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0화. 첩자 >
“그는 갔나?”
“예, 전하.”
창문 밖을 바라보던 미카엘라는 호위기사인 메리 비스핑의 대답에 잠시 말없이 서있었다.
그리고 한참이 지난 후에야 입을 열었다.
“폐하께서는?”
“아무 소식이 없습니다.”
“그래.”
그리고 다시 한 번 적막이 방 안을 감싸고 미동도 없는 미카엘라의 시선은 여전히 창밖을 향해있었다.
“너무 욕심을 냈었나봐.”
“절대 욕심이 아니었습니다. 전하께서는 정당한 로들렌의 후계자, 다음 황위를 노리는 것이 어찌 욕심일까요.”
“덕분에 지금은 목숨이 위험한 처지지.”
미카엘라의 말에 메리는 답하지 못했다.
말은 아니라고 했지만 사실 메리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들은 너무나 깊은 심연에 발을 들이고 말았다.
“폐하께서 그러셨지. 슬하의 자식 중 하나를 주겠다고.”
“전하, 그건······.”
“난 살고 싶어.”
나지막했지만 진심이 느껴지는 한 마디에 메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크롬웰 백작에게 보내져서라도 살 수만 있다면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어.”
“······언제나 제가 곁에 있겠습니다.”
“고맙구나, 메리.”
황위 계승.
황제의 자식들이라면 누구라도 노리는 자리.
이미 몇몇 이들은 세력의 열세를 느끼고 유력한 후보들에게 고개 숙이며 들어갔지만 미카엘라는 아니었다.
그녀는 야망이 있었다.
황제가 되겠다는 꿈.
“그래도 크롬웰 백작에게 간다는 선택지는 고작 시간벌이 밖에 되지 않겠지.”
“아무래도 그렇겠지요.”
“폐하께서는 나를 백작에게 보낸 뒤 그와 함께 한 번에 처리하고 싶으신 거야.”
미카엘라는 그 꿈을 위해서 무리했다.
그 결과 알게 된 것은 황가의 온갖 비사들, 그중에서도 세간에 알려지면 안 되는 일들이었다.
그녀가 알게 된 비사 중에는 선대 크롬웰 백작인 케인 크롬웰과 황가의 일도 있었으며 적대시하는 흑마법사들이 사실은 황제와 동업관계였다는 사실도 있었다.
“크롬웰 가의 비사는 아직 끝난 문제가 아니야. 폐하께서 크롬웰 영지를 돌려준 것도 해도 아마 그와 연관이 있겠지.”
“그럼에도 저희에게 최선의 수는 결국 크롬웰 백작이군요.”
“선택지가 없다는 건 괴로운 일이야.”
한숨을 내쉬는 미카엘라를 향해 메리가 조심스레 물었다.
“크롬웰 백작에게도 이 사실을 알린다면 도움을 주지 않을까요? 그는 지금 로들렌의 대세 귀족으로 떠오르는 자입니다. 폐하께서도 대놓고 공격하지는 못할 거예요.”
“난 이미 한 번 그를 이용했어. 그도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을 거고. 폐하께서 포상을 이용해서 이런 수를 쓰실 줄 몰랐던 내 패착이야. 물론 백작이 거절하면서 유야무야 되었지만 가만히 계실 폐하가 아니시지.”
“그래도 시도라도 해보시는 게······.”
메리가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미카엘라는 고개를 돌려 그런 자신의 호위기사를 바라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뭐라도 해봐야지. 이대로 죽을 수는 없으니까.”
“제가 몰래 연락을 넣어놓겠습니다.”
“고맙다. 부탁하마.”
이내 메리가 고개를 굿이며 사라졌고 미카엘라는 다시 창밖을 보았다.
창밖의 풍경은 고요했으나 그 고요함이 마치 폭풍전야처럼 느껴졌다.
“난 어떤 선택을 해야 했던 건가. 그냥 다른 형제자매들처럼 고개를 숙였어야 했나.”
말과는 다르게 그녀의 두 눈은 불타올랐다.
숨길 수 없는 욕망.
그 강렬한 마음은 이러한 선택을 후회하지 않고 있었다.
미카엘라 로들렌, 로들렌 제국의 삼황녀.
그녀는 차기 황제를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
**
비비안과 함께 도착한 곳은 한 고아원이었다.
수도의 외곽에 위치한 빈민촌에 존재했는데 건물은 꽤나 양호한 상태였다.
“고아원?”
“예. 들어가시죠.”
의문이 가득한 비비안의 눈빛을 뒤로 하고 부지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수많은 아이들이 고아원 담장 내의 공터에서 뛰어 놀고 있었다.
“얘들이 밝아.”
“그러네요.”
비비안의 말대로 아이들의 상태도 좋아보였다.
빈민가에서 사는 가정집의 아이들보다 양호해 보이는 모습의 조금 놀라움이 느껴졌다.
“손님?”
“손님이다!”
아이들이 우리를 향해 손짓했다.
낯선 사람들에 대한 경계심은 있는지 순식간에 건물 안으로 도망쳤다.
“누구시죠?”
때마침 아이들의 호들갑을 들은 어른이 나왔다.
수녀의 복장을 한 노파였는데 외견과 달리 기도가 상당했다.
“아드리아스 크롬웰이라고 합니다. 기부를 하러 왔는데 혹시 안에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크롬웰 각하셨군요. 환영합니다. 어서 들어오시죠.”
내 이름을 듣자마자 환한 얼굴로 반겨주는 그녀를 보면 확실히 이곳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고아원은 에반과의 접선을 위한 장소.
위장으로 만든 장소는 아니라고 들었다.
정말 순수하게 고아원으로 운영하기 위해 만든 곳이지만 에반이 자신과 연락하고 싶으면 이곳에 들르라는 말을 했을 뿐이었다.
“같이 오신 분은······?”
“아카데미 친우입니다.”
“아아, 이번 연회에 함께 하신 비비안 벨로칸님이시군요.”
단숨에 비비안의 정체를 알아차리는 노파를 보고 비비안의 눈가가 가늘어졌다.
그 눈가에서 느껴지는 경계심에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괜찮아요, 비비안. 경계하실 필요 없어요.”
내가 손을 얹자 곧바로 몸에 힘을 뺀 그녀는 내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묘하게 상기된 듯한 그녀의 얼굴을 보자 내가 선물한 귀걸이가 효과가 없나 걱정이 되며 부디 무턱대고 검을 뽑지 않기를 빌었다.
“이쪽으로 가시죠.”
노파가 안내한 곳은 고아원 내에 있는 원장실이었다.
그리고 안에는 따로 원장이 있었다.
“원장님. 크롬웰 각하께서 방문하셨습니다.”
“네. 들어오세요.”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꽤 젊은 남자였다.
이내 노파가 문을 열어주고 안으로 들어가자 외눈의 안경을 쓴 마른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우리를 맞이했다.
그 모습이 어딘가 익숙해서 잠시 생각하는 와중에 상대가 인사를 해왔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크롬웰 각하.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이곳의 원장이십니까?”
“네, 오토 무조노프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곳에서는 편히 말씀하셔도 됩니다. 주변은 모두 정리한 상태라 엿들을 사람은 없거든요.”
익숙하다 했더니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것도 하필이면 빌런으로 알고 있는 인물인지라 머리가 지끈지끈해졌다.
“오토 무조노프. 에반을 아십니까?”
“네, 제가 속한 조직의 보스이십니다. 각하를 알려주신 것도 저희 보스이고요.”
“조직이라······. 에반을 알게 된지는 얼마나 됐습니까?”
“길지는 않습니다. 이제 3달이 넘어가는 것 같군요. 원래는 제가 조직의 수장이었습니다만 보기 좋게 헌납하고 말았죠. 하하.”
제스쳐나 생김새가 도저히 빌런이라고 생각할 수 없이 착해보였지만 나는 방심할 수 없었다.
애초에 조직의 수장이었다는 저 말도 눈 가리기용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일단 차라도 내드리겠습니다. 적당한 곳에 앉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 전에 하나만 물어봅시다.”
“네, 말씀하세요.”
“에반과 연락이 가능합니까?”
“물론이죠. 에반님께서 각하와의 접선장소를 이곳으로 정했다는 걸 미리 알려주셨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전 잠시 차를 가지러 가보겠습니다.”
원장실 한쪽에는 작은 방이 연결되어 있었다.
그쪽의 방으로 오토가 사라지자 나는 고민에 잠겼다.
오토 무조노프.
그는 제국에 침투한 제파르 교단의 간부였다.
그리고 이번에 만난 대륙 5대 상단의 주인인 제레드 테이슨 백작의 히트맨이기도 했다.
주 업무가 암살인 만큼 적어도 전투 능력 하나는 뛰어난 상대.
정체를 알고 있지만 섣불리 무력을 사용하기에도 애매했다.
“에반이라는 사람을 만나러 온 거야?”
“예? 예, 그렇습니다.”
“표정이 왜 그래. 무슨 고민 있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는 비비안에게 나는 웃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조금 피곤했나 봐요.”
“무릎에 누울래?”
“······괜찮습니다.”
잠깐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도 오토는 돌아오지 않았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는 그가 왠지 제레드에게 연락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다시 나타난 그는 차를 탁자 위에 놔두며 특유의 미소를 지었다.
너무나 착하고 유약해 보이는 그 미소는 상대의 방심을 불러오기 좋았다.
“에반님에게는 제가 방금 소식을 전달했습니다. 마침 근처에 계시는 것으로 알고 있으니 아마 금방 도착하실 겁니다.”
“다행이군요.”
“에반님께서 근처에 계시지 않으셔도 따로 필요한 용무가 있으시면 제게 편히 말씀해주시면 됩니다. 최대한 편의를 봐주시라는 말씀이 있으셨기에 부담 없이 이용해주십시오.”
오토는 그 말과 함께 차를 따라주며 나긋하게 웃었다.
가명을 사용했으면 아마 그가 제파르 교단의 광신도라는 사실을 헷갈렸을 정도로 사람 좋아 보이는 모습이었다.
“감사합니다. 알아두죠.”
“에반님께서는 참으로 좋은 분이십니다. 이쪽 세계를 차지하시면서 얻게 된 수익으로 불우한 사람들을 돕고 있거든요. 이 고아원도 그 일환입니다. 물론 종종 이런 접선 장소로 쓰이기도 하지만 아이들을 돕고 있다는 사실만은 변하지 않죠.”
성국에서의 버릇을 버리지 못했나보군.
딱히 내게 해가 가는 일은 아니라 상관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당신도 에반 경의 수하보다는 고아원의 원장과 더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조직을 운영했다는 게 믿기지 않는군요.”
“하하. 감사합니다. 사실 조직을 관리했다고는 하지만 전 그저 책상에서 명령만 내리는 역할만 했을 뿐이라 이런 일이 더 어울릴 수도 있겠군요.”
아주 거짓말이 그냥 술술 나온다.
그때 지금까지 조용히 있던 비비안이 입을 열었다.
“거짓말.”
“네?”
“책상에서 명령만 내리는 사람이 그런 몸을 가졌을 리 없어.”
갑자기 끼어 든 비비안은 경계어린 기색으로 오토를 바라봤다.
“위험한 분위기. 평범한 검사도 아니야.”
“아하하······. 네, 뭐, 사실 이런 음지의 조직을 관리하려면 무력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처음에는 저도 몸으로 해결을 했었죠. 그렇지만 이제는 아니랍니다.”
“피 냄새.”
“······네?”
“입을 열 때마다 피 냄새가 나.”
순간 정적이 흘렀다.
오토는 여전히 웃는 낯으로 우리를 보고 있었지만 그 분위기가 조금 기괴했다.
“비비안.”
“음?”
“저 사람은 같은 편입니다. 그렇게 경계하지 않으셔도 돼요.”
“알았어.”
말은 알았다고 하지만 몸의 위치나 각도가 언제든 나를 보호하려는 준비가 되어있는 비비안이었다.
“제가 좀 곤란한 상황을 만든 것 같군요.”
“아닙니다. 제 일행이 저의 대한 걱정이 많아서 한 행동이니 부디 깊게 생각하지는 마시길.”
말은 이렇게 했지만 내 머릿속은 맹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이미 나는 제파르 교단에게 찍힌 몸.
교단의 간부인 오토가 나를 모를 리는 없었다.
게다가 하필이면 그는 에반의 수하.
첩자가 우리 세력에 들어온 셈이었다.
‘그러니 빨리 처리해야지.’
오토 무조노프는 강하다.
이왕이면 안전하게 해결하고 싶었다.
똑똑똑.
“에반입니다.”
금방 온다던 에반이 정말로 금방 도착했다.
그는 여전히 어두 칙칙한 옷을 입고 면도도 하지 않은 상태였는데 두 눈만은 맑아보였다.
“주군께서 벌써 저를 찾으실 줄은 몰랐습니다.”
“부탁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요.”
주군이라는 에반의 말에 오토와 비비안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둘 다 살짝 놀란 표정이었는데 비비안은 그렇다 치고 오토도 그것까지는 몰랐던 건가.
“보스. 크롬웰 각하께서 보스의 주군이셨습니까?”
“그렇습니다.”
에반이 긍정할 때 나는 마침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입을 열었다.
“신기합니까?”
“네? 네,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보스께서는 워낙 유명하신 분인지라 누군가를 따르신다는 게 믿기지가 않아서······.”
“제가 생각해도 과분한 일입니다. 아마 세간에 알려지면 큰 파장이 생기겠죠.”
“제가 생각해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나는 깍지를 끼고 천천히 턱을 괬다.
“말할 겁니까?”
“네? 그럴 리가요. 말할 이유가 없습니다.”
“제가 입단속은 철저히 시키겠습니다, 주군.”
에반은 아무래도 오토가 첩자라는 걸 모르는 모양이군.
“말할 이유라······. 있지 않습니까?”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오토 무조노프.”
오토의 순수한 눈동자에 눈을 맞추었다.
그리고 살며시 웃어주며 또박또박 말했다.
“제파르 교단에 보고를 올려야 하지 않습니까?”
< 230화. 첩자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