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5화. 멈추지 않는 계획 >
피오네는 애써 침착을 유지하며 말에서 내렸다.
조금 전에 상대가 던졌던 도끼는 눈치 채지도 못했었다.
‘강해.’
지금까지 살면서 단 한 번도 자신의 실력에 의문을 가진 적이 없었다.
모나스 아카데미에서도 1등을 놓친 적이 없으며 덕분에 로들렌 아카데미에 입학할 때는 신입생 대표가 됐을 정도의 실력이었으니까.
물론 선배 중에서는 정말 말도 안 될 정도로 강한 사람들이 몇몇 보였으나 동급생 중에서는 자신이 언제나 1등이었기에 자신을 가지고 있었다.
상대가 강한 건 인정하지만 저 고수만 아드리아스가 상대한다면 나머지는 자신이 처리할 수 있었다.
“피오네. 다시 말에 올라타라.”
“예?”
“당장 길을 되돌아가서 지원을 불러.”
“그게 무슨 소리에요? 선배님은요?”
“막아야지.”
검을 든 채 덤덤하게 말하는 아드리아스가 이해할 수 없었다.
“무슨 소리에요! 둘이 힘을 합친다면 저런 야만인들 쯤은······.”
“오러 마스터다.”
그 한 마디에 피오네의 눈빛이 흔들렸다.
풍문으로는 전해 들었다.
북부 설경의 땅에서 내려온 야만족 부대에 오러 마스터가 있을 수도 있다는 말도 안 되는 소문을.
하지만 믿지 않았고 그저 북부 영지들이 밀리는 이유에 대한 핑계라고 판단했다.
본인들의 과오를 희석시키기 위한 거짓 보고일 뿐, 야만족 따위가 감히 초인에 도달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래. 너희가 그토록 부르짖는 오러 마스터, 대전사가 바로 나다.”
근육질이지만 날렵한 모습의 거한이 미소 지으며 여유 있게 말했다.
그는 첫 공격 이후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고 있었는데, 마치 다 잡아놓은 사냥감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지켜보는 사냥꾼과 같았다.
“보니까 검을 좀 휘두르는 샌님 같은데 내기를 하자. 네가 날 막는 동안 수하들은 나서지 않게 하겠다. 그동안 저 여자는 도망쳐도 쫓아가지 않으마. 대신 네가 더 이상 나를 막지 못하면 곧바로 쫓아가 죽이지.”
상대의 오만한 말에 피오네는 열이 뻗쳤지만 참았다.
자신의 감정으로 인해 이득을 볼 수 있는 상황을 걷어찰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하지.”
“선배님.”
“가라. 가자마자 지원을 불러.”
애써 발이 떼이지 않는 것처럼 연기하던 피오네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말 위로 몸을 실었다.
저 야만인이 진짜 오러 마스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저 여유와 자신감은 가볍게 생각할 수 없는 행동들이었다.
“바로 올게요.”
“그래.”
아드리아스를 버리고 간다는 자책감은 사람인 이상 어쩔 수 없이 존재했다.
고작 며칠 동안이지만 함께 지내기도 했고 그의 활약을 바로 옆에서 지켜본 만큼 존경의 마음이 생겼기에.
하지만 죽을 게 당연한 자리를 벗어날 수 있다면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버릴 수 있었다.
그녀는 냉정했고, 또 그렇게 자라왔다.
‘아마 죽겠지.’
솔직히 무슨 영웅 심리로 남아있겠다고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덕분에 살았다.
상대가 진짜 오러 마스터라면 그녀가 수십 명이 있어도 이기지 못할 상대였으니까.
“이랴!”
그래도 어쩌면······.
피오네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메이튼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렸다.
**
“자, 내기가 시작됐군. 부디 조금이라도 버텨서 저 여자는 죽게 만들지 말라고.”
상대는 야만족, 그중에서도 특공대장이라는 직함을 가지고 있는 만카라 부족의 족장 수이투였다.
내 예상대로라면 그는 분명 더 위쪽에 있었어야 했다.
아무래도 메이튼의 승리가 불러온 나비효과인 듯했는데 게임에서는 간신히 이겼던 것과 다르게 이번에는 아무 손실도 없이 적을 전멸시켜서 바뀐 결과 같았다.
“먼저 들어와라. 한 수는 양보해주지.”
“고맙군.”
정말이다.
고마워 죽겠네.
덕분에 껌딱지 같던 피오네도 떨어트려 놓을 수도 있었고.
“그럼 사양하지 않고······.”
나는 최대한 천천히 수이투에게 다가갔다.
상대가 오러 마스터인 만큼 긴장을 늦출 생각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질 것 같지도 않았다.
지금의 내가 사용할 수 있는 건 적의 방심.
수이투는 내가 얼마나 강한지 모르고 또 얼마나 다양한 패를 지니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니 처음은······.
“음?”
내가 검을 잡고 제대로 자세를 잡자 수이투의 안색이 변했다.
하지만 그가 눈치를 챘을 때는 이미 늦은 상황.
‘공간을 벤다.’
무결의 운용.
거기에 막시민이 보여주었던 검세를 섞었다.
“흐읍!”
수이투가 급하게 호흡을 삼키는 게 보였고 이내 갈락슈르가 휘둘러졌다.
오러 비기는 아니었지만 그 위력만큼은 오러 비기에 근접한다고 자부하는 검술이 내 손에서 펼쳐졌다.
꽈아아아앙-------!
수이투의 대부가 굉음을 터트렸다.
그 소리에 나는 상대가 오러 비기를 사용했음을 알 수 있었다.
공기가 진동하며 어마어마한 충격파가 터져 나오고 공간을 베어 내려한 내 검은 상대의 도끼에 막혀버렸다.
‘하지만······.’
그가 내 검을 막기 위해 온 신경을 내게 집중한 이 순간을 노렸다.
상대가 방심하고 내 능력에 대해 모를 때 내가 자주 애용하던 꼼수.
게다가 지금의 내 검술은 예전보다 훨씬 위협적이기에 먹힐 수밖에 없는 기술이었다.
푸욱!
“커억!”
수이투의 가슴으로 검이 뚫고 나왔다.
너무나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수이투의 수하들도 그저 멍하니 지켜만 보고 있었다.
서걱-
그리고 난 그런 수이투의 수급을 가볍게 베어주고 어느새 소리 없이 소환되어 그를 찌른 니켈에게 명령했다.
“모조리 죽여라.”
목격자만 없으면 내가 언데드를 소환한 것도 없던 사실이 된다.
나는 곧바로 다른 언데드들도 소환하여 도망치는 자들이 없도록 모두 처리했다.
“으아아악!”
“이 괴물들은 어디서······!”
수이투가 없는 이상 나머지는 쉬웠다.
라스틸리아에서부터 느낀 거지만 초인이라 불리는 오러 마스터도 결국 칼에 베이고 마법에 상처를 입는 존재.
동급의 적수가 없으면 일인군단이라고 불리는 존재들이었지만 실상은 달랐다.
딱.
할일을 마친 니켈이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나는 곧바로 니켈에게 새로운 명령을 내렸다.
“네가 나설 차례야.”
이 전쟁의 흐름을 내가 원하는 대로 만들기 위해서 내가 직접 나서지 못하는 일에는 니켈에게 맡기기로 계획했었다.
마침 피오네가 없어진 지금이 적기였기에 곧바로 블러디 댄의 가면을 니켈에게 씌웠다.
그리고 이제는 내 것이 된 하룬겔의 병력들을 잠에서 깨웠다.
“출전이다.”
**
“타이밍이 좋지 않았군.”
태양 기사단의 3조장 레이튼은 메이튼 백작의 집무실에서 나오며 중얼거렸다.
이제 막 메이튼으로 도착한 그와 태양 기사단의 3조원들은 아드리아스 크롬웰이 클라우디아 후작령으로 떠났다는 말에 낭패를 감추지 못했다.
황제의 명령으로 그를 살펴보라는 주문이 있었으나 결국 확인하지 못하게 된 셈이었다.
“레이튼, 우리가 클라우디아로 가면 되는 일 아닌가?”
조원 중 하나인 테일러가 묻자 레이튼은 고민에 잠겼다.
클라우디아 후작령도 분명 전방에 위치한 영지였지만 그가 생각하고 있던 최전방과는 거리가 멀었다.
“어차피 크롬웰 백작을 확인만 하면 되는 거 아니요? 클라우디아 후작령을 경유해서 다른 곳으로 가면 되지 않소?”
다른 조원이 그리 말하자 레이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겠다. 바로 떠날 준비를 하지.”
애초에 메이튼에서의 용건은 아드리아스를 살피는 일 밖에 없었기에 그가 없는 이상 머무를 필요가 없었다.
레이튼은 곧바로 메이튼 가의 집사에게 떠날 것을 전하고 짐을 챙겼다.
“레옹 집사님. 피오네 경께서 다시 돌아오셨습니다. 아무래도 습격을 당한 모양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곧바로 사건이 터졌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이야기, 우리에게도 말해주시오.”
“네? 넵. 그러니까 피오네 경의 말로는 여기서 반나절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오러 마스터로 보이는 적과 그의 별동대를 맞닥뜨렸다고 합니다. 아드리아스 크롬웰 각하께서는 그 자리에 남아 적을 막고 피오네 경께서 소식을 전하기 위해 다시 돌아온 모양입니다.”
“오러 마스터?”
뜻밖의 명칭에 레이튼이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그 말을 거짓으로 여기지는 않았다.
기본적으로 황궁 소속 기사단들은 황궁에 위치한 정보국으로부터 양질의 정보를 제공 받기에 북부 야만족들 중에 종종 오러 마스터가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크롬웰 각하께서 혼자 남았다는 소리인가?”
“그렇다고 합니다.”
“반나절 거리······.”
말은 하지 않았지만 이 장소에 있는 모두가 느끼고 있었다.
아드리아스가 살아남았을 확률은 거의 없다는 것을.
“일단 우리가 먼저 가보지. 메이튼에서도 조속히 지원을 바라오.”
“알겠습니다.”
태양의 기사단이라는 명칭이 어울리는 화려한 갑주를 입은 그들은 곧바로 피오네부터 찾았다.
정확한 위치를 알기 위해 그녀를 데려갈 생각이었다.
“아무래도 그 녀석 같아.”
레이튼의 말에 테일러가 대답했다.
“그 녀석? 아, 귀족 사냥꾼?”
“그래. 오러 마스터 별동대라고 하면, 그것도 이 근방이라면 녀석 밖에 없겠지. 벌써 그 녀석에게 당한 귀족들만 다섯 손가락을 넘어가니.”
“크롬웰 공이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어놓고 갔으면 좋겠군. 흔적이 있으면 그대로 추격해서 공을 세울 기회야.”
“우선은 한시라도 빨리 현장으로 출발한다.”
이내 그들은 하인의 도움을 받아 피오네를 만났다.
피오네는 나타난 이들의 갑주를 보고 금세 그 소속을 확인할 수 있었다.
“태양 기사단의 단원들을 만나게 되어 영광입니다.”
“피오네 경이라고 했나? 하루 종일 왔다 갔다 하느라 지친 건 알지만 우리를 현장으로 안내해주었으면 하는군.”
“전 괜찮습니다. 바로 가시죠.”
피오네로서도 아드리아스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 지쳐도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태양 기사단이 온 이상 야만인 오러 마스터도 두려울 게 없었다.
3개의 조로 이루어진 태양 기사단의 각 조장들은 오러 마스터들로 이루어져 있었으니까.
“피오네 경. 실례지만 내 등에 업힐 수 있나?”
“예? 예.”
피오네는 조금 부끄러웠지만 애써 감내하고 레이튼의 등에 업혔다.
그러자 레이튼의 주변으로 바람이 휘몰아쳤다.
“먼저 갈 테니 흔적을 보고 쫓아와라.”
“그래.”
대답을 들은 레이튼은 그대로 땅을 박차고 달렸다.
그 속도는 말은 물론이고 열차에도 견줄 정도로 빠른 속도.
‘역시 질풍의 레이튼.’
피오네도 정보국의 말단 소속으로 그의 정보는 익히 알고 있었다.
그의 속도라면 얼마 지나지 않아 곧바로 현장에 도착할 수 있을 터.
‘제발 살아만 있어라.’
아드리아스는 아직 죽으면 안 되는 유용한 패였다.
개인적인 호감도 물론 있었지만 황제와의 거래를 위한 필수 인물이었기에 그가 죽으면 여러모로 피곤해진다.
“어디로 가면 되지?”
“오른쪽이요!”
갈림길이 나올 때마다 피오네가 방향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방향을 말해줄 필요가 없을 때는 야만인들을 마주쳤을 때의 상황을 설명했다.
그렇게 엄청난 속도로 달려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늦은 건가.”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대신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혈흔들과 전투의 흔적들이 남아있었다.
“아아······.”
피오네는 진심으로 안타까워했다.
사실상 아드리아스 정도의 실력이었으면 그녀를 버리고 도망을 쳐볼 수도 있을 만했지만, 그는 결국 피오네를 도망치게 했다.
“조금 이상하군.”
안타까움에 젖어있는 피오네와 달리 레이튼은 주변의 흔적을 유심히 살폈다.
그리고 그는 곧 흔적에서 어떠한 정보를 얻어낼 수 있었다.
“전투가 금방 끝났다. 여러 흔적들이 흩어져있지만 오러 마스터의 것으로 보이는 건 여기 있는 이거 하나 뿐이야.”
“아드리아스 선배님이 얼마 버티지 못했다는 건가요?”
“그렇게 따지기에는 이상한 점이 있군. 우선 첫째로 크롬웰 각하의 실력이다. 그는 내 귀에도 들어올 정도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로들렌 아카데미의 유명인이지. 나도 로들렌 아카데미 졸업생으로서 모드라스의 탑까지 정복한 그가 어느 정도의 위치인지는 대략적으로 알고 있다. 그런 그가 단 한 합 만에 졌다는 건 조금 희한하지.”
“상대는 오러 마스터였어요. 무슨 오러 비기를 사용할 지도 모르잖아요.”
“그래. 상대가 첫 수에 오러 비기를 사용해서 끝냈을 수도 있지. 하지만 여기서 두 번째 특이점이 생긴다.”
“······아!”
“깨달았나? 만약 그가 첫 수에 당했다면 그대도 적들에게 죽었을 거다. 경이 말한 그들의 내기 조건은 크롬웰 각하께서 살아있는 동안만 쫓지 않는다는 것이었지. 그리고 세 번째로 이상한 건 저기 있는 혈흔들이다. 저건 분명 다른 이들의 피야. 한 명의 피가 아니니 거의 확실하지. 그렇다는 말은 크롬웰 각하뿐만이 아니라 적들도 다치거나 죽었다는 의미.”
피오네는 입에 주먹을 대며 잠시 생각에 빠졌다.
레이튼의 말은 확실히 그럴싸했다.
만약 그가 말한 내용이 맞다면 아드리아스가 살아있을 확률도 있었다.
“설마······크롬웰 각하께서 오러 마스터를 이긴 건 아니겠죠?”
“그건, 모르겠군.”
레이튼은 장담할 수 없었다.
실제로 아드리아스를 만난 적이 없으니 예단할 수는 없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아카데미도 졸업하지 않은 젊은이가 오러 마스터를 이긴다는 건 상상조차 안 가기에.
‘막시민 크로넬이라면 몰라도······.’
잠시 대륙 최강의 검사라는 호칭의 사내를 떠올린 레이튼은 피오네에게 말했다.
“난 이 흔적을 쫓아 추적을 계속할 테니 피오네 경은 내 동료들을 여기서 기다렸다가 함께 오시오.”
“알겠습니다.”
피오네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자 레이튼은 곧바로 떠났다.
그렇게 혼자 남게 된 피오네는 여전히 생각의 늪에 빠져있었다.
‘아드리아스 크롬웰은 분명 흑마법사야. 남들은 모르지만 나는 알고 있지.’
그녀의 머릿속으로 혹시라는 생각이 스쳤다.
만약 상대방이 방심한 상태에서 아드리아스가 흑마법을 이용해 허를 찔렀다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사람.’
어쩌면 자신을 그냥 보낸 것도 그 모습을 들키기 싫어서 그랬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이 보면 너무 간다고 할 수도 있는 생각이었지만 그녀는 메이튼에서의 경험이 있었다.
이미 한 번 제대로 허를 찔려봤기에 아드리아스라면 오러 마스터를 상대로 위기를 헤쳐 나가지 않았을까.
“만약 정말로 그런 거라면······.”
문득 아드리아스가 두려워지기 시작하는 피오네였다.
< 205화. 멈추지 않는 계획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