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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 특성으로 최강 네크로맨서-125화 (125/415)

125화. 신

‘난 괜찮아.’

이제는 완전히 차단된 시야 너머로 이미 이 도시를 탈출했을 친구를 생각했다.

최선을 다했고.

후회도 없었다.

비록 자신은 여기서 어찌 될지 알 수 없었지만.

‘친구가 살았으니까.’

그걸로 됐어.

괜히 막지도 못할 이 검은 연기들 때문에 같이 이곳에 남아 있을 필요는 없었다.

‘…….’

하지만.

그래도 만약에.

‘친구가 남아 줬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고오오오.

마나가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엄마는 잘만 막았는데 난 아직 멀었나 봐.

이제 곧 있으면 검은 연기들에 휩싸여 또다시 반복되는 도시에서 지내야 하는 걸까.

그렇다면 이번에는 나 혼자겠네.

아니지, 룰프도 있어.

그래도 조금 아쉽다.

이렇게 헤어질 줄 알았으면 친구한테 더 잘해 주는 건데.

‘나중에 이곳에서 나가면 저랑 같이 다른 연극도 보러 가요.’

언젠가 친구가 해 줬던 말.

그와 함께 공터에서 펼쳐지는 공연을 몇 번이나 봤는지 모른다.

이제는 대사까지 다 외웠을 정도.

그래도 난 괜찮아.

‘이거 맛있다! 이게 뭐야?’

‘과자 같은 건 처음이에요?’

‘과자! 들어봤어! 이게 과자야?’

‘나중에 밖으로 나가면 제가 이거보다 더 맛있는 것도 사 드릴게요.’

‘좋아!’

언젠가 친구는 과자도 사 준다고 했었다.

이곳에서 먹은 것보다 맛있는.

기대했었는데 조금 아쉽다.

그래도 난 괜찮아.

친구랑 같이.

더 많이 이야기하고, 더 많이 놀고, 더 많이 구경하고…….

아직 못 해 준 것도 많은데.

같이 하고 싶은 것도 많았는데.

말하고 싶은 것도 많았는데.

‘너무 짧았네.’

이럴 줄 알았으면 수많은 회귀를 겪으면서 더 함께해야 했는데.

아쉽지만.

그래도 날 기억해 주겠지.

“히히.”

그거면 됐다.

어차피 아무것도 없었던 인생.

마지막이라도 누군가를 위했다는 사실이 뿌듯했다.

그 대상이 친구라는 것도 좋았고.

그러니까 난 정말 괜찮아.

콰가각가각―!

연기들이 점점 통제에서 벗어났다.

평범한 영혼들이 아니었다.

수많은 회귀로 인해 오염된 탓에 이성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악의로만 뭉쳤기에 교감이 되지 않았다.

교감이 되었다면 어느 정도 통제가 가능했을 텐데.

“그래도 룰프가 있으니까 난 외롭지 않아.”

―끼익!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너도 친구한테 보낼걸. 미안해.”

더 이상 버틸 수가 없다.

이제 끝이야.

앞으로 예상되는 영원한 외로움이 숨을 막히게 했지만 견뎠다.

외로움은 익숙하다.

그러니까…….

“난, 괜찮아.”

더 이상 막아 내지 못한 검은 연기들이 폭주하듯 다가왔다.

그렇게 눈을 감고 운명을 받아들이자…….

빛이 다가왔다.

‘빛?’

감긴 눈꺼풀로 전해져 오는 강렬한 자극에 천천히 눈을 떴다.

착각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뜬금없는 그 빛은 너무나 밝은 나머지 제대로 바라볼 수조차 없었다.

하지만 그 빛으로부터 들려오는 목소리는 다리에 힘을 풀리게 만들었다.

“루나.”

“친……구?”

검은 연기들이 속절없이 밀려났다.

마치 검게 칠해진 세상을 깨끗하게 치워 내듯.

세상을 여는 개벽의 빛.

그 사이로 검은 왕관을 쓴 아드리아스가 다가오고 있었다.

“꿈?”

꿈인가?

친구가 왜 여기에? 그리고 이 빛은?

“루나 펜드래곤.”

아직도 믿기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자 그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돌아가요, 같이.”

* * *

몸이 떨려 왔다.

역류하는 각혈을 삼켜 내며 애써 미소 지었다.

루나를 걱정시킬 순 없으니까.

“친구……, 친구!”

이내 그녀가 어린아이처럼 눈물을 쏟아 냈다.

얼마나 괴로웠을까.

나도 그녀와 함께 이 개같은 공간을 함께 지내봤기에 그녀의 결심이 얼마나 대단한 건지 알고 있었다.

죽지도 못하는 영원의 시간을, 그것도 혼자서 버틴다니.

상상도 못 할 만큼 공포스러웠다.

그녀의 주위를 감쌌던 연기들은 내가 사용한 빛 마법으로 도망치듯 물러났다.

그저 단순한 라이트 마법이었지만 빛 계열 화력 천재급 재능과 특수 기술 ‘탐욕’으로 인해 전혀 평범하지 않은 라이트 마법이 되어 버렸다.

도시 전체를 하얗게 만든 마법은 모르는 사람이 보면 신의 재림이라고 착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부작용이 없을 줄 알았는데. 오래 버티지는 못하겠네.’

특수 기술인 탐욕.

그리고 왕관에 내재된 스킬인 자선.

이 둘을 함께 사용하면 부작용이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큰 착각이었다.

부작용을 없애기는 한다.

다만 초월적 감정 상태만 없애 줬다.

[마나 흡수 666%]

[마법 저항력 666%]

[마나 제어 666%]

[육체 재생 666%]

[일시적 재능 ‘통찰(천재)’가 적용]

[일시적으로 체력이 떨어지지 않음]

[초월적 감정 ‘탐욕’ 상태에 돌입]

[66초간 지속]

마나 제어가 상승한 덕분에 나와 루나 주위의 광원은 위력을 낮추는 세심한 컨트롤이 가능했다. 그러지 않았으면 우리 둘 다 눈이 멀었겠지.

안타깝게도 포털은 사라졌다.

이제는 나도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

회귀가 계속되는 걸까, 아니면 다른 탈출 방법이 있는 걸까.

그래도 일단은.

“다행입니다.”

―끽끽!

룰프가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뭘 알고 이러는 걸까? 영물이라 돌아가는 상황은 다 알려나?

나는 조심스레 허리를 숙여 루나의 눈물을 닦아 냈다.

내게 조카가 있었다면 이런 기분일까.

어찌 됐든 중요한 건 루나도 이제 내 사람이라는 사실이었다.

‘포기하지 않아. 버리지도 않고.’

처음은 어땠는지 몰라도 수많은 회귀를 함께하며 쌓아 온 시간은 결코 평범한 경험이 아니었다.

마치 가족과 같이 느껴졌다.

그 에반조차 이제는 함께 시련을 버텨 온 전우처럼 느낄 정도니 말 다 했지.

―고오…….

검은 연기들은 어느새 깔끔하게 자취를 감췄다.

덕분에 탐욕의 시간이 끝났을 즘에는 우리 둘 다 안전했다.

“아드리아스…….”

여전히 울먹이는 루나가 칭얼댔다.

오랜만에 그녀의 입에서 내 이름을 들어 본다.

“왜 안 나간 거야.”

“그런 것치고는 좋아하는 것 같은데요?”

“좋아! 그래도 좋은 거랑 별개야! 아드리아스는 나갔어야 돼! 나 때문에 남으면 안 됐어!”

“괜찮아요. 같이 나갈 방법이 분명 있을 거예요.”

솔직히 말하면 장담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어딘가에 방법이 있겠지.

그러나 그런 생각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예상치 못한 말이 들려왔다.

[“온다.”]

오늘따라 말을 많이 하는 원죄를 느끼며 뭐가 오냐고 물어보려는 순간.

―불렀나.

허공이 울렸다.

그와 함께 속이 울렁거리며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들었다.

그것은 분명 인간의 언어나 구강 구조로 낼 수 없는 소리임에도 불구하고 그 뜻이 전달되었다.

그리고 이런 경험은 게임 속에서도 해 본 적이 있었다.

“신.”

신의 등장.

―신. 그래, 너희들은 나를 ‘신’이라고 부르지. 내게 ‘레테’라는 이름도 붙인 것으로 안다.

설마 신이 직접 나설 줄이야.

애초에 고대 시대 이후로 모두 사라졌다고 알고 있었는데?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근처에서 느껴지는 기척을 보면 분명 우리 가까이에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결국 버티지 못하고 주저앉고 말았다.

그리고 걱정되는 마음이 들어 루나를 바라보자 루나의 어깨에 있던 룰프가 거품을 흘리며 쓰러져 있었고, 그녀도 가쁜 호흡을 내뱉으며 바닥에 손을 짚고 있었다.

“뭘 원하십니까.”

―내가? 너에게? 난 그저 부름에 응했을 뿐이다.

“전 부른 적 없습니다.”

―나도 네가 불렀다고 말한 적 없다.

그럼 도대체 누가 불렀다는 거야.

설마 베리엘이 죽기 전에 부른 건가?

안 그래도 탐욕의 반동으로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점차 심해지는 레테의 압박감에 머리가 어지러울 때쯤 무언가가 나섰다.

[“내가 불렀어.”]

원죄?

―오랜만에 보는군, 관찰자여.

[“우리가 반갑게 인사할 사이는 아니지.”]

갑작스러운 대화의 시작에 안 그래도 정신이 없던 나는 집중할 수가 없었다.

―무엇을 원하나.

[“경고하려고 불렀어.”]

원죄의 감정이 느껴졌다.

너무나 원색적인 복수심과 살기.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애초에 원죄에게 자아가 있다는 것도 이전의 삶에서는 몰랐었던 사실이라 아는 게 없었다.

[“딱 기다려. 다 죽여 줄 테니까.”]

―기대하고 있겠다.

이해할 수 없는 대화가 흐르고 이내 원죄는 잠에 빠진 듯 사그라들었다.

도대체 뭐 하자는 거야, 이 새끼는.

뭔 대화인지도 모르겠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끝나자 레테의 관심이 내게로 쏠렸다.

―괴롭나.

“저한테 하시는 말씀이십니까.”

―그렇다.

“예, 괴롭습니다.”

―그렇군.

레테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동안 꽤 오래 잔 것 같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레테가 주위를 둘러보는 것 같다고 느껴졌다.

그렇게 찬찬히 주변을 둘러본 레테의 시선은 다시 내게로 향했다.

―대단한 정신력이다.

시발, 어쩌라는 거야. 꺼질 거면 빨리 꺼지든가.

너무나 괴로운 나머지 욕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뻔했지만 함부로 경거망동할 수는 없었다.

상대는 신이라 불리는 존재.

그저 입김 한 번에 나 같은 인간은 세상에서 지워 버릴 수도 있겠지.

무려 이런 공간을 아무렇지도 않게 만들어 낸 존재이니.

“제게 원하시는 게 있습니까?”

―없다. 대신 줄 건 있지.

“예?”

나도 모르게 반문했다.

줄 게 있다니?

―부디 너와 관찰자가 함께 목적한 바를 이루기 바라마.

원죄를 관찰자라 부르는 건 그렇다 치고 목적한 바라니?

애초에 원죄의 목적이 뭔지도 모른다.

내 목표는 그저 세상의 안녕과 내 행복일 뿐.

[‘기억 끝에서 망각하는 자’가 가호를 내립니다.]

[가호는 조건 충족 시 자동으로 발현됩니다.]

가호? 조건 충족?

이런 건 처음 본다.

게임 속에서조차 겪어 보지 못한 일.

―기다리고 있겠다.

레테는 그 말을 끝으로 사라졌다.

그와 함께 하얀 빛무리가 모여 포털을 만들었다.

‘포탈! 다행…….’

……이라고 생각한 순간.

순식간에 사라진 압박감이 마치 쪼그라든 폐에 공기가 갑자기 들어차는 듯한 충격을 주었다.

“크헉.”

결국에는 각혈을 하고 말았다.

나는 덜덜 떨며 니켈을 소환해 그가 들고 있던 공간 확장 배낭에서 포션을 꺼내 마셨다.

동시에 룰프와 루나에게도 억지로 먹였다.

‘아무 악의나 적의도 없이,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이런 힘…….’

게임에서는 막연하게 강한 존재구나 싶었는데 실제로 겪어 보니 왜 신이라 불리는지 알겠다.

실제로 신인지는 모르겠으나 저 정도의 힘이라면 신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다.

“아깝다.”

마나가 바닥난 탓에 몸을 보호하지 못했던 루나가 포션을 먹고 조금 괜찮아졌는지 중얼거렸다.

“나도 신이랑 얘기해 보고 싶었는데.”

여전한 거 같아 다행이군.

그래도 크게 충격을 받은 것 같지는 않아 미소가 지어졌다.

포털은 이전의 포털과 달리 사라질 기색이 없었다.

그렇기에 조금 더 몸을 가누고 가려던 중, 무언가가 눈에 띄었다.

‘크리브마허.’

원해 이곳에 왔던 이유.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터무니없는 경험을 했다.

단순히 드래곤의 무덤이라고 생각하고 왔던 건데 이렇게까지 일이 틀어질 줄이야.

그래도 왔으니 저건 내 언데드로 만들고 가야지.

‘생각해 보면 이번 여행으로 영혼 각인에 신의 가호, 그리고 본 드래곤까지 얻었네.’

그래도 과거로 돌아가 다시 할 거냐고 묻는다면 고개가 저어질 것 같았다.

그만큼이나 이번 경험은 절망과 좌절을 크게 겪은 사건이었다.

‘루나가 무사해서 다행이지.’

그러고 보니 에반은 무사한 건가?

지금쯤 우리를 걱정하고 있을 수도 있겠다.

‘나가면 다시 적인가.’

모르겠다.

우선은 본 드래곤을 만들고 루나와 함께 나가야지.

그녀와 약속한 걸 들어주기 위해서라도.

그렇게 크리브마허에게 다가가는 도중 무언가 이상한 걸 발견했다.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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