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0화. 영물 >
실종 사건이 일어나는 마을은 파렌이라고 불리는 작은 마을이었다.
게임 속에서도 본 적이 없는 이름이라 아무런 정보가 없었다.
오자마자 바로 파렌으로 떠나는 나를 보며 에이미는 굳이 내가 나설 필요 없다고 했지만 이미 마음을 정한 뒤였다.
“저기가 파렌입니다.”
길 안내를 위해 따라온 영주성의 관리가 저 멀리 언덕 아래로 보이는 작은 마을을 가리켰다.
꼬박 하루 가까이 걸려서 온 탓에 조금 쉴 수 있겠나 했더니 비루한 마을의 모습에 별 기대가 되지 않았다.
도시 같은 경우 마법의 힘으로 현대와 다를 바 없는 편리함을 제공하지만 이런 외진 구석은 정말 중세 시골 그 자체였다.
“조용해.”
함께 온 비비안이 중얼거렸다.
그녀의 말대로 50가구나 될까 싶은 작은 마을은 아무도 살지 않는 것처럼 싸늘했다.
“이 마을에도 촌장이 있겠죠?”
“물론입니다. 곧바로 모셔다드리겠습니다.”
낯선 이들이 들어서자 그제야 마을 사람들이 경계심 어린 눈초리를 우리를 바라봤다.
그러자 길 안내를 맡은 관리가 호통쳤다.
“뭣들 하느냐! 이 땅의 주인이신 크롬웰 백작 각하께서 친히 방문하셨거늘 어서 나와서 무릎을 꿇어라!”
그의 갑작스런 급발진에 미리 말을 해뒀을 걸 하는 생각과 함께 뜯어말렸다.
“전 괜찮습니다. 대접을 받으러 온 게 아니라 일을 해결하러 온 거니 이왕이면 빠르게 용무만 마치고 돌아가고 싶군요.”
“알겠습니다, 각하!”
어쩐지 그는 내가 직접 사건을 해결하러 간다고 했을 때부터 존경어린 눈빛을 보내왔었는데 과한 충성심을 나타내고 있어서 곤란했다.
소란이 벌어지자 마을의 촌장이 버선발로 뛰어나왔다.
그리고는 내 정체를 듣더니 오체투지를 해왔다.
“크롬웰 각하를 뵙습니다!”
“일어나세요.”
매번 이런 경험을 해야 한다면 조금 불편하겠네.
나는 부들부들 떠는 촌장을 애써 좋게 대하며 그의 집으로 향했다.
집의 도착한 우리는 곧바로 촌장에게서 사정을 들었다.
“사실 사람이 사라지는 건 가끔씩 있던 일이었습니다. 벌써 몇 년이 되었지요.”
“몇 년이나 되었다고요?”
“그렇습니다, 각하. 대략 5년쯤인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곳이 영지 내에서도 워낙 외진 곳에 있는 마을인지라 모두들 그러려니 하며 지내왔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지 못하다는 이야기군요.”
“맞습니다. 최근 들어 갑자기 실종되는 빈도가 늘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5년 동안 이어지던 실종이 잠잠해지는가 싶더니 며칠 사이에 지금까지 있었던 실종자 수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사라졌습니다.”
5년 전부터 사라졌었다면 나비효과랑 상관이 없는 건가.
일단은 최근에 부쩍 늘었다니 확인은 해봐야겠다.
“짐작이 가는 건 없습니까.”
“그것이 참말로 묘합니다.”
촌장은 뭔가 말하기 꺼려지는 듯 망설임을 보였다.
옆에 있던 관리가 한 마디 하려고 하자 결국 내가 먼저 물었다.
“그냥 말해도 됩니다.”
“그것이······아무래도 짐승의 짓인 것 같습니다.”
“짐승?”
나도 모르게 인상이 찌푸려졌다.
그도 자신이 말해놓고 너무 하찮았다고 느꼈는지 고개를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각하. 별일도 아닌데 각하께서 직접 오시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던 지라······.”
“이해가 안 가는군요. 고작 짐승한테 이렇게 많은 피해가 발생했다는 이야기입니까?”
“사실 저도 직접 본 적은 없습니다. 다만 목격자들이 검은 털의 짐승이 주변 숲에서 보였다고 증언했습니다.”
검은 털의 짐승?
고작 맹수 때문에 내가 직접 온 거라면 진짜 닭 잡는데 소 잡는 칼을 쓴 격이다.
“검은 털의 짐승······.”
그때 나를 따라온 관리가 안색이 창백해지며 중얼거렸다.
마치 뭔가를 알고 있는 듯한 모습에 그를 바라보자 시선을 느낀 관리가 말했다.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렇게 말하니까 더 궁금해지는데요.”
“그, 그게······.”
관리가 뜸을 들일 때 촌장이 나섰다.
“제국 남부에서 전해져오는 전설이 있습니다. 검은 털을 지닌 늑대 형상의 짐승에 대한 이야기죠. 하지만 아무래도 그냥 전설이다 보니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받아들이고 보고는 올리지 않았었습니다.”
“목격자들은 지금 그 전설 속 짐승이 나타났다고 말하는 건가요?”
“그렇습니다만 귀담아 들으실 필요는 없습니다.”
제국 남부의 검은 짐승에 대한 전설.
나도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왜냐하면 실존하는 영물에 대한 이야기니까.
‘다른 영물과는 달리 길들일 수 없지만.’
정확히는 새끼 때부터 키우지 않으면 너무나 포악한 성격 탓에 길들일 수가 없었다.
이걸 알게 된 것도 소환사 플레이어블을 키우면서 얻은 귀중한 정보였다.
“일단 확인부터 해봐야겠군요.”
“각하께서 직접 나서실 예정이십니까?”
“예.”
내가 나선다는 말이 불안했는지 촌장은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내가 직접 둘러볼 거다.
게다가 진짜로 내가 생각한 영물이 맞다면 평범한 기사들로는 해결할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그 녀석도 지금쯤 제국에 있겠네.’
플레이어블 중 유일했던 소환사 캐릭터.
지금은 나도 소환사의 일종인 네크로맨서라 더 이상 유일하지는 않지만 나랑 괘를 달리하는 직종이었다.
같은 소환사라 부르기도 어색하지.
“아드리아스. 나도 같이 갈게.”
생각에 빠져있던 나를 깨운 건 비비안이었다.
당연히 그녀도 데리고 갈 생각이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무력은 현재 웬만한 네임드 캐릭터와 동급.
만약 이번 일이 내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더라도 그녀의 힘과 내 힘이면 어느 정도 대처할 수 있겠지.
“일단 목격자부터 찾아가겠습니다.”
우선은 정보 수집이었다.
**
반나절 정도 마을 안에서 조사를 하고 난 후 본격적으로 사람들이 실종된다는 숲으로 향했다.
숲은 매우 우거지고 마치 원시림처럼 울창했지만 바야트라 대수림을 겪어 본 나로서는 감흥이 덜했다.
“아무것도 없어.”
거의 2시간 가까이 숲속 깊은 곳까지 들어가 샅샅이 뒤졌지만 흔적 하나 나오지 않았다.
결국 비비안이 내내 조용히 있다가 한 마디 꺼냈다.
“그래서 더 이상해요.”
“왜?”
“분명 이 숲에 들어간 사람들이 실종됐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실종된 사람들의 들어갔던 흔적조차 없어요.”
“아!”
이 정도로 깔끔하게 흔적이 없으면 오히려 흔적을 남긴 셈이다.
이미 영물에 대한 목격담을 들었기에 어느 정도 의심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녀석만이 보이는 특징이 나오자 점차 확신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 짐승이 맞을 수도 있겠어요.”
“검은 털?”
“예.”
“아드리아스는 모르는 게 없네.”
“공부를 많이 했거든요.”
시답잖은 대화를 나누며 더욱 깊숙이 숲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내 감각이 경종을 울렸고 비비안이 내 쪽으로 몸을 던졌다.
‘어스 월.’
늘어난 마법실력은 의지만으로 발현되었기에 검을 뽑는 것보다 빠르게 대처가 가능했다.
순식간에 땅이 일어났고 무언가 둔탁하게 부딪히고 사라졌다.
“아드리아스!”
“괜찮습니다.”
어느새 내 곁에 다가온 비비안이 검을 뽑아들며 주변을 경계했다.
나를 공격한 상대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지 오래였다.
“그 짐승이 맞습니다. 그림자 송곳니.”
영물 중 하나인 그림자 송곳니.
이름처럼 흔적도 남기는 법이 없었고 잔혹하기 짝이 없는 늑대였다.
그나저나 진짜로 이곳에서 만날 줄은 몰랐다.
대부분의 영물들은 마경이나 오지에서 서식하는데 아무리 변두리라고 하지만 이런 곳에 있을 줄이야.
“쫓아가자.”
“쫓을 수 있다면 쫓고 싶지만······.”
진짜로 녀석이라는 게 확인됐으니 골치가 아파졌다.
영물인 만큼 귀한 녀석이었지만 길들일 수가 없으니 결국 죽여야 했는데 하필이면 사냥하기 가장 까다로운 영물 중 하나였다.
은밀한데다 신속하기까지 한 녀석을 잡으려면 결국 함정을 파놓는 게 가장 이상적이었지만 영물답게 지능이 무척 높아 웬만한 함정도 걸리지 않았다.
“쫓을 수 있어.”
“예?”
“따라와.”
비비안이 갑자기 어디론가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흔적을 없애는 특성을 지닌 그림자 송곳니를 무슨 수로 쫓는가 싶었지만 확신에 찬 움직임을 보니 왠지 모르게 믿음이 갔다.
일단 그녀의 뒤를 따라붙으며 물어보았다.
“어떻게 쫓고 있는 거예요?”
“젖비린내가 나.”
젖비린내?
마나를 이용해 감각을 끌어올려 보았지만 느껴지는 건 없었다.
난 전혀 느껴지는 게 없었지만 애초에 그녀를 믿는다고 손해 보는 건 없었기에 계속해서 따라갔다.
“음?”
비비안의 뒤를 따라가고 있자 갑자기 날카로운 살기가 전신을 찔렀다.
기척을 드러내는 그림자 송곳니에 의문을 느끼며 나와 비비안은 멈춰 섰다.
‘굳이 기척을 드러낸다고?’
그림자 송곳니는 포악한 성질과는 다르게 살기를 포함한 그 어떠한 기운도 뿜지 않는다.
말 그대로 그림자와 같이 유유히 행동하는 게 특징.
그러나 비비안을 따라가다 얼떨결에 쫓을 수 있었던 녀석은 명백하게 살기를 뿜고 있었다.
“바로 앞에 있어.”
비비안의 말을 들으며 잠시 생각하던 나는 이내 무언가를 깨달았다.
‘갑자기 늘어난 실종자 수, 젖비린내, 살기?’
아무리 생각해도 결론은 하나였다.
“근처에 새끼가 있을 것 같군요.”
“새끼?”
내 말을 알아 듣기라도 한 것처럼 보이지 않던 녀석이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 공격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 검을 뽑고 있던 우리는 늑대의 공격을 막으며 자연스레 반격을 가했다.
캉!
스걱-!
비비안의 검은 마치 광물처럼 단단한 녀석의 털에 막혔지만 갈락슈르는 부드럽게 그림자 송곳니의 앞발 인대를 훑고 지나갔다.
휘익-!
녀석은 베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날렵한 움직임을 유지하며 우리에게 다시 달려들었다.
그러나 상대가 나빴다.
찌지직--
우드드득!
아직은 미숙한 검결이 공간을 흔들었다.
막시민처럼 깔끔하게 베어내지 못하고 엉망진창으로 흔들린 공간은 그림자 늑대를 그대로 곤죽으로 만들었다.
“아아······.”
비비안이 감탄을 터트리며 나를 지켜보았고, 나는 멋쩍게 갈락슈르를 다시 집어넣었다.
“연습할 때와 실전은 다르군요.”
“아니야. 대단했어.”
잠시 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지만 우선은 죽은 그림자 송곳니가 먼저였다.
아니, 녀석은 끈질긴 생명력으로 찌그러진 채 숨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 모습이 조금은 안타까워 다시 검을 뽑으려하자 비비안이 말했다.
“내가 할게.”
“예.”
그녀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자세를 바로잡더니 내가 사용했던 무결을 따라했다.
내가 한 번 가르쳐 준적도 있었고 막시민이 보여준 적도 있으니 어느 정도 따라는 하겠다 싶었는데······.
스윽-
거의 소음조차 없이 떨어져 내리는 칼끝을 나는 멍하니 바라봤다.
툭!
이내 떨어져 내린 그림자 송곳니의 머리가 부질없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비비안.”
“어때?”
막상 그녀의 이름을 불렀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확실히 그녀가 재능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다르군요.”
공간을 벤다?
그런 거창한 개념은 아니었다.
그녀의 검은 집중한 상대만 벤다는 느낌이었다.
그렇기에 오히려 더 대단하게 느껴졌다.
“응. 따라하는 건 싫어서 바꿔봤어.”
태연하게 말하는 비비안이 빛나보였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호승심이 생기는 나 자신에게 당황하며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비비안은 빛나는 재능을 가지고 계세요. 정말 상상도 못했습니다.”
“노력 많이 했어.”
그녀는 검을 집어넣고는 칭찬을 바라는 눈빛으로 조용히 나를 바라봤다.
마치 더 해달라는 듯한 강아지 같은 표정에 나도 모르게 호승심은 사라지고 웃음만 나왔다.
“비비안을 제가 놓쳤으면 큰일 날 뻔했군요. 제가 데려와서 정말 다행입니다.”
“응.”
진심이었다.
그녀를 데리고 온 것도 다행이었고······그녀의 운명을 바꾼 것도 다행이었다.
“얘는 어떡하지.”
비비안이 죽은 그림자 송곳니를 봤다.
비비안의 충격적인 퍼포먼스로 잠시 넋이 나갔었지만 나는 곧바로 녀석을 갈무리했다.
그림자 송곳니의 가죽은 가벼운 데다가 그 강도가 철만큼이나 단단했기에 여러모로 좋은 재료였다.
애초에 우리가 너무 셌던 거고 2학년 트리오가 상대했으면 가죽도 뚫지 못했을 정도로 단단했다.
“다 됐습니다.”
“아까 새끼가 있다고 했지?”
“짐작입니다. 일단 한 번 찾아봐야죠.”
진짜로 있다면 새끼의 성장 정도에 따라 아마 운명이 바뀔 거다.
어느 정도 자란 상태면 길들일 수가 없기에 영지의 위협이 될 녀석들을 살려둘 수 없었고 만약 길들일 수 있다면 데려가서 키워봐야지.
< 240화. 영물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