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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 특성으로 최강 네크로맨서-239화 (239/415)

< 239화. 졸업, 탑 그리고 >

후욱!

내려친 검이 절도 있게 멈췄다.

이내 천천히 갈무리를 한 나는 검집에 다시 갈락슈르를 집어넣고 벽에 걸어둔 수건으로 땀을 닦아냈다.

언제나 변함없는 새벽 수련.

연구니 뭐니 해도 노숙을 할 때조차 웬만해서는 거른 적이 없던 일과였다.

“시간이······.”

오늘은 드디어 졸업식이 있는 날.

이미 논문으로 한창 달아올랐던 분위기는 연초 연휴동안 한 풀 꺾이고 잠잠했다.

물론 아카데미 내에서만 꺾였다는 거고 밖에서는 여전히 시끄러웠지만 당장은 알 바가 아니었다.

띵!

마침 태블릿에 메시지가 도착하고 발신인은 비비안이었다.

비비안과 태블릿으로 대화를 해본 적은 거의 없어서 조금 어색하구만.

“벌써 도착했다고?”

약속 시간은 아직 30분이나 남았는데 너무 들뜬 거 아니야?

기숙사 앞에 도착해있다는 비비안의 메시지에 물로 대충 몸을 씻어내고 나왔다.

그러자 기숙사 정문 앞에서 다소곳하게 서있는 비비안이 한 폭의 그림처럼 여명에 비춰지고 있었다.

“비비안,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안녕, 아드리아스.”

졸업식이 있는 날이라 그런가.

오늘따라 더 세련된 느낌이었다.

우리는 그대로 졸업식이 열리는 연회장으로 향했다.

졸업식은 신입생 입학식과 춘계 토너먼트가 열리기 전인 겨울 방학 동안에 진행되기에 한산했어야했다.

하지만 올해 졸업식은 작년 일정이 전쟁으로 조금 꼬인 탓에 그 어느 때보다 열기가 대단했다.

“아! 저기 아드리아스 선배님이다!”

“아드리아스 선배님!”

짧은 연초 연휴를 즐기고 돌아온 학생들이 나를 보며 환호했다.

졸업하는 선배들을 배웅하는 문화는 없었던 걸로 아는데 방학이 아니다보니 사람이 많군.

“옆에는 누구지?”

“그 있잖아. 기사학부 비비안 선배님.”

“아, 검귀 비비안?”

어느새 비비안한테 검귀라는 칭호가 붙은 모양이었다.

검귀라는 칭호로 유명했던 녀석이 나한테 죽은 호산이었는데 이런 우연이 다 있네.

수많은 후배들의 인사를 받으며 걷고 있었지만 정작 나와 비비안 사이에는 대화가 없었다.

조금은 분위기를 환기시키고자 전부터 궁금했던 것을 물어보기로 했다.

“비비안.”

“응.”

“저번에도 대답을 안 하셨던 것 같은데 진로는 아직도 알려주시지 않을 생각이세요?”

“······.”

그녀는 대답 없이 묵묵히 걸었다.

대충 눈치를 보면 계획이 없는 것 같지는 않은데 왜 저리 숨기는지 모르겠네.

실력도 실력이고 그녀와의 관계 때문이라도 이왕이면 우리 가문으로 끌어들이고 싶었는데 도저히 속을 알 수가 없었다.

“혹시 정하신 곳이 없다면 크롬웰은 어떻습니까?”

“······뭐?”

“예전이었으면 저도 어디 가서 부끄러우니 권유를 못했겠지만 이제는 나름 작위에 걸맞은 구색을 갖췄습니다. 물론 아직 갈 길이 멀지만 그 먼 길을 이왕이면 비비안과 함께하고 싶네요.”

우뚝!

갑자기 비비안이 멈춰 섰다.

난 순간 내가 뭔가 말실수를 했나 생각해봤지만 이내 붉게 달아오른 비비안의 얼굴을 보고 희미하게 웃었다.

“비비안?”

“······진짜로?”

“예, 진짜요. 혹시 이미 진로를 정해두신 곳이 있으십······.”

“아니, 없어.”

내 말을 칼 같이 끊는 그녀의 반응을 보고 나는 뭔가를 확신했다.

이제 보니 정해둔 계획이 우리 가문에 들어오는 거였나?

그녀의 붉은 얼굴을 보자 내가 더 빨리 권유할 걸 싶었다.

“제가 너무 늦게 권유했나요? 조금 더 일찍 권유할 걸 그랬습니다.”

“정해둔 거 없어!”

내 말을 오해했는지 다급한 음색의 비비안이 소리쳤다.

덕분에 우리를 보며 환호하던 후배들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쳐다봤다.

“그럼 제 제안을 받아주시는 겁니까?”

“응.”

상기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비비안이 귀여웠다.

저렇게 귀여운 반응을 해도 실력만큼은 대단하니 믿을만하지.

사실 그녀가 다른 곳으로 진로를 정해뒀다면 오히려 내가 실망했을 것 같다.

“어이, 아드리아스. 여기서 연애를 하는 건 좋은데 그러다 늦겠다.”

지나치던 동급생이 무리와 함께 웃으며 지나갔다.

그의 농담에 비비안의 안색이 눈에 띄게 굳었고 나는 그냥 무시하며 말했다.

“신경 쓰지 말고 가죠.”

“연애······.”

“비비안?”

마치 뇌정지가 온 듯 멈춰있는 비비안을 한동안 기다려줘야 했다.

**

디에네의 졸업식 연설로 시작된 연회는 금방 끝났다.

졸업식 연회보다는 본방이라고 볼 수 있는 졸업파티가 학생들끼리 열렸지만 나는 참가를 무르고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저도 오랜만이라 조금 긴장되네요.”

마나 부상 열차를 타고 크롬웰 영지로 향하는 길.

얼떨결에 졸업식에서부터 계속 함께하게 된 비비안과 같이 가고 있었다.

“몇 년 만이야?”

“글쎄요. 10년은 넘었죠.”

15년쯤인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비비안은 고향에 가보지 않아도 돼요?”

“응.”

“탑이 얼마나 걸릴지 모릅니다.”

“괜찮아.”

나태의 시련으로 인해 어느 정도 트라우마를 극복했다고 생각했지만 완전히 해결된 건 아닌 것 같았다.

내가 알기로 재학 중에 단 한 번도 고향에 돌아간 적이 없는데 나중에 시간을 내서 이것도 해결을 해야지.

“거의 다 왔어.”

“그러네요.”

열차를 타니 금방 도착했다.

그러나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여전히 낯설었고 내가 이 넓은 땅의 주인이라는 게 실감나지 않았다.

이내 열차가 완전히 도착하고 우리는 내리자마자 에이미가 보낸 마차를 탈 수 있었다.

미리 간다고 전해두었기에 준비해준 모양이었다.

“크롬웰 각하를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택의 집사인 스미스라고 합니다.”

“직접 오신 건가요?”

“각하를 처음 뵙게 될 일인지라 직접 마중 나오게 되었습니다. 말씀 편하게 해주십시오, 각하.”

“전 이게 편합니다.”

“확인했습니다.”

마차를 끌고 온 이는 마부가 아니었다.

과하게 예의를 차리는 느낌이라 조금 부담스러웠지만 이것도 익숙해져야겠지.

백작 정도의 고위 귀족이면 원래 별별 대우를 다 받았을 거다.

“옆에 계신 분이 비비안 벨로칸 아가씨군요. 잘 부탁드립니다, 스미스라고 합니다.”

“응.”

간단한 인사를 마치고 마차에 올라탄 우리는 천천히 영주성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마차의 창을 열어 바깥을 보자 중세 시골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에이미는 저택에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요즘도 많이 바쁜가요?”

“최근에 직원과 사용인들을 많이 늘리셔서 여유가 조금 생기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바쁘시지만 잦았던 외근이 많이 줄었습니다.”

고생이 많네.

그래도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는 거니까 딱히 말리고 싶은 마음은 없다.

본인이 좋다면 됐지.

“따로 애로사항은 없습니까?”

“흐음. 영주 대리님께서 워낙 일처리가 깔끔하셔서 큰 문제는 없습니다.”

“자잘한 건 있다는 이야기인가요?”

내 물음에 스미스는 조금 망설이는 기색을 보이더니 조심스레 입을 뗐다.

“사실 각하께 말씀드리기도 뭐한 사소한 문제라 조금······.”

“이야기나 들어봅시다.”

“크롬웰 영지에는 영주성이 존재하는 도시와 16개의 부속 마을이 있습니다. 그 16개의 마을도 각기 크기와 인구수도 다른데 그 중 한 곳에서 실종사건이 자꾸 벌어진다고 합니다.”

“사소한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요.”

“워낙에 외진 곳에 있는 마을이라 사람이 좀 없어지는 일도 있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파견을 보냈던 이들도 돌아오지 않아서 조금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역시 중세라 그런가.

사람 하나둘 사라지는 것쯤은 일도 아닌 모양이었다.

“에이미도 알고 있습니까?”

“알고 계십니다.”

아무래도 스미스는 나를 어려워하는 것 같으니 에이미에게 직접 물어봐야겠다.

원래 그러려고 이곳에 온 건 아니지만 애초에 탑에 들어가기 전에 잠깐 사람들의 얼굴이나 보러 온 거라 시간은 여유로웠다.

‘뭣하면 에반한테 부탁해도 되고.’

아직 수도에 본거지를 두고 있는 에반이었지만 크롬웰에도 연락책이 존재했다.

에이미한테는 아직 알려주지 않았는데 겸사겸사 말해줘야지.

마차가 영주성까지 도착하는데 걸린 시간은 열차를 탔던 시간보다 길었다.

열차란 존재가 얼마나 빠른 교통수단인지 뼈저리게 느끼며 성 안으로 도착하자 긴장한 기색의 사람들이 내가 탄 마차를 향해 무릎을 꿇는 게 보였다.

‘왕이 따로 없네.’

실제로 내 영지에 한해서는 내가 왕이나 다름없기는 하다.

그래도 현대의 기억이 남아있고 아카데미에서 권위 없이 생활을 해오던 내게는 너무 자극적이었다.

드디어 마차가 멈추고 나와 비비안이 내리자 사람들이 꽃을 길가에 뿌리며 우리를 환영했다.

아니, 환영이라기보다 최대한 내 비위를 건드리고 싶지 않아하는 게 온몸으로 전해져왔다.

“환영 인사가 화려하군요.”

“혹시 마음에 들지 않으셨습니까?”

“아니요. 그렇지만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전해두고 싶군요. 제가 이런 말을 하긴 뭐하지만 귀족답게 생활한 적이 별로 없어서 부담스럽습니다.”

“확인했습니다.”

누가 뽑았는지는 몰라도 집사인 스미스가 시원시원하게 이해해주니 마음에 든다.

이내 조금 걸어서 영주성 내부로 들어가려하자 에이미가 걸어나왔다.

“왔어?”

“어. 비비안도 같이 왔어.”

“안녕하세요, 비비안 양. 저번에 황궁에서 헤어진 이후로 잘 지내셨죠?”

에이미가 살갑게 맞아주자 비비안이 조금은 밝아진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응. 잘 지냈어.”

“근데 오빠랑 같이 오실 줄은 몰랐네요. 졸업을 하셨는데 굳이 같이 오신 건······.”

에이미가 음흉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뭔 의미냐?

“비비안은 이제부터 같은 식구다.”

“역시! 어렸을 때부터 여자한테 그렇게 관심도 많던 양반이 언제 색시를 데려오나 했더니!”

“뭔 소리야. 비비안은 크롬웰의 기사다. 아마 앞으로 기사단을 만들게 되면 기사단장이 되거나······.”

“호위 기사.”

갑자기 비비안이 끼어들어 말했다.

전혀 생각도 못했던 직책에 일단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래. 호위 기사를 맡을 거야. 마침 너한테도 호위가 필요했는데 잘 됐다.”

“······뭐야, 결혼하는 거 아니었어?”

“아까부터 헛소리 하지 말고 일단 들어가서 얘기해.”

혼자 소설을 쓰고 있구만.

괜히 분위기 어색해지게.

은근슬쩍 비비안의 눈치를 살펴봤지만 그녀는 딱히 아무런 생각이 없어보였다.

“비비안, 들어가시죠.”

“······.”

“······비비안?”

한동안 그렇게 심각한 표정으로 가만히 서있던 비비안을 데리고 영주성 내부로 들어서자 투박한 전경이 드러났다.

정말 실용성만 따진 듯 보이는 광경에 나도 모르게 한 소리하고 말았다.

“너무 삭막한데.”

“그렇지? 나도 영주성에서 지낸지 얼마 되지 않아서 급한 일만 끝내면 좀 꾸며야지.”

“마리아씨는?”

“지금 일하느라 바빠. 왜?”

“네 옆에 맨날 따라다녔는데 안 보여서 물어봤어.”

“오빠. 너무 여기저기에 침 발라놓지 마. 나중에 피곤해져.”

“뭔 소리야, 그건 또.”

헛소리를 많이 하는 걸 보니 아직은 살만한가 보다.

영주 집무실로 들어온 우리는 적당히 자리를 잡고 앉아 차를 마셨다.

차에 취미는 없어서 자주 마시지는 않지만 오랜만에 라스틸리아 차를 마시니 나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다 잘 지내고 있어?”

“하겐달님은 여기 이사 와서는 한 번도 못 봤어. 오빠가 뭘 좀 부탁해놨다면서?”

“어.”

노아의 치료가 아직 끝나지 않았나.

생각보다 오래 걸리네. 직접 가서 확인해봐야겠다.

“막시민은?”

“과수원 차렸던데?”

“농담하지 말고.”

“진짜야!”

인간계 최강의 검사가 과수원이라······.

이 무슨 인력 낭비인가 싶었지만 내 마음대로 휘두르기에는 애매한 인물이라 할 말이 없었다.

그냥 여기서 에이미만 지켜줘도 밥값을 하는 거겠지.

“이자벨도 같이 있는 거지?”

“아! 안 그래도 오빠 한 번 찾아가야겠다고 이자벨 언니가 그러던데 가서 좀 만나봐.”

“언니?”

“어. 이자벨 언니.”

수백 살 먹은 뱀파이어를 언니라고 부르다니 이 녀석도 처세술이 대단하다.

하긴 외견으로만 보면 언니가 맞긴 하니까 할 말이 없네.

그렇게 잠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 조금 전에 스미스에게 들었던 실종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보았다.

“아, 그거 보고는 들었지. 일단 너무 바빠서 마리아 언니한테 맡겼거든? 근데 어제인가 다시 보고가 들어왔는데 일이 잘 안 풀린 모양이야.”

“또 실종?”

“아니. 이번에 보낸 사람들은 다시 돌아오긴 했는데 복귀하자마자 기절한 뒤로 깨어나질 못하고 있다고 그러더라.”

이거 좀 냄새가 난다.

안 그래도 내 행동들로 인해 나비효과가 일어나 미래가 뒤틀렸을 확률이 상당히 높은데······.

‘이 새끼들이 설마?’

흑마법사의 소행인가?

별 일 아니면 좋겠지만 아무래도 에이미가 이곳에 있는 만큼 불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는다.

나는 이제 곧 탑에 들어가서 나올 때까지 몇 달이 걸릴 지도 모르는 상황.

그 와중에 불안 요소를 조금도 남기고 싶지 않았다.

“에이미.”

“응?”

“내가 한 번 가볼게.”

그동안 힘을 길렀던 이유가 뭐 있겠나.

이런데 써먹어야지.

< 239화. 졸업, 탑 그리고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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