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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 특성으로 최강 네크로맨서-162화 (162/415)

162화. 전운 그리고 충돌

내가 없던 사이에 만들어진 별채는 아직 어수선한 분위기를 띠었다.

하지만 방 내부는 정돈이 잘되어 있었기에 실례를 범할 일은 없었다.

“그동안 잘 지냈어요?”

그레타는 스스럼없는 모습으로 나를 대했다.

워낙 활발한 성격인 건 게임에서도 겪어 보았기에 놀랄 건 없지만 한 가지 의외인 점이 있었다.

“예. 바쁘지만 나름 나쁘지 않게 지냈습니다.”

“안 그래도 종종 소식을 들었어요. 최근에도 큰일이 있었다고 하던데?”

그레타 모하임은 활발한 것과 별개로 자신이 인정한 사람이 아니면 진지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저번 만남에서도 보았듯이 전권을 쥐고 있는 미누스와는 달리 장난스럽던 모습만을 보여 왔었다.

‘이번에는 대리인의 자격으로 와서 그런 건가.’

크게 내색하지 않고 일단은 대화를 이어나갔다.

“큰일이라면 큰일일 수도 있지만 저희 아카데미의 평가는 워낙 어렵기로 유명해서요. 특히 4학년 평가는 대체로 힘들죠.”

“그런 것치고는 사상자도 꽤 나왔다던데?”

“사상자는 매년 나왔습니다. 올해에는 평균보다 더 나온 것 같기는 하지만 조금 안타까울 뿐이죠.”

나와 그레타가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에이미가 직접 차를 끓여 왔다.

카페에서 일해 본 경험이 있는 에이미는 웬만한 사람들보다 차를 잘 내렸다.

“고마워요. 크롬웰 각하 여동생분이시죠?”

“에이미 크롬웰이라고 합니다.”

“인사가 늦었네요. 만나서 반가워요. 그레타 모하임이에요. 모하임 전하의 동생이죠.”

에이미가 내 옆에 착석하자 그레타는 우리를 번갈아 보더니 히죽이며 웃었다.

“꼭 저희 남매 같아요.”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요, 아니요. 그런 뜻이 아니라 저희도 외모는 저한테만 몰렸거든요. 저희 오빠가 솔직히 잘생긴 건 아니잖아요?”

“흠! 흠!”

옆에 있던 대너드가 크게 헛기침을 했다.

에이미는 예쁜데 난 왜 이렇게 생겼냐고 돌려 까는 건가.

“에이미가 예쁘긴 하죠.”

“오빠!”

“하아, 둘 사이가 부럽네요. 저희 공작님께서는 제가 이런 말을 하면 손부터 나가는데.”

시답잖은 말만 하니 슬슬 조바심이 생겼다.

지금 이곳에는 살렘도 있는 만큼 모하임 공작가의 손님들이 오래 있는 게 썩 좋지는 않았기에.

‘황제도 항상 감시하고 있는 상황이니 모하임 공작가가 방문했다는 소식은 곧바로 알려지겠지.’

아직은 숨을 죽이고 있어야 할 때라 곤란했다.

“그래서 오늘은 어떤 일로 방문하셨을까요?”

“갑자기 방문한 건 미안해요. 며칠 전에 미리 방문한다는 서신을 보냈어야 하는데 급한 일이 생겨 가지고 바로 와 버렸어요.”

“급한 일?”

“네. 황제가 병력 소집 공문을 내렸어요.”

그레타는 전혀 무게감 없이 말했지만 그 말이 전해지는 순간 나는 올 것이 왔다는 걸 깨달았다. 에이미는 이미 두 눈이 동그랗게 변한 상태였는데 옆에 있던 내 옷깃을 세게 움켜잡았다.

“전쟁입니까.”

“아무래도 그렇겠죠? 북부 원정을 위한 소집이라고 해요. 아직까지는 공작가에만 전해진 소식이고 며칠 내로 전국에 퍼질 거예요.”

탁자에 턱을 괸 채 싱긋 웃으며 말을 하는 그레타는 내 반응을 살피고 있었다.

그런 그레타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도 이미 짐작했던 일이었기에 그저 덤덤하게 있을 수밖에 없었다.

“놀라지 않으시네요?”

“아닙니다. 충분히 놀라고 있습니다.”

“어어? 아닌 거 같은데?”

“그레타 아가씨.”

그레타의 말마다 움찔거리던 대너드가 결국 참지 못하고 나지막이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제지했다.

“알았어, 알았어. 장난 그만 칠게.”

그레타가 손을 휘저으며 털털하게 말했다.

저런 모습을 보면 혈육인 미누스와 판박이네.

“어쨌든 우리 오빠가, 아니 모하임 전하께서 걱정을 좀 하셨거든요. 크롬웰 백작가도 따지고 보면 고위 귀족이잖아요? 근데 보낼 병력도 없으니 결국 세금이랑 현물로 뜯길 텐데 감당이 될까 싶어서 말이죠.”

당연한 이야기지만 작위가 높을수록 전쟁에 할애되는 병력의 양과 책임은 컸다.

평소에 내는 세금 같은 경우는 벌어들이는 소득에 비례해서 걷어 가지만 전쟁의 경우는 달랐다.

난 나름 고위 귀족이라 불리는 백작.

그동안 백작으로서 뭔가를 누려 본 적이 그다지 없었기에 별생각이 없었다.

‘그래도 설마…….’

내가 지금 벌어들이는 돈으로 충분히 감당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건가?

게임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현실적인 문제였다.

“죄송하지만 계산이 되지 않는군요. 백작가라면 얼마나 지불해야 합니까?”

“그럴 줄 알았어요. 요새 워낙 평화롭기도 했으니 전쟁 세 같은 건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드물죠. 아마 백작가는 5명의 기사와 500명의 병력을 지원해야 될 거예요. 병력으로 충원이 되지 않는다면 달마다 10억 윌 정도의 전쟁 세를 걷겠네요.”

10억?

내가 잘못 들은 건가.

그것도 무려 달마다 10억이다.

‘내가 특허로 얼마를 벌더라…….’

지금까지 총 5개의 특허를 냈는데 달마다 들어오는 수입이 5억 3천 정도 되었다.

물론 정력제로 소문난 에버라스트 포션이 대부분의 지분을 가지고 있었지만 나는 이것도 충분히 많이 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역시 중세 귀족의 세계는 스케일이 달랐다.

영지를 가진 귀족들은 저 정도의 돈이 별것도 아닌 건가?

“각하께서도 모아 놓은 자금이 있으실 테니 몇 달은 괜찮겠지만 전쟁이 길어질수록 힘들어지겠죠.”

“으음…….”

차마 두 달도 못 버틴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내 돈의 상당 부분은 에이미가 만든 상단의 유동 자금으로 흐르고 있었고, 나도 강화를 해 본다며 그동안 날린 돈이 있기에 모아 놓은 돈은 기껏해야 15억 정도.

“그 정도면 괜찮아요.”

그때, 듣고만 있던 에이미가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에이미를 보자 그녀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말을 하고 있었다.

“사업의 진행이 조금 늦춰지겠지만 달에 10억 정도는 충분히 보탤 수 있어요.”

사업이 그 정도였다고? 어느새 그렇게 큰 거야?

나는 아는 내용이 없었기에 그저 조용히 있었다.

굳이 여기서 모르는 걸 티 내 봐야 모하임에 정보를 흘리는 꼴이니 조용히 있어야지.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우리 모하임가는 혹시나 해서 돈을 융자해 줄 생각도 했거든요. 물론 다른 고객님들과는 별개로 특별히 연에 33% 특가로요.”

연에 33%면 양아치 아닌가.

물론 모하임 공작가가 고리대금업을 하는 가문이라는 건 알고 있었기에 딴에는 싸게 해 주는 걸 수도 있겠다.

“제안은 감사드립니다. 혹시 나중에라도 도움이 필요하면 서신을 보내겠습니다.”

“언제든 보내 주세요. 그동안 크롬웰 각하 덕분에 받아먹은 것도 있으니 이 정도는 해 드려야죠.”

생각해 보니 내 덕분에 이득을 본 게 얼마인데 저걸로 생색을 내냐.

물론 속으로만 생각하고 겉으로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조금 괘씸하네.

“이제 곧 북부 원정이 있을 텐데 아카데미에 계실 각하께는 별로 영향이 없겠네요.”

“그럴 수도 있죠.”

내 애매한 대답에 그녀의 고개가 갸웃거렸다.

게임에서 겪어 본 미래가 여전하다면 이번 북부 원정은 생각보다 골치 아파진다.

이곳 사람들은 북부의 야만족들을 얕잡아 보는 경향이 있기에 원정도 가볍게 생각하지만…….

‘뜻대로 흘러가지 않지.’

결국 그 여파는 아카데미에까지 퍼진다.

그건 조금 더 시간이 흐른 뒤에 이야기니 굳이 지금 입 밖으로 꺼낼 필요는 없겠지.

“그레타 아가씨.”

대너드가 조용히 그레타의 이름을 불렀다.

마치 무언가를 재촉하는 듯한 모양새였는데 그레타도 뭔가를 떠올린 듯 말했다.

“아, 맞다. 사실 저희가 여기 온 건 이걸 전달해 주기 위해서였어요.”

자세를 바로 고친 그레타가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모하임의 인장으로 밀랍 봉인이 찍힌 편지였다.

“전하께서 전달하신 편지입니다.”

나는 그녀가 건네는 편지를 받았다.

그리고 마법이 걸려 있었는지 곧바로 무언가가 해제됨을 느꼈다.

‘나만 볼 수 있게 간단한 마법을 설치해 놨네.’

단순한 마법이라 루시아 정도의 수준만 돼도 해제가 가능한 마법이었지만 마법을 걸어 놨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했다.

중요한 내용이 아니라면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으니까.

“지금 열어 봐야 합니까?”

“천천히 확인하셔도 돼요. 그럼 이제 할 일을 마쳤으니 온 김에 사업 얘기를 좀 하고 싶은데, 상단의 관리는 에이미 씨가 맡고 계시죠?”

“네. 제가 관리하고 있습니다.”

“그럼 레이디들끼리 이야기를 나눌까요? 대너드, 안 그래도 크롬웰 각하를 따로 보고 싶었다고 하지 않았나?”

그레타가 은근히 눈치를 주자 대너드가 쓴웃음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혹시나 싶어 에이미를 봤는데 그녀는 괜찮다는 듯 웃어 보였다.

“상단의 관한 일은 우리끼리 얘기할게.”

“그래.”

어차피 상단과 관련된 일은 아는 게 없었기에 그녀에게 맡기고 대너드와 밖으로 나왔다.

별채의 앞은 황량했다.

아직 완공이 된 게 아님을 증명하듯 여러 건축 자재들도 눈에 띄었다.

“우리 아가씨가 실례를 했습니다.”

“아닙니다. 좋은 뜻으로 오신 분인데 실례라니요.”

어색한 공기가 감돌자 대너드가 먼저 입을 열었다.

생긴 건 덩치 큰 조폭이었는데 말은 순하디순했다.

아니면 그동안 미누스와 그레타를 보필하며 어쩔 수 없이 저런 성격이 되었던가.

“모하임 전하께서 항상 고마움의 말을 전하고 싶어 하십니다. 저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꽤 큰 도움을 주셨다고 들었습니다.”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군요.”

그 말을 끝으로 다시 어색한 분위기가 내려앉았다.

결국 대너드를 본관에 있는 응접실로 안내하려고 마음먹었을 때 누군가가 저 멀리서 손을 흔들었다.

“크롬웰 각하!”

방긋 웃는 모습으로 크게 팔을 휘저으며 다가오는 이는 다름 아닌 살렘이었다.

어디 있었나 했더니 창고로 보이는 건물에서 나오고 있었다.

“이야, 언제 도착하신 겁니까?”

“……지금 손님이 와 계셔서 조금 있다가 대화를 해도 되겠습니까?”

“이야. 저는 아주 잡아 놓은 물고기다, 이겁니까? 이거, 이거 서운한데요?”

지금 모하임 기사단의 부단장인 대너드가 옆에 있는데 어떻게 아는 척을 하냐.

방실거리며 웃는 모습이 내가 곤란해하는 모습을 즐기는 것 같아 열 받았지만 간신히 억누르고 대너드에게 말했다.

“추한 모습을 보여 드렸군요. 본관으로 모시겠습니다.”

대너드는 이러한 상황이 무언가 이상했는지 갑자기 유심히 살렘을 보기 시작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나는 백작이고 백작에게 경어만 사용할 뿐 제 할 말 다 하는 살렘을 보면 당연히 이상하다고 생각할 거다.

“슬레이 경?”

난 일부러 대너드를 불렀다.

굳이 살렘과 얽히게 해서 괜한 문제를 만들 수는 없지.

“아, 죄송합니다. 어디서 뵌 분 같아서…….”

대너드는 여전히 시선을 살렘에게 주며 내 뒤를 따라왔다.

나는 더 이상의 관심을 끊기 위해 걸음을 빨리했다.

그러나 그건 그저 내 바람일 뿐이었다.

“으음?”

다시 멈춰 선 대너드가 갑자기 삐걱거리더니 순식간에 살렘에게로 거리를 좁혔다.

후욱.

이후 갑자기 공기가 요동치더니…….

퍼엉―――!

엄청난 폭음과 함께 대기가 울렸다.

“하하하! 다짜고짜 주먹질이라니!”

갑작스러운 대너드의 공격을 아무렇지도 않게 피한 살렘이 대소를 터트렸다.

“역시 당신이었군.”

대너드의 안색이 굳었다.

“진리를 쫓는 악마, 살렘 예디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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