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화. 마장(魔匠)
북부 국경선 인근에 위치한 보르기옌 영지는 넓은 땅에 비해 실질적으로 사람이 살고 있는 땅은 적었다. 북쪽에 위치하다 보니 제국의 그 어느 곳보다 추운 것은 당연하고 툭하면 내려와서 약탈을 하는 설산의 야만족들로 인해 인구가 많지 않았다.
콰득!
허공에서 검은 아공간이 열리며 시커먼 손이 튀어나와 블러디 울프의 목을 꺾었다.
그와 같은 일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며 순식간에 수십 마리에 달하는 늑대가 목숨을 잃었다.
‘무시무시하군.’
모른의 뒤를 따라가던 중에 마주할 수 있게 된 풍경이었다.
저렇게 동시에 늑대들의 목을 꺾으려면 계산도 계산이지만 수십 개체에 달하는 언데드들에게 개별로 명령을 내려야 했다.
그런 일을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해내는 모른을 보면 왜 그가 네크로맨서들의 대부라 불리는지 알 수 있었다.
“마침 운이 좋았구나. 우연찮게 집회가 열린 장소와 마장 녀석이 있는 장소가 멀지 않았어.”
루나가 죽은 늑대들을 뒤적이는 사이, 마치 마실이라도 나온 표정으로 모른이 뒷짐을 지고 걸었다.
“원래부터 알고 지냈던 사이셨습니까?”
“원래부터라고 하면 조금 애매하구나. 그를 알게 된 건 대충 50년 전이었을 게다.”
“50년 전이라면…… 트라울러가 아직 마검을 만들기 전이군요.”
“그렇지. 당시의 그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대장장이였다. 그리고 나를 찾아왔을 때는 비극적인 일을 겪은 사내 중 하나일 뿐이었지.”
모른의 말을 들어 보니 트라울러가 모른을 먼저 찾아왔었던 모양이다.
그나저나 평범했던 대장장이가 어떻게 마검을 만들게 됐는지 궁금해지는데.
아무래도 내가 모르는 이야기이니 호기심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평범한 대장장이가 마검을 만들었다는 게 신기하네요.”
“그때야 평범한 대장장이였었지. 하지만 마검을 만든 이후로는 평범하다고 부를 수 없는 실력을 지녔어. 내가 알기로 지금의 그는 현존하는 인간 중에서 가장 뛰어난 대장장이일 게다.”
모른이 잠시 회상에 잠긴 듯 허공에 초점을 맞췄다.
“아가야, 대체로 이 빌어먹을 세상에서 나를 찾아오는 자들은 대부분이 불행을 겪었거나 비극적인 인물들밖에 없단다. 이름이 알려진 네크로맨서의 숙명이지.”
“무슨 의미인지 자세히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생각해 보거라. 네 생각에는 어떤 이들이 악명 높은 네크로맨서에게 제 발로 찾아올 것 같으냐?”
악명 높은 네크로맨서를 찾는 사람이라…….
아무래도 무력을 이용하기 위해서 찾아오는 사람들이지 않을까?
내가 직접 겪어 보았던 거지만 네크로맨서가 전쟁에 끼치는 영향력은 거의 절대적이었다.
오러 마스터조차 무릎을 꿇었으니 긴말이 필요 없지.
“전쟁을 원하는 사람들 아닙니까?”
“허허. 그럴듯한 생각이지만 틀렸단다. 의외로 전쟁광들은 네크로맨서를 좋아하지 않아. 그들은 오히려 네크로맨서를 일종의 반칙이라 여기며 일부러 배제하지.”
“굳이 배제를 합니까?”
“너도 알겠지만 네크로맨시는 흔적이 남을 수밖에 없는 마법이야. 사용하는 순간 드러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멸문이 걸리지 않는 이상 네크로맨서와 접촉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네크로맨서를 고용한 순간 너도나도 네크로맨서를 불러다 대리전을 치를 테니 말이야.”
전쟁에 있어서는 너무나 사기적인 능력이 오히려 기피가 되는구나.
내가 볼 때는 한심한 생각들이지만 이 시대의 사람들은 이것저것 따지는 게 많으니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러면 도대체 누가 찾아오는 거지요?”
“말 그대로의 의미일세. 비극을 겪고 불행해진 사람들이지. 여기서 말하는 비극은 대체로 주변 사람의 죽음을 의미하고.”
“아…….”
드디어 눈치챌 수 있었다.
네크로맨서를 굳이 찾아오는 사람들.
그들은 네크로맨서의 원초적인 능력 때문에 찾아온 사람들이었다.
“되살리려는 거군요.”
“그래. 지금까지 정말 수많은 이들이 나를 찾아왔어. 누군가는 부모의 죽음을 되돌리길 원했고, 누군가는 사랑하던 여인을 다시 깨우길 원했다. 그리고 그중에서 내가 느꼈던 가장 거대한 불행은 다름 아닌 자식의 죽음.”
거기까지 말한 모른의 눈가가 어딘지 모르게 촉촉해 보였다.
나는 잘못 본 건가 싶어 그의 얼굴을 자세히 보려 했지만, 모른은 갑자기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죽음이란 불행인 것일까, 오랜 세월을 살아왔지만 아직도 답을 내리지 못했다.”
“어려운 질문이군요.”
“확답을 내릴 수 없는 질문이지.”
레테의 던전을 경험해 본 나는 죽음도 어쩌면 축복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느꼈다.
물론 지금은 절대로 죽고 싶지 않지만 결국 죽음에 대한 가치 판단은 현재의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았다.
네크로맨시는 그런 죽음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된 능력인 만큼, 이는 분명 생각해 볼 만한 문제였다.
“어쨌든 트라울러도 그런 이들 중 하나였다. 방금 말했듯이 가장 큰 불행을 안고 온 자였지.”
“자식이 죽은 겁니까.”
“내가 볼 때는 그랬다. 하지만 그는 싸늘하게 식은 아이를 안고 다시 일으켜 세워 달라는 말만 하더군. 마치 장난감을 수리하러 온 듯 가벼운 태도였어. 그래, 그는 그 당시에 반쯤 제정신이 아니었지.”
말을 하다 보니 어느새 폐허와 같은 성벽의 잔해에 도착할 수 있었다.
무너져 내린 성벽과 원래는 성이었을 돌덩이가 흉물스럽게 내려앉은 그곳은 멀쩡한 부분을 찾기 힘들 정도로 모든 게 부서져 있었다.
깡! 깡!
그러나 우습게도 그런 폐허 속에서 망치질 소리가 들려왔다.
신기하게도 그 망치질 소리는 여기까지 걸어오며 전혀 들리지 않았었다.
“할아버지가 말한 사람이야?”
“아마 그렇겠지.”
우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마침내 기괴한 풍경을 목도할 수 있었다.
깡!
텅 빈 공터에서 옷을 두껍게 입은 남자가 망치로 무언가를 힘껏 내리치고 있었다.
그런 그의 주위로는 온통 서리가 끼어 있었는데 가까이 다가갈수록 기온이 훅훅 떨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나 이상 현상?”
그렇게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그게 아니라면 트라울러의 능력이라는 이야기인데 내가 알기로는 그에게 이런 능력이 없었다.
“트라울러, 오랜만일세.”
모른이 그를 부르자 힘껏 내리찍던 망치가 움직임을 멈췄다.
그리고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우리를 보았다.
“모른? 늦었군요.”
“이 아이를 데리고 오느라 예상했던 것보다 늦었네.”
모른이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남자는 내게 한 번 시선을 주더니 다시 묵묵히 망치를 들기 시작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하던 작업은 마무리 짓고 이야기를 나누죠.”
꽝!
내가 알기로 단조라는 건 불에 달군 쇠붙이를 망치로 두드리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그 어디에도 불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얼어붙을 듯 추운 이곳에서 모루와 망치만 가지고 검은 쇳덩어리를 두드리고 있는 남자가 미친 것처럼 보였다.
‘트라울러라는 걸 몰랐으면 정말 미친놈인 줄 알았겠네.’
역시 명성이란 건 중요했다.
행동의 주인이 누구냐에 따라 그 인상이 바뀌니까.
그렇게 한참 동안 쇳덩이를 두드린 트라울러는 내가 보기에는 처음과 달리 아무 변화도 없는 결과물을 들고 이리저리 둘러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따라오시죠.”
거 참, 장인의 세계라는 건 이해하기 힘드네.
트라울러를 따라간 곳은 무너진 성벽 한구석이었다.
성벽의 잔해가 마치 앉기 좋은 의자처럼 땅에 박혀 있는 곳이었는데 우리를 데리고 온 트라울러가 두꺼운 외투를 벗으며 물었다.
“그나저나 저 둘은 누굽니까?”
“내 손주 같은 녀석들이야.”
“손주? 노망나셨습니까?”
“허허, 그럴지도 모르지.”
트라울러의 막말에도 그저 웃어넘긴 모른이 이내 우리를 소개했다.
“저쪽은 루나 펜드래곤, 이브 밀레니엄의 딸이다.”
“안녕?”
루나가 천진하게 인사하자 트라울러가 묘한 감탄을 흘렸다.
“이 아이가 이브의 딸입니까? 외모를 보면 아니라고 하기도 힘들겠군요.”
그리고는 시선을 내게 돌려 물었다.
“자네는 누구지?”
“처음 뵙겠습니다. 아드리아스 크롬웰이라고 합니다.”
나는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트라울러는 그런 내 태도보다 내 이름에 더 관심이 많았나 보다.
“크롬웰? 크롬웰이라면…….”
시선을 천천히 옮긴 트라울러가 모른을 바라봤다.
그러나 모른은 그의 시선을 모르는 체하며 내게 말했다.
“아가야.”
“예, 대부님.”
“내 언데드들의 장비가 누구의 손을 거쳤는지 궁금하지 않느냐?”
“아!”
설마 언데드의 장비를 트라울러가 만든 건가?
인류 최고의 대장장이로 언데드들의 장비를 맞추다니 호화롭기 짝이 없네.
‘잠시만, 그럼 나한테도 지금 콩고물이 떨어질 수 있는 건가?’
내가 기대 어린 눈빛으로 모른을 바라보자 그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허허허! 네가 그런 표정을 지을 줄은 몰랐구나.”
“기대되는 게 사실이니까요.”
그때 옆에서 듣고만 있던 트라울러가 인상을 찌푸렸다.
“영감님. 영감님의 해골들에게 무구를 만들어 준 것은 어디까지나 영감님이니까 해 드린 겁니다. 설마 제가 또 그런 조잡한 것들을 만들 거라고 보십니까?”
“이놈아, 내 손주 같은 녀석이라 말했지 않느냐. 여기까지 데려온 내 체면이 어찌 되느냐.”
“오랜만에 보게 돼서 인사라도 나눌까 싶던 거지 그런 잡일을 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다른 놈을 알아보십시오.”
말은 서로 툴툴거렸지만 오랫동안 알고 지내 온 사이라는 게 느껴졌다.
아까 들었던 모른의 말에 의하면 트라울러도 좋지 않은 일을 겪었던 게 분명하지만 지금은 그런 기색을 느낄 수 없었다.
‘하긴 50년 전 일이라고 했으니.’
그것보다 제발 모른이 트라울러를 설득했으면 좋겠는데.
“아무리 영감님이어도 안 되는 건 안 됩니다. 언데드가 한둘도 아니고, 거기다 그까짓 언데드의 장비를 만들기에는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습니다.”
“네 녀석이 언제부터 자존심을 챙겼다고 그러느냐. 조금 전에도 별 쓰잘머리 없는 짓거리만 하고 있었으면서.”
“쓰잘머리 없다니요! 이게 다 연구란 말입니다. 제 작품들은 모두 이런 식으로 태어난다고요.”
“쯧쯧. 운 좋게 마검 하나 빚어냈다고 큰소리치기는……. 됐다, 이놈아! 나도 더러워서 그냥 가련다.”
아니, 대부님.
조금 더 설득해 주셔야 할 분이 오히려 화를 내고 그냥 간다고 하시면…….
나는 마음이 급해졌다.
그래서 우선 뭐라도 해 보자는 마음으로 니켈을 소환했다.
“응?”
검은 아공간이 열리며 니켈이 도복을 펄럭이며 걸어 나왔다.
확실히 자아가 있는 만큼 개성 있는 소환이었다.
그리고 그런 니켈을 보자마자 모른은 물론이고 트라울러도 관심을 보였다.
“이게 네 언데드냐?”
“그렇습니다.”
모른의 표정이 마치 당장이라도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 싶다는 듯 니켈을 향해 열망을 불태웠다.
“도대체 재료가 뭐지? 저 하늘거리는 옷은 반투명한 걸 보면 저 언데드와 일체 된 건가?”
“그게…….”
“호오! 수준이 꽤 뛰어나 보이는군. 움직임도 보통의 언데드와는 달라. 마치 자기가 생각하고 움직이는 것처럼…….”
내가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니켈을 만져 보고 뜯어 보며 분석하는 모른을 놔두고 일단 트라울러에게 말했다.
“제 언데드는 다섯 마리뿐입니다. 그리고 장비가 필요한 녀석은 고작해야 둘입니다.”
“조금 전에도 말했지만 난 더 이상 언데드의 무구 따위는 만들지 않는다. 정 그렇게 원한다면 그냥 제국에서 유명한 대장간에 들려서 돈을 주고 사라. 그게 훨씬 도움이 될 거다.”
“트라울러, 한 가지만 물어도 되겠습니까?”
결국 나는 트라울러를 설득해 보기로 했다.
“뭐지?”
“지금 트라울러가 언데드의 장비를 만들지 않는 이유가 정확히 뭐 때문일까요?”
“대장장이라면 모두가 그렇듯이 내가 만든 무구가 잡스러운 이의 손에 들어가는 걸 좋아하지 않을 뿐이다.”
“그 말씀은 제 언데드의 수준이 높다면 무구를 만들어 주신다는 건가요?”
“언데드는 언데드다. 수준이 높고 낮음이 의미가 없어. 당장 영감님의 데스나이트만 해도 웬만한 기사들은 가볍게 가지고 놀 정도의 수준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런 꼭두각시들이 아닌 본인의 의지를 가지고 검을 휘두를 줄 아는 자들에게 내 검을 주고 싶은 거다.”
걸려들었다.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니켈을 불렀다.
“니켈.”
니켈은 모른이 건드리는 것도 무시하고 천천히 검을 내려 베는 연습을 하다가 내 부름에 다가왔다. 그리고 그런 니켈을 트라울러의 앞에 세웠다.
“분명 말씀하셨습니다.”
“뭐를?”
“본인의 의지를 가지고 검을 휘두르는 자에게 무구를 만들어 준다고 하셨잖아요.”
“그렇지.”
대답한 트라울러는 이내 뭔가를 깨달았는지 나와 니켈을 유심히 번갈아 보았다.
“설마 지금 이 녀석이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려는 거냐?”
그리고 나는 니켈의 자아가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천천히 갈락슈르를 뽑아 들었다.
“과연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