘살아 있는 건가.’
의식을 되찾았을 때는 입을 열 수가 없는 상태였다.
살렘을 상대로 언령 마법을 실험해 봤을 때도 이 정도의 후유증은 오지 않았었는데 확실히 초월자는 초월자인 모양이었다.
“일어나셨나요?”
‘가넷?’
말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내 놀란 감정을 느낀 건지 가넷이 미소 지었다.
“다행이에요.”
가넷도 무사한 걸 보니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 괴물이 우리를 그냥 놔둔 건가?
“많이 당황스러우시겠지만 우선은 몸부터 추스르세요.”
난 고개를 끄덕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자 뭔가 이상한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1층이 아니야?’
내가 알던 탑의 1층 전경이 아니었다.
우리가 있는 곳은 푸르른 언덕.
그리고 저 멀리 거대한 기계 도시와 하늘에 떠 있는 수많은 인공 섬들이 형형색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정신을 잃으신 지 하루 정도 지나셨어요. 말씀을 하시는 데 불편이 있으신가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가넷도 따라서 끄덕였다.
“이곳은 아무래도 룬 대륙인 것 같아요. 저 앞에 보이는 도시 있죠? 저기가 제 고향인 루도베스예요.”
룬 대륙?
“우선은 메시지부터 확인해 보세요.”
메시지를 확인할 수 있는 건가?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영문을 모르겠다.
일단 그녀의 말대로 메시지를 확인하자 이상한 문구가 드러났다.
[-72층: 꿻뚫기아뉅곙의 어댣투밝]
[야댜홀댕덷쿥즈븝힛 됔숳히힘도릵코]
마이너스 72층? 저 밑에는 뭔 메시지야?
메시지가 나오고 층수가 나오는 걸 보면 아직 탑의 안인 건가?
알 수 없는 일투성이였다.
“그 정체불명의 습격자가 검은 액체와 같은 것으로 우리를 뒤덮더니 어느새 이곳에 와 있었어요. 우선은 같이 저 도시로 들어가 볼까요? 진짜 룬 대륙이 맞는지 확인부터 해 보면 여기가 아직 탑의 내부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끄덕.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대답을 대신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넷의 말대로 정보 수집부터 해야 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지는 제쳐 두고 현 상황을 파악하고 살아남는 게 급선무였다.
“제 기억 속 도시 그대로네요. 분명 100년이 지났을 텐데.”
도시를 향해 걷던 와중에 가넷이 중얼거렸다.
그 말에는 희미하게 떨리는 감정이 느껴졌다.
어째서인지 묘한 기분에 휩싸인 나는 애써 입을 열어 보려 노력했다.
“가……넷.”
“굳이 무리해서 말씀하실 필요 없으세요.”
그 감정의 정체가 궁금했다.
가넷은 어쩌다 탑에 들어오고, 어째서 100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가지 않았던 건지.
100년이라는 시간 동안 정말 함께 등반할 이가 없었을까?
내가 보기에는 아니었다.
아마 충분히 함께 등반할 정도의 실력자들이 있었을 것이다.
‘당장 막시민만 해도…….’
막시민도 로들렌 아카데미 졸업생인 만큼 탑을 등반했었다.
그 증거가 그의 애검인 배신 처형자.
그리고 다양한 세계에서 사람들이 오는 만큼 막시민과 같이 뛰어난 이들이 더 없었다고 보기에는 힘들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 끝에 우리는 도시의 입구로 들어섰다.
“가넷? 언제 나갔었지?”
그리고 입구에는 가넷을 알아보는 이모탈이 있었다.
“토파즈……?”
“왜 그렇게 이상하게 불러. 그것보다 옆에는 누구야? 어디에서 온 이모탈?”
가넷이 당황해할 때 내가 살짝 나서서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가넷이 정신을 차리고 얼버무렸다.
“이 아이는 지금 목이 다쳐서 말을 못 해. 수리를 하러 가야 돼.”
“그래? 그거 참 안타까운 일이군. 어서 빨리 가 봐.”
토파즈라 불린 이모탈은 별다른 제지 없이 나와 가넷의 입장을 허락했다.
도시에 들어서자 가넷은 조그맣게 속삭였다.
“죄송해요. 너무 오랜만에 보게 된 인물이라 경황이 없었어요.”
“괜찮.”
그것보다 가넷을 처음 봤을 때 보였던 토파즈의 반응을 떠올렸다.
언제 나갔었냐는 그의 반응.
마치 가넷이 탑에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눈치였다.
‘애초에 이 세계 자체가 가짜일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그런 반응이 나온 거겠지.’
여기가 아직도 탑 안이라면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아직 확실한 건 없으니 정보가 필요했다.
“우선은…… 제 집이 있던 곳으로 가 볼까요?”
희미하게 떨리는 가넷의 목소리에서 감정의 흔들림이 느껴졌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일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이, 가넷! 좋은 아침이야! 옆에는 누구?”
“가넷! 여기 새로운 기계화 팔이 나왔는데 구경하고 가 봐!”
길을 지나면서도 가넷을 알아본 이들이 말을 걸어왔다.
유독 가넷에게 몰리는 관심은 나조차도 깨달을 수 있을 정도.
탑이 들어오기 전에는 인기가 많았나 보다.
그러나 가넷은 아까부터 긴장한 모습으로 인사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걸음을 빨리했다.
그런 가넷의 뒤를 쫓으며 나도 덩달아 긴장이 되었다.
‘도대체 왜 저렇게 서두르면서 긴장을…….’
마침내 가넷이 집처럼 보이는 건물 앞에 도착하자 긴장으로 굳은 몸을 추슬렀다.
“가넷.”
“아, 여기가 제 집이에요.”
“왜 그렇게 긴장을…….”
“제가 긴장이요?”
가넷의 눈이 동그랗게 떠지더니 이내 본인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나를 보더니 어색하게 웃었다.
“말씀하실 수 있게 됐네요?”
“조금은.”
“일단 들어오세요.”
내게 들어오라고 말했지만 그건 마치 본인에게 하는 주문과도 같았다.
발을 떼지 못하고 문 앞에서 서성이던 가넷은 이내 조심스레 문가에 다가섰다.
위잉!
―신원을 확인합니다.
―신원 확인이 완료되었습니다. 문이 열립니다.
―가넷720055 입장합니다.
열린 문을 통해 가넷을 뒤따라 들어서자 안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리고 이내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넷?”
그 목소리가 울린 순간 가넷이 움직임을 멈췄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그 누군가를 향해 말했다.
“뮤줄라?”
“말도 없이 어디 갔다가 온 거야! 어? 손님을 데리고 왔네?”
안쪽에서 나타난 이모탈은 가넷과 같이 투명한 피부를 지닌 아름다운 인형이었다.
푸른빛의 머리카락을 지닌 뮤줄라는 나와 가넷을 번갈아 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가넷? 왜 그래?”
“아,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야.”
가넷의 반응을 보자 나는 무언가를 짐작할 수 있었다.
뮤줄라를 보는 저 반응, 아무래도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건가?
“그, 뮤줄라. 괜찮은 거지?”
“갑자기 왜 그러는 거야? 손님도 데려와 놓고.”
“아니, 그게 아니라…….”
그녀답지 않게 횡설수설하는 가넷을 놔두고 우선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아드리아스라고 합니다.”
“아드리아스? 네, 반가워요. 전 뮤줄라입니다. 가넷의 친구이신가요?”
“우연히 마주쳤는데 제가 곤란한 걸 알고 도움을 주셨습니다.”
“아, 우리 가넷이 오지랖이 넓긴 하죠. 어쨌든 환영합니다. 집이라고 생각하시고 편히 쉬세요.”
“감사합니다.”
나와 뮤줄라의 대화를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바라보는 가넷은 일단 놔둬야 할 것 같았다.
아무래도 무슨 일이 있긴 한 모양이네.
나는 뮤줄라의 안내를 따라 적당한 방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여전히 감정이 흘러넘치는 가넷에게 말했다.
“일단 쉬고 있을게요.”
“아, 아…… 알겠어요.”
아무래도 충격이 큰 모양인데.
어차피 언령 마법의 후유증도 완전히 낫지 않은 상태라 적당한 휴식이 필요했다.
나는 가넷을 뮤줄라에게 넘기고 홀로 방에 들어갔다.
[“보기 좋게 당했군.”]
‘일어났냐.’
원죄가 깨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마침 이 상황에 대해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는데 잘됐다.
[“기분은 좀 어때?”]
‘기분? 헛소리 말고 나랑 싸웠던 그거, 초월자냐?’
[“정확히는 녀석 조각이지. 아마 녀석의 조각들이 탑 전체를 뒤덮고 있을 거다.”]
‘그게 무슨 소리야?’
[“지금 이 공간은 녀석으로 인해 오염되어 있다. 원래의 탑이 아니야.”]
원죄는 이 상황을 즐기는 듯 보였다.
정말 속을 알 수 없는 녀석이네.
‘위험하다는 거지?’
[“글쎄. 원래의 탑이었어도 위험했던 건 똑같지 않나?”]
‘빙빙 돌려 말하지 말고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말해 줘.’
[“살아남고 싶었으면 네 잘난 마법을 너한테 사용했어야지, 왜 그 여자한테 사용한 거냐.”]
이게 아까부터 말장난만 하네?
내가 죽어도 상관없다는 건가?
[“죽긴 뭘 죽어. 걱정 마라. 이 공간을 깨는 법은 쉬우니까.”]
‘뭔데? 어떻게 깨는데?’
[“넌 읽을 수 없는 모양이지만 난 클리어 조건을 읽을 수 있다. 간단하군. ‘가장 소중한 것을 파괴하라’ 이게 끝이야.”]
가장 소중한 것을 파괴하라?
그게 뭔 철학적인 개소리냐.
[“아드리아스.”]
‘가장 소중한 게 뭐지?’
[“아드리아스.”]
‘왜.’
[“여기를 탈출한다고 해도 끝나는 게 아니야. 아마 네 힘만으로는 감당하기 힘들 거다.”]
‘초월자 때문에? 지가 쫓는 자라고 하던 놈?’
[“이미 저번에도 말했지만 이 탑과 관련된 녀석은 둘이다.”]
‘기가 막히네. 하나도 해결하기 버거운데 한 놈이 또 있다는 소리지? 그냥 확 죽어 버릴까?’
[“내가 직접 나서야 할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그때는 거부하지 말고 나를 받아들여라.”]
원죄가 음흉하게 미소 짓는 게 느껴졌다.
하여간 속이 시커먼 놈이 아닐 수가 없었다.
그나저나 나랑 가넷은 이곳에 들어와서 갇혔다지만 비비안이나 디에네는 무사할까.
특히 비비안은 꽤 충격을 먹었을 것 같다.
내가 사라진 걸 보고 죽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빨리 빠져나가야 해.’
가장 소중한 것을 파괴하라고?
가장 소중한 게 대체 뭘까.
그때 방문을 누군가가 두드렸다.
“아드리아스.”
“들어오세요.”
방문이 열리고 가넷이 천천히 들어왔다.
그녀는 많이 진정됐는지 평소의 모습이었다.
“조금 전에는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100년 만의…… 아니, 그것보다도 믿기지 않는 일을 겪어서 동요하고 말았네요.”
“괜찮습니다.”
“아드리아스.”
“예, 말씀하세요.”
뜸을 들이는 가넷의 모습이 왠지 처량했다.
화려한 외모와는 어울리지 않는 그 모습에 잠시 바라보고만 있자 가넷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일단 이곳은 현실이 아니에요. 현실이었으면 좋겠지만…….”
씁쓸한 미소를 짓는 가넷의 표정이 아련했다.
“이곳이 현실이 아닌 이유를 설명해 드릴게요. 단순하지만 명확한 이유죠.”
“아, 저도 이 공간의 클리어 조건을 알아냈습니다.”
“……정말이십니까?”
가넷이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도대체 어떻게? 라는 물음이 표정으로 다 드러났다.
“메시지를 해독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매번 사용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정확히는 원죄가 깨어날 때만 가능하지.
녀석은 지금도 깨어 있었다.
“클리어 조건이 뭔가요?”
“클리어 조건은 ‘가장 소중한 것을 파괴하라’였습니다.”
“…….”
내 말을 들은 가넷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뭐지? 뭔가 짐작이 가는 게 있는 건가?
그 순간 나는 이 공간이 가넷과 관련이 있는 장소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룬 대륙인 것도 모자라서 가넷의 고향 도시, 그리고 가넷을 반기는 이모탈들.
마지막으로 가넷의 집과 가넷을 반기는 동거 이모탈까지.
혹시 이 층의 테마는 가넷과 연관이 되어 있는 건가?
그렇다면 가장 소중한 것이란 건 말 그대로 가넷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우오옹―――.
“가넷?”
춤이 보였다.
갑자기 발동된 가넷의 기술에 내가 대처를 하려고 했지만 너무 방심하고 있었다.
“조금만, 아주 조금만 주무시고 계세요.”
“가넷!”
졸음이 쏟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