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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 특성으로 최강 네크로맨서-254화 (254/415)

진화 특성으로 최강 네크로맨서 (254)

깨어난 위기

고즈넉한 후원에서 여인의 무릎을 베게 삼아 누워 있던 남궁일영은 순간 느껴진 알 수 없는 기운에 몸을 일으켜 세웠다.

“어머나!”

부딪힐 뻔한 여인이 몸을 뒤로 젖혔지만 남궁일영은 신경 쓰지 않고 어딘가를 응시했다.

“착각인가.”

순간적으로 느껴진 강대한 기운.

말은 착각이라고 했지만 그는 그것이 절대 착각이 아님을 확신했다.

그는, 본인이 착각 따위를 할 인간이 아님을 알고 있었기에.

“무슨 일 있으신가요?”

“아니다. 그보다 금을 연주해라.”

“알겠습니다.”

여인이 이내 금을 켜기 시작했고 남궁일영은 달빛이 비치는 후원의 연못을 보았다.

변화가 찾아오는 건가.

남궁일영은 조금 전의 기운을 전혀 개의치 않았다.

하지만 이 변화의 방향이 곧 자신의 탑 생활을 끝낼 것이라는 걸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도련님.”

생각에 잠겨 있는 그의 곁으로 누군가가 은밀하게 다가왔다.

“등반을 중단하고 나왔습니다.”

“그래? 몇 층이지?”

“아마 40층이지 않나 싶습니다.”

“확실히 난놈은 난놈들이군.”

아드리아스 크롬웰, 그리고 그의 일행들.

어느새 자신의 기록인 40층을 따라잡았다.

개개인의 힘은 자신보다 약할지라도 탑의 등반은 무력으로만 해결되는 게 아니었다.

“도련님.”

보고를 올리던 자는 나이가 지긋한 노인이었다.

잠행술이 극한의 경지에 이른 노인은 남궁일영의 충실한 수하이자 동료였다.

“말해, 구열.”

“매년 세가에서 도련님의 안부를 살피는 사람을 보내옵니다. 이제 슬슬 복귀를 생각하시는 건 어떻습니까?”

“하아, 신입들 때문에 그러나?”

“이번 기회가 지나고 다시 40층 등반자가 생기는 건 몇십 년 이후일지도 모릅니다.”

등반에 참여하고 이제 탑을 나가라는 그의 말에 남궁일영은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의 말대로 언제까지 이곳에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무엇보다도 자신은 이곳에 들어와 반로환동의 영향으로 젊어진 데다가 수명까지 늘었지만 함께 들어온 수하들은 이미 노년의 나이였다. 따지고 보면 자신 때문에 세월을 보낸 것이나 마찬가지이기에 나태한 남궁일영이라 할지라도 양심에 찔렸다.

“고려해 보지.”

“저, 정말입니까?”

“뭘 그렇게 목소리를 떠나. 그리고 내가 원한다면 그냥 나가라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도 자네들이 남아 놓고는 그런 반응인가.”

“그저 저는 도련님께서 활동을 재개하신다는 게 놀라워서…….”

“고려해 본다고 했다. 움직인다고는 안 했어.”

남궁일영이 한숨을 쉬며 드러누웠다.

“……녀석들이 내게 권유하면 움직여 보겠다. 내가 먼저 나서는 건 자존심이 서지 않는군.”

“약속하신 겁니다?”

“약속은 무슨.”

구열은 들뜬 눈빛으로 곧장 사라졌다.

그런 구열을 보며 남궁일영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그래. 너무 오래 있긴 했지.”

중원무림.

아마 많은 것이 변했을 거다.

그리고 자신 또한 탑에 입장하고 많은 게 변했다.

“일단은 등반이 우선인가.”

올라갈 수만 있다면 그도 40층에서 끝낼 생각은 없었다.

나태했음에도 자존심만은 살아 있었으니까.

* * *

최단기간 안에 40층까지 도달.

이제는 별로 놀라울 것도 없다는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결산을 했다.

“이번에는 좀 쓸 만한 게 나왔네요.”

루나팔트 광석을 얇게 실로 뽑아내 만든 옷이었다.

광물로 만들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부드러운 촉감을 지닌 옷은 상대적으로 생존에 취약한 디에네에게 주어졌다.

“나는 여차하면 공간 마법으로…….”

“급한 순간에 캐스팅으로 빠지는 것보다 저희의 움직임이 더 빠릅니다.”

나는 디에네의 거절을 거절하고 그녀에게 옷을 쥐여 줬다.

아름답게 빛이 나는 옷을 건네받은 그녀는 어쩔 줄을 몰라 하며 비비안과 가넷을 보았지만 그들의 반응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난 괜찮아.”

“아무래도 마법사이신 디에네가 받는 게 맞죠. 저는 이모탈이라 물리 공격으로 죽을 일은 없거든요.”

나를 제외한 일행들도 동조하자 결국 디에네는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디에네는 가문에 있는 보물만 해도 이것보다 뛰어난 것들이 많을 테니 너무 부담 가지실 것 없습니다.”

“뭔 소리야. 이런 물건은 우리 가문에도 몇 개 없거든?”

“아예 없다는 이야기는 안 하시네요.”

내가 농담하듯 말하자 디에네도 결국 부담을 떨쳐 내고 피식 웃었다.

50층 이상에서 드롭되는 아이템들은 훨씬 좋을 거다.

물론 운이 따라 줘야겠지만 하나 정도는 여유롭게 먹을 수 있을 거라 판단이 되었다.

“이제 돌아가서 휴식을 가집시다. 아무래도 40층은 보스층인 만큼 3일 정도 준비 기간을 가지고 도전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알았어. 그럼 그때까지 자유행동?”

“휴식은 하루고 이틀 동안은 모여서 준비할 겁니다.”

“좋아. 그렇게 하자. 그럼 지금부터 휴식이지? 난 먼저 갈게. 가넷도 수고하셨어요.”

빨리 씻고 싶었던 모양인지 디에네는 금세 사라졌다.

가넷도 이내 우리에게 손을 흔들며 룬 세력의 영역으로 떠났다.

“비비안도 오늘이랑 내일 하루는 푹 쉬세요.”

“응.”

그때 누군가가 인기척을 드러내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머리카락이 드문드문 남은 노인.

이름은 모르지만 나는 저자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전 구열이라고 하는 자입니다.”

이름이 구열이었구나.

우리를 향해 인사를 건네는 그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남궁일영 님이 보내셨습니까?”

“제가 누군지 아시는군요. 죄송하지만 도련님께서 보내서 온 건 아닙니다.”

“그러면……?”

“제가 부탁드리고 싶은 일이 있어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개인적인 부탁?

일단은 알았다고 말하며 장소를 옮겼다.

마침 저녁을 먹을 시간이기에 식사나 같이 할까 했지만 그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실례를 할 수는 없지요. 일단 자리에는 착석하겠습니다.”

식당에 들어와 자리를 잡고 우선은 메뉴를 시켰다.

음식이 나오는 동안 노인이 조심스레 운을 뗐다.

“40층 등반자가 되신 걸 축하드립니다. 정말 경이로운 속도군요.”

“감사합니다.”

“알고 계실지 모르겠지만 저희 도련님께서도 40층 등반자이십니다.”

물론 알고 있다.

하지만 남궁일영은 영입 대상에서 제외였다.

게임 속에서 당연히 시도를 해 본 적이 있었으니 거절당할 걸 이미 알고 있었거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남궁일영 님의 실력이 부족해서 그 자리에 머무시는 건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 당장 같은 층인 저희도 남궁일영 님께 무술에 대한 조언을 듣는 처지니까요.”

“저 그래서 말입니다만…… 혹시 도련님과 함께 등반하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생각지도 못한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남궁일영 님께서 등반을 하시겠다고 하신 겁니까?”

“하겠다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럴듯한 말을 하셨습니다. 만약 아드리아스 님께서 직접 권하신다면 따르겠다고 말이지요.”

천하의 남궁일영이?

세상 무료하게 지내던 그가 무슨 바람이 들어서 등반을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

애초에 게임에서도 겪어 본 적이 없는 일이기에 조금 당황스러웠다.

내 표정을 살펴보던 구열이 다시 말했다.

“이건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번 기회가 마지막이라고 직감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기회…….”

“그렇습니다. 아드리아스 님이 탑을 나가고 나면 더 이상 40층 이상의 등반자가 나올 거라는 확신이 없습니다.”

“남궁일영 님께서는 탑을 나가실 생각이 없으십니까?”

“적어도 40층에 머무르는 이상은 나가시지 않을 것 같습니다.”

사실 게임에서는 탑에서만 보고 끝날 인연이었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었다.

플레이어에게 있어서는 일회용 NPC와 같은 느낌.

그러나 현실이 된 지금은 감회가 달랐다.

‘남궁일영이 파티원이 된다면…….’

명령을 들을 타입 같지는 않았지만 그 무력 자체만으로도 일인분 이상.

가넷이 필수 요소라면 남궁일영은 더 쉽게 클리어가 가능하게 해 주는 인물이었다.

“남궁일영 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실 거라고는 짐작도 못 해서 잠시 당황했습니다. 저희야 남궁일영 님께서 파티에 들어오시면 감사할 따름이죠.”

“그렇다면 권유해 주시는 겁니까!”

“내일 아침에 바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정말로 감사합니다!”

구열의 표정에 환희가 차올랐다.

저렇게까지 기뻐할 일인가 싶었는데 생각해 보니 저 노인도 탑에 들어온 지 꽤 시간이 지났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남궁일영이 그동안 등반도, 그렇다고 탑을 나가려는 기색도 없었으니 답답했겠지.

“그럼 전 이만 물러나 보겠습니다. 다시 한 번 40층 축하드리고 내일 뵙도록 하겠습니다. 식사 맛있게 하십시오.”

구열의 기뻐하는 마음이 진하게 느껴져 왔다.

함께 있는 사람까지 그 긍정적인 기운이 전해질 정도였다.

푸확!

“어?”

피가 튀었다.

그리고 구열이었던 것이 내 눈앞에서 쓰러졌다.

“뭐야.”

갑작스러운 상황에 사고가 따라가지 못했다.

하지만 내 몸은 이미 이성을 배반하고 먼저 움직이기 시작했다.

스르릉.

퍼걱!

알 수 없는 공격을 막아 내고 일단 공간을 파악했다.

구열과 나를 공격한 적.

위치는? 숫자는? 뭐로 공격한 거지?

“안녕, 관찰자.”

능글맞게 웃는 상대의 얼굴은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입에서 나온 단어에 등 뒤로 소름이 돋아났다.

“초월자?”

그 순간 앞뒤 재 볼 것도 없이 옆에서 검을 뽑고 상대에게 달려가려던 비비안을 말렸다.

“아드리아스?”

“비비안, 일단 도망부터!”

상대가 초월자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내가 감지하지도 못한 공격과 구열의 순살은 상대가 적어도 나보다 강할 수도 있는 적임을 드러냈다.

애초에 관찰자라는 게 상대의 입에서 나온 이상 초월자와 관련된 무언가인 건 확실했다.

“왜 숨어 있어? 관찰자야, 내가 왔다고. 너의 오랜 친구이자 서로의 양식이 되었던 쫓는 자가 왔다고!”

씨발, 말하는 게 아무래도 초월자임이 분명했다.

나는 두말없이 나를 따르는 비비안을 데리고 무작정 거리부터 벌렸다.

그러나 상대는 어느새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빨리 나와! 왜 안 나오는 거야!”

마치 어린아이가 떼를 쓰듯 소리치는 상대를 향해 비비안이 급습을 날렸다.

하지만 상대는 반응조차 해 주지 않으며 계속 말했다.

“내가 왔는데 왜 아는 척을 안 하는 거야! 내가 너 때문에 일어나서 이렇게 나왔다고!”

위이잉――――.

그때 익히 들었던 기술의 전조가 들려왔다.

그리고 예상했던 대로 화려한 색감의 그림자들이 바닥에서 올라와 각자 춤을 추기 시작했다.

“가넷!”

어느새 나타난 가넷이 감정을 소모하는 기술을 사용하고 있었다.

“물러나세요!”

비비안이 다급하게 물러났다.

곧이어 그림자들의 춤이 빨라지며 강강술래를 하듯 서로 손을 잡고 적의 주위를 맴돌았다.

그리고는 상대를 감싸기 시작했다.

“으아아?”

갑자기 헛소리를 하는 상대를 보자 가넷의 기술이 초월자와 관련된 무언가에게도 먹히는구나 싶어 안심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이군요.”

가넷이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대상이 되는 상대가 강할수록 많은 감정을 소모하는 만큼 힘겨운 모양이었다.

“일단 도망치세요. 전 알아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가넷.”

[“어딜 도망가.”]

우우우웅――――――――――――――――!

내부를 진탕시키는 의지가 들려왔다.

이건 레테를 만났을 때 느꼈던 상황과 비슷했다.

“크흑.”

나와 비비안이 흔들렸다.

하지만 가넷은 그런 우리의 상태를 모르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갑자기 왜 그러세요? 무슨 일이에요?”

그러나 가넷도 우리에게 신경 쓸 겨를이 곧 없어졌다.

헛소리를 하며 손을 휘젓던 상대는 어느새 검게 변한 채 바닥을 검은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검게 변해 가는 바닥은 점점 범위를 넓혀 곧장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이런.”

가넷의 난처한 목소리가 들려오고 나는 마나를 급하게 돌렸다.

마나를 최대한 끌어모았음에도 입이 떼어지지 않자 역천의 회로를 극한까지 운용했다.

―벗어나라!

단 한 명.

나는 비비안에게 마법을 사용하며 그대로 탈진해 버렸다.

그리고 비비안은 내 마법에 의해 강제로 장소를 이탈하기 시작했다.

“아드리아스? 아드리아스!”

비비안의 애절한 외침이 들려왔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내 언령 마법의 한계로는 셋을 다 구해 내는 것이 불가능했다.

쫘아아악―――.

점차 가까이 다가오는 소름 끼치는 소음을 들으며 마나를 모두 소모한 나는 의식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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