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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 특성으로 최강 네크로맨서-204화 (204/415)

< 204화. 이동 그리고 변수 >

후방에 위치한 메이튼이 공격받은 소식은 모든 전장으로 퍼졌다.

그만큼 허를 찔린 공격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10배 가까이 차이가 나는 병력을 상대로 대승을 거둔 전투라 소문이 안 퍼질 수가 없었다.

“역시 아드리아스 선배님이시네.”

소식을 접한 루이스가 중얼거렸다.

그도 이번 전쟁에 참가했으며 그가 배속된 곳은 후방에 위치한 영지 중 하나인 파크라엘이었다.

가장 큰 물류기지인 메이튼과 전방을 연결하는 영지였다.

그런 만큼 만약 메이튼이 함락되었으면 그 다음 목표는 파크라엘이 되었을 테지만 아드리아스의 활약으로 무산이 된 상황이었다.

“뭔 꿍꿍이로 그런 후방에 지원했나 했더니 미리 정보를 알고 있었던 건가?”

순수하게 감탄하는 루이스와 별개로 누군가가 의심스럽게 혼잣말을 했다.

그 혼잣말에 루이스가 고개를 돌려보자 나른한 표정의 여인이 성벽 위에 엎드려 누워있었다.

“루시아 선배님. 위험합니다.”

“웅? 괜찮아. 안 죽어.”

“위험한 것도 위험한 거지만 병사들의 사기에 좋지 않습니다. 내려와 주세요.”

“넌 잔소리가 좀 심하네.”

루시아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리고 아슬아슬하게 성벽 위에서 균형을 잡다가 안쪽으로 폴짝 뛰어내렸다.

그 모습을 위태롭게 바라보던 루이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루시아 선배님. 저희는 놀러온 게 아닙니다.”

“난 어차피 오늘만 있다가 다른 곳으로 갈 거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

루시아의 당당한 말에 루이스가 머리를 긁적였다.

이 평범하지 않은 마법학부 선배는 이틀 전에 보급 물자를 운반하기 위해 나타난 에버라스트 상단과 함께 왔다.

이틀 동안 있다가 떠나는 그녀는 전쟁에 대한 긴장감이라고는 1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산책이라도 나온 듯 가벼운 모습을 보면 머릿속이 궁금해지는 루이스였다.

“근데 대단한 전공이기는 하네. 솔직히 메이튼에서 막아내지 못했으면 보급로가 끊기는 건 물론이고 앞뒤로 포위되는 형상이었는데. 그랬으면 우리도 위험했겠어.”

“그렇죠. 아마 지금쯤 이렇게 여유롭게 대화를 나누는 것도 불가능했을 겁니다. 어쩌면······.”

후방에서 진격하는 적들을 막다가 죽었을 수도 있다는 말은 애써 삼켰다.

야만족들을 얕보는 건 아니지만 실력에는 자신이 있는 루이스였다.

게다가 눈앞에 있는 루시아도 겉보기에는 항상 나른하지만 실력은 모자람이 없다고 들었다.

아마 둘의 힘을 합치면 살아남을 수 있었겠지.

“뭔 생각을 그렇게 해?”

“만약 메이튼이 막아내지 못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상상해보았습니다.”

“어떻게 되긴 어떻게 됐겠어. 다 죽었겠지.”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이런 말을 하면 건방져 보일 수도 있겠지만 실력에는 꽤 자신이 있습니다.”

“전쟁은 개인의 능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야.”

루시아는 벽에 등을 기대며 말했다.

“예외가 있다면 초인들뿐이지. 초인들도 같은 초인으로 막을 수 있고.”

“전 살아남는 것을 말한 겁니다.”

“상황이 그렇게 쉬우면 얼마나 세상 살기 편할까. 전쟁은 갖은 변수를 가지고 있어. 너 혼자만 살아남는다고? 물론 가능하겠지. 만약 눈앞에서 죽어가는 동료를 못 본 채 한다면, 성 안의 무고한 백성들의 비명을 못 들은 채 한다면, 가능이야 하겠지.”

루시아의 말에 루이스는 할 말을 잃었다.

조금 전까지 루시아의 태도를 무시했던 자신이 부끄러워지는 기분이었다.

“물론 나는 최선을 다해서 살아남을 거야. 그게 쓸데없는 감정으로 개죽음 당하는 것보다 백배는 이득이니까. 하지만 이건 내가 이성으로만 판단하는 마법사니까 가능한 일. 너 같은 기사 지망생이 그런 짓을 할 수 있겠어?”

“······불가능할 것 같군요.”

“그래. 그게 기사와 마법사의 차이지. 그 판단이 틀린 건 아니야. 그냥 나와 선택이 다를 뿐이니까.”

루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을 듣고 다시 생각해본 그는 메이튼에서 적들이 몰려오면 높은 확률로 자신이 죽었을 수도 있음을 깨달았다.

“메이튼에서의 승리는 상징적이기도 했지만 전략적으로 엄청난 이득이었어. 후방이 위협되는 것 이상으로 보급로의 역할에 큰 차질을 빚었을 테니까. 전세가 완전 뒤바뀌었을 거야.”

“정말······아드리아스 선배님이 큰일을 하셨군요.”

“언제나 그랬지, 뭐. 뒤에서 조용히 혼자 끙끙 앓으면서 모든 걸 책임지려는 바보니까.”

루시아의 얼굴에 자조적인 미소가 걸렸다.

아드리아스를 떠올릴 때마다 즐거웠던 예전과 달리 요즘 들어 점차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렘과 있었던 일에서 그가 뒷세계와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살렘 예디디아와 그런 대화를 나눌 수 없었을 테니.

그리고 그가 겉으로는 조용하지만 언제나 동분서주하며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그다지 신경 쓰지 않은 척했지만 그의 동선은 항상 확인하고 있었으니까.

‘은인이니까.’

애써 그렇게 생각했다.

자신이 그를 신경 쓰는 것은 그에게 구원을 받았기 때문이지, 다른 감정 때문이 아니라고.

“그 말을 들으니 역시 루시아 선배님께서는 아드리아스 선배님과 친분이 두터우신 모양이군요.”

“그런 편이지.”

“솔직히 저는 아직도 아드리아스 선배님에 대해서 잘 모르겠습니다. 분명 말수가 적은 것도 아니고, 뭔가 행패를 부린 것도 아니지만 다가가기 힘든 분위기랄까.”

“선배는, 그냥 바보야.”

“예?”

루이스의 당황스러운 물음에 루시아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한 가지 확실한 건 네가 착각하고 있다는 거. 선배는 차가운 사람이 아니니까 그렇게 어려워하지 않아도 돼.”

“알겠습니다. 그래도 역시 말로만 듣는 것보다 직접 경험해보고 싶네요.”

“그래.”

루이스의 말에 긍정하면서 그녀도 생각했다.

본인의 진짜 감정을 확인할 방법은 결국 아드리아스에게 있다고.

“직접 확인해야겠지.”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

전후 처리를 하느라 한창 바쁜 메이튼 백작을 찾아갔다.

그는 골머리를 앓는 표정을 짓고 있었으면서도 내 얼굴을 보자 금세 환하게 반겨주었다.

“이런, 이런! 메이튼의 영웅이 오셨군!”

“고생이 많으십니다.”

의례적인 인삿말을 꺼내자 백작은 곧바로 자리를 권했다.

“서있지 말고 앉아주시오. 은인이 힘들면 안 되지. 그보다 갑자기 무슨 일로 나를 찾은 것이오?”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부탁?”

그는 고개를 갸웃 거리면서도 이내 말했다.

“크롬웰 공의 부탁이라면 웬만한 건 다 들어주지. 무엇을 원하시오?”

“소속 부대를 변경하려고 합니다.”

아무래도 예상치 못한 부탁인가 보다.

누구든 예상하지 못할 부탁이긴 하다.

하지만 계획대로 움직이려면 무조건 옮길 필요가 있었다.

내 다음 전장은 이곳이 아니었으니까.

“어렵지 않은 부탁이오. 원하는 장소가 있소?”

“클라우디아로 가고 싶습니다.”

“클라우디아? 클라우디아라······. 알겠소.”

쿨하게 받아준 메이튼 백작은 호기심 어린 표정을 지었지만 굳이 물어보지는 않았다.

내가 뭔가를 알고 꾸미고 있다는 인상을 주긴 하겠지만 모두를 지키려면 어쩔 수 없는 손해였다.

“당장 떠날 것이오?”

“혹시 가능하겠습니까?”

“많이 아쉽지만 크롬웰 공께서 그리 하길 원한다면 바로 도장을 찍어주겠소.”

그는 말 뿐이 아니라 곧바로 서신을 작성하고 인장 도감을 찍었다.

그리고 그 서신을 내게 건네며 말했다.

“클라우디아 후작가는 대대로 우리 가문과 돈독했지. 내가 미리 통신 아티팩트로 연락을 해놓겠소.”

“배려에 감사합니다.”

“아니오! 그대가 메이튼을 구원한 것에 비하면 비교도 되지 않소. 가까운 시일에 이 전쟁이 끝난다면 은혜는 반드시 갚도록 하겠으니 기대하시오. 우리 메이튼 가문이 그저 그런 가문이 아니라는 것을 은인께 보여주겠소.”

“너무 좋게 봐주셔서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크롬웰은 메이튼과 돈독한 관계가 되었으면 하네요.”

“물론이오! 오히려 내 쪽에서 부탁하고 싶소.”

대화가 끝나고 곧바로 방으로 돌아와 짐을 챙겼다.

피오네에게는 미리 말을 해두었기에 그녀의 준비도 순식간에 끝났다.

“정말 기행이네요. 솔직히 이 전쟁에 대해 뭔가를 알고 계시는 거죠?”

“모른다.”

피오네의 의심스러운 물음을 일축해버리고 말을 탔다.

지금 가게 되는 곳은 전방에 위치한 클라우디아 후작령.

비록 최전방은 아니지만 동시다발적인 국지전이 일어나고 있는 모양이었다.

“뭐, 저야 보고만 올리면 판단은 위에서 하겠죠. 조심하세요, 선배님. 제가 일거수일투족을 다 기록하고 있으니까.”

“그래. 열심히 해라.”

피오네에게는 안타깝지만 이번에는 내가 직접 눈에 띄는 행동을 하진 않을 거다.

이번 계획은 나만의 힘으로는 도저히 해결하기 어려운 일이거든.

그러니 오히려 내가 나서지 않을 거다.

‘계획대로만 된다면 나는 가만히 있어도 해결할 수 있겠지. 하룬겔의 무덤에 간 덕분에 편해졌어.’

변수가 있다면 내가 만들어낸 나비효과.

원래대로라면 메이튼은 함락 당했어야한다.

하지만 결국 지켜내는데 성공했고 루이스와 루시아에게 향했어야 할 시련이 무산됐지.

‘시련을 극복할수록 플레이어블도 강해지지만······.’

이번만큼은 막았어야 했다.

전쟁은 모든 걸 빨아들이는 괴물 같은 존재.

내가 플레이하는 루이스나 루시아였으면 정보를 알고 있으니 무사히 해결했겠지만 지금의 그들은 아무 정보도 없는 상태였다.

물론 그들도 원래의 게임 진행 속도보다 훨씬 빨리, 그리고 많이 강해졌지만 정보의 유무는 무력조차 뛰어넘는다.

“열차가 막혀서 고생이네요.”

피오네가 말을 탄 채 옆에서 중얼거렸다.

북부 노선의 열차는 전쟁으로 인해 중단되었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나는 대략적인 이동거리를 계산해보며 그녀에게 말했다.

“느긋하게 가도 돼. 일주일이면 도착할 거야.”

“예. 어차피 노숙에는 이골이 났어요. 그리고 이런 경험도 지금 많이 해둬야겠죠.”

사실 나는 피오네에 대해 잘 모른다.

애초에 아카데미에 입학하는 캐릭터도 아니었고 그녀의 가문이 친황제파인 아르디 후작가였지만 게임에서 황궁과 엮일 일은 보상을 받을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었다.

그러니 아르디 후작가와 엮일 일은 전혀 없었다.

후작이라는 고위 귀족 가문이었지만 비중이 큰 가문도 아니었기에 이름만 알 뿐.

“넌 후작가의 영애면서 노숙을 해본 거냐?”

“어차피 제가 정보원이라는 건 다 말했으니까 속 시원히 털어놓을게요. 괴물 같은 당신의 의심도 사고 싶지 않고 황궁에 충성심을 가진 것도 아니라서.”

“재밌네. 그래서 털어놓을 게 뭔데?”

“황궁에는 정보국이 있는 건 알고 계시죠?”

“어. 카자프 공작이 총괄하는 단체잖아.”

“정보국 소속으로는 꽤 많은 귀족들이 있어요. 우리 아르디 가문도 그 중 하나죠.”

“거기서 훈련도 받는 거냐?”

“예. 바로 그거예요. 온갖 이상한 훈련을 받죠. 모두가 받는 건 아니고 저 같이 버려진 사람들만 받아요. 저희는 가문의 말이죠.”

본인을 보고 버려진 사람이라고 하다니 의외였다.

황제한테 거래를 제안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보면 꽤 야망이 있는 여자로 봤는데 그래서 그런 건가?

“그래도 저는 포기하지 않아요. 반드시 성공할 거라는 믿음이 있으니까요.”

“긍정적이라 좋네.”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선배니까 해주는 거예요. 다른 사람이었으면 얄짤 없는 거 아시죠?”

보면 볼수록 뭔가 써먹을 만한 인물 같기도 하다.

물론 아직 그 능력을 확인하지 못했지만 적어도 이득이 있다면 황제도 배신하고 내 편에 서 줄 것만 같달 까.

‘반대로 생각하면 이득이 있다면 나도 금세 배신하겠지. 지금 하고 있는 것처럼.’

그녀는 대놓고 황제에게 보고를 올린다고 말하고 있었다.

숨기지 않아서 오히려 안심이지.

근데 생각해보면 일부러 숨기지 않음으로서 경계심을 낮추려는 것 같았다.

“심심한데 하나만 물어볼게요. 클라우디아에는 왜 가는 거예요?”

“전공을 세우려고 가지.”

“또 무슨 정보를 입수했나 봐요? 집회에서라든지?”

대놓고 나를 집회소속이라고 몰아가는 그녀를 보고 어깨를 으쓱했다.

“집회는 또 뭔데.”

“그만 좀 시치미 떼요. 페이드한테 다 들었다니까요? 그리고 안심 좀 하세요. 이 정보를 알리면 우리 가문도 집회와 거래했다는 사실이 알려져서 멸문을 당할 테니까.”

“뭔 소린지 모르겠군.”

실제로 내가 집회를 통해 들은 정보는 아무것도 없었다.

굳이 물어볼 필요도 없는 게, 이미 다 알고 있거든.

게임에서 수십 번을 겪어본 전쟁이기에 온갖 변수와 나비효과도 꿰뚫고 있었다.

그때는 다른 방법을 사용했지만 메이튼을 지켜낸 것도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으니까.

“에휴, 됐어요. 어차피 저와 거래를 받아들인 시점에서 정체를 다 밝힌 거나 마찬가지인데 답답하네.”

“잠깐.”

나는 말의 고삐를 잡아당겼다.

그런 나를 보며 피오네도 급하게 걸어가던 말을 멈춰 세웠다.

“무슨 일······.”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는 말의 등을 박차고 검을 뽑아 휘둘렀다.

촤앙!

손이 얼얼할 정도의 충격이 퍼졌다.

무결로 휘둘렀음에도 느껴지는 묵직함.

이 감각은 설마······.

“꽤 쓸 만한 녀석이 있었군.”

수풀 쪽에서 말소리가 들려오고 흉흉한 기세를 지닌 근육질의 헐벗은 사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보통은 아닌 걸 보면 무조건 잡아야겠어.”

가볍게 말하는 그 사내를 본 순간 나는 이마를 찌푸렸다.

예상치 못한 돌발 변수의 발생.

‘이쪽에 있을 녀석이 아닌데······.’

그는,

오러 마스터였다.

< 204화. 이동 그리고 변수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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