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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 특성으로 최강 네크로맨서-210화 (210/415)

< 210화. 광기 vs 광기 >

비비안의 말에 갑자기 나타난 검객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가면 뒤에서 형형하게 빛나는 푸른빛의 눈이 귀기어린 분위기를 자아냈다.

“아······.”

아드리아스가 아닌 가면의 검사라는 것을 알자 비비안은 아쉬운 한숨을 내뱉으며 검을 천천히 내렸다.

이전의 전투에서 보았던 그 가면의 검사였다.

어쩐지 아드리아스와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 의문의 검객.

“고마워.”

비비안이 그를 바라보며 감사를 표했다.

그러자 가면의 검사는 말없이 고개만 한 번 끄덕이고는 마치 호위를 하듯 그녀의 옆에 섰다.

비록 그 정체를 알 수는 없었지만 아군이라는 것은 확실했기에 비비안은 안심하고 숨을 고를 수 있었다.

주변을 보자 어느새 뿔이 달린 검붉은 스켈레톤들이 야만족들을 학살하고 있었다.

외성 내부까지 번진 전투는 누가 아군이고 누가 적군인지 알 수 없는 아비규환의 현장이었다.

툭툭.

“응?”

비비안은 자신을 건드리는 가면의 검사를 보았다.

그는 내성을 가리키며 비비안이 물러났으면 좋겠다는 동작을 해보였다.

“괜찮아?”

끄덕.

가면의 검사가 자신의 건틀릿을 살짝 벗어보였다.

미라처럼 말라비틀어진 손을 본 비비안은 순수하게 감탄했다.

“언데드였구나.”

가면의 검사가 언데드들과 함께 다니는 것과는 별개로 너무나 뛰어난 실력을 지녔기에 당연히 사람인 줄 알았던 비비안이었다.

한 번 깨닫게 되자 왜 이 가면의 검사가 다가오는 것을 눈치 채지 못했는지 알아챘다.

‘호흡도, 맥박도 없어.’

당연한 이야기였지만 언데드인 그는 육체의 생리적인 현상이 하나도 없었다.

그렇기에 웬만큼 훈련을 받은 암살자보다 은밀한 가면의 검사는 이내 걱정하지 말라는 제스쳐를 보이며 비비안에게 물러나라 손짓했다.

“힘들 거야.”

비비안이 시선을 앞으로 향하며 말했다.

아무리 그가 강하고 함께 온 검붉은 스켈레톤들이 힘을 쓴다고 해도 수의 차이가 너무 심했다.

아직 성벽을 넘지 못한 야만족들까지 합세하면 고작 수백의 불과한 지원은 전멸을 당할 게 눈에 선했다.

따닥!

가면의 검사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 문제없다는 그의 행동에 결국 비비안도 뒤로 물러났다.

그가 자신을 구해준 건 감사할 일이었지만 그녀도 죽고 싶은 건 아니었으니까.

‘아드리아스.’

어쩐지 그의 기운이 느껴지는 언데드 검사를 뒤로 하고 비비안은 내성으로 합류했다.

**

내성까지 밀려났음에도 상황이 달라진 건 크게 없었다.

매그너는 비비안이 돌아오는 걸 보고 급하게 성문을 열었다가 다시 걸어 잠근 뒤, 의문의 언데드들이 도와주는 모습을 지켜만 보았다.

“시간은 좀 벌었지만 그것도 잠시뿐이겠군요.”

부장인 호란이 그의 옆에서 중얼거렸다.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그들이 외성에서 한참 전투 중일 때 영주인 히크샴은 도주한 상태였다.

이 사실이 병사들을 통해 알려지자 사기는 곤두박질 친 상황.

저 의문의 언데드들이 아니었으면 내성으로 후퇴했음에도 금세 뚫렸을 것이다.

“이제 야만족들이 물러나면 다시 언데드들이 오겠지.”

“저희는 어떻게 해야만 합니까? 제국의 저력이 고작 이 정도라니 믿기지가 않습니다.”

“모두 안전한 전장만을 찾으니 이리 된 거겠지.”

보르기옌의 힘든 상황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제국의 영주들은 보르기옌을 구원하기보다 안전한 전장에서 본인들의 병력을 온존한 채 자잘한 전공만을 챙기기를 원했다.

영주들이 사리는 이유도 분명히 있었다.

아무리 황제가 그럴듯한 보상을 약속했어도 그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게 첫 번째 이유고, 이번 전쟁은 먹을 것도 없는 북부와의 다툼이라 여러모로 득보다는 실이 많은 전쟁.

그런 전쟁에서 본인들이 금을 부어 키운 사병들을 소모하기는 싫었을 것이다.

“그럼 저희는 이대로 개죽음을 당해야 하는 겁니까?”

“호란. 그러게 진즉 말하지 않았나. 도망치라고.”

“······이런 개 같은!”

분을 참지 못한 호란이 애꿎은 성벽을 때렸다.

그가 이토록 화가 난 데에는 역시나 영주의 무단 도주가 원인이었다.

목숨을 걸고 지켜도 모자랄 영주가 백성들과 수하들을 놔둔 채 말도 없이 사라졌으니 그 원망은 하늘을 찌를 듯했다.

“그렇게 억울하면 지금이라도 가족들을 데리고 도망가게. 자네가 고생한 건 모두가 알고 있으니 탓할 할 이는 아무도 없어.”

“그게 말입니까? 애초에 저는 가족도 없는 고아입니다. 아시면서 자꾸 개 같은 말은 하지 말아주십시오.”

감정이 격앙된 호란이 소리 지르는 와중에 어느새 다가온 비비안이 고개를 꾸벅였다.

그런 비비안을 향해 말없이 그녀가 오기만을 기다렸던 피오네가 울면서 달려갔다.

“선배님! 흐흑······.”

비비안은 그런 피오네를 어색하게 안아주며 매그너를 향해 말했다.

“적이 계속 넘어오고 있어. 역부족이야.”

“우리도 알고 있다. 그래서 하는 제안이네만 아카데미에서 온 지원들은 모두 내성 뒷문으로 탈출했으면 하네.”

매그너의 말에 살아남은 내성벽 위의 학생들이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도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함께 있는 병사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기에 내색할 수 없었다.

“자네들은 충분히 잘해주었네. 특히 비비안 경, 그대의 활약은 눈이 부실 정도였지.”

보르기옌의 병사들과 기사들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젊디젊은 아카데미의 학생들이 이런 곳에서 허무하게 죽는 것은 그들도 원치 않았다.

하물며 그들은 타지인들.

고향이 보르기옌이거나 이곳에 정착해서 살아가고 있는 자신들과는 입장이 달랐다.

“그러니 어서 떠나주게. 더 위험해지기 전에 말이야.”

매그너의 말이 끝나자 병사들도 한 마디씩 더했다.

“영주도 이곳을 버린 판국에 자네들이 남아서 뭘 할란가? 여기는 우리한테 남기고 냉큼 떠나쇼.”

“우리는 어차피 이곳 토박이들입니다. 다른 곳에서 산다는 건 생각도 못하니 죽을 때도 여기서 줄을 생각이죠. 여러분들은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그대들이 남아있으면 마음만 불편할 뿐이니 어서 나가주시죠.”

결국 학생들은 하나, 둘씩 눈치를 보며 모이기 시작했다.

“호란. 자네가 이들을 인솔해주게.”

“제가 말입니까?”

“이들이 나가려면 길을 안내할 이가 필요하네. 내성의 뒷문으로 향하는 길은 지휘관급인 자네도 알고 있지. 거기다 이들이 그저 도망친 게 아니라는 걸 증명해줄 사람이 필요하네. 자네라면 그 역할에 충분하겠지.”

매그너가 명분마저 쥐어주자 결국 호란은 고개를 떨궜다.

천애고아인 그로서는 분명 이곳에서 지킬 게 없었으나 십 수 년간 지내온 땅을 버리기에는 고민이 필요했다.

“어서 가게. 더 이상 지체했다가는 벗어나지 못할 거야.”

매그너의 말에 학생들이 초조한 눈빛으로 호란을 바라보았다.

대부분 귀족가의 자제들인 만큼 이런 곳에서 죽고 싶은 마음은 일절 없었다.

“······알겠습니다.”

결심을 내린 호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그가 심호흡을 하며 아카데미의 학생들을 불러 모았다.

“아카데미에서 지원을 온 이들은 전부 나를 따르시오!”

드디어 살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기자 학생들은 표정을 숨길 수가 없었다.

애써 관리해온 표정이었지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본 만큼 기쁨은 클 수밖에 없었다.

“저희도 빨리 가요, 선배님.”

피오네가 비비안의 팔을 잡아끌었다.

비비안도 이곳에 더 이상 남아 있을 이유가 없음을 알았기에 순순히 피오네에게 이끌렸다.

“푸흡.”

그때 누군가의 참지 못한 듯한 웃음이 모두의 귀에 울렸다.

전혀 웃을 상황이 아니었음에 모두가 고개를 돌려 웃음을 터트린 자를 바라보았다.

평범한 병사의 복장을 한 그는 시선이 집중 되었음에도 웃음을 멈출 기색이 없었다.

“어느 부대 소속 병사냐? 왜 웃는 거지?”

“푸하하하하!”

매그너가 나서서 병사를 닦달했음에도 오히려 더 큰 웃음소리로 대답을 대신한 병사는 이내 눈물까지 닦으며 호흡을 조절했다.

“아, 아이고. 아, 미안, 미안. 너무 눈물 겨워서 감정 조절을 못했어.”

“너, 이곳의 병사가 아니군?”

“하하. 당연하지. 병사면 이렇게 웃었겠어?”

그의 말에 모두가 경계하는 기색으로 그를 둘러쌌다.

“흑마법사인가.”

“지금 그게 중요해? 내가 이곳에 있다는 의미가 뭔지 모르겠어?”

“죽여라!”

매그너는 말함과 동시에 검을 뽑아 그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명령을 들은 주변 사람들도 한 번에 그에게 들이닥쳤다.

“하찮은 종자들아. 감히 네 녀석들이 내게 손끝이라도 댈 수 있겠느냐?”

검은 먹구름과 비슷한 연기가 그를 감싸면서 곧이어 주변으로 번개가 터져 나왔다.

그 모습에 매그너는 곧바로 마법을 막으며 소리쳤다.

“네크로맨서가 아니다! 경계해라!”

언데드를 소환했던 자일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네크로맨시가 아닌 강력한 흑마법에 주변에 있던 병사들은 순식간에 타들어갔다.

“끄아아악!”

번개뿐만 아니라 주변으로 짙게 깔리기 시작하는 독의 운무에 사람들이 고통에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그 기습적인 일격은 성벽 위로 막대한 피해를 남겼다.

“빨리 따라오시오!”

호란은 빠른 판단을 내렸다.

어차피 저 흑마법사를 막는다고 해도 보르기옌의 함락은 기정사실.

탈출한다는 계획에는 변함이 없었다.

“어딜 가려고. 내가 왜 굳이 정체를 드러냈겠어?”

그러나 흑마법사는 그들의 뒤를 순식간에 따라 잡았다.

앞을 가로막은 흑마법사로 인해 결국 검과 지팡이를 꺼내든 학생들이 두려움에 질린 모습으로 대치했다.

“정말 하나 같이 애송이들뿐이군. 귀족이 아니었으면 잡을 가치조차 없는 피라미들.”

“이놈!”

뒤늦게 따라온 매그너가 자신의 대검을 휘두르며 흑마법사에게 쏘아져나갔다.

그러나 흑마법사는 그런 매그너를 비웃으며 마법을 사용했다.

우웅-

매그너가 달려오던 땅에서 검은 가시들이 솟구쳤다.

그는 검을 휘두르며 가시들을 부쉈지만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왔던 탓에 전부를 막아내지는 못했다.

푸부북!

“큭.”

“어때? 꼬챙이가 된 느낌이? 이대로 구워 먹으면 맛있겠어.”

그 모습에서 노련한 흑마법사라는 것을 눈치 챈 학생들은 더욱 움츠러들였다.

실제로 그가 얼마나 강력한 흑마법사인지는 알 수 없어도 제국 내에서의 흑마법사의 악명이 학생들의 기를 꺾게 만드는데 한몫했다.

‘어떻게 해야······.’

희망 뒤에 몰려온 뜻밖의 위기에 피오네의 머리가 맹렬히 돌아갔다.

그녀는 살기 위해 페이드의 이름이라도 팔아야하나 고민하기 시작했다.

“호란. 애들을 데리고 도망가.”

그때 비비안이 앞으로 나섰다.

실력으로만 따지면 보르기옌의 기사단장인 매그너와 동급, 아니 그 이상일 수도 있는 실력자.

다만 아카데미 학생이라는 신분이 그녀에 대한 평가를 절하했을 뿐, 그녀는 엄연히 강자였다.

“알겠다.”

호란은 두 말없이 받아들였다.

이미 자존심을 챙기기에는 너무 많은 걸 포기해버렸다.

그는 앞으로 나서서 흑마법사의 앞을 가로막는 비비안을 보며 학생들에게 소리쳤다.

“뛰어!”

이내 호란이 달리기 시작하자 학생들이 뒤따라 달렸다.

“나를 물로 보네?”

흑마법사가 광기어린 미소를 보이며 다시 마법을 사용했다.

그와 동시에 비비안이 섬전과 같은 빠르기로 흑마법사에게 다가갔다.

“우리가 왜 두려움의 존재인지 아나?”

흑마법사는 바로 앞까지 다가온 비비안을 보면서도 미소를 흘렸다.

“그건 바로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지.”

퍼엉!

말을 하던 흑마법사가 그대로 부풀어 터져나가며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폭발에 휘말린 비비안은 큰 충격을 입고 뒤로 날아갔다.

“우리는 범인이 판단할 수 없는 사고방식을 지녔다.”

“그렇기에 제국에서는 우리를 두려워하고 억압하는 것이지.”

주변에 있던 또 다른 병사들이 미소를 지으며 차례로 말했다.

그때 쯤 간신히 몸에 박힌 가시를 빼낸 매그너가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대체 넌······.”

“살아서 나갈 생각은 하지마라. ‘집회’가 나선 이상 너희에게 희망은 없다.”

어느새 수많은 병사들이 눈이 햐얗게 뒤집힌 채 미친 듯 폭소를 터트리기 시작했다.

그 광기어린 현장과 동시에 호란과 학생들의 앞도 검은 결계에 막혀 성벽 아래로 나아갈 수 없게 되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지? 나야 그렇다지만 오러 마스터인 레이튼 경이 같이 있어서 눈치를 챘을 텐데?”

“알고 싶어? 그래, 알려주지. 그건 네 녀석들의 주인인 히크샴 보르기옌이 너희를 제물로 바치고 우리를 이곳에 들어오게 해주었기 때문이지. 나는 조금 전에 이곳에 들어왔다고. 하하!”

“그게 무슨······.”

매그너는 머리가 멍해졌다.

그냥 도망친 것도 모자라서 본인과 그 가족들만 살기 위해 모두를 팔아넘겼다니.

너나 할 것 없이 모두의 표정이 썩어들어 갔다.

“그래, 그 표정이야! 그야말로 내가 감정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 더! 더! 절망을 느껴라, 하찮은 종자들아!”

내성 내부는 좌절과 절망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그러나 그 순간이었다.

뿌우우우-----

긴 호각 소리가 허공을 가득 메웠다.

야만족들의 호각 소리임을 눈치 챈 흑마법사가 빙의한 병사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후퇴?”

그때 망루에 올라가 있던 보르기옌의 병사가 외쳤다.

“저, 전방! 외성 전방에 아군의 기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아군의 깃발? 지원인가!”

적어도 며칠은 걸릴 줄 알았던 지원이 도착했다는 말에 매그너가 놀랐다.

그리고 그 정보는 흑마법사에게도 놀라움을 선사했다.

“이상하군. 분명 주변은 전부 틀어막았을 텐데······.”

그가 중얼거리고 있을 때, 병사가 다시 외쳤다.

“깃발이 식별됐습니다!”

“어딘가?”

“크롬웰 백작가의 깃발입니다, 그리고 깃발이 하나가 아닙니다!”

“크롬웰이라고? 나머지는?”

“모하임! 모하임 공작가의 문장입니다!”

“모하임!”

모하임 가문에는 여러 별칭과 이명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은 단 하나였다.

포식하는 모하임.

한때 서부를 온통 피로 물들였던 진짜 광기의 주인공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 210화. 광기 vs 광기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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