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화. 페널티 그리고 퀘스트
[진화 실패! 페널티가 주어집니다.]
[검술(영재) 진화 실패 페널티로 퀘스트가 주어집니다.]
―띠링!
[퀘스트: 천재가 되기 위한 노력]
[내려 베기 0/1,000,000]
[횡 베기 0/1,000,000]
[찌르기 0/1,000,000]
[퀘스트 완료 전까지 진화 실패로 인한 고통이 지속됩니다.]
[퀘스트 완료 전까지 진화가 불가능합니다.]
[퀘스트 완료시 성과에 따라 검술 재능의 진화 확률이 올라갑니다.]
[퀘스트 완료시 성과에 따라 진화 포인트를 획득합니다.]
“끄억.”
눈앞을 가득 메우는 메시지 창을 확인하기도 전에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고통이 전신을 두드렸다.
호흡조차 힘들 정도로 엄청난 고통에 나는 그대로 바닥에 엎어졌다.
―히융!
―크르르.
달그락?
주변에서 언데드들이 서성이는 게 어렴풋이 느껴졌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결국 고통을 견디지 못한 나는 아득해져 가는 정신을 놓치고 말았다.
* * *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가 없었다.
고통은 여전했고 머리는 어지러웠으며 목이 심하게 탔다.
“고…….”
니켈이 물을 건넸다.
무의식중에 고맙다는 말을 건네려다 목을 타고 오르는 고통에 저절로 입이 다물어졌다.
이내 물을 마시자 찢어지는 고통과 함께 눈물이 핑 돌았다.
“흐어.”
물 하나 마시는 것도 이렇게 힘들 줄이야.
도저히 익숙해질 수 없는 고통을 간신히 견뎌 내며 물과 밥을 먹었다.
식사 자체가 너무나 고통스러웠지만 살기 위해 먹어야 했다.
‘다시 확인을…….’
기절하기 직전에 메시지 창이 떴던 걸로 기억하고 있었다.
재확인을 위해 다시 화면을 띄우고 읽어 보자 숨이 턱 막혀 왔다.
물을 마시는 것조차 이렇게 고통스러운데 검을 휘두르라고?
그것도 백만 번씩 총 세 번을?
‘미쳤네.’
그렇다고 안 할 수도 없었다.
평생 이 고통을 견디며 살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진화가 불가능한 건 둘째 치고 제대로 된 생활을 못할 거다.
“흐윽.”
나는 부들부들 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나를 언데드들이 불안한 감정으로 지켜보는 것이 느껴졌다.
삼백만 번.
그 아득한 숫자에 마음이 꺾일 것 같았다.
‘진화 실패 페널티가 이렇게 빡셀 줄이야. 등급에 따라 페널티도 다르려나.’
일단은 갈락슈르를 뽑아 들고 천천히 내려 벴다.
너무 고통스러웠던 탓에 엉망진창인 내려 베기였다.
‘……숫자가 안 올라?’
시야 한구석에 들어오는 퀘스트 창은 변함이 없었다.
여전히 0을 가리키고 있는 퀘스트를 보며 이번에는 최대한 정자세로 내려 벴다.
―1.
드디어 오르는 숫자를 보며 헛웃음이 나왔다.
대충 휘두르는 건 세 주지도 않겠다는 건가.
정자세로 삼백만 번의 검을, 이런 몸뚱어리로 휘두르라는 가혹한 페널티에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덜그럭.
좌절이 내려앉을 때, 갑자기 니켈이 내 옆에 다가와 섰다.
그리고는…….
후웅!
묵묵히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런 니켈을 본 티무르가 비어 있는 내 옆에 오더니 정권을 지르기 시작했다.
후앙!
같이 해 주겠다는 건가.
내 양옆에서 묵묵히, 하지만 신중하고 최선을 다해 몸을 움직이기 시작하는 둘을 보며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일단 해 본다.’
과연 할 수 있을지, 그리고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지만…….
나는 천천히 검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못 찾은 건가.”
“죄송합니다.”
“자네가 죄송할 게 뭐 있나. 다 각자의 운인 것이지.”
호이르가 손을 내저으며 이내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미 자신이 알고 있던 내부의 모습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나마 오랜 세월 축적된 경험으로 아직까지는 길이 읽힐 뿐이었다.
세계수의 움직임으로 뿔뿔이 흩어진 상태.
세이르와 몇몇 엘프들이 보이지를 않았다.
그나마 호이르와 후겐, 그리고 젊은 엘프들 중 하나인 밀레르는 함께 있을 수 있었다.
“원로님. 아무래도 이번 일은 그 인간 때문이겠지요?”
밀레르가 물었으나 호이르는 답해 줄 수가 없었다.
꽤 오랜 시간 활동을 해 오며 세계수의 내부가 조금씩 움직이는 건 알 수 있었지만 이번만큼 눈에 보일 정도로 역동적인 움직임은 처음이었다.
‘그 인간 때문인가, 아니면 최근 새순이 돋지 않은 일과 관련이 있는 건가.’
그저 타이밍이 나빴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었다.
“일단은 신탁을 받은 인간이다. 지금은 그자를 최우선적으로 수색해야겠지.”
다른 엘프들은 큰 걱정이 없지만 아드리아스 크롬웰도 함께 사라졌기에 문제가 되었다.
인간이 세계수 내부로 들어왔다는 것조차 엘프의 역사에서는 없었던 일이었다.
신탁도 신탁이지만 인간이 세계수에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니 되도록이면 빨리 찾아야만 했다.
“못 찾겠군.”
그때 후겐이 중얼거리며 나타났다.
“아! 장로님, 오셨습니까?”
“고생했네.”
사라진 이들을 찾아 나섰던 후겐이었지만 결국 아무도 찾지 못하고 빈손으로 왔다.
그는 미간을 찌푸린 채 한숨을 내쉬며 호이르에게 말했다.
“흔적이 이어진 곳이 전혀 없습니다. 세계수가 움직이며 다른 이들의 흔적도 다 조각난 모양입니다.”
“그래. 오늘은 시간이 꽤 지났구나. 일단 여기서 휴식을 취하도록 하지.”
“세계수 내부에 있으니 시간의 흐름을 파악하기 힘들군요. 벌써 그런 시간입니까?”
“아마 우리가 들어온 지 10시간 정도 지났을 걸세.”
10시간이라…….
후겐은 나지막하게 중얼거리며 어딘가에 처박혀 있을 아드리아스를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본 모습은 나무줄기에 검을 휘두르며 결국 끊어 내지 못하고 어디론가 끌려가던 모습.
‘세계수가 굳이 녀석만 끌고 갔다고? 뭔가가 있는 건 확실해.’
신탁도 그렇고, 세계수의 반응도 그렇고 의심스러운 구석이 많았다.
도대체 타피오께서는 무엇을 원하시는 걸까.
“타피오의 뜻을 모르겠습니다.”
생각이 자신도 모르게 입 밖으로 나왔다.
그러나 굳이 감출 필요는 없었기에 호이르에게 답을 구하듯 바라봤다.
“어찌 우리가 그 뜻을 헤아릴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대사제가 거짓 신탁을 말했을 리는 없지 않나.”
“저도 신탁을 직접 확인했습니다. 거짓이 아님은 확실하죠. 그저 답답했을 뿐입니다.”
“일단은 천천히 찾아보도록 하세. 그리 위험한 일은 아마 없을 게야.”
후겐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깔고 앉았다.
세계수 내부는 거대하고 넓은 만큼 나름의 생태계가 형성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온갖 생명체들이 살아가고 있었는데 조금 위험한 몬스터들도 존재했다.
물론 마주칠 확률이 높은 것은 아니었기에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내일 다시 찾으면 되겠지. 못 찾으면 며칠, 몇 개월, 몇 년이든지.’
과연 그때까지 살아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시체라도 건져 주마.
엘프의 시간은 길었다.
* * *
검이 호선을 그리며 정확히 예상한 지점에 멈췄다.
그와 동시에 숫자가 올랐다.
[퀘스트: 천재가 되기 위한 노력]
[내려 베기 1,000,000/1,000,000]
[횡 베기 999,997/1,000,000]
[찌르기 1,000,000/1,000,000]
드디어 끝이 보이는 숫자에 고통조차 잊을 정도로 몸이 근질거렸다.
시간이 도대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른다.
조금씩 체크하고 있었지만 그것도 1년까지가 한계.
애초에 밤낮을 알 수 없으니 의미가 없는 행위였다.
휘익!
[횡 베기 999,998/1,000,000]
적어도 2년은 지나지 않았을까?
남은 식량으로 대충은 계산이 되었다.
―크롸!
딱!
후웅!
티무르의 정권 지르기가 파공음을 만들고 니켈의 검이 엄청난 풍압과 함께 내리쳐졌다.
언데드는 밥도, 잠도, 휴식도 필요가 없었으니 그들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특히 니켈은 만변의 [제자리에서 검을 휘두를수록 파괴력 증가] 스택을 미친 듯이 쌓았다. 아마 지금 최대 스택에 도달한 듯싶었는데 근처에 있으면 풍압만으로 갈가리 찢길 것 같았다.
그런 그들을 보며 나도 힘을 내어 다시 검을 휘둘렀다.
휘익!
[횡 베기 999,999/1,000,000]
“후우.”
한 번.
단 한 번 남았다.
이 고통이 끝날 거라 생각하자 믿기지가 않았다.
이제는 익숙해졌다고 해야 할까.
솔직히 말하자면 조금 머리가 이상해진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검이 떨어져 내렸다.
휙!
[횡 베기 1,000,000/1,000,000]
―띠링!
[퀘스트 완료!]
[보상이 주어집니다.]
[목표 달성 100%]
[검술 재능의 진화 확률이 21% 올라갑니다.]
[진화 포인트가 6300pt 주어집니다.]
[페널티가 사라집니다.]
“아아…….”
고통이 없던 순간이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멀게 느껴졌었다.
그러나 순식간에 사라진 통증은 오히려 인지 부조화를 일으켰다.
전신이 떨려 오고 생각지도 못한 눈물이 흘렀다.
감정을 억눌렀지만 몸이 먼저 반응하고 있었다.
―히융?
미리내가 울고 있는 내 얼굴을 건드렸다.
니켈과 티무르도 어느새 나를 따라 검을 휘두르거나 정권을 지르던 것을 멈췄다.
“괜찮아.”
몸의 반응은 이렇지만 진짜로 괜찮았다.
오히려 긍정적인 감정이 솟구쳤으니까.
몸과 감정의 제어가 힘든 걸 보면 뇌의 어딘가가 망가진 게 아닐까 싶었지만…….
“고맙다.”
지금은 녀석들에게 감사를 말하고 싶었다.
이런 공간에서 혼자 지냈으면 정말 미치고도 남았겠지.
이들이 아니었으면 나는 견디지 못했을 거다.
[아드리아스 크롬웰: 검술(영재)의 진화 가능성 52%]
[진화를 하시겠습니까?]
그리고 그 사실을 알기에 나는 다시 도전할 수 있었다.
“진화한다.”
조금 이른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었지만…….
‘다시 한 번 실패하는 것까지 계산하면 빨리 진화시켜야 한다.’
내 머리는 이성적으로 굴러가고 있었다.
이제 식량이 3년 정도 버틸 양밖에 남지 않았다.
내게 감격에 겨워하며 우물쭈물할 시간 따위는 안타깝게도 없었다.
[아드리아스 크롬웰: 검술(영재)]
[진화 중…….]
[남은 시간: 310시간 57분 00초]
진화 시간이 줄었다.
확률이 올라가면 시간도 줄어드는 모양이네.
덜그럭.
니켈의 걱정하는 감정이 전해졌다.
내가 무리를 한다고 생각하는 건가.
“죽을 만큼 괴로웠지만, 죽는 건 더 싫어.”
나는 반드시 살아남아서 돌아갈 거다.
그러기 위해 다시 실패 페널티를 받는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진화까지…… 13일.’
진화의 후유증은 이제 간지러울 정도.
그것보다 나는 이참에 갑자기 생긴 새로운 시스템을 살폈다.
[진화 포인트 6300pt]
이번 페널티의 퀘스트를 깨며 얻은 이상한 포인트.
게임에서도 다양한 포인트가 존재했지만 처음 보는 포인트다.
어디다 써먹는 거지?
분명 쓰임새가 있는 게 확실한데 진화 특성 자체가 처음이라 어디에 쓰는 물건인지 알 수가 없네.
진화를 실패하는 일 자체가 처음이라 이런 게 있는지도 몰랐다.
그렇게 잠시 뚫어지게 진화 포인트를 바라보고 있을 때.
놀라운 일이 곧이어 일어났다.
[포인트(종류 무관)를 처음 획득하셨습니다.]
[일일 퀘스트가 열립니다.]
[상점이 열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