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화. 호랑이 굴
날씨가 쌀쌀해지고 있었다.
특히나 북부의 경우 벌써부터 사람들이 두꺼운 외투를 입고 다니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살펴볼 수 있었다.
탁.
“이건 소스에 찍어 먹어요.”
앉아 있던 테이블에 종업원이 음식을 놓고 갔다.
북부에서만 서식하는 외뿔 토끼의 고기라는데 이전에 한 번도 먹어 보지 못한 음식이었다.
나는 종업원이 알려 준 대로 함께 온 소스에 고기를 찍어 먹었다.
‘부어 먹을까?’
실없는 생각을 하는 도중에 누군가가 자연스레 내가 앉은 테이블로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자리가 없어서 그런데 동석해도 되겠습니까?”
쪽지로 미리 들었던 대로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가 맞은편에 앉자 얼굴을 확인했다.
‘누가 왔나 했더니…….’
누군가가 접근해 올 줄은 알았지만 하필이면 아는 녀석이었다.
그건 그렇고 아무리 외곽 중의 외곽이라 불리는 북부지만 흑마법사가 대놓고 돌아다니는군.
지금 내가 있는 곳은 북부에 위치한 도시 중 하나인 보르기옌.
집회 참석을 위해 약속된 식당에서 예정된 행동들을 취하고 있었다.
‘기껏해야 심부름꾼이 올 줄 알았는데 대단한 녀석은 아니라고 해도 흑마법사가 직접 마중 나올 줄이야.’
물론 사람들이 알아보는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북부의 경계가 온통 야만족을 향해 있다는 게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만약 그렇지 않았더라면 아무리 정체가 숨겨져 있다고는 해도 이런 식으로 활동하지는 못하겠지.
“주인장! 여기도 토끼 정식!”
“오냐.”
주방 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오고 상대가 다시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이야. 요즘 날씨가 점점 추워지네요. 보니까 아래쪽에서 올라오신 모양입니다? 춥지 않으세요?”
그의 감상을 무시하고 토끼 고기를 마저 먹었다.
조금 억센가 싶은데 그게 또 나름의 매력이었다.
그리고 호불호가 조금 있을 듯한 특유의 고기 냄새도 났는데 원체 뭐든 잘 먹는 성격이라 나쁘지 않게 느껴졌다.
“과묵하신 분이네.”
“주문하신 음식 나왔습니다. 여기 소스랑 같이 찍어 드세요.”
“여기 맥주 한잔.”
“예에.”
종업원에게 맥주를 시키자 맞은편의 상대가 득달같이 말을 걸어왔다.
“일은 다 끝나셨나 봅니다? 벌써부터 술을 시키시는 걸 보면?”
“브라운.”
내가 그의 이름을 부르자 전혀 예상치 못했는지 동공이 커지는 게 보였다.
“식사 중에는 좀 닥치지 그래.”
“어, 어……?”
반응이 볼 만하네.
나는 마저 토끼 고기를 썰어 입에 넣은 후 종업원이 갖다 준 맥주를 들이켰다.
역시 맥주는 북부다.
추운 지방이라 그런지 주류 제조에 관해서는 아래쪽 지방보다 나은 것 같았다.
아무리 마나 부상 열차가 있다고는 해도 이 정도 퀄리티의 맥주가 수도까지 운송되기에는 조금 달리지.
브라운은 내가 한번 핀잔을 줘서인지, 아니면 자신의 이름을 안 것에 대해 놀란 건지 그저 조용히 식사를 했다.
이내 식사를 마치고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급하게 나를 따라 일어나는 게 보였다.
식당에 들어올 때까지만 하더라도 노을이 지고 있었는데 벌써 어두컴컴했다.
이곳도 지구와 같이 겨울이 다가오면 밤이 길어졌다.
“성격 한번 지랄 맞군.”
내 뒤를 따라 나온 브라운이 더 이상 자신을 숨기지 않고 투덜댔다.
그리고 이번에는 자신의 차례라는 듯 앞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원래 너 같은 애송이는 참가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운이 좋은 줄 알아라.”
“브라운, 크룩은 여전한가?”
“이 새끼!”
그가 갑자기 멈춰 서서 나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행동이 불안에서 나오는 자기방어라는 것을 알고 있는 나는 가소로울 뿐이었다.
“안부를 묻는데 왜 그리 발끈하지?”
“내 이름을 아는 거야 그렇다 치고, 스승님의 이름은 어떻게 알고 있는 거냐?”
“그게 그리 신기한 일인가? 신기한 것도 많군. 빨리 길 안내나 해라.”
“이 개 같은 새끼. 집회에 가서 보자.”
그 말이 뭔가 삼류 악당이나 할 법한 말이어서 내심 어이가 없었다.
내가 굳이 이렇게 도발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지만 그와는 별개로 일일이 반응을 해 주니 놀리는 맛이 있네.
‘브라운이 있다는 건 이번 집회에는 자잘한 녀석들도 참석한 모양이군.’
생각해 보면 저번 집회 때는 살렘이 모두 죽였었지.
과연 집회 참가자였는지, 아니면 단순히 나태를 훔치려는 흑마법사들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브라운의 뒤를 따라 걷자 예상치 못한 길로 접어드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마침내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이 도시의 주인이 머무르는 곳.
‘보르기옌 영주가 흑마법사들과 연관이 있었던 건가.’
이건 또 처음 알게 된 사실이다.
나쁘지 않은 정보를 수집하고 브라운의 뒤를 따라 후문을 통과했다.
후문은 누가 찾아오는지 모르게끔 은밀했는데 신원 확인을 하는 이들도 음습한 느낌이 나는 녀석들뿐이었다.
“그때 그 꼬맹이군. 당돌한 녀석.”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 있었다.
들어오자마자 첫 번째로 확인한 흑마법사는 다름 아닌 심해의 드라간이었다.
살렘으로 인해 조금 쩌리처럼 묻힌 느낌이 없지 않아 있지만 그도 사실 꽤 이름을 날리는 흑마법사였다.
‘흑해 에피소드에서 나오는 중간 보스.’
굳이 따지면 카론과 같은 위치였지만 그보다 뒤에 나오는 에피소드의 중간 보스인 만큼 훨씬 강했다. 게다가 그와 싸우게 되는 주전장은 그에게 딱 맞는 환경인 탓에 싸움이 더 어렵기도 하지.
“드라간.”
“입이 짧네? 뭐, 상관없지만. 애초에 집회 소속도 아닌 녀석한테 예의 운운하기도 싫고.”
드라간은 한결같이 중절모와 턱시도를 입은 신사적인 모습이었다.
외모도 나쁘지 않은 녀석이라 귀부인들한테 인기가 많았는데 그런 인기를 이용할 줄 아는 캐릭터였다.
“이번에는 살렘하고 같이 안 왔나 보네? 너, 뭔 생각으로 온 거야?”
“초대를 받았으니 왔지요.”
“바보야? 아니면 모르는 척하는 거야?”
“걱정하실 정도로 바보는 아닙니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브라운과 달리 드라간하고는 아직 척을 질 필요가 없었다.
애초에 척을 진다 해도 드라간을 지금의 내 실력으로 이길 수…….
‘……이길 자신은 있지만 드라간급의 인물을 죽이기에는 위험하지.’
집회 내에서의 입지도 그렇고 드라간의 세력도 꽤 강한 편이었다.
애초에 그는 정치 마법사 같은 느낌이라 본신의 실력도 실력이지만 까다로운 요소가 많았다.
내 대답을 들은 드라간은 외알 안경을 고쳐 썼다.
“그래. 나도 굳이 너를 건드려서 이득 볼 건 없으니까 여기까지 하지. 그냥 네가 올 줄은 몰라 가지고 궁금해서 물어봤다.”
“제가 온다는 걸 모르셨습니까?”
“몰랐어. 생각해 보니까 너 누구한테 초대받은 거냐?”
그때 옆에 있던 브라운이 대신해서 대답했다.
“헤이겔 님께서 저를 보냈습니다.”
“헤이겔 님이? 언제 또 그런 끈을 만들어 놓은 거야?”
감탄한 표정의 드라간은 정말 순수하게 놀란 듯이 말했다.
그나저나 헤이겔은 나를 초대했다는 걸 집회에 알리지 않은 모양인가 보다.
갑자기 마주친 제스터가 날 보고 죽이려 들지는 않겠지?
“신기한 놈이네. 그래 놓고 집회 가입은 왜 거절한 거야? 안 그래도 널 좋게 생각하는 애들은 없는 거 알지?”
“아직 어딘가에 소속될 수는 없거든요.”
거짓말이었다.
그저 계산을 해 보고 득보다 실이 많다고 판단했을 뿐.
“어쨌든 이왕 이리된 거 같이 들어가지. 나도 막 도착한 참이었거든.”
헤이겔의 초대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꺼낸 후로 드라간의 태도가 묘하게 바뀐 것 같았다.
그만큼 헤이겔의 힘이 강하다는 걸 보여 주는 반증이기도 했다.
브라운을 뒤에 달고 드라간과 함께 건물로 들어갔다.
건물은 영주 성이 있는 내성의 안에 있었는데 이 정도면 보르기옌 영주가 흑마법사와 연관이 있다는 건 확신할 수밖에 없었다.
“보르기옌 백작이 집회와 관련이 있을 줄은 몰랐네요.”
“그래? 그럼 이제 알았으니까 신고하게?”
“예.”
“농담도 할 줄 아는구나?”
건물 안은 이미 연회장처럼 꾸며져 있었다.
집회에 대해 전혀 모르는 인물이 봐도 흑마법사들의 모임이라고는 상상도 못 할 정도로 화려한 장소.
“어이.”
브라운이 나를 부르더니 어느 한쪽을 가리켰다.
왜 그러나 살펴보자 브라운이 가리킨 곳에는 헤이겔로 보이는 인물이 자리해 있었다.
“일단은 헤이겔 님에게 인사를 드려야 한다. 널 초대한 분이시니까.”
“그래도 초대해 준 사람에게 인사는 해야지?”
드라간도 나서며 인사를 종용하자 일단은 순순히 따랐다.
마침 헤이겔의 주변에 반가운 얼굴도 있었기에 내 걸음에는 거침이 없었다.
그러나 그런 내 걸음을 가로막는 인물이 나타났다.
“네가 여기에 왜 있는 거지?”
나는 아무 말 없이 앞을 가로막은 인물을 바라보았다.
예전에 한 번 만난 적이 있던 워록급 흑마법사.
제스터 르반이었다.
내게 호되게 당한 경험 때문인지 적대감을 대놓고 드러내고 있었는데, 덕분에 브라운이 졸아서 도망쳐 버렸다.
“초대를 받았습니다.”
“당당하게 말하는군. 살아 돌아갈 수 있을 것 같나?”
“그럼요.”
내가 웃으며 대답해 주자 기괴한 고깔모자에 가려진 얼굴이 어떤 모습으로 변했을지 상상이 갔다.
아니지. 얼굴이 있을 수가 없구나?
“제스터, 내 손님에게 무슨 용건이지?”
그때 뒤에서 누군가가 걸어오며 제스터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와 동시에 또 다른 인물이 도도도도 달려왔다.
“친구!”
오팔처럼 형형색색으로 아름답게 빛나는 눈망울이 눈에 띄는 소녀.
루나 펜드래곤이 얼굴 가득 환호를 담고 내게 안겨 왔다.
나는 가볍게 그녀를 받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오랜만이에요, 루나.”
“응!”
그 사이 제스터가 헤이겔을 향해 몸을 돌리며 언짢게 말을 하는 것이 들려왔다.
“자네가 불렀다고?”
“그래.”
“저 녀석에게 당한 걸 생각하고도 초대를 했다고?”
“난 그 자리에 없어서 모르겠군.”
헤이겔이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 모습이 마치 자신은 관여하지 않는다는 듯했고 제스터도 헤이겔이 눈감아 주자 마나를 내뿜으며 나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마나에 민감한 루나가 곧바로 고개를 돌려 제스터를 노려봤다.
“제스터!”
마치 혼내듯 제스터의 이름을 부른 그녀는 제스터를 따라 사나운 기세를 드러냈다.
갑작스러운 분위기에 연회장에 있던 흑마법사들의 시선이 전부 이쪽으로 몰리는 것이 느껴졌다.
“내 친구 건드리지 마.”
“그 녀석 때문에 손해를 본 게 얼마나 되는지 아나? 비켜라.”
“헤이겔! 안 말릴 거야?”
루나가 강령을 준비하며 헤이겔을 향해 소리치자 헤이겔은 아까와 같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 모습이 일견 뻔뻔해 보였다.
“둘 사이의 은원은 둘이서 해결해야지.”
그는 이 다툼에 끼어들지 않겠다는 의사를 확실히 표현했다.
그의 의도가 뭔지는 몰라도 기분이 썩 좋지는 않네.
아무래도 내 반응이나 대응이 궁금한 모양인데…….
‘미안하지만 네 뜻대로는 안 될 거다.’
이미 지원군이 도착한 것을 내 예리한 감각이 파악한 뒤였다.
“나도 가만히 안 있을 거야.”
“그것도 네 마음이다, 루나.”
둘이 대화하는 도중 검은 손아귀의 형상이 제스터의 양옆에 생겨났다.
손아귀 하나하나가 몸을 덮을 정도로 거대했는데 그것은 곧장 내게 달려들듯 손가락을 움직였다.
그 모습을 본 루나가 서둘러 강령을 사용하려 하자 내가 막았다.
“친구?”
“괜찮아요. 제스터는 함부로 움직이지 못할 겁니다.”
난 이미 누군가의 기척을 읽고 여유를 부렸다.
그리고 내 말대로 제스터의 검은 손아귀는 움직일 수 없었다.
쇄앵!
어느새 등장한 검은 형태의 기사가 위협적으로 제스터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최강의 언데드 중 하나라 불리는 데스나이트의 등장이었다.
“오오!”
데스나이트의 등장에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감탄을 터트렸다.
이내 그 데스나이트의 주인을 짐작한 사람들이 주위를 둘러볼 때.
“모두 그쯤 하지.”
“모른…….”
모른 드왈스키.
최강의 네크로맨서가 내 곁에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