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 특성으로 최강 네크로맨서 (252)
준비
[29층: 미궁의 입구 클리어]
디에네는 눈앞에 뜬 문구를 확인하며 두 주먹을 움켜쥐었다.
‘드디어…….’
탑에 입장한 지 한 달.
일주일이라는 적응 기간이 있었음에도 빠르게 등반에 성공했다.
디에네는 기쁜 마음을 억누르고 시선을 돌려 함께 29층을 돌파한 동료들을 보았다.
안타깝게도 3명의 동료가 목숨을 잃었다.
그중 둘은 3년 차 로들렌 출신이고 한 명은 수인족이었다.
29층을 도전할 만한 신입은 없었기에 급조된 파티였지만 결국 어찌어찌 해내는 데 성공했다.
“역시 알븐 가문의 영애다운 실력이십니다! 감사합니다!”
“드디어 29층을 돌파했다! 이제 난 탑을 탈출할 거야!”
몇몇 이들은 벌써 몇 년 동안이나 29층에 막혀 있었기에 그 기쁨이 남다른 기색이었다.
디에네는 조용히 그 모습을 지켜보다 등반을 계속할 거냐는 메시지를 거절했다.
우웅.
1층으로 돌아오자마자 팀원이었던 로들렌 세력 인원들이 에워쌌다.
“디에네 양! 이번 등반은 가히 디에네 양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감사한 마음을 어찌 표현해야 할지…….”
“모두가 함께 힘을 합쳐서 가능했던 거라 제 덕분이라 하시면 곤란하네요.”
“아닙니다! 디에네 양의 그 적절한 마법들과 판단이 아니었으면 모두 전멸했을 겁니다!”
실제로 그의 말이 맞았지만 디에네는 그저 어색하게 웃어 줄 뿐이었다.
1층으로 돌아온 파티원들은 디에네에게 뒤풀이를 권했다.
하지만 더 이상 엮였다가는 괜한 책임감으로 인해 계속 함께해야 할까 두려웠던 그녀는 뒤풀이를 거절하고 곧장 어디론가 향했다.
‘지금쯤이면…….’
29층, 단 한 층만 클리어했기에 아직 날이 저물 시간은 아니었다.
그녀는 곧바로 중원 세력의 영역으로 걸음을 옮겨 새로 지어지고 있는 건물로 다가갔다.
“음? 로들렌? 케이레스?”
“로들렌이에요. 그것보다 혹시 아드리아스 크롬웰 어디 있는지 아시나요?”
“아아, 그 공자님 때문에 오셨군! 저 안쪽에 남궁세가의 장원에 있을 거요.”
인부의 말에 감사의 인사를 전한 디에네는 이내 넓은 저택에 도착했다.
저택은 언젠가 탑을 등반 경험이 있는 귀족들이 지은 집에서 몇 번 보았던 양식이었다.
‘나쁘지 않네.’
기와지붕이라고 했나?
처마의 모양새나 음각이 새겨진 무늬들이 꽤 아름다웠다.
그녀가 장원 근처에 다가서자 대문을 지키고 있던 문지기가 말했다.
“디에네 알븐 아가씨군요. 좋은 날입니다.”
“절 아시나요?”
“제 역할이 문지기이다 보니 명성 있는 분들은 외우고 다닙니다.”
직업 정신이 투철한 문지기의 말에 살짝 감탄한 디에네가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아드리아스 크롬웰하고 비비안 벨로칸이 이곳에 있을까요?”
“예. 지금 주인님께 보고를 올리러 갔으니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언제 또 보고를 하러 간 건지도 알 수가 없었다.
디에네로서는 이런 중원의 양식들이나 문화가 신비로워 보일 뿐이었다.
잠시 후 문지기가 마치 누군가의 말을 들은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문을 열며 길을 비켜 주었다.
“들어오시죠.”
안쪽으로 들어가자 굳세지만 단아한 느낌의 침엽수들이 자연스럽게 주변을 장식하고 있었다.
로들렌에서 보아 왔던 절제되고 인공적인 아름다움과는 상반된 느낌.
곧이어 누군가가 다가와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해 왔다.
“어서 오십시오.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작은 소녀였다.
하지만 그 기도는 상당했기에 그녀도 탑의 등반자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녀의 뒤를 따라 주변 풍경을 둘러보며 걷자 어느새 후원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곳에는 아드리아스와 비비안이 누군가와 마주 보고 선 채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와…….”
디에네는 순간 자신의 입에서 나온 감탄이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가 급히 입을 다물었다.
그만큼이나 후원에 있던 남자의 외모는 놀라웠다.
‘어떻게 나보다 피부가 깨끗한 거 같지?’
완벽한 외모를 자랑하는 남자는 이내 디에네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손님이 오셨군.”
저 사람이 남궁일영…….
디에네는 가끔 비비안이나 아드리아스를 만나면 전해 들었던 남궁일영에게 묘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다.
비록 기사가 아니기에 그녀의 깐깐한 기준에서는 벗어났지만, 그 외모나 실력에 대해서는 귀가 닳도록 들었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로들렌에서 온 디에네 알븐이라고 합니다.”
“남궁세가의 차남…… 남궁일영이다.”
차남이라고 말하는 그의 말투가 어딘가 어색했다.
사실 그녀도 얼핏 들었던 소문으로는 남궁일영은 이미 탑에 들어온 지 50년 가까이 되었다는 것.
차남이라고 불리기에는 꽤 긴 세월이 지났음이 분명했다.
‘그런데도 저런 외모…….’
종종 오러 마스터 중에도 비기를 습득하는 순간 젊어진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게 실제인지는 고사하더라도 남궁일영의 외모가 비현실적인 것은 분명했다.
“제가 방해를 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네요.”
“어차피 대화는 여기까지만 하려고 했다. 볼일이 있는 것 같으니 난 물러나지.”
말릴 틈도 없이 뚜벅뚜벅 걸어 나가는 남궁일영을 모두가 돌아봤다.
집주인이 손님들을 위해 자리를 비켜 주는 상황이 되자 어색해진 분위기 속에서 디에네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저분이 지금 최고층 등반자시지?”
“아마 40층일 겁니다.”
“파티원이 없어서 못 올라간다니 아이러니네.”
40층 등반자는 남궁일영밖에 없었다.
그가 더 등반하려면 같은 층수의 등반자가 필요했지만 대부분 그 전에 보상을 받고 나가는 것을 선택하기에 일어난 일이었다.
“저희는 더 올라갈 겁니다.”
“파티원이 있다면 불가능하지도 않겠지.”
디에네도 고개를 끄덕이며 부정하지 않았다.
그만큼 현재 자신의 상태, 그리고 아드리아스와 비비안의 실력을 믿고 있었다.
“저희를 찾아왔다는 건 29층을 클리어했다는 의미겠죠? 일단 축하드립니다.”
“고마워. 30층은 내일부터?”
“휴식이 필요하시면 더 쉬셔도 되고요.”
“아니. 내일부터 바로 가능해.”
전의를 태우는 디에네를 보며 아드리아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드리아스나 비비안도 근 한 달 가까이 등반을 멈춤으로써 몸이 근질거리던 참이었다.
“30층은 보스가 나오는 층입니다. 미리 준비를 해야 돼요. 지금부터 상점가를 좀 둘러보죠.”
“그렇게 하자.”
“그리고 파티원이 한 명 더 있거든요? 지금 당장 같이할 건 아니지만 인사를 미리 하러 가려고 하는데 괜찮으신가요?”
“저번에 말한 이모탈?”
“예. 가넷이라고 합니다.”
“그런 유명한 분을 용케 꼬드겼네.”
“제가 누굽니까.”
뻔뻔하게 말하는 아드리아스를 보면서도 디에네는 딴지를 걸 수가 없었다.
아드리아스 크롬웰.
지금 생각해 보면 신기한 일들투성이였다.
백작의 자제라는 신분으로 아카데미에 간신히 입학한 별 볼 일 없던 사내.
마법의 재능도 재능이지만 노력하는 모습조차 보이지 않았던 한심한 인간.
‘그게 벌써 3년 전인가?’
그랬던 사람이 지금은 무려 새로운 기원을 찾아서 논문까지 작성하고 있었다.
게다가 검을 휘두르는 모습은 마법사로서 신선하기까지 했다.
“가넷을 먼저 만나는 게 좋겠습니다. 필요한 것들을 살 때 도움이나 조언을 받을 수도 있으니.”
“그러자.”
“응.”
변한 모습이 오히려 보기 좋았다.
디에네는 그리 생각하며 둘의 뒤를 따라 움직였다.
* * *
“한 달 반 만에 36층이라…….”
케이레스 세력의 관리자인 조단은 다른 세력의 우두머리들과는 다르게 무력이 강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관리자의 자격으로 탑에 입장한 그는 바깥세상에서부터 직위가 임명된 존재였다.
“지금까지의 기록들을 확인해 봐도 미친 속도군. 이번 신입들이 그 정도로 강하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아무래도 탑에 대한 정보를 철저하게 학습하고 들어온 인원들 같습니다.”
“하긴. 남궁일영 같은 자는 게을러서 천천히 올라갔던 거니 기간이 빠른 건 아무 의미가 없나. 그렇긴 해도 기대가 되는 속도긴 하군. 애초에 30층까지도 올라간 인원이 몇 없으니 말이야.”
“아무래도 다음 등반부터는 가넷과 함께 할 것 같습니다.”
“더욱 기대가 크군. 어쩌면 남궁일영의 40층 기록을 깬다거나?”
말은 이리했지만 조단은 큰 기대가 없었다.
애초에 탑을 열렬히 공략하는 자들과 자신은 서로 다른 길을 걷는 자들.
“빠르게 공략한다는 의미는 결국 빠르게 퇴장하길 원한다는 의미겠지요.”
“그래. 우리랑은 크게 상관이 없군. 그래도 탑에 거주하는 이상 신경은 쓰고 있어야겠지.”
이번 신입들은 유례없는 기록들을 세우고 있었다.
특히 지난번에 있었던 남궁일영과 신입들의 전투는 아직까지도 거리에서 회자될 정도.
‘그리 아끼던 건물까지 직접 박살 낼 정도라니…….’
그는 잡생각을 멈추고 보고를 올리는 수하에게 물었다.
“그래서 제안은 해 봤나?”
“정중하게 거절당했습니다.”
“그렇겠지.”
유례없는 등반으로 신입들을 노리는 등반자들이 많았다.
조단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 파티원에 케이레스 세력의 인원들을 권유했지만 받아들여질 거라는 생각은 어차피 안 했다.
“그나저나 묘하군. 로들렌에서 와 놓고 정작 함께 지내는 건 룬의 가넷과 중원의 남궁일영이라니. 줄을 아주 잘 잡았어. 덕분에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고 있잖나.”
“그들에게 줄을 대면 좋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죠. 확실히 보통 인물들은 아닙니다.”
“혹시라도 녀석들이 등반을 멈추고 탑에 거주하게 된다면 골치가 아파지겠어.”
조단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는 듯 몸을 떨었다.
그리고 지금쯤 탑을 등반 중일 그들을 생각하며 입구가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높은 건물의 창가에서 내려다보이는 공터에는 오늘도 많은 인파가 서로의 목적을 가지고 사람들을 모으고 있었다.
“같은 등반자라고는 생각되지도 않는군.”
어쩌면…….
조단은 갑자기 떠오른 생각에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신입들이 대단하다고 해도 탑을 정복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상상이었다.
“그런데 조단 님.”
“뭐.”
“그들이 40층에 올라서면 결국 남궁일영도 함께 등반할 수 있는 거지 않습니까? 물론 지금도 낮은 층수를 함께 들어가는 게 가능하지만 남궁일영이 굳이 가이드를 할 것 같지는 않고…….”
“녀석들이 40층까지 간다면……. 가능성이 아예 없는 말도 아니라 기가 막히는군. 하필이면 남궁일영과도 사이가 좋아 보이니 말이야.”
“만약 그렇게 된다면, 남궁일영도 결국 탑을 졸업하게 되는 거 아닙니까?”
“하하! 그렇게 되면 탑의 판도가 바뀌겠군. 생각해 보니 가넷도 같이 나가는 거 아니야? 그러면 정말 대사건이야!”
조단은 일부러 과장되게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 웃음 뒤에는 등을 타고 오르는 소름으로 점철이 되어 있었다.
“이번 신입들은 정말 우습게 볼 게 아니야. 앞으로 사람을 더 배정해서 일거수일투족을 보고하도록. 아! 남궁일영은 최대한 주변 인물들로부터 정보를 수집하고. 혹시나 탑을 다시 등반할 생각이 있는지 등등.”
“예? 지, 진심이십니까?”
“나도 웃으면서 넘기려고 했지만 곱씹어 보니 보통 사안이 아니야. 가넷은 이미 그 신입들과 함께하기로 약속된 게 소문이 파다하지. 여기에 남궁일영까지 붙는다면?”
“불, 가능한 일은 아니겠죠.”
“그러니까 더 집중해서 살펴라. 아니, 이 김에 등반 인원들을 감축하고 감시 인원들을 대폭 늘려야겠어. 생각해 보니 최근 케찰 녀석들의 움직임도 이상하다고 하지 않았나?”
“그렇습니다.”
“놈들도 아마 우리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뭔가를 준비하는 걸 수도 있어. 특히 칸이나 차강제르는 살필 때 유의하도록.”
“알겠습니다.”
수하도 굳은 얼굴로 명을 받고 방에서 나갔다.
의식의 흐름에 따른 갑작스러운 판단과 명령이었지만 조단은 자신의 감을 믿었다.
그가 무력이 없음에도 이 탑에서 한 세력의 우두머리 역할을 할 수 있는 건 이러한 직감과 판단력 덕분이었다.
“어쩌면…… 그럴 리가…….”
그런 그에게 조금 전부터 자꾸만 떠오르는 한 가지 가정이 머리에서 떠나지를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