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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 특성으로 최강 네크로맨서-226화 (226/415)

< 226화. 연회 >

“이쪽 별채를 이용하시면 되겠습니다.”

우리를 안내한 프리겐 남작이 고개를 숙이며 물러났다.

별채에는 방이 많았기에 우리는 각자 원하는 방을 골라잡고 짐을 내려놓았다.

“감사합니다.”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으시면 언제든 이 벨을 눌러주십시오. 저녁에 있을 연회는 연회 시작 1시간 전에 미리 방문해서 알려드리겠습니다.”

시종이 미소 지으며 물러나고 나는 잠시 방 안을 둘러보았다.

황궁 안에서 일하는 모든 자들은 작지만 작위가 있는 귀족들이었다.

시녀들은 대체로 귀족가의 영애들이었고 시종들은 준남작과 남작들이었다.

시종장과 집사장쯤 되면 나와 같은 백작의 작위를 가진 이들도 많았으니 황궁이 얼마나 크고 넓은 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괜찮군.”

이곳저곳 살펴본 결과, 뭔가가 설치되거나 염탐할 만한 흔적은 없었다.

다른 방들도 확인해봐야겠지만 아마 다 괜찮을 것 같았다.

똑똑.

“······누구십니까.”

누군가가 방문을 두드려왔다.

당연히 누군지 말할 줄 알고 기다렸지만 아무 이야기가 없자 결국 먼저 물어보자 마나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그 마나의 흐름은 언젠가 한 번 느껴본 적이 있는 것이었다.

“헤이겔?”

“오랜만이군, 아드리아스 크롬웰.”

검은 나비로 변해 아무렇지도 않게 문틈으로 들어온 헤이겔이 여전한 모습으로 내게 인사를 건넸다.

“미쳤군요.”

“뭐가? 내가 이곳에 있는 것이?”

“절 찾아온 것 말입니다.”

“걱정하지 마. 아무도 모를 거니까.”

태연하게 소파에 앉는 그를 보며 인상이 찌푸려졌지만 애써 표정을 관리하고 맞은편에 앉았다.

“황궁에 있었군요. 전쟁 때문에 이곳 근처에는 얼씬도 못할 줄 알았는데.”

“내가 왜 얼씬도 못하지?”

“집회가 황제의 뒤통수를 쳤으니까 하는 소리죠.”

“그건 내가 아니라 지들끼리 멋대로 한 행동이지. 그보다 네가 할 소리는 아닐 텐데?”

그는 기묘한 미소를 지으며 내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얼굴에 있는 문신이 꿈틀거리며 그의 안면을 기어 다녔다.

“왜 그런 거지.”

“뭐가 말입니까.”

“황제는 아직 누구의 소행인지 모르고 있지만 난 알고 있어. 시치미 뗄 생각하지 마.”

“분노를 말하는 거면 딱히 할 말은 없습니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편하게 소파에 기댔다.

그가 이 건으로 황제에게 고자질을 한다고 협박해도 내 대답이 변할 리는 없었다.

이미 분노가 돌아간 건 바꿀 수 없는 일이고,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내 선택은 똑같을 테니까.

“이해가 가지 않아. 차라리 자네가 분노를 차지했으면 납득이라도 하지. 도대체 무슨 이득이 있다고 그런 행동을 한 거지?”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그게 제게 있어서는 이득이었거든요.”

내 말에 헤이겔은 무표정한 얼굴이 되어 말없이 쳐다보기만 했다.

그 사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에 있는 티세트를 꺼내왔다.

“차 한 잔 하시겠습니까?”

“자네는 정말, 기묘하군.”

“그렇습니까?”

나는 마법을 이용해 물을 데우고 차를 우리기 시작했다.

차를 우리는 데에는 흥미가 없었지만 여유를 보여주기 위한 행동이었다.

“말했듯이 황제는 아직 이 사실을 모른다. 언젠가 알 게 될 수는 있겠지만 적어도 내가 말하지는 않을 거야.”

“감사하군요.”

“감사? 아니, 그건 감사할 일이 아니야. 자네도 말했지? 그 행동은 결국 자네 이득을 위해서 한 일이었다고. 나도 마찬가지야. 황제에게 알리지 않는 게 내 이득에 조금 더 부합할 뿐이라 말하지 않는 거지.”

“그래도 감사합니다.”

다 우려낸 차를 헤이겔에게 건네며 나는 꿋꿋이 말했다.

말이란 게 묘해서 상대가 아니라고 해도 내가 강제로 마음의 빚을 지게 만들 수 있었다.

헤이겔이 무시할 수도 있었지만 시도를 하고 안 하고는 차이가 크니 일단 뱉고 봐야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헤이겔은 항상 저를 봐주는 느낌입니다.”

“느낌이 아니라 사실이다. 내가 괜히 네게 반지를 준 게 아니야.”

그는 내가 끓인 차를 한입 마시더니 미간을 좁히고는 찻잔을 내려놓았다.

“뭐든 잘하는 줄 알았더니 차를 우리는 건 젬병이군.”

“연습하겠습니다.”

“아니야. 다음부터는 내가 하지.”

헤이겔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 용무가 끝난 건가? 아무것도 얘기한 게 없는 것 같은데?

“그럴 기회가 앞으로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위험하게 굳이 오셔놓고 벌써 가시는 겁니까?”

“굳이 위험하게 왔으니까 벌써 가는 거다. 아직 도착하지는 않았지만 바하트라도 오게 되면 내 존재를 눈치 챌 수도 있으니까.”

그의 문신이 다시 이상한 움직임을 보이며 마치 그의 얼굴이 웃고 있는 듯한 모양으로 만들었다.

“시간이 많지 않아. 이왕이면 파벌 단속도 확실히 해놓는 게 좋을 거야.”

“그건 제가 알아서 하지요.”

“내가 무슨 생각으로 이런 일들을 벌이는지 불안한가?”

갑작스런 물음이었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건방진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전 당신이 두렵지 않습니다.”

“그런가. 하긴 황제도 적으로 돌리는 네가 유일하게 두려울 것이 있다면 주변 사람들의 안전뿐이겠군.”

협박인가?

그의 말에 대답 없이 침묵했다.

헤이겔은 그런 내 모습을 보고는 손을 저으며 뒤로 물러났다.

“그리 경계할 필요는 없어. 아직까지는 자네의 존재가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과 일치하니······.”

파라라라락-----

“다음에는 집회에서 보지.”

검은 나비 떼로 변해 흩어지는 헤이겔을 보자 정신을 더 똑바로 차리자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세상을 구하려는 것도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이지 다른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쉴 틈이 없군.’

미래를 안다는 게 이렇게 괴로운 일일 수도 있구나 싶었다.

**

저녁이 되고 연회의 시작이 알려져 왔다.

논공행상은 연회의 중간 날짜인 이틀 뒤였기에 오늘은 맛보기 겸 먼저 도착한 귀족들끼리 통성명을 나누는 자리였다.

“들어보니까 아직 후작 작위 이상의 고위 귀족분들은 아무도 도착하지 않은 모양이야.”

에이미가 연회장으로 걸어가는 도중에 조용히 말해줬다.

아마 이르면 내일, 늦어도 이틀 뒤에는 참가하겠지.

“루시아, 홀링턴 자작께서는 내일 오시나?”

“이미 먼저 도착하셨을 거예요. 사교행위는 상단 운영에 주 업무 중 하나라 소홀히 하시지는 않거든요.”

“용케 우리랑 같이 왔네.”

“제가 크롬웰이랑 함께하는 것도 사교행위라고 생각해보지는 않으셨어요?”

“그것도 그렇군.”

역시 약삭빠른 에버라스트 상단다웠다.

우리를 미리 찜해놓았다는 건가.

과연 우리 가문의 위상이 이번 전쟁으로 얼마나 올라갔는지는 몰라도 내가 루시아와 친한 만큼 좋은 선택 같았다.

역시 제국 5대 상단 중 하나의 운영자라고 할까, 벌써부터 작업을 쳐놨군.

“제국의 백작 가문이자 새하얀 날개를 상징하는 크롬웰의 입장입니다!”

우리가 연회장 입구에 들어서자 나팔수가 나팔을 부르며 우리의 입장을 알렸다.

그가 말하는 우리 가문의 상징은 나조차 오랜만에 듣는 거라 그런 게 있었나 싶었는데 역시 황궁이라고 해야 할까.

사람들은 이미 꽤 모여 있었다.

우리가 입장하자 한 순간 시선이 쏠렸는데 대부분 경계하는 눈초리였지만 이내 나와 함께 온 세 여인으로 인해 눈빛이 풀렸다.

“크롬웰과 함께 온 저 여성분들은 대체 누구지?”

“한 분은 홀링턴 자작의 따님이시군. 듣던 대로 대단한 미모! 다른 분들은 금시초문이야.”

저들끼리 말을 한다고 하는 모양이었지만 극도로 발달된 내 감각에는 모두 걸려들었다.

귀족들의 반응은 반반으로 나뉘며 반은 나와 함께 온 일행들의 외모에 감탄하는 기색이고, 나머지 반은 나를 탐색하는 눈치였다.

“저 자가 아드리아스 크롬웰······.”

“아카데미에서만 이름을 날리는 기재인 줄 알았지만 이번 전쟁에서 말도 안 되는 전공을 세웠다지. 이미 준비된 인재야. 저 탄탄한 몸을 봐.”

“그뿐인가? 천하의 모하임 공작가에서 제의한 혼약을 거절했다는 소문이 있네.”

“웃긴 건 그 모하임이 크롬웰을 도와줬다는 걸세. 이게 무슨 의미겠나?”

핫하구만.

확실히 모하임과 엮여서 더욱 뜨거운 반응이 오는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 모인 이들은 대부분 하급 귀족들이었다.

고작해야 자작 정도가 높은 편에 속할 정도로 피라미들만 들어찬 상태였다.

‘아니군. 거물이 하나 있었어.’

대충 연회장 한쪽에 자리를 잡자 곧바로 우리를 향해 다가오는 사람이 보였다.

그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는데 그런 그들에게 양해를 구하며 내게 도달했다.

“허허. 귀하신 분을 이렇게 뵙는 군요. 아드리아스 크롬웰 공이 맞으신지요?”

“맞습니다. 저도 테이슨 공을 이렇게 뵙게 될 줄은 몰랐군요.”

제레드 테이슨 백작.

제국이 아닌 대륙을 통틀어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상단을 가진 재계의 큰 손.

원래는 다른 이름의 상단이었고 지분을 나눠 갖는 형식으로 운영되었던 거대 상단을 홀로 독식하며 상단의 이름마저 자신의 이름으로 바꾼 거물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저를 알아봐주시니 영광입니다. 언제고 한 번 기회가 되면 초대를 하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크롬웰 공께서는 학업을 진행하시는 입장이라 조심스러웠습니다. 다음번에는 꼭 제 저택으로 모시고 싶군요.”

“테이슨 공께서 초대하신다면 강의가 있어도 포기하고 가겠습니다.”

“하하! 크롬웰 공을 곤란하게 만들 생각은 없지만 말만으로 기쁘군요.”

상대의 눈이 호선을 그리며 호감 있는 얼굴상이 되었다.

하지만 눈꺼풀 사이에서 빛나는 그 작은 눈동자는 전혀 방심할 수 없게 만들었다.

‘제파르 교단의 최고위급 간부.’

아마 제파르 교단이 나를 습격했을 때도 최고위 간부인 그는 알고 있었을 거다.

한 마디로 그는 나의 적.

아마 내가 본인의 정체를 알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하겠지.

‘그러고 보니······.’

전쟁 도중에 미처 처리하지 못했던 밀리니엄 아카데미의 호넨도 이곳에 초청되었다.

아직 모습을 보이지는 않지만 그가 제파르의 화신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 나는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가 제파르 교단에 가입하게 되는 계기가 제레드 테이슨 때문 일수도 있을까?

‘이번 연회에 아카데미 학생들이 초대되는 건 게임 속에서는 없었던 일. 하지만 신경 쓰고 있는 게 좋겠군.’

어쩌면 호넨은 이미 제파르 광신도일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제레드와 모종의 신호를 주고받을 수도 있는 노릇.

안 그래도 신경 쓸 게 많은데 아는 게 많다보니 일이 줄지는 않고 늘어만 간다.

“크롬웰 백작이랑 테이슨 각하께서 대화를 나누고 계셔.”

“흐음, 테이슨 각하께서 직접 찾아가실 정도라니······.

“역시 대세는 대세인가? 그래도 고작 이번 한번 눈에 띈 걸 가지고 신경 쓸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제레드와 대화를 나누자 입장했을 때보다 많은 관심이 쏟아졌다.

이제는 아예 노골적으로 이곳을 바라보는 이들 덕분에 제레드도 쓴웃음을 지었다.

“사교계라는 게 이런 거겠죠. 결국 모두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 움직이는 이들이다 보니······.”

“그렇군요. 근데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들과 다를 것 없죠.”

“호오. 그렇습니까? 솔직담백하시니 오히려 크롬웰 공을 대하기가 편해지는군요. 다음에 한번 따로 식사 자리를 만들어 사업에 관한 이야기를 해도 되겠습니까?”

“오히려 제가 부탁하고 싶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테이슨 공.”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짧은 대화를 마치고 제레드가 돌아갔다.

아직 연회는 시작이었고 무려 5일 동안 개최하니 시간은 많았다.

그 사이 주변에서 귀족가의 자제들이 다가와 나와 함께 온 일행들에게 추파를 던지고 있었다.

그 누구도 반응하고 있지도 않았고 오히려 에이미는 한 술 더 떠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상단을 알게 모르게 홍보하고 있었다.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역시 지치네요.”

시간이 조금 지나 연회장의 분위기가 무르익자 귀족가의 영애들과 자제들을 상대하던 루시아가 귀족들과 인사를 마치고 쉬고 있는 내게 다가왔다.

“네가 예뻐서 그래.”

“······네?”

“그리고 요새 에버라스트 상단도 잘 나가니까······.”

“그 전에 뭐라고요?”

졸려보였던 눈이 확 떠지며 초롱초롱하게 나를 바라보는 루시아가 조금 이상했다.

나는 칵테일 안주를 베어 물며 다시 말해줬다.

“네가 예뻐서 그렇다고. 너도 객관적으로 네 미모는 알 거 아니야?”

“물론 알지만 그걸 그렇게 직설적으로 들을 줄은 몰랐어요. 그것도 선배 입으로.”

나는 그게 뭐 대수냐며 칵테일을 한 모금 마셨다.

그러자 연회 내내 달라붙어 있던 비비안이 옆에서 나를 툭툭 건드렸다.

“나는?”

“······비비안도 아름답습니다.”

“응.”

기쁜 듯 미소 지어 보이는 그녀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 갑자기 루시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버지한테 가볼게요.”

“아, 나도 가서 인사 좀 드려야겠군.”

“아니요. 저 혼자 갈 거예요.”

갑자기 찬바람을 풍기며 사라지는 그녀를 보며 나는 내가 뭔가 잘못했나 생각해봤다.

사람 대하는 일이 그리 익숙하지 않은 나로서는 도저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뭐지?”

“아드리아스.”

“예, 비비안.”

“그······아니야.”

뭔가를 말하려다 다시 입을 닫는 비비안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의 반응을 보면 내가 뭘 잘못하긴 했나 본데 도저히 짐작이 가는 게 없네.

“아드리아스는 잘못한 거 없어. 내가 잘못했어.”

“예?”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비비안에게 무슨 소린지 알려달라는 말을 하려 할 때 갑자기 연회장 입구가 소란스러워졌다.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돌리자 마침 나팔수가 입장하는 귀족의 가문을 소개했다.

“대 로들렌 제국의 4개의 기둥 중 하나이자 푸른 매를 상징하는 알븐의 입장입니다!”

알븐이 벌써 왔다고?

아직 연회 첫날에다 후작 가문조차 오지 않았는데?

하지만 나팔수의 말은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대 로들렌 제국의 4개의 기둥 중 하나이자 초록의 잎사귀를 상징하는 미누스의 입장입니다!”

“그놈의 초록 잎사귀는 무슨. 빨리 상징을 바꿔버려야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고 익숙한 모습의 사람들이 연회장에 들어왔다.

“공작답게 처신하게.”

“예이, 예이.”

바하트 알븐과 미누스 모하임.

그들이 가문을 이끌고 등장했다.

< 226화. 연회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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