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7화. 압도적인 힘 >
콰직!
뿔이 달린 검붉은 외형의 스켈레톤들이 압도적인 힘으로 적을 부쉈다.
부서지는 적도 같은 언데드.
하지만 격이 다른 힘의 차이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말도 안 된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퀜튼은 몸을 떨었다.
아스란을 제치고 드디어 모른의 수석 제자가 된 그는 갑자기 어디서 나타난 건지 모를 언데드들의 모습을 보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용아병(龍牙兵)이라니······.”
이제는 전설 속으로 사라진 드래곤으로 만든 인간형 언데드.
드래곤이 멸종된 이상 용아병도 역사 속으로 흩어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가끔 발견되는 용의 사체나 무덤 또한 지금에 이르러서는 너무나 귀한 자원이었기에 차마 이를 용아병으로 만들어보겠다는 발상은 하지도 못했다.
애초에 그런 유적은 국가적인 차원에서 관리가 되거나 집회와 같은 단체에서 직접 관리를 하기에 용아병이 만들어질 확률은 0에 수렴했다.
하지만 눈앞에 나타난 언데드는 고문서에서 읽었던 용아병이 틀림없었다.
“도대체 누가?”
야만족의 부대 진지에서 흑마법을 쓰던 퀜튼은 곧바로 마나 디텍트를 사용했지만 전혀 상대를 감지할 수 없었다.
그야말로 귀신이 곡할 노릇.
“흑마법사. 드디어 나서기로 한 것이냐.”
때마침 전장에서 돌아온 오러 마스터의 거한이 퀜튼에게 다가왔다.
하지만 퀜튼은 그런 거한의 물음에 답할 여력이 없었다.
오히려 거한에게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저 언데드들. 저 녀석들의 술사로 보이는 마법사가 주변에 있었나?”
“모르겠군. 언데드인걸 보면 같은 흑마법사 아닌가? 네가 더 잘 알 텐데?”
퀜튼은 입술을 깨물었다.
자신이 알기로 용아병을 다루는 네크로맨서는 없었다.
그나마 의심해볼 이는 자신의 스승인 모른이나 중립 파벌에 위치한 파이시.
‘모른이 내가 꾸미고 있는 일을 눈치 채고 방해하러 온 건가? 아니면 변덕스러운 파이시가 갑자기 미쳤다고 저들을 돕고 있는 건?’
집회의 다른 인물들이 세운 계획이 무너지는 건 상관없었지만 자신이 직접 나선 이번 공격은 무조건적으로 성공해야만 하는 일.
이번 일이 틀어지게 된다면 입지가 꽤 떨어질 것이 분명했다.
그건 곧 아드리아스를 제거하고 모른의 파벌을 흡수하려는 퀜튼에게는 큰 타격이 될 것이 자명했다.
“뭘 그렇게 초조해하나. 어차피 새로 나타난 적들은 고작해야 수백. 네가 일으켜 세운 언데드는 족히 만 단위다. 하다못해 네 언데드가 모두 쓰러진다 해도 우리의 병력은 아직 남아있다. 질 수가 없는 싸움이야.”
“맞는 말이군.”
냉정함을 되찾은 퀜튼의 안색이 평소대로 돌아왔다.
용아병이라는 전설적인 존재로 인해 평정심이 흔들렸었지만 거한의 말은 틀린 게 하나도 없었다.
적들이 강력한 언데드라고 해도 그 수는 고작해야 수백.
반면에 퀜튼이 계속해서 만들어내는 언데드는 그동안 이 땅에서 죽어나간 수만의 병력과 동일한 숫자였다.
물론 마나의 한계는 있었기에 그 모두를 언데드로 만들 수는 없었지만 퀜튼 정도 되는 네크로맨서라면 1만의 언데드는 충분히 일으킬 수 있었다.
‘하지만······.’
왠지 불길했다.
용아병과 함께 나타난 선두의 가면을 쓴 검사도 심상치 않았고, 일단 변수가 생겼다는 것에서부터 느낌이 좋지 않았다.
“빨리 끝내야겠군.”
이런 불안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빨리 전투를 끝내야했다.
보르기옌만 함락시킨다면 제국의 영토로 진입하는 교두보로 삼아 혼란을 가속화시킬 수 있는 상황.
“일어나라!”
퀜튼은 마력을 쥐어짜며 언데드들을 일으켰다.
곧이어 엄청난 물량의 언데드가 우글거리며 격전이 되어가는 전장의 중앙으로 달렸다.
퀜튼과 거한의 예상대로 용아병과 가면의 검사는 강했지만 물량 앞에서는 밀릴 수밖에 없었다.
점차 둘러싸이기 시작한 그들은 하나, 둘 무릎을 꿇기 시작했다.
“좋아. 저 녀석들은 내가 가져가주마.”
조금 전까지 불안함을 느꼈던 퀜튼은 이제 곧 전투에서 승리하면 용아병의 신체를 얻을 수 있다는 생각에 흥분했다.
용아병을 소환한 상대가 누군지 궁금해 했었지만 이미 안중에도 없어진 상태.
전세는 누가 보아도 보르기옌의 패배였다.
“응?”
한참 그 광경을 함께 구경하던 야만족 진지에 전사 하나가 갑자기 머리 위로 드리우는 그림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올려본 그는 이내 믿을 수 없는 존재를 보고 입을 벌렸다.
“아아?”
차마 제대로 표현해내지 못한 의문이 흐르고 그 기현상은 곧 다른 이들도 눈치 챘다.
“아아! 시, 신께서 하늘에 계신다!”
갑자기 누군가가 외치고 이내 하늘을 올려다 본 퀜튼과 거한은 믿지 못할 존재의 등장에 두 눈을 비볐다.
“드래곤?”
퀜튼이 중얼거리고 이내 하늘을 날던 거대한 용은 자신의 다리를 붙잡고 있던 무언가를 전장의 한가운데에 떨어트렸다.
쿠우우웅--------!
거대한 폭음과 함께 흙먼지가 피어오르며 그 충격만으로 퀜튼의 언데드들이 산산조각 났다.
떨어져 내린 무언가는 등에 자신의 몸집만한 대검을 맨 거인이었다.
“말도 안 되는······.”
퀜튼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거인이 포효를 내지르며 대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우어어어어어!
콰아아아앙------!
**
매그너는 더 이상 생각하기를 그만뒀다.
처음에 특이한 생김새의 언데드들이 도와주었을 때는 그저 어떻게든 이용하자는 생각뿐이었다.
그만큼이나 절박했고 그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함께 싸웠다.
다행히 검붉은 언데드들과 검은 갑주 위에 나풀거리는 옷을 달아놓은 가면의 검사는 언데드만을 공격했다.
오히려 자신들을 지켜주려는 모습을 보였기에 확실한 아군이라는 것이 확인 가능했다.
하지만 그들의 힘으로도 여전히 역부족이었다.
적의 흑마법사가 만들어내는 언데드는 끝이 없었고 도와주러 온 지원군은 고작 수백.
이대로 전멸하게 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인간이 해결할 수 있는 힘을 벗어났어.”
······분명 시간 문제였을 터였다.
콰아아아앙-----!
거의 성벽만한 키를 가진 거인이 거대한 대검을 휘두르자 수를 셀 수 없을 정도의 언데드가 쓸려나갔다.
그야말로 재앙과도 같은 파괴력.
덕분에 성문 앞은 여유가 생겨 매그너와 그를 따라온 기사들, 그리고 비비안까지 그 광경을 구경할 수 있었다.
-크롸라라라!
괴물은 하나가 아니었다.
거인도 거인이었지만 진짜 괴물이라 불러야하는 존재는 창공에 있었다.
가죽밖에 남지 않은 날개.
군데군데 뼈가 드러난 몸체.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위협적으로 보이는 본 드래곤이 하늘에서부터 지상을 습격하고 있었다.
“저희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겁니까?”
“나도 꿈이라고 생각하고 싶군.”
매그너와 호란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비비안의 시선은 전장 한복판에서 일어나는 괴수 대전이 아닌 가면의 검사를 쫓고 있었다.
‘익숙해.’
가면의 검사는 기본기에 충실한 검을 사용했다.
하지만 그것이 약하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었다.
오히려 군더더기가 없기에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최대한의 효율을 보이며 주변의 적들을 분쇄해 나가고 있었다.
“아드리아스?”
가면의 검사가 아드리아스가 아님을 비비안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검에서 어딘지 모르게 아드리아스가 보이는 것만 같았다.
마치 같은 검을 익힌 듯한······.
푸화아아아아아--------!
그녀의 생각은 갑자기 터져나온 엄청난 마력의 폭풍에 끊겨버렸다.
고개를 돌리자 흉물스럽게 생긴 왕관을 쓴 용이 지상에 브레스를 쏟아내고 있었다.
“저 기술은 오러 마스터도 막지 못하겠어.”
“저게 바로 전설에서나 나오던 드래곤이란 말인가? 전설이 틀린 게 하나도 없었군!”
브레스의 범위는 넓고, 또한 강력했다.
단 한 방의 공격으로 언데드들이 가득했던 땅은 진정한 의미의 죽음의 대지가 되었다.
“저 드래곤이 우리를 공격하지는 않겠지?”
“상상도 하기 싫군. 저런 것과 싸우다 죽는 건 개미가 밟혀 죽은 것만도 못할 거야.”
언데드들이 쓸려나가자 야만족의 진지가 철수를 할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자연재해와도 같은 괴물들의 등장에 결국 물러나는 기색이었다.
그와 동시에 언데드들이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거인 구울과 본 드래곤이라는 신화적인 존재들 앞에서는 전투가 더 이상 의미가 없음을 느낀 퀜튼의 선택이었다.
“적들이 물러난다······.”
누군가가 눈앞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천천히 입 밖으로 꺼내었다.
실감이 나지 않았는지 그 말에는 힘이 없었다.
“적들이 물러난다?”
그러다 이내 다른 병사도 의문을 담아 저 멀리에 보이는 적들의 후퇴를 말했고,
“적들이 물러난다!”
이내 그 목소리에는 확신과 환호가 담겼다.
성문 앞을 가득 메웠던 언데드들도 아군의 것을 제외하고는 전부 쓰러져 버리자 지켜보던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며 주저앉아 버렸다.
절망으로 주저앉았던 전과는 달리 긴장이 풀리고 기쁨에 찬 행동이었다.
“보르기옌을 지켜냈다!”
“우리가 막아냈어! 아니, 신께서 우리를 보살펴주셨어!”
보르기옌의 사람들이 쉰 목소리로 일제히 기쁨의 함성과 울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매그너는 긴장을 풀 수 없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정신 차려!”
비록 야만족들은 물러났지만 아직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들이 남아있는 상황.
만약 저 거인이나 드래곤, 아니 그저 검붉은 언데드들이 공격을 해오는 것만으로도 보르기옌은 심각한 위험에 처할 것이다.
달그락.
하지만 그런 매그너의 경계가 의미 없다는 듯이 언데드들은 어딘가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자신들이 나타난 언덕의 뒤였다.
그리고 그런 언데드들을 따라 괴물 같은 위력을 발휘했던 드래곤도 처음과 같이 거인을 데리고 힘겹게 날아올랐다.
이내 모두 사라지자 마치 이 모든 일들이 꿈만 같이 느껴지는 보르기옌 사람들이었다.
“저들은 신께서 보내주신 전사들이 틀림없습니다! 분명 이 땅을 지키셨던 선조들의 영혼이에요!”
누군가가 붉게 충혈된 눈을 부라리며 소리쳤다.
그러더니 이내 검붉은 언데드들이 사라진 방향으로 절을 올리기 시작했다.
“이 못난 후손들을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한 명이 나서자 그 뒤를 따라 너도 나도 엎드려 절하기 시작했다.
매그너는 그런 모습을 허탈하게 지켜보며 언덕을 바라보았다.
“도대체 뭐였던 거지?”
정말 꿈을 꾼 것은 아닌가 헷갈리기 시작한 매그너였다.
**
“음······.”
클라우디아 후작과 저녁 만찬을 즐기던 도중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다.
내 갑작스런 행동에 후작이 미묘한 눈초리로 내게 물었다.
“크롬웰 공, 괜찮나?”
“······예. 괜찮습니다. 현기증이 조금 있었습니다.”
나는 애써 몸을 다시 세우고 자세를 바로 잡았다.
크리브마허, 이 새끼.
내가 브레스는 쓰지 말라고 했는데도 기어코 흥에 취해서 써버렸네.
“안색이 창백하군.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는데 식사는 이쯤하고 들어가서 쉬게나.”
“걱정을 끼쳐 죄송합니다. 호의를 받아들여 먼저 일어나도록 하겠습니다.”
억지로라도 버티고 싶었지만 방금 전의 브레스가 치명타였다.
아무리 마나가 넘쳐나는 나여도 이건 견딜 수가 없었다.
방에 돌아온 나는 크리브마허와 루도의 소환을 해제했다.
니켈과 하룬겔의 용아병들은 혹시 모르는 상황을 위해 아직 남겨두었다.
“이제 좀 살겠네.”
소환수와의 거리가 멀어질수록 높은 마나 감응력과 마나가 필요했다.
클라우디아 후작가로 굳이 온 것은 이번에 전쟁이 발생하는 보르기옌과 그리 멀지도 않으면서 알리바이를 만들기 좋기 때문에 온 것이었다.
‘예상에 없던 네크로맨서.’
사실 이대로 보르기옌의 힘만으로 막아냈다면 굳이 나서지 않으려 했지만 변수가 생겼다.
미리 준비한 대로 잘 막아내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흑마법사들의 활동이 빨라진 느낌이었다.
‘보르기옌은 막았다. 하지만 앞으로는 예상치 못한 상황들이 많이 일어날 거야.’
그 과정에서 플레이어블이 죽을 수도 있었기에 최대한 빨리 전쟁을 끝내야했다.
그리고 그 계획도 이미 어느 정도 짜놓은 상태.
“연락을 해야겠어.”
나는 누군가를 떠올리며 지친 몸을 일으켰다.
< 207화. 압도적인 힘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