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1화. 그림자 송곳니 그리고 고용 >
사실 새끼가 있는지 없는지 찾는 건 쉬운 일이었다.
가죽을 벗겨낸 그림자 송곳니를 언데드로 부활시켜 새끼가 있던 곳으로 안내하라고 하면 되니까.
녀석을 두 번 죽이는 것과 같은 잔인한 일이지만 솔직히 말하면 양심의 가책은 손톱만큼 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비비안이 옆에 있으니······.’
비비안이 내 정체를 짐작하고 있다고는 해도 대놓고 보여주는 건 또 별개의 문제였다.
우선은 그림자 송곳니의 시신을 땅에 묻고 표시를 해두었다.
워낙 거대한 녀석이라 지금 당장 들고 갈 수는 없었고, 나중에 시간이 날 때 다시 찾아와 언데드로 만들 생각이었다.
“이쪽이야.”
비비안이 냄새를 추적하며 나를 안내했다.
지금 생각하는 거지만 미친 후각이었다.
설마 조상 중에 수인이 있다거나?
“여기 근처인 것 같아.”
그녀가 안내한 곳은 다른 곳과 그다지 다를 것 없는 숲 속이었다.
조금 깊어졌다는 걸 제외하고는 아무 특징도 없었기에 비비안은 곤란한 표정으로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이제 내가 나설 차례네.
“찾았다.”
그림자 송곳니는 흔적을 없애는 특징이 있었지만 생물인 이상 무언가를 배출해야만 했다.
그러나 배출되는 것도 흔적으로 보이지 않게 위장시키는 습성이 있었는데 오히려 그 점 때문에 찾을 수 있었다.
“이게 뭔데?”
“녀석의 배변입니다.”
“이게?”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식물.
하지만 그건 그림자 송곳니의 배설물이었다.
내장 구조가 어떻게 생겨먹은 건지는 몰라도 놀라운 결과물이지.
초식을 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야.
녀석의 특징을 가진 흔적은 그뿐이 아니었다.
주변을 샅샅이 뒤지자 새끼의 것으로 추정되는 흔적도 보였다.
아마 어미가 보금자리에 싸놓은 걸 이곳에 버린 것 같았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새끼를 마저 추적하기 전에 가지고 온 작은 배낭에 녀석들의 배설물을 챙겼다.
나름 귀한 포션 재료로 활용되었기에 놓칠 수 없지.
비비안의 표정이 묘해졌지만 결국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드리아스는 마법사니까.”
“나중에 이걸로 비비안에게 포션을 만들어드리겠습니다.”
“······그래.”
반응이 재밌어서 농담을 한 번 건네고 마저 보금자리를 추적했다.
그리고 찾아낸 수풀 속 땅굴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여기서 냄새가 나는데······.”
“아무래도 낚인 것 같습니다.”
늑대의 형상을 한 만큼 늑대가 가질 법한 습성도 지녔기에 아마 녀석은 여러 군데에 보금자리를 만들었을 거다.
그리고 우리를 이곳으로 유인한 건 높은 지능으로 우리를 낚은 듯싶었다.
꼬고 꼬며 자신이 죽을 수도 있는 확률까지 철저히 계산한 모양이었다.
“괜히 영물이 아니야. 영물 처음 봤는데 대단해.”
비비안이 이제 어떡하냐는 눈초리로 나를 바라봤다.
하늘을 보자 어느새 해가 중천에서 떨어지고 있었다.
“난 괜찮아.”
“그럼 더 찾을까요. 결국에는 찾긴 해야 합니다. 보통 녀석이 아니니 새끼여도 아마 혼자서 성체까지 자랄 수 있어요.”
뿌리를 뽑아야하기에 포기란 없었다.
그저 조금 천천히 가느냐, 늦게 가느냐의 차이인데 비비안은 내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가자. 내가 도와줄게.”
그렇게 다시 숲을 뒤지기 시작한 우리는 결국 두 군데의 보금자리를 더 찾았지만 새끼들의 흔적만 발견할 수 있었다.
날이 어두워지면 그림자 송곳니의 특성이 더욱 강하게 발현되기에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다음날을 기약하며 어쩔 수 없이 마을로 돌아오자 사람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주무시지 않고 기다리신 겁니까.”
“각하께서 위험한 일을 손수 해결하러 가셨는데 저희가 자고 있을 수는 없지요.”
그리 말하는 촌장의 시선은 내가 아닌 내 어깨에 들쳐 메진 그림자 송곳니의 가죽으로 향해있었다.
“서, 설마 그것이······.”
“사람들의 증언이 맞았습니다. 영물인 그림자 송곳니였어요.”
머리 없는 거대한 늑대의 가죽이 바닥에 깔렸다.
워낙 거대했기에 돌돌 말아가지고 왔는데 전부 펼치자 그 크기가 어마어마했다.
“세, 세상에!”
“정말 저런 것이 우리 마을 근처에 있었다고?”
“아이고오! 내 아들!”
감탄과 함께 피해자 가족들의 비통한 외침이 전해져왔다.
실종의 원인이 눈앞에 보이니 혹시나 살아있지 않을까 싶은 희망이 사라진 탓이겠지.
이 거대한 가죽을 보면 실종자가 살아있을 거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을 테니까.
“정말 감사드립니다, 영주님! 정말,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마을을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촌장과 사람들의 인사를 들으면서도 나는 손을 저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네? 뭐가 아직 남은 겁니까?”
“아무래도 새끼가 있는 것 같아요.”
새끼라는 말에 횃불에 비친 마을 주민들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그래도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었기에 나는 차분히 그들을 다독였다.
“걱정하지 마세요. 새끼도 처리할 겁니다.”
“여, 영주님께서 직접 하실 수고는 없습니다. 저희가 해결하겠습니다.”
마을 청년이 나서며 말했다.
그의 말에 사람들은 그제야 깨달았다는 표정으로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여태까지 저희에게 이 정도로 신경을 써준 분은 처음입니다. 새끼의 일은 저희가 직접 해결하겠습니다. 영주님을 더 이상 번거롭게 할 순 없죠.”
나라도 상관이 직접 일을 해결하겠다고 하면 부담스럽긴 하겠다.
하물며 난 이 땅 안에서만큼은 왕과 같은 존재.
곤란한 표정들이 이해가 간다.
“새끼는 제가 직접 처리하고 갈 겁니다.”
하지만 이건 맡길 수가 없는 문제였다.
일단 그들이 흔적을 찾을 수 없을 거라는 게 가장 큰 이유였고 혹시라도 길들일 수 있는 상태를 구별할 수 없다는 것도 이유였다.
내 단호한 말에 사람들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났다.
“일단 오늘은 신세를 좀 지겠습니다.”
“물론입니다! 저희 집으로 오시죠.”
가죽은 마을 사람들에게 수선을 맡겼다.
숲이 바로 옆이라 가죽을 어느 정도 다를 줄 아는 이들이 많았기에 다행이었다.
**
다음날이 되자 새벽부터 숲으로 나왔다.
전날의 기억을 되짚으며 다시 보금자리 중 하나를 찾은 나는 비비안에게 제안했다.
“12시가 될 때까지 따로 찾죠. 각자 찾는 게 더 효율적일 것 같습니다.”
“응. 만나는 장소는 여기?”
“예.”
“알았어. 이따가 봐.”
비비안은 내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한지 곧바로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그 모습이 고맙기도 하면서 왠지 나쁜 짓을 한 것처럼 미안해졌다.
“할일은 해야지.”
내가 굳이 따로 찾자고 한 이유는 전날 묻어둔 그림자 송곳니를 언데드로 부활시키기 위함이었다.
언데드 소환에는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체일수록 효과가 좋았기에 미루고 싶지 않았다.
“하필이면 머리가 잘려서······.”
무덤을 찾아온 나는 마법으로 다시 땅을 파내고 시신을 꺼냈다.
그리고는 목이 잘려진 거대한 늑대를 보며 고민했다.
그동안 네크로맨시의 수련도 게을리 했던 건 아니기에 모른이 준 마법서는 완벽하게 숙지한지 오래였다.
‘공간 확장 배낭에도 들어가지 않겠네.’
크기가 정말 무식했다.
집채만 하다고 표현해도 될 정도.
왜 남부지방에서는 전설 속 신의 사자로 표현되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원래였으면 시간을 들여서 최상의 언데드로 만들고 싶었으나 어쩔 수 없겠다.
일단은 목이 잘린 상태로는 제대로 만들 수 없었기에 네크로맨시를 이용해 다시 붙여주고 곧바로 일으켜 세웠다.
[상급 사령술 : 레버넌트 소환을 시전합니다.]
[시체 1 구가 감지됩니다.]
[상급 사령술 : 레버넌트 소환 성공]
[레버넌트(영웅) 1구를 소환했습니다.]
[일으킨 시체의 수준이 뛰어납니다. 스탯 보너스가 붙습니다.]
[일으킨 시체의 수준이 월등하게 뛰어납니다. 티어(tier)가 오릅니다. 매드 레버넌트가 됩니다.]
우두둑!
-으르르르.
가죽을 벗긴 탓에 레버넌트로 소환했다.
맨질맨질한 근육질의 늑대는 가죽이 없음에도 살색 자체가 어두워 검은 광택을 자랑했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네. 넌 이제 바둑이다.”
예상보다 상태가 좋아보였다.
나는 바둑이한테 올라타며 명령했다.
“새끼들이 있는 보금자리로 안내해라.”
-으르르.
본인에게 직접 보금자리를 안내하게 하다니 내가 생각해도 천하의 몹쓸 놈이 된 기분이다.
그래도 어쩌나. 애초에 사람을 헤치지 말았어야지.
엄청난 속도를 자랑하며 달린 바둑이가 도착한 곳은 생각보다 멀었다.
거의 인접 영지의 경계선을 넘을 정도로 깊숙한 곳이었는데 혹여나 비비안과 마주치지는 않을까 신경을 곤두세웠다.
“여기군.”
드디어 도착한 땅굴은 미로처럼 복잡했다.
하지만 이곳까지 온 이상 새끼를 찾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낑! 낑!
“이건 또 예상 못했네.”
기껏해야 1마리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무려 6마리나 되었다.
모두 눈도 뜨지 못한 채 낑낑대고 있었는데 상태가 모두 양호해보였다.
나는 바둑이의 소환을 해제하고 새끼들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여기서 만약에 녀석들이 경계하는 반응을 보인다면 길들일 가망이 없었다.
-낑!
하지만 정말 얼마 되지 않은 놈들인지 그저 허우적대며 오히려 내 품안으로 파고들었다.
그럼에도 그 크기가 상당해서 평범한 성견 크기였다.
“데려가는 것도 문제네.”
한 마리였으면 그냥 들고 가는 건데 이렇게 많을 줄 짐작도 못했다.
애초에 영물이라 불리는 개체들은 한 번에 1마리 정도가 국룰이었는데 대박이었다.
이것들을 한 번에 옮길 수는 없었기에 잠시 고민하다가 결국 사람을 부르기로 했다.
우선은 한 마리만 데려가 봐야지.
한 놈을 안아들고 비비안과 약속한 장소에 도착해서 기다리자 금세 정오가 되었다.
“아!”
오자마자 내가 데리고 온 새끼를 보며 탄성을 터트린 비비안이 두 눈을 빛내며 다가왔다.
그리고는 무릎을 조신하게 꿇으며 새끼를 만졌다.
“찾았네?”
“예, 근데 문제가 있어요.”
“무슨 문제? 죽여야 돼?”
설마 아니지? 하는 눈길로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비비안을 보니 생각보다 귀여운 걸 좋아하는구나 싶었다.
“그게 아니라 이 녀석 한 마리가 아니었습니다.”
“몇 마리?”
“여섯 마리요.”
비비안은 새끼를 품에 안으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여섯?!”
“새끼라고는 해도 덩치가 이렇게 크니 다 데리고 올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사람들을 시켜서 데리고 와야 할 것 같아요.”
“키울 수 있어?”
“예, 키울 수는 있습니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애들이에요.”
키울 수 있다는 말이 듣고 싶었는지 환해진 비비안의 얼굴이 볼 만했다.
하지만 이내 새끼를 쓰다듬던 손길이 멈추더니 걱정스럽게 물었다.
“어떻게 키워?”
“예? 그야 뭐······.”
그냥 고기 주면서 키우면 되지 않나 했지만 확실히 고민해볼 문제이긴 했다.
게임에서는 그저 시스템적으로 알아서 길러졌기에 직접 키우는 건 또 다를 수 있겠구나 싶었다.
그러다 문득 우리가 키울 필요가 없음을 깨달았다.
“키울 사람을 고용하죠.”
“영물을 키울 사람이 있을까?”
“예, 있어요.”
플레이어블 중 유일했던 소환사.
이참에 연결고리도 만들 겸 녀석을 고용해봐야겠다.
< 241화. 그림자 송곳니 그리고 고용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