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 특성으로 최강 네크로맨서 (253)
태양의 허물을 쫓는 자
“제일 오른쪽, 1번.”
내 외침과 함께 비비안이 쏜살같이 달려 나갔다.
때마침 오른쪽 길목에서 쏟아져 나오는 블러드 하운드들이 그런 비비안을 향해 이빨을 드러냈다.
“중앙, 5번. 저도 가겠습니다.”
36층은 일명 디펜스.
9가지 길목이 있고 길의 끝에는 우리가 지켜야 하는 거대한 수정구가 있었다.
내가 수정구의 위치에서 몬스터들이 나오는 길목을 외쳤고 나머지 인원들이 그런 내 브리핑에 따라 몬스터들을 처리하는 식으로 진행이 되었다.
우우웅―――!
퍼버버버벅!
얼음으로 된 송곳이 하늘에서 떨어지고 바닥에서는 흙으로 빚은 가시들이 솟아났다.
최소한의 마력으로 효율적인 운용을 선보이는 디에네의 마법이 깔끔하게 몬스터들을 처리했다.
“이제 곧 네 번째 웨이브입니다. 숨 좀 돌리세요.”
“정말 대단하시네요. 36층 처음 도전하시는 거 맞죠?”
가넷이 빈말이 아닌 진짜 감탄한 표정으로 나에게 물었다.
게임 속 경험이 있다고 말할 수는 없으니 대충 둘러댔다.
“가넷 덕분입니다. 그리고 남궁일영에게 들은 것도 좀 있고요.”
“실제 정보를 취합하는 것과 실전에서의 활용은 별개의 영역이에요. 부담스러워하시는 것 같아 여기까지만 말하지만 정말 대단하신 거예요.”
가넷은 눈치가 빨랐다.
그리고 배려심이 깊었다.
인간보다 인간 같은 인형이라니 기분이 묘하네.
“웨이브 시작됐습니다. 모두 준비.”
가넷이 진짜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곳은 적어도 40층 이상.
내 게임 속 최고 기록이 55층이니 고층의 대부분은 가넷이 필요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55층은…….’
그때 몬스터가 튀어나왔다.
나는 기계적으로 외쳤다.
“왼쪽, 8번. 디에네! 가넷을 보조해 주세요.”
아직은 30층대.
멈추지 않고 달려야 할 시기였다.
* * *
로들렌 제국 남서부에 위치한 영지, 크롬웰.
이제야 서서히 인수인계가 끝나고 안정화에 들어가는 가운데 귀한 손님이 방문했다.
“아쉽군, 아쉬워. 아드리아스를 볼 수 있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말이야.”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모하임에서 미누스가 직접 찾아왔다.
그는 크롬웰을 한번 둘러보고 막 영주 성에 도착한 참이었다.
“크롬웰 백작이라면 아마 몇 개월은 더 있다가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미누스를 맞이한 에이미는 공손히 대답하며 앞에 놓인 차를 마셨다.
아드리아스 크롬웰이 탑에 들어간 지 벌써 3개월.
벌써부터 탑에서 나오는 인원들이 있는 가운데, 그의 소식도 함께 전해졌다.
“무소식이 희소식이겠지. 탑의 등반이 높을수록 기대치는 높아지니까.”
“그보다 전하, 혹시 오시는 길에 그림자 송곳니를 보셨는지요?”
“아니, 아직이다. 소식을 들었던 게 아드리아스가 탑에 들어가기 직전이니 시간이 꽤 흘렀군. 보여 줄 수 있나?”
“물론이죠. 전하께서 원하시는 아이를 직접 고르실 수 있게 준비하겠습니다.”
“어느 정도로 컸지?”
“처음 발견 당시에는 성견의 크기였는데 지금은 말과 비슷한 크기가 됐습니다.”
“호오. 타고 다닐 수도 있다고 했지?”
“그렇습니다. 저희 사육사가 제대로 훈련을 시켜 놓았으니 위험한 일도 없을 거예요.”
미누스가 공작이라는 지위에도 불구하고 직접 크롬웰에 방문한 이유에는 복잡한 정치적 계산이 들어갔지만 그림자 송곳니라는 영물도 한몫했다.
마침 모하임에서부터 함께 크롬웰로 왔던 미누스의 동생, 그레타는 이미 그림자 송곳니를 보러 간 상황이었다.
“이곳입니다.”
“내 생각보다 꽤 시설이 고급지군.”
“투자를 좀 했습니다.”
미누스의 눈에 들어온 초원에 가까운 넓은 사육 장소와 여러 시설들은 돈 낭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가장 돈이 많은 가문 중 하나로 불릴 만큼 돈과 이익 계산에 철저한 미누스로서는 이러한 상황이 그리 반갑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투자? 영물이라 관리에 신경을 써 줘야 하는 건 맞지만 굳이 이렇게까지 하는 건 과했던 것 같군.”
그때 저 멀리서 검은 형체가 바람과 같이 등장했다.
거대하다는 말로 표현이 될 만큼 커다란 늑대, 그 크기는 말과 비교해도 작아 보이지 않았다.
“이랴! 오빠! 이거 보여?”
그리고 그 위에는 그레타와 드미트리가 함께 올라타고 있었다.
말과는 다른 압도적인 민첩성으로 초원을 누빈 늑대는 이내 자유자재로 방향을 틀더니 미누스의 앞에 멈춰 섰다.
“……대단하긴 하군.”
“지금 한 녀석씩 다 타 보고 있는데 난 이 애가 제일 마음에 들어!”
마치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동심에 찬 눈빛으로 미누스에게 말하는 그레타는 즐거워 보였다.
그 모습을 본 미누스는 어쩌면 그다지 낭비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안녕하세요. 모하임 전하신가요?”
“그대는?”
“전 이 아이들을 돌보고 있는 드미트리 하옌이라고 합니다.”
영물을, 그것도 키우기 까다롭다고 알려진 그림자 송곳니를 사육할 수 있는 인물은 보기 드물었다.
미누스는 잠시 드미트리를 살펴본 뒤 고개를 끄덕였다.
“대단한 능력이야. 힘든 점은 없나?”
“너무 활발한 데다 아이들의 숫자가 많아서 조금 힘들지만 괜찮아요.”
“그 걱정의 일부를 우리가 덜어 줄 수 있게 되겠군.”
미누스의 말에 드미트리는 씁쓸한 표정으로 늑대의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이미 사회화 교육은 다 끝났어요. 제가 따로 작성한 주의 사항만 지키신다면 큰일은 없을 거예요.”
“나도 타 봐도 되나?”
“물론입니다.”
휘익!
드미트리가 휘파람을 불자 곳곳에 숨어 있던 그림자 송곳니들이 튀어나왔다.
모두 여섯 마리의 늑대들이 모이자 검은 윤기의 털들이 시야를 가득 메웠다.
“꽤 장관이야.”
미누스가 만족스럽다는 듯이 바라본 후 천천히 둘러보다가 유난히 음침한 인상의 늑대를 보았다.
“저놈을 한번 타 봐도 되나?”
“아, 전하. 그 아이는 이미 주인이 있습니다. 유일하게 이름이 있는 녀석이에요.”
“음? 누가 주인이지? 아드리아스인가?”
“그건 아닙니다만……. 비비안 벨로칸이라고 크롬웰 가문의 기사가 될 자의 것입니다.”
“비비안. 이미 알고 있는 이름이야. 비비안이 크롬웰에 들어오기로 했어?”
“탑을 나온 뒤 기사 서약을 하기로 했습니다.”
“경사군.”
미누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른 늑대를 골랐다.
딱히 어떤 녀석이든 상관이 없었지만 유난히 인상이 누군가를 떠올리게 해서 골라 봤던 것뿐이었다.
“혼자 탈 거야.”
“처음이시면 위험하실 수도…….”
“괜찮아. 이랴!”
가장 어두운 녀석으로 고른 미누스가 늑대의 등을 박찼다.
이미 주의할 점이나 늑대를 다루는 법은 서신을 통해 익히 공부를 해 왔기에 걱정은 없었다.
“하하하! 좋아!”
말을 탔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속도감에 미누스가 소리쳤다.
탑승자의 마음을 알았는지 미누스를 태운 그림자 송곳니도 가속을 해 나가며 넓은 땅을 달렸다.
“영물이라더니 내 마음도 읽는 거냐? 기특한 녀석이군.”
한참을 달렸음에도 지친 기색 없는 늑대의 목덜미를 쓰다듬어 준 미누스가 웃었다.
이런 멋진 녀석을 그저 공짜로 주겠다는 아드리아스가 고맙게 느껴졌다.
그 어느 명마가 부럽지 않은 녀석이었다.
어느새 일행들이 있는 곳으로 다시 돌아온 미누스는 늑대에서 내리며 에이미에게 말했다.
“아까 내가 했던 말은 취소하지.”
“아까 했던 말씀이시라면…….”
“투자가 과했다는 말. 이 정도면 충분히 돈을 쏟을 만한 것 같아.”
그때 이야기를 듣고 있던 드미트리가 웃으며 말했다.
“이 시설들은 이 아이들만을 위한 게 아닙니다.”
“응? 그게 무슨 소리지?”
“2세들을 위해서 이렇게 거창하게 준비했지요. 이게 끝이 아니니까요.”
“2세?”
순간 미누스와 그레타는 잘못 들었다고 생각하며 다시 한 번 단어를 곱씹었다.
그리고 에이미가 그걸 왜 말하냐는 제스처로 급히 드미트리를 말리려는 것을 보고 이내 깨달았다.
“2세?”
“지금 이 녀석들을 번식시키겠다는 소리야? 그게 가능해?”
둘의 당황한 음성에 에이미가 애써 표정을 관리하며 대답했다.
“일단 시도는 해 보려고요. 될지, 안 될지는 모르죠. 오히려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봐서…….”
“가능성이 희박하진 않은데…….”
옆에 있던 드미트리가 다시 눈치 없이 중얼거리자 에이미가 애써 웃음으로 무마시켰다.
“호호. 어머.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드미트리? 할 일이 있지 않았나요?”
“음? 영주 대리께서 분명 지금 시간에는 모하임 전하를 모셔야 한다고 시간을 비워 두라고…….”
“잠시만 저 좀 따라와요. 아! 전하께서는 여기 있는 다른 녀석들도 한번 살펴보심이 어떻습니까? 모두 각자의 매력이 있는 아이들이라서 느낌이 다 다를 거예요.”
“하하! 그렇게 하지. 굳이 그렇게 숨기지 않아도 상관없는 일인데 고생이 많아.”
미누스가 이해를 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허락하자 에이미는 다급하게 드미트리를 끌고 갔다.
“저 말이 사실일까, 오빠?”
“글쎄. 연기를 하는 거라면 어색하다고 할 수도 있고. 실제라면 뭔가 노리는 게 있었던 거겠지. 아무튼 아드리아스의 동생인 만큼 방심할 생각은 없어.”
말을 하는 도중에 하늘이 점차 어두워졌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맑았던 터라 미누스와 그레타는 자연스레 고개를 올려다보았다.
“어……?”
“일식이라…….”
검은 태양이 대지를 굽어살피고 있었다.
* * *
탑은 한창 등반 붐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 원인은 올해 새로 들어온 신입들로 인함이었다.
“이야! 15층 클리어다!”
“좋아. 이대로 16층도 진입하자고!”
제이크 일행도 그중 하나였다.
작년에 입장한 제이크 일행은 10층에서 한 명의 동료를 잃고 전의를 상실한 탓에 등반이 더뎠었다.
하지만 탑에 휘몰아친 등반 열풍은 그런 제이크 일행마저 등반에 합류하게 만들었다.
[15층…… 지직.]
“응? 이거 왜 이래?”
자축하던 제이크가 갑자기 일그러진 메시지를 확인했다.
순간 잘못 본 건 줄 알았으나 메시지는 여전히 일그러져 있었다.
[15……1……159377105702295610……]
“뭐, 뭐야! 이거 왜 이러는 거야?
제이크의 외침은 공허했다.
그제야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제이크가 시선을 돌렸을 때는 주변에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다.
“어? 다 어디 간 거야? 팡! 그레고리! 케일!”
주륵.
대답 대신 들려온 알 수 없는 소리에 제이크가 시선을 돌리자 그곳에는 메시지 창이 있었다.
메시지에 알 수 없는 기호가 가득 차더니 이내 검은 액체와 같은 것이 현실로 흘러넘치기 시작했다.
“뭐, 뭐야! 탈출! 등반을 그만하겠다!”
제이크의 외침은 아무런 응답을 받지 못했다.
대신해서 들려오는 건 점차 늘어나는 검은 액체의 질척거리는 소리.
“씨발!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씨발?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누, 누구야!”
[“누, 누구야?”]
검은 액체가 서서히 형상을 갖추며 일어나기 시작했다.
마치 인간과 비슷한 형상.
그러나 이목구비도 없었으며 몸 전체가 밋밋하기만 할 뿐이었다.
“몬스터?”
[“몬스터?”]
제이크는 일단 들고 있던 철퇴를 휘둘러 내리찍었다.
“죽어!”
[“죽어?”]
퍼억!
검은 액체가 사방으로 비산했다.
하지만 인간의 형상을 갖춘 검은 무언가는 쓰러지지 않았다.
[“아, 아. 인간. 아.”]
“이익! 죽어라!”
퍼억! 퍼억!
주르륵.
[“아, 음, 아. 인간. 대답.”]
“도, 도대체 넌 뭐야! 왜 공격이 통하지 않는 거야! 내 동료들은 어디 있어!”
[“인간. 태양은 살아 있나.”]
“뭐?”
[“태양. 살아 있어?”]
“그게 대체 무슨 소리…….”
[“아음.”]
검은 인간 형상은 갑자기 기형적으로 뒤틀리더니 순식간에 거대해진 머리로 제이크를 집어삼켰다.
콰직!
제이크였던 것이 두 다리만 처량하게 남은 채 바들바들 떨었다.
[“쩝, 쩝. 태양. 살아 있어.”]
제이크를 삼킨 검은 인간은 이내 제이크의 외형으로 변해 갔다.
제이크의 지식도 흡수한 검은 인간은 이내 시선을 위로 올렸다.
“관찰자도 살아 있어. 하하.”
소름 돋는 미소를 지으며 이제는 제이크가 되어 버린 무언가가 말했다.
“등반을 중단하겠다.”
우웅.
빛에 휩싸인 무언가는 1층으로 전송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