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 특성으로 최강 네크로맨서-135화 (135/415)

135화. 변화의 바람

아드리아스가 방에 들어오자 잠시 소강상태가 이루어졌다.

싸늘하게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서 아드리아스의 시선을 받은 3학년 4인조는 애써 꼿꼿하게 그를 바라보았지만 이내 점차 퍼져 나가는 알 수 없는 기운에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이게 뭐지?’

4인조 중 리더 격인 자말 해밍턴은 전신을 짓누르는 압박감에 혼란스러웠다.

마치 이전에 만난 적이 있던 북부 변경백 패트릭 바그라스 백작을 떠올리게 했다.

‘그럴 리 없다. 그분과 비슷한 실력일 리는 없어!’

애써 생각을 지워 내려 해도 속이 울렁거리고 답답한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그때 비비안이 입을 열었다.

“아드리아스, 여기 자리 잡아 뒀어.”

비비안의 말 한마디에 순식간에 방 안을 휘어잡았던 분위기가 환기되었다.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쉰 3학년들은 여전히 경계하는 기색으로 아드리아스를 살폈다.

“감사합니다.”

아드리아스는 4인조에게 별말 없이 비비안에게 향했다.

그가 비비안의 옆자리에 앉자 비비안은 마치 봐 달라는 듯 머리카락을 귓가로 넘겼다. 그러자 하얀 보석으로 꾸며진 귀걸이가 반짝였다.

뭔가를 바라는 듯한 비비안의 표정, 그 모습을 얼떨결에 지켜보던 아드리아스가 쓰게 웃었다.

“잘 어울리네요.”

“응. 아드리아스가 준 거니까.”

비비안이 원하던 대답을 들었다는 듯 미소지었다.

“아드리아스 선배가 선물이요?”

루시아가 돌연 놀란 표정으로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조금 전까지 4인조로 인해 기분이 나빴던 건 어디 갔는지 금세 비비안에게 다가가 귀걸이를 확인했다.

“흐음?”

귀걸이를 확인한 루시아는 악동과 같은 표정을 지으며 아드리아스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러나 애초에 아무 생각이 없던 아드리아스는 그녀가 왜 그러나 멀뚱히 바라보았고 결국 루시아가 한마디 뱉었다.

“그렇게 안 봤는데 의외로 선수네요?”

“뭔 소리야.”

날이 갈수록 루시아가 활발해지는 것 같아 곤란함을 느낀 아드리아스는 애써 시선을 돌려 1학년들을 보았다.

루이스 아트만.

딱히 조언을 해 주거나 하지 않아도 차근차근 성장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최근에는 비비안과 대련을 했다고 전해 들었는데 설마 비비안이 이길 줄은 몰랐기에 루이스의 성장을 도와야 하나 고민 중이었다.

크리스 유노르.

조언이 잘 먹힌 모양인지 최근 물이 오른 모양이었다.

하지만 정확한 확인을 위해서는 다시 한 번 대련을 해볼 필요성이 있었다.

세레나 에레스티얼.

셋 중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그동안 익혔던 검법을 버리고 무기까지 교체를 했으니 분명 가장 까다로울 수밖에 없었다.

그녀에게는 새로운 검법서를 구해다 줄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바쁘다.’

아드리아스가 굳이 이 인터뷰에 참가한 이유는 플레이어블이 모두 모였기 때문.

그저 확인차 방문을 한 것이라 오래 있을 생각은 없었다.

그렇기에 인터뷰에 초대받았을 때는 미리 양해를 구했다.

그렇게 긴 시간을 할애할 수 없음을.

똑똑.

“인터뷰 준비 끝났습니다.”

신문부원의 말에 모두들 자리에서 일어났다.

밖으로 나오자 좌석들이 준비되어 있었고 양 끝으로 인터뷰의 진행을 맡은 신문부장 크람과 불칸 아카데미에서 온 견학생 마빈이 앉아 있었다.

“이야, 쟁쟁한 분들을 이렇게 전부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하하.”

마빈이 넉살 좋게 웃음을 터트리며 인사를 건네 왔다.

“불칸 아카데미에서 온 마빈 개럿이라고 합니다. 오늘은 모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그의 인사에 인터뷰 참여자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착석했다.

모두가 앉자 크람이 영상기록 아티팩트를 들고 있던 신문부원에게 신호를 주고 영상 기록이 시작되었다.

“미리 말했던 대로 저건 기록 보관 및 신문에 옮겨 적을 용도이니 알아주시면 좋겠습니다. 자, 그럼 인터뷰 시작하겠습니다.”

크람은 미리 준비한 대본을 들고 가장 먼저 비비안을 향해 말했다.

“첫 시작은 비비안 벨로칸 학생 먼저 해도 되겠습니까?”

“응.”

비비안이 고개를 끄덕이자 곧바로 마빈이 이어받았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춘계 토너먼트는 졸업반 학생들이 우승과 준우승을 차지해 왔었죠. 그러나 올해에는 대이변이 일어났습니다. 비비안 벨로칸 학생도 그 이변의 주인공 중 하나로 알고 있는데요. 조금 알아보니 처음부터 성적이 뛰어나시지는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이번 토너먼트를 계기로 실력이 향상된 걸까요?”

“아드리아스.”

“네?”

“아드리아스 덕분이야.”

마빈은 비비안의 대답에 잠시 이해가 가지 않아 아드리아스와 비비안을 번갈아 보았다.

그리고 이내 실력이 향상된 원인이 아드리아스에게 있다는 걸 파악하고 손뼉을 쳤다.

“아! 아드리아스 학생이 도와줬다는 말이군요? 아무래도 아드리아스 학생도 검을 다루다 보니…….”

“맞아.”

비비안의 대답에 아드리아스는 속으로 쓰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게임 속에서도 그녀는 실력 있는 검사였다.

그 사실을 주변은 물론 본인조차 몰랐던 것과 그 실력이 발휘된 사건이 비극적이어서 문제였지.

“흥. 그래 봤자 마법사가 얼마나 도움이 됐다고…….”

그때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크람은 순간 잘못 들었나 싶어 자신의 바로 옆에서 들려온 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기사학부 3학년 자말 해밍턴이 앉아 있었다.

‘설마?’

크람은 묘한 미소를 지었다.

사실 세간에는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그동안 여러 학생들의 정보를 모아 왔던 크람은 자말이 사실 비비안을 동경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평소에도 비비안을 이긴 디에네 알븐을 험담하고 다닌다는 목격담을 자주 들을 수 있었다.

‘재밌어지겠는데?’

아무래도 작게 중얼거린 덕분인지 바로 옆에 있던 자신만 들은 것 같았다.

자극적인 소재가 필요했던 크람은 곧바로 미끼를 던져 보기로 했다.

“비비안 학생! 이번에는 제가 질문을 해도 괜찮을까요?”

마빈은 대본에 없던 크람의 행동에 살짝 당황했지만 조용히 지켜보았다.

“응.”

“방금 아드리아스 학생 덕분에 실력이 향상되었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을 받았는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비밀.”

“오오?”

의미심장한 비비안의 말에 함께 듣고 있던 신문부원들이 눈을 반짝였다.

그녀의 묘한 뉘앙스에서 무언가를 발견한 그들은 자신들의 부장을 향해 재촉하는 눈길을 보냈다.

“두 분 사이에만 있는 은밀한 이야기라면 어쩔 수 없군요.”

“은밀?”

자말이 소리쳤다.

크람은 자신의 말에 낚여 퍼덕거리는 자말을 보며 애써 표정 관리를 했다.

그리고 크람에게 낚여 멋지게 도발당한 자말의 화살촉은 곧바로 아드리아스에게 향했다.

“비비안 선배에게 감히 무슨 짓을 한 거냐, 아드리아스 크롬웰!”

“무례하군요. 인터뷰 중에 뭐 하시는 거죠?”

디에네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자말에게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러나 이미 눈이 돌아간 자말은 씩씩대며 아드리아스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는 조금 전 겪었던 아드리아스의 기세를 이미 잊은 지 오래였다.

“감히 비비안 선배를 건드려? 넌 오늘 내가…….”

“시끄러워.”

퍼엉!

자말의 눈앞에서 갑작스러운 빛이 터졌다.

“아악!”

자말은 시야가 새하얘지는 것을 느끼며 비명을 질렀다.

간단하게 자말을 무력화시킨 아드리아스는 이내 크람을 바라봤다.

“크람 멜킨스.”

“으, 응?”

“내가 바보로 보여?”

“그게 무슨…….”

“대놓고 자말을 도발했잖아. 내 입으로 직접 말해야 되는 거냐.”

아드리아스가 말을 하며 만인지적의 기운을 뿜기 시작했다.

주변을 메우기 시작하는 아드리아스의 기운에 같은 공간에 있던 전원 숨이 답답해짐을 느꼈다.

“내가 우스워?”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아드리아스…….”

점점 강렬해지는 아드리아스의 기세를 결국 버티지 못한 크람이 식은땀을 흘리며 고개 숙였다.

“미, 미안해. 다신 이런 식으로 질문하거나 장난치지 않을게.”

“안 그래도 인터뷰를 오래 할 생각은 없었다. 기분이 안 좋아져서 먼저 가 봐야겠네.”

자리에서 일어난 아드리아스는 기세를 풀고 디에네와 루시아, 그리고 3학년 트리오에게 눈인사를 하고 비비안에게 말했다.

“전 먼저 가겠습니다.”

그렇게 아드리아스가 떠나자 남은 사람들은 싸늘해진 분위기 속에서 침만 삼켰다.

자말은 아직도 시야가 회복되지 않았는지 고통에 겨워하는 가운데, 비비안이 조심히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아무 말도 없이 아드리아스를 뒤따라 나갔다.

“루시아, 방금 봤어?”

“아드리아스 선배의 마법이요?”

“역시 알아챘구나.”

그저 단순한 마법 같았으나 천재라 불리는 두 여인은 단숨에 알아봤다.

엄청난 컨트롤과 캐스팅 속도.

그저 앉아서 눈짓만 했을 뿐인데 발동된 라이트 마법.

무엇보다도 빛의 범위를 단순히 자말의 눈앞으로만 제한한 것이 놀라웠다.

빛의 농도로 보아 컨트롤을 하지 않았으면 이 방 전체가 빛에 휘감겼을 화력이었으나 아드리아스는 그 엄청난 화력을 정교하게 다듬었다.

“좋은 구경했네요. 인터뷰는 망한 거 같지만.”

“아드리아스는 언제 저렇게 마법 실력까지 늘어난 거지? 하아, 그나저나 정말 겨우 시간 내서 참여한 건데.”

디에네가 골치 아프다는 표정을 짓고 자신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루시아를 향해 말했다.

“시간도 남는데 디저트 카페라도 가자. 이렇게 된 거 쉬기라도 해야지.”

“좋아요.”

디에네와 루시아는 떠난다는 말을 신문부원에게 전하며 그대로 사라졌다.

남은 인원들은 갑자기 망가져 버린 인터뷰 분위기 속에서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때 가만히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크리스가 미소 지었다.

“역시 아드리아스 선배다. 아직 난 멀었어.”

“크리스? 갑자기 어디 가?”

“수련하러 가야지. 저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가만히 있을 수가 없군.”

마이 웨이인 크리스마저 떠나자 인터뷰는 자연스레 끝나 버렸다.

지켜보고 있던 마빈은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괜히 원망스럽게 크람을 바라보았다.

“정말, 좋은 경험을 했군요.”

“죄송합니다. 할 말이 없습니다.”

아드리아스의 성격을 잊고 있었다.

최근 들어 얌전해졌기에 자신도 모르게 욕심을 너무 냈다고 생각하며 크람은 어쩔 수 없이 조금 전에 일어났던 일이라도 기사로 작성하기로 했다.

* * *

웃통을 벗고 있는 사내는 붉은 머리카락이 사자 갈기처럼 사방으로 뻗쳐 있었다.

땀으로 번들거리는 육체는 인간 병기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흉악한 근육으로 빼곡하게 들어찬 가운데 검을 든 두 팔의 잔 근육만이 미세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후읍!”

콰아아아아아앙―!

아무 움직임도 없었다.

그러나 싱클레어 클로슈가 호흡을 삼키자 그가 서 있던 땅이 움푹 들어가며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갈라지기 시작했다.

“하하! 재밌군.”

실전에서는 쓸모없지만 꽤 재미난 잔기술을 사용해 본 싱클레어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런 그를 집사이자 비서인 플락 남작이 무표정하고 차가운 모습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그, 급보입니다!”

한참 싱클레어가 수련을 하고 있는 가운데, 플락 남작에게 누군가가 다가왔다.

지겐 플락은 숨이 가빠하는 수하를 조용히 응시하더니 물었다.

“말해라.”

“하아, 하아. 막시민, 크로넬!”

“막시민 크로넬? 천천히 말해 봐라.”

“죄, 죄송합니다. 후우. 막시민 크로넬이 제국에 들어왔습니다.”

“뭐라고!”

저 멀리서 수련을 하고 있는 줄 알았던 싱클레어가 마치 순간 이동을 한 듯 어느새 그들 곁에 다가와 소리 질렀다.

“막시만 크로넬 녀석이 진짜 왔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지금 황제께서도 준비상사태를 선포하시고 자리에 남아 있는 공작 전하들을 전부 호출하셨습니다.”

“하하하! 진짜인가 보군!”

싱클레어는 주먹을 손바닥으로 치며 흥분된다는 듯 번들거리는 눈으로 물었다.

“녀석이 온 이유를 아나?”

“사실 그 이유가 좀…… 특이합니다.”

“뜸 들이지 말고 말해 봐라.”

“아카데미에 방문하기 위해 왔다고 합니다.”

“아카데미?”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에 싱클레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지겐을 바라봤다.

그러나 집사이자 비서인 지겐도 그저 어깨를 으쓱거릴 뿐이었다.

“아카데미에 재학 중인 아드리아스 크롬웰이라는 학생을 찾으러 왔다는 후문도 전해지는데 이건 확실치 않습니다.”

“크롬웰 백작을?”

싱클레어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막시민과 아드리아스 사이에 연결점이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아니지. 모드라스의 탑.’

그 때문에 온 걸까?

하지만 막시민이 겨우 그 일 때문에 제국까지 들어왔을 리는 없어 보였다.

막시민 크로넬.

그는 누가 뭐래도 공식적인 제국 수배범이었으니.

‘물론 말만 수배범이지. 잡을 수 있는 놈이 없는데 어떻게 수배범이야.’

황국의 반응만 봐도 뻔했다.

막시민이 왔다는 소식에 그를 잡을 생각보다 협상을 하려는 의지가 강해 보였다.

“우선은 만나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차가운 인상의 지겐이 말했다.

항상 냉철한 판단만 하는 그를 보며 싱클레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우선은 녀석의 목적이 뭔지 아는 게 우선이다. 그건 그렇고…….”

최근 들어 유난히 자주 들려오는 이름에 신경이 쓰였다.

아드리아스 크롬웰.

최근 적절한 판단과 정보력으로 세력을 넓히고 있는 모하임 공작가에서도 알게 모르게 아드리아스의 이름이 자주 거론되고는 했었는데…….

‘뭔가가 있군.’

변화의 바람인가.

싱클레어는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