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화. 크리브마허 그리고 기묘한 사건
전혀 예상치 못한 무언가가 쓰러진 크리브마허의 근처에서 빛나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서 살펴보자 부서진 드래곤 하트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드래곤 하트……라기보다 드래곤 하트 조각이라고 해야 하나.’
심장이라고 하는데 생긴 건 보석처럼 보였다.
깨진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도 강력한 힘이 느껴졌다.
“드래곤!”
내 뒤를 따라온 루나가 외쳤다.
조금 전까지 힘겨워했다는 게 믿기지 않는 적응력이다.
그게 루나의 장점인 것 같기도 하고.
“처음부터 이게 목적이었는데, 너무 돌아왔네요.”
“이거.”
루나가 조각난 드래곤 하트를 가리켰다.
“한번 고쳐 볼까?”
“고칠 수 있어요?”
그녀는 쭈그려 앉아 드래곤 하트를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그냥 놔두기에는 아까워.”
루나가 아공간 아티팩트를 열며 무언가를 꺼내기 시작했다.
하얀색의 바늘이었다.
“조금만 기다려! 원래는 영혼들 꿰맬 때 쓰는 건데 이것도 될 거야!”
어느 정도 마나가 회복되었다고는 해도 아직 마법을 사용할 정도는 아닌지 낑낑대며 바늘을 붙잡고 인상을 찌푸렸다.
그사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포털을 봤지만 다행히 이번 포털은 반영구적인 듯 여전했다.
“됐다!”
바늘 코에 하얀 실이 끼워졌다. 저 실, 마나는 아닌 것 같은데?
그게 정확히 뭐냐고 물어보기도 전에 루나는 조각난 드래곤 하트를 꿰매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루나도 별별 잡기술을 다 알고 있는 것 같다.
“준비해!”
“예.”
뭘 준비하라는 건지 말은 안 했지만 뜻은 전해졌다.
나는 곧바로 니켈이 들고 있던 공간 확장 배낭에서 언데드 소환에 도움을 줄 만한 촉매들을 꺼내 죽은 크리브마허 주위에 깔았다.
‘본 드래곤. 한 번에는 안 되겠지.’
루도를 구울로 만들었을 때처럼 꽤 힘들 수도 있다.
하지만 그때보다 마법 실력도 늘었고, 이번에는 촉매들까지 제대로 준비해 왔으니 그때만큼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 같았다.
촉매로 보조 마법진을 그리고 여러 기물을 위치에 자리한 다음 마법을 사용할 준비를 마치자 루나가 드래곤 하트를 가져와 내게 건넸다.
“이게 드래곤 하트.”
직접 만져 보니 질감과 촉감이 특이했다.
단단한 듯하면서 물렁거리는 느낌.
겉모습은 그저 가공되지 않은 거대한 보석 덩어리 같았다.
루나가 기워 낸 탓에 조금 누더기 같기도 하고.
“제가 사용해도 될까요?”
“그럼? 누가 사용해?”
오히려 내 말이 무슨 의미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는 루나가 순수해 보였다.
역시 루나는 지켜 줘야 해. 강함과는 달리 너무 순수한 것 같다.
크리브마허에게 다가가 부서진 심장 부위에 드래곤 하트를 끼워 넣었다.
드래곤 하트는 원래 예정에 없던 거라 마법진도 조금 손을 본 상태였다.
“좋아! 가자!”
루나도 한 차례 마법진을 훑어보고 신나게 외쳤다.
[중급 사령술: 스켈레톤 소환을 시전합니다.]
[사체 한 구가 감지됩니다.]
[사령술에 도움이 되는 재료들을 감지합니다. 추가 효과가 적용됩니다.]
우우웅.
마법진이 발광하며 마나가 모이기 시작했다.
온갖 촉매들이 그렇게 모인 마나를 온전하게 드래곤의 시신으로 집결했다.
스킬을 사용하자 자동으로 마나가 배열되고 술식이 만들어졌는데, 나는 만들어지던 술식을 살짝 비틀었다.
‘이건, 이렇게 하는 게 맞겠지.’
시스템 보정으로 맞춰지는 술식이어도 항상 맞는 건 아니었다.
마법학부장 베리얼에게 교습을 받으며 마법에 대한 이해도가 상당히 올랐기에 생각할 수 있는 판단이었다.
‘마법학부장 베리얼, 레테의 사제 베리엘. 이름이 비슷하네.’
뜬금없이 쓸데없는 생각을 잠시며 마나를 불어넣자…….
―띠링!
[‘자선하는 탐욕’이 귀금속 ‘드래곤 하트’를 감지합니다.]
[마법 성공률 +15%]
마침 탐욕의 왕관도 쓰고 있었다.
드래곤 하트가 귀금속으로 분류될 줄은 몰랐지만 일단은 좋은 신호.
탐욕의 능력 중 하나인 대기 중의 마나 상시 흡수로 인해 마법진에 끊임없이 마나가 들어가고, 드디어 크리브마허의 거대한 동체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왕관이 아니었으면 힘들었겠는데?’
사용되는 마나의 양이 내 예상을 뛰어넘었다.
어쩌면 억지로 기워 넣은 드래곤 하트 때문일 수도 있겠다.
우우웅―!
힘찬 마법진의 소음이 울려 퍼지고 느리지만 차근차근 언데드로 변해 가는 크리브마허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힘내!”
―끼익!
루나와 룰프는 내가 아닌 크리브마허를 보며 응원하고 있었다.
근데 웃긴 건 크리브마허가 마치 그 말에 반응하듯 움직였다는 점이다.
‘죽은 거 맞지?’
착각이었겠지 하고 마나를 계속해서 쏟아붓는 순간.
[중급 사령술: 스켈레톤 소환 성공]
[본 드래곤(신화) 한 구를 소환했습니다.]
[일으킨 시체의 수준이 뛰어납니다. 스탯 보너스가 붙습니다.]
[일으킨 시체의 수준이 월등하게 뛰어납니다. 최종 형태입니다. 스탯 보너스가 붙습니다.]
[일으킨 시체의 수준이 초월에 근접합니다. 생전의 자아를 약간 되돌려 받습니다.]
[신화적인 수준의 언데드입니다. 생전의 특성 일부를 계승합니다.]
비늘이 다 떼어지지 않았다.
대신 색이 조금 칙칙한 검붉은 색이 되었는데 오히려 좋았다.
‘드래곤의 비늘은 단단하니까 나쁘지 않다.’
곧바로 크리브마허의 상태창을 열어 보려던 찰나.
―드디어 영면에 들 수 있을 줄 알았더니, 지독한 운명이다.
그가 말을 했다.
“와! 말했어! 친구! 본 드래곤이 말했어!”
나도 들어서 안다.
하지만 루나처럼 호들갑을 떨기보다 어이가 없었다.
이건 또 뭔 상황이야.
―당황한 눈치군.
“자아가 이 정도로 남아 있을 줄은 몰랐으니까.”
―그대가 자초한 일이다. 우리의 심장은 다른 생물들과는 달리 더 큰 의미를 품고 있는 힘의 정수. 우리의 마나는 물론 자아의 일부와 기술들이 담겨 있지.
크리브마허는 뭔가 굉장히 오랜 기간 살아온 노인과 같은 느낌이었다.
―초월자의 힘으로 이지를 잃고 억제를 당했었다. 하지만 온전히 그 모든 세월을 기억하고 있었지. 드디어 속박의 굴레에서 벗어나는가 싶었더니 이런 운명이 기다리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군.
그가 독백을 흘리는 틈을 타 상태창을 열어 보았다.
[본 드래곤(신화)]
―크리브마허 탄
―언데드
―12티어
―마나: 245,111
―특성: 자아★, 부서진 드래곤 하트, 용언, 부식, 지혜, 물리 저항
마나가 24만?
티어는 무려 12다.
괴물이 따로 없네.
자아 부분에 별표가 있는 것도 신기하고.
[자아★: 강대한 힘으로 인해 온전한 자아가 남아 있습니다.]
이게 과연 좋은 일인지 모르겠다.
말 안 듣는 거 아니야? 일단 강력한 언데드를 얻어서 좋기는 한데…….
―그대여, 그대가 쓴 물건의 정체를 아는가?
“그대가 아니라 네 주인이다.”
―그럼 이렇게 하지.
갑자기 거래를 하려 드는 크리브마허를 보자 골치가 아팠지만 일단 들어 보았다.
―그대가 쓴 왕관을 내게 주어라. 그러면 그대의 수족이 되어 주마.
탐욕을?
나는 천천히 저울질해 보았다.
본 드래곤과 탐욕의 왕관.
솔직히 본 드래곤의 스펙을 보면 욕심이 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내가 죽으면 본 드래곤이 무슨 의미인가.
탐욕의 왕관은 내 자신의 스펙을 올려 주는 아이템이었기에 조금 고민되었다.
물론 눈에 띄는 아이템인 만큼 항상 착용하고 있지는 못해도 급할 때는…….
‘잠깐?’
그러다 문득 떠오른 생각이 내 머리를 차분하게 가라앉혔다.
이거 이렇게 하면 어떨까?
* * *
모두가 잠든 한밤중.
방학이 끝나기 전에 미리 아카데미 기숙사로 복귀해 있던 아브라함은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처음에는 착각인 줄 알았으나 하루도 아니고 매일 밤마다 들려오는 소리에 결국 잠에서 깨어났다.
“이게 대체 뭔 소리야?”
그는 방 밖으로 나와 주위를 둘러보았다.
달빛이 밝지 않아 복도에 창이 나 있음에도 어두컴컴했다.
“으음.”
분위기가 썩 좋지는 않았다.
아직 방학 기간이라 복귀한 학생들은 드물었고 이런 오밤중에 밖에 나와서 이상한 소리를 낼 법한 학생도 그의 기억에는 없었다.
그럼 요 며칠 자신이 들었던 소리는 뭘까?
“미치겠네.”
사실 그냥 무시해도 상관 없었지만 소리는 생각보다 거슬렸다.
편히 잘 수가 없을 정도로 거슬리는 그 소리는 비록 크지는 않았지만 묘하게 신경이 쓰이게 만드는 소음이었다.
“누구 없어?”
아브라함이 기숙사 복도에서 작게 소리쳤다.
그러나 아무 기척도 느껴지지 않는 어두운 복도는 그저 그의 목소리만이 공허하게 메아리쳤다.
묘하게 싸늘한 그 분위기에 아브라함은 닭살이 돋았다.
그간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그가 지내는 이 기숙사에는 별별 소문이나 괴담 따위가 존재하는 장소였다.
물론 이런 소문은 다른 기숙사들도 다 하나씩 가지고 있었지만 유독 그가 지내는 물푸레 기숙사에 많이 존재했다.
“으, 기분 나빠.”
애써 아무렇지도 않게 소리 내어 말하고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가 방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묘한 소리가 복도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끼익. 끼익.
마치 누군가가 나무로 된 판자를 밟는 듯한 소리.
그렇기에 아브라함은 굳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 기숙사는 석재 기숙사인데?’
나무로 된 판자를 밟는 소리가 날 수 없었다.
복도도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는데?
아브라함은 천천히 다시 몸을 돌리고 이내 문가에 귀를 댔다.
끼익. 끼익.
소리는 점차 가까워졌다.
자신도 모르게 목울대를 울렁인 아브라함은 점점 긴장되는 몸을 느끼며 다가오는 소리에 집중했다.
끼익, 끼이익.
어느 순간 소리가 그쳤다.
차마 문을 다시 열어 볼 용기가 없던 아브라함은 조용히 한숨을 내쉬며 안도했다.
그 순간.
끼익! 끼익! 끼익! 끼익! 끼익!
이전과 달리 엄청난 빠르기로 다가오는 소음에 아브라함이 후다닥 침대로 뛰어 들어갔다. 그러면서 손을 더듬어 침대 옆 서랍장 위에 올려 두었을 자신의 지팡이를 찾았다.
‘어디 있는 거야!’
이불을 뒤집어쓴 상태였기에 지팡이가 잘 잡히지 않았다.
그러다 마침내 지팡이의 감촉을 느끼고 안도하며 가져가려는 순간.
당겨지지가 않았다.
마치 누군가가 반대편을 잡고 있는 것처럼 꼼짝 않는 지팡이에 별생각 없이 계속 잡아당기던 아브라함은 이내 이상함을 깨닫고 창백하게 질렸다.
이내 천천히 이불 틈으로 밖을 살펴본 아브라함은…….
끼익.
* * *
물푸레 기숙사에서 기묘한 사건이 일어났다.
말라비틀어진 학생의 시체가 발견된 것이다.
아직 개학을 하지 않았기에 소문이 크게 번지진 않았지만 미리 아카데미에 복귀해 있던 학생들로서는 불안에 떨 수밖에 없었다.
“원인도 알 수 없다면서?”
“마법도 아니래! 그럼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학생들은 불안에 떨었고, 물푸레 기숙사는 일시적으로 폐관이 되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을 누군가가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제대로 되고 있군.’
냉정하게 판단한 그는 조용히 자신의 거처로 돌아갔다.
아카데미로 돌아오게 될 누군가를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