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9화. 아드리아스의 마법 >
묘한 정막이 흐르는 가운데 크라이슨이 입을 열었다.
“함정인 걸 알고 제 발로 찾아왔다고? 웃기는군. 그런 것 치고 이미 넌 빠져나갈 곳 없는 쥐새끼다.”
“제가요?”
슬쩍 주변을 둘러보자 과연 꽤 강해보이는 사람들이 23명이나 자리하고 있었다.
전부 탑에서 꽤 오랜 시간을 지낸 정예의 느낌이었다.
기본적으로 등반 중일 때는 시간이 느리게 흐르기에 탑에서 오래 생활하면 실력이 늘 수밖에 없었다.
수련 장소로 알맞춤이라고 할 수 있지.
“크라이슨. 당신 말대로 함정인 걸 알고 왔다면 그건 무슨 의미일까요?”
“······.”
“슬슬 불안해지십니까? 왜 제가 멀쩡한지, 그리고 오러 마스터에 근접한 당신을 두고도 왜 겁먹은 기색이 없는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다른 세력을 부른 거냐?”
“그럴 리가요. 이런 치부와 같은 일을 다른 곳에 보여줄 수는 없죠.”
마력이 꿈틀거렸다.
금방이라도 뛰쳐나갈 듯 움직이는 마나를 느끼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지금이라도 사과한다면 봐드릴 용의는 있습니다만.”
“되도 않는 허세를 부리고 있군. 내가 속을 줄 아나? 독은 어떻게 해독한 건지 몰라도 나와 이 인원들을 혼자서 뚫고 나갈 수는 없다.”
“당신이 세운 함정의 패착은······.”
스릉--
새하얀 검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당신이 오러 마스터가 아니었다는 거죠.”
“죽여라!”
“이야아!”
순식간에 달려드는 가장 가까운 적을 향해 검을 뿌리듯 휘둘렀다.
동시에 마법을 캐스팅해 내가 검을 휘두르지 않은 방향으로 대리석 바닥을 솟구치게 만들었다.
콰앙!
건물이 흔들리며 충격이 전해졌다.
일단 검과 함께 통째로 베어진 적을 하나 걷어내고 그대로 달려 나가 눈앞에 보이는 또 다른 적을 공격했다.
그 와중에도 쉴 새 없이 마법을 캐스팅하며 보조 및 공격을 지원했다.
콰드드득!
콰가가각!
“도망치지 마라, 아드리아스 크롬웰!”
“각하라고 부르셔야죠.”
머리가 과부하가 걸릴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수많은 적들, 그리고 검과 동시에 사용하는 마법까지.
만약 내 검술 재능이 천재가 아니었으면 검을 휘두르기 벅찼을 것 같았다.
나는 얌생이처럼 크라이슨만 피해서 요리조리 그의 수하들만 공격해나갔다.
마법으로 방해받는 크라이슨은 따라잡았다 싶을 때쯤 다시 멀어지는 나를 보며 이를 갈았다.
“이 쥐새끼 같은 놈이!”
“곧 끝납니다. 그때까지 기다려주세요.”
내 말대로 식당에 들어왔던 그의 수하들은 점차 수가 줄어들고 있었다.
그제야 내 실력을 눈치 챈 몇몇 인물들은 우물쭈물하며 눈치를 살피다 결국 도망치지도 못하고 내 칼에 시체가 되었다.
“으아아아!”
째앙!
콰아아아앙!
드디어 크라이슨의 검이 내게 닿았다.
그의 신체에 걸맞은 기다란 바스타드 소드는 엄청난 압력으로 나와 갈락슈르를 밀어 눌렀다.
“잡았다, 이놈!”
아무래도 흥분한 탓에 내가 일부러 잡혀준 것도 눈치를 못 챈 듯싶었다.
나는 가까이 붙은 크라이슨을 향해 천천히, 그러나 또박또박 말했다.
-멈춰라.
“크읍?”
마력이 내 호흡과 언어, 의지를 통해 배열되고 이내 만들어진 술식을 통해 발현이 되었다.
쑤욱 빠져나가는 마나의 양은 지금까지 그 어떤 마법을 사용했을 때보다도 많이 들었다.
하지만 그 효과만큼은 압도적.
“······아, 아, 아.”
크라이슨이 숨이 막히는 듯 공기가 새는 소리를 냈다.
나는 그런 그의 귀에 가까이 다가가 속삭였다.
“신기하죠? 이게 제 오리지널 마법입니다.”
오리지널 마법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크라이슨의 동공이 커졌다.
제어의 기원을 통한 내 첫 오리지널 마법.
‘언령 마법’이었다.
모든 환경과 상황을 언어와 의지를 통해 제어, 통제하는 미친 마법.
그러나 그 조건에 따라 들어가는 마나의 양이 미친 듯이 널뛰기를 하는 바람에 범인은 절대 사용하지 못하는 마법이었다.
나는 움직이지 못하는 크라이슨의 어깨를 갈락슈르로 찔렀다.
가볍게 찔린 그의 어깨 부위가 붉게 물들어갔다.
“당신을 죽여도 되지만 그렇게 되면 탑 안의 세력도가 엉망이 되겠죠.”
“끄, 윽.”
“왜 함정인 줄 알면서도 왔냐고요? 경고하기 위해 온 겁니다. 어차피 당신과 다시 마주칠 일은 없을 테지만 혹여나 수작을 부릴 생각하지 말라고요.”
내 언령 마법의 지속시간이 곧 끝났다.
마법이 풀린 크라이슨은 그대로 주저앉아 숨을 헐떡였다.
“헉! 헉!”
“대답은요.”
“예, 예! 다, 다시는 크로, 크롬웰 각하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겠습니다.”
“좋습니다.”
죽이면 괜스레 더 피곤해지는 녀석이었기에 살려뒀다.
오히려 내 실력을 알았으니 날 귀찮게 만들 만한 일들은 알아서 먼저 처리해줄 거다.
“아, 그리고 절 죽이라는 명령을 가지고 온 신입들. 어떻게 처리하실 겁니까?”
“제, 제가 알아서 깔끔하게 처리하겠습니다. 어차피 황궁에서는 탑에 일어난 일을 알 길이 없으니까요.”
“역시 머리 회전이 빨라서 좋네요. 살려둔 보람이 있어요.”
크라이슨의 눈은 오로지 내 입을 향해 있었다.
그도 오러 마스터 근처의 무인이라 알 것이다.
그가 검을 휘두르는 것보다 내가 입을 여는 게 더 빠르다는 것을.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식사는 충분히 맛있었어요.”
“드, 들어가십시오. 각하.”
“결과는 언제쯤 보고 받을 수 있을까요?”
“내일까지! 내일 밤에 바로 전달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어차피 탑에 있는 이상 강한 사람이 임자였다.
이곳은 제국이 아니었고 황궁에서 지원해줄 수 있는 것도 없었다.
그러니 크라이슨이 나를 따르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
이곳에서 세력의 왕놀이를 계속하고 싶다면 내 말을 거스를 수는 없을 거다.
“나쁘지 않아.”
실전에서 처음 사용해보는 내 오리지널 마법은 만족스러웠다.
물론 아직 더 연구할 필요가 있었고, 오리지널 마법을 고작 하나만으로 만족할 생각은 없었기에 더 열심히 해야 하지만 당장은 합격이었다.
난 더 강해지고 있었다.
**
크라이슨을 만난 이후로 나와 비비안은 열심히 탑을 등반했다.
10층 최단 기록 메시지로 인해 소란스러울 법도 했지만 크라이슨이 알아서 교통정리를 해준 덕분에 편하게 왔다 갔다 할 수가 있었다.
그렇게 일주일 만에 우리가 도착한 층은 무려 29층.
안타깝게도 10층 이후로는 이렇다 할 업적이나 히든 피스가 없었지만 내 예상보다 빠른 속도에 만족하고 있었다.
‘근데 너무 빨랐다.’
30층 이상부터는 둘이서는 부족했다.
1인 제한 던전은 애초에 조건이 1인이니 상관없었지만 파티를 이뤄야하는 던전은 아무래도 두 명이서는 버거워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디에네를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아직 적응기간이라며 룬 세력에 잡혀있던 사이 나와 비비안은 벌써 29층까지 올라와버렸다.
“비비안.”
“응?”
“조금 쉴까요?”
내 말이 의외였는지 비비안의 눈이 커졌다.
그리고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걱정스러운 눈초리로 나를 바라봤다.
“왜? 무슨 일 있어? 힘들어?”
“아니요, 아니요. 그게 아니라 너무 빠른 것 같아서요. 조금 쉬엄쉬엄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드리아스가 쉬엄쉬엄?”
내가 뭐 이상한 말을 했나?
다시 한 번 두 눈이 커진 비비안을 보자 내가 그동안 너무 달린 건 아닌가 성찰을 하게 됐다.
“사실 30층 이상부터는 저희 둘만으로는 힘드니 디에네도 파티에 넣으려고 했습니다. 근데 디에네는 지금 저곳에서 등반을 못하고 있으니 조금 기다려주려고요.”
“아아, 이해했어.”
비비안은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도대체 뭘 혼자 놀라고 납득하는지 모르겠는데.
알아들었다니 상관없겠지.
“그럼 뭐할까.”
“쉬죠. 그동안 쉬지 않고 등반했으니까.”
“······구경 갈래?”
“구경?”
“응.”
주변을 산책하자는 이야기인가.
확실히 탑의 1층은 그 자체만으로 볼거리가 많았다.
각 구역 별로 나뉜데다가 풍경도 각각 달랐다.
게다가 각 세력의 영역 별로 또 분위기나 모습이 달라지기에 확실히 볼맛은 있었다.
‘마침 필요 없는 아이템도 꽤 얻었으니까 처분을 좀 할까.’
지난 일주일동안 전리품 획득 버프로 아이템을 좀 얻었다.
그러나 확률 자체가 너무 짰기에 그리 많이 얻지도 못했고 그렇게 얻은 것들 중에서도 나나 비비안이 사용하지 못하는 것들도 더러 있어서 정리가 필요했다.
“가죠.”
“좋아.”
비비안은 잠시 기다리라며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왜 그러지 싶던 찰나 그녀는 꽤 화사한 옷을 입고 다시 나타났다.
“어때?”
“그런 옷은 언제 구한 거예요?”
“가넷이 줬어.”
인형, 아니 이모탈은 기본적으로 무성이라 성별이 따로 없었지만 생김새나 취향은 짐작이 가게끔 만들어져 있었다.
가넷은 여성적인 외모에 말투나 행동, 그리고 취향도 인간으로 따지면 여성스러웠는데 비비안하고 꽤 잘 맞는 눈치였다.
‘비비안이 생각보다······.’
······인싸란 말이지.
가넷이 준 옷을 입은 비비안은 아름다웠다.
워낙 예쁘기도 했지만 옷이 화사해지니 인물이 사는 느낌이었다.
그동안 칙칙한 가죽 갑옷이나 경갑만 입어서 그런지 대비되는 느낌도 있었다.
“가넷이 보는 눈이 좀 있네요.”
“예뻐?”
“예, 엄청 예뻐요.”
내 말에 활짝 미소 지어 보이는 비비안을 보자 이런 게 행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어렴풋하게 머리를 스쳤다.
그러나 그런 행복이 느껴지자마자 곧바로 불안이 다가왔다.
행복하기에 오히려 불안해진다는 아이러니.
가진 게 없을 때와 있을 때의 차이였다.
‘원죄가 말한 초월자도 아직 무소식이고.’
아직 괜찮겠지?
나와 비비안은 일단 디에네가 있을 2구역으로 갔다.
전날에 드디어 적응 기간이 끝나고 로들렌 세력으로 편입된 디에네는 곧장 황금 도장을 이용할 수 있는 2구역으로 갔다.
아직 보지는 못했지만 로들렌 세력의 영역이 아닌 중립 지역에 간 걸 보면 아무래도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워낙 등반하는데 정신이 팔린 탓에 신경을 못써줬다.
“음?”
그러나 디에네를 만나기 전에 먼저 마주친 건 의외의 인물이었다.
“오랜만이군.”
남궁일영이 양 옆으로 여자를 낀 채 우리와 마주쳤다.
“예, 오랜만이군요.”
“오늘은 웬일로 등반하지 않았군. 한계인가?”
“마치 매일 저희가 등반을 했다는 걸 안다는 식으로 말씀하시는군요.”
“알고 있다. 매일 보고를 받지.”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염탐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며 습관적인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자네들은 어찌 그리 열심히 살 수 있는 거지? 솔직히 말하면 이해가 안 돼.”
“남궁일영 공자님께서는 지금의 삶에 만족하시는 모양이시죠?”
“왜 그렇게 생각하지?”
“그렇지 않다면 열심히 사는 것에 의문을 품지 않았을 테니까요.”
“흐음, 내가 지금의 삶에 만족해서 열심히 살지 않는 거라 본 건가? 일리는 있군.”
그가 걸음을 한 발자국 뗐다.
그러자 나는 나도 모르게 뒤로 한 발 물러났다.
몸이 자연스레 움직인 거라 살짝 당황했다.
“역시······.”
그런 내 모습을 본 남궁일영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입가에 새겼다.
“보인 건가?”
“아······.”
보이냐고 말하자 깨달을 수 있었다.
단순한 한걸음.
그러나 그 한걸음에 무수한 무리(武理)가 담겨있었다.
그리고 옆을 보니 비비안은 물러난 게 아닌 오히려 사선으로 앞서 나간 형태로 언제든 남궁일영을 공격할 상태가 완성되어 있었다.
“그대는 내게 이미 죽었다.”
그가 비비안을 눈짓하며 말했다.
그리고는 내게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자네는 살았지. 꽤 하는 군.”
그는 그리 말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정도 재능들이면 나와 같을 줄 알았다. 아직 내 수준까지 도달하지 않아서인가? 솔직히 삶이란 건 검과 달리 잘 모르겠군. 열심히 사는 이유란 무엇인가.”
그는 다시 한숨을 한 번 내쉬고는 나와 비비안을 봤다.
“오늘은 시간이 없지만 혹시 내일 시간이 되나?”
“예.”
“미리 말해두겠지만 이건 단순한 호기심의 발로야. 딱히 대단한 것도 아니고.”
그는 살짝 뜸을 들이더니 우리에게 제안했다.
“그대들의 검을 조금 보고 싶군. 당연한 소리지만 나도 보여주지. 어떤가?”
무협이라는 세계관에 대해 잘 모르는 나조차도 남궁세가라는 이름은 어디선가 들어봤을 정도로 흔하고 유명했다.
그런 가문의 천재가 서로의 검을 보여주자는 제의를 당연히 거절할 수 없었다.
“전 좋습니다.”
“나도 상관없어.”
“그렇다면 결정됐군. 내일 지금과 같은 시간, 5구역에 있는 홍월루로 와라.”
남궁일영은 그 말을 끝으로 함께 온 여인들과 같이 우리를 지나쳤다.
그와 같이 온 여인들은 놀란 감정을 숨기지 않으며 나와 비비안을 뚫어지게 쳐다보다 서로 재잘댔는데 남궁일영에게는 귀찮게 하지 않으려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운이 좋은 건가?”
보면 알다시피 남궁일영은 지독한 나태함으로 손을 쓸 수 없는 인물이었다.
적어도 게임에서는 그랬기에 동료로 삼을 수도 없었고 어떻게 써먹을 도리가 없는 캐릭터였기에 알고 있는 정보도 적었다.
묘한 인연이 이곳에서도 싹 트고 있었다.
< 249화. 아드리아스의 마법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