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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 특성으로 최강 네크로맨서-227화 (227/415)

< 227화. 공작들 그리고 진행되는 암투 >

갑작스러운 공작들의 방문은 연회장 내부를 얼어붙게 만들기 충분했다.

심지어 은은하게 배경음을 깔던 연주가들조차 연주하던 악기를 멈췄다.

“뭐야? 분위기가 왜 이래?”

선글라스를 쓴 미누스가 양팔을 들어 보이며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연주가들이 다시 연주를 재개하자 마치 멈춰있던 시간이 다시 흘러가는 것처럼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알븐 공작가랑 모하임 공작가가 동시에 오다니······!”

“동시가 아니라 같이 온 거겠지. 설마 우연히 겹치기라도 했겠어?”

“근데 벌써 오실 줄이야. 아직 후작 각하들도 아무도 안 오셨는데······.”

자작 이하의 귀족들은 감히 눈도 마주치지 못한 채 종종걸음으로 뛰어가 두 공작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기에 일행들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걸어가자 갑자기 미누스가 내 쪽을 바라봤다.

“이게 누구야! 우리 아드리아스 크롬웰 백작 아니야?”

그는 주변에 몰려든 모든 귀족들을 다 무시한 채 곧바로 내게 다가왔다.

그런 그의 뒤로 여동생인 그레타 모하임이 보였다.

“모하임 전하를 뵙습니다.”

“우리 사이에 무슨 예의야. 그것보다 전쟁이 끝나고 꽤 시간이 지난 것 같은데 잘 지냈나?”

“덕분에 보람찬 매일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거 다행이군!”

내 등짝을 두들기며 과격하게 반기는 모습이 영 부담스러웠지만 장소가 장소인 만큼 그저 미소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나저나 첫날부터 참가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다른 분들도 다 놀라신 눈치군요.”

우리의 대화를 엿듣고 있던 이들이 슬며시 귀를 기울였다.

공작들이 일찍 오게 된 이유에 대해 짐작이 가는 바가 없는 건 모두가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음? 당연히 널 보러 일찍 왔지. 네가 첫날부터 올 거라는 건 알고 있었으니까.”

“그렇습니까.”

전혀 예상 못한 답변이었지만 그럴 듯했다.

모하임과의 관계는 동맹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러나 미누스의 발언은 꽤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모하임 공작가가 크롬웰 때문에 첫날부터 연회에 참석했다고?”

“둘 사이의 거래가 있었다는 이야기는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그 정도의 사이란 말인가!”

흥분한 귀족들의 말소리는 숨길 생각조차 없는 듯했다.

그만큼 논란이 될 만한 말을 뱉어낸 미누스는 선글라스를 머리 위로 올리며 웃어보였다.

“옆에 계신 아름다운 숙녀 분들은 누구시지?”

“홀링턴 자작의 딸, 루시아 에버라스트와 나이첼 왕국 출신인 비비안 벨로칸, 그리고 제 동생인 에이미 크롬웰입니다.”

“흐음······.”

묘한 미소를 짓는 미누스가 괜히 불편해져왔다.

또 뭔 말을 하려고 저런 표정을 짓고 있냐.

“왜 혼약 제의를 거절했나 했더니 그런 거였나.”

“오해십니다.”

주변에서 다시 한 번 열렬한 반응이 터져 나왔다.

한동안 구설수에 오르겠군.

이제 보니 사업 이야기를 하러 온 게 아니라 단순히 나를 놀리기 위해 온 것 같았다.

미누스의 뒤에 있는 그레타도 재밌다는 듯이 입을 가린 채 웃고 있는 게 정말 볼만했다.

“아드리아스. 나한테는 인사조차 없는 게냐?”

“그럴 리가요. 오랜만에 뵙습니다, 알븐 전하.”

다행히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건 바하트 덕분에 미누스의 놀림이 끝났다.

당연한 이야기였지만 바하트의 곁에는 디에네도 함께 있었다.

그녀는 내게 눈인사만 하고 곧바로 내 일행들에게 다가가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뵙는 건 처음이군요. 무린 알븐이라고 합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공작부인. 아드리아스 크롬웰입니다. 알븐 가에는 항상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친가가 오스왈드 후작가인 무린 공작부인은 바하트와 나이 차이가 좀 있는데다 동안이기까지해서 굉장히 젊어보였다.

자칫하면 디에네와 자매로 보일 수도 있을 정도였는데 그런 그녀의 표정이 썩 좋지는 못했다.

“이이가 크롬웰 각하를 만나러간다고 얼마나 재촉하던지······. 원래는 이틀 뒤에 참석할 예정이었는데 급하게 오느라 준비도 채 제대로 못하고 와버렸네요.”

“부인.”

바하트가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쩔쩔맸다.

그는 게임에서부터 애처가 캐릭터여서 놀라울 건 없었지만 실제로 저런 모습을 보게 된 건 신기할 따름이었다.

“아녀자는 이만 물러나보도록 하지요. 부디 좋은 대화 나누시길······.”

공작부인이 떠나자 바하트가 애써 헛기침을 하며 당황한 기색을 숨겼다.

아무래도 이곳에 출발할 때부터 말이 나왔던 모양이군.

“아름다운 분이시군요.”

“그럼, 그럼. 내 아내는 내 딸 다음으로 아름답지.”

하여간 저 팔불출은······.

그나저나 공작부인이 한 이야기가 사실이면 알븐 가문이 일찍 온 이유도 결국 나 때문이란 소리였다.

그리고 그 생각을 한 건 나뿐만이 아니었는지 주변의 귀족들은 놀라다 못해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모습들이었다.

“두 공작 가문이 고작 백작 하나 때문에?”

“이보게, 말조심하게. 아무리 그래도 각하께 고작 백작이라니.”

다 들린다, 이놈들아.

주변의 소음을 무시하고 나는 두 공작을 향해 물었다.

“두 분 다 저 때문에 일찍 오신 겁니까?”

“응? 원래는 나만 일찍 오는 거였는데 우연히 영감님이랑 연락이 닿아서 말이야. 그때 내가 널 만나러 좀 빨리 갈 것 같다고 하니까 자기도 빨리 가겠다고 그러더라.”

“틀린 말은 아니다. 실제로 널 보러 일찍 온 게니.”

내 물음에 긍정하는 둘을 보니 공작의 작위가 그다지 실감나지 않았다.

워낙 자주 마주친 얼굴들이라 그런 걸까.

이제는 뭐 나를 만나러 왔다고 해도 그저 그런 기분이었다.

“일단은 연회를 즐기자고. 내가 이따가 따로 부르지.”

미누스는 그 말을 끝으로 손을 흔들며 연회장 가운데로 사라졌다.

미누스답다고 해야 할까.

바하트도 계속해서 공작부인이 사라진 방향을 힐끔힐끔 쳐다보더니 이내 내게 말했다.

“굳이 이렇게 시끄러운 곳에서 대화를 나눌 필요는 없겠지. 나도 이따가 보마.”

그리고는 후다닥 공작부인이 있는 곳으로 가는 게 참 말로 표현하기 힘든 애환이 느껴졌다.

“왜요? 각하의 미래 모습이 겹쳐보였나요?”

공작들이 사라지자 우르르 흩어진 귀족들 사이로 누군가가 내게 다가와 말했다.

갈색의 피부가 매력적인 그레타였다.

“보니까 아름다우신 분들이 따르고 계시더군요. 역시 영웅은 인기가 많은 법인가요?”

“여동생과 아카데미 학우들입니다. 그보다 오랜만이군요, 그레타 양.”

“말을 돌리시려는 건가요? 뭐, 각하를 불편하게 만들 생각은 없어요. 그래도 요즘 은근하게 우리 관계에 대한 소문이 퍼져서 제가 곤란한 처지인데 이에 대해 하실 말씀은 없으신가요?”

불편하게 안한다며.

나는 그레타를 잠시 바라보다가 칵테일 잔을 내려놓았다.

“죄송합니다. 본의 아니게 곤란한 상황을 만들었군요.”

“본의 아니게? 우리 똑똑하신 각하께서 일이 이렇게 될 걸 예측하지 못했다고는 생각을 못하겠는데요?”

“따로 원하시는 게 있습니까?”

별 것 아닌 것처럼 말했지만 실제로 내가 약혼 제의를 거절한 일은 귀족 영애로서 심각한 이미지 타격과 평판의 실추가 된 일이었다.

공작가인 만큼 혼담이 끊일 일은 없겠지만 만약 약소 가문의 여인이었으면 결혼하기도 힘들어졌을 수도 있는 일.

“역시 각하께서는 너무 냉정하시네요. 전 단지 따뜻한 말 한마디와 위로면 괜찮았는데. 오히려 그렇게 말씀하시니 제가 꼭 뭔가를 바라고 말한 계산적인 사람이 된 것 같잖아요.”

“실례했습니다. 부디 제 말에 부담 갖지 않으셨으면 좋겠군요.”

미누스는 조금 더 이용해먹기 좋은 편인데 반해 그레타는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게다가 세간에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그녀도 굉장한 실력의 무투가.

모하임에서 가장 상대하기 힘든 사람을 꼽으라면 그녀가 당당히 첫 손가락에 들 것이다.

“어머. 그레타 아가씨 아니세요?”

그때 분명 저기서 수다를 떨고 있었을 에이미가 어느새 나타나 아는 척을 했다.

그녀의 등장에 그레타의 표정이 마치 호적수를 만난 것처럼 흥미롭게 변했다.

“에이미 양,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셨죠?”

“그럼요. 덕분에 하루하루를 보람차게 보냈답니다.”

에이미는 그리 말하며 나를 툭툭 건드렸다.

“홀링턴 자작님이 저기서 오빠 찾고 계시던데 지금 바빠?”

대충 보니까 견적이 나오는군.

눈치 빠른 에이미가 나를 도와주기 위해 온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나는 그 도움을 기꺼이 받기로 했다.

“음, 그레타 양. 혹시 다음에 다시 대화를 나눠도 되겠습니까? 이번 일에 대한 사죄도 확실히 생각해놓지요.”

“사죄라뇨. 그러실 필요 없으세요. 어차피 연회는 기니까 대화를 나눌 기회는 많으니 이만 보내드릴게요.”

그레타도 이 얕은 술수를 대충 눈치를 챈 것 같았지만 그냥 넘어가주는 눈치였다.

에이미도 그러한 분위기를 느꼈는지 그레타에게 살갑게 굴며 말했다.

“안 그래도 그레타 아가씨와 나누고 싶던 이야기가 있었는데 잠깐 시간 괜찮을까요?”

“물론이죠. 그럼 나중에 다시 뵙겠습니다, 크롬웰 각하.”

그레타까지 사라지자 나는 에이미에게 고맙다는 눈빛을 보내며 홀링턴 자작이 있는 곳으로 빠져나왔다.

별 거 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진이 빠진 느낌이라 기분이 묘했다.

“하하하! 이게 누구십니까! 크롬웰 각하 아니십니까!”

벌써 거하게 취한 홀링턴 자작이 주변 사람들에게 들으라는 듯 소리쳤다.

“후우.”

심호흡 한 번 하고 가야겠군.

아직 연회는 첫날밖에 되지 않았다.

**

연회가 시작되고 이틀 뒤.

이번 전쟁에 참가했던 귀족들이 모두 참석하고 드디어 논공행상이 있는 날이었다.

오늘부터는 황족들도 연회에 참석하기에 연회의 절정이라고 볼 수 있었다.

“고맙습니다.”

나는 옷 입는 걸 도와준 시종에게 감사를 표하고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이 세상에서는 거울을 살펴볼 일이 그리 많지는 않았기에 벌써 몇 년이 지났음에도 익숙해지지 않는 모습이 그곳에 담겨있었다.

“머리를 한 번 자를 때가 됐나.”

치렁치렁하게 내려오는 머리카락을 뒤로 묶었다.

그래도 깔끔한 모습으로 가는 게 예의에는 맞겠지.

아마 지금쯤 에이미는 미리 가서 자리해있을 거다.

논공행상에 직접적으로 상을 수여받는 이들은 나처럼 아직 준비 중일 테고.

똑똑똑.

“크롬웰 각하!”

“예. 누구십니까?”

“미카엘라 공주 저하께서 방문하신다는 전언입니다.”

······3공주?

“지금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굳이 곧 논공행상에 참가해야 할 시간에 찾아온다고?

뭔가 촉이 좋지 않았다.

그리고 삼공주라면 내가 모드라스의 탑을 클리어 했을 때 직접 찾아오기까지 했던 황족.

“각하, 공주 저하께서 도착하셨습니다.”

“들어오시죠.”

방 문이 열리고 호위기사 두 명과 시녀 여럿이 먼저 들어왔다.

그들 뒤로 저번에 한 번 본 적이 있던 미카엘라가 이전과 달리 무표정한 얼굴로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존귀하신 분을 뵙습니다.”

“일어나세요.”

이곳은 황궁.

바깥에서 봤을 때와는 달리 내가 한쪽 무릎을 꿇으며 인사하자 그녀는 곧바로 나를 일으켜 세웠다.

“갑자기 이렇게 방문해서 미안하군요.”

“아닙니다. 영광일 따름이지요.”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뵙게 되어 영광이었습니다.”

순간 당황하여 대답을 못할 뻔했다.

아무리 나라도 이건 당황할 수밖에 없는데.

갑자기 찾아온 건 그렇다쳐도 바로 돌아간다니 지금 내가 잠이 덜 깬 건가?

‘뭘 노리고 왔던 거지? 그냥 왔다 가기만 한다고?’

시발?

뭔가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알 수 없는 일에 휘말렸음을 나는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 227화. 공작들 그리고 진행되는 암투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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