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화. 아드리아스의 욕심
괴물의 외형은 상당히 기괴했다.
처음의 모습이 태아와 비슷해서였는지 녀석의 배꼽에서부터 길게 이어진 무언가가 풍선처럼 그의 옆에 둥둥 떠 있었고, 갈색과 검은색이 섞인 짐승의 털, 그리고 거대한 뿔 두 개가 돋은 짐승의 형태였다.
이족보행을 하고 두 손은 영장류와 같이 생겨 도구를 쓸 법도 하건만 그저 움켜쥔 채 주먹을 휘두르는 단순한 공격을 해 왔다.
‘문제라면 저 검은 연기.’
베리엘이 검은 연기를 조종하는 건지, 아니면 저 괴물이 조종하는 건지는 몰라도 양 주먹에 검은 연기를 두른 채 휘둘렀다.
회귀 펀치인가?
그뿐 아니라 온몸을 검은 연기로 보호하듯 두르고 있었기에 함부로 다가갈 수가 없었다.
자칫 실수하면 그대로 회귀를 하게 되니 조심하는 수밖에.
‘하지만 이거 어쩌나.’
생각지도 못한 네크로맨서의 장점이 여기서도 빛을 발했다.
카가가가각!
이름 모를 괴물의 주먹을 검으로 막아 낸 니켈은 검은 연기에 아무 반응이 없었다.
검은 연기가 휘감든, 몸을 통과하든 전혀 신경 쓰지 않으며 그저 검을 휘둘렀다.
―구워어어어!
니켈과 티무르, 그리고 미리내의 그림자가 괴물을 막는 사이 루도의 대검이 정확하게 괴물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콰직! 콰아앙―!
‘끝?’
예상보다 너무 싱겁게 뭉개지는 괴물을 보며 잠시 놀랐지만 방심하지는 않았다.
애초에 날 비웃듯이 바라보고 있는 베리엘을 보면 아직 전투가 끝나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꾸드득.
마치 시간이 되돌려지듯 괴물의 몸체가 재구성되었다.
아주 회귀랑 관련돼 있다고 광고를 해라.
‘역시 기믹이 따로 있는 건가.’
어쩌면 이번 회차만으로 이길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도시는 아무도 못 가져간다! 절대! 절대로!”
여전히 피눈물을 흘리는 베리엘이 광기 어린 폭소를 터트리며 즐거워했다.
“레테의 전사여! 저 불온한 자들에게…….”
“거, 좀 조용히 합시다.”
검은 검풍이 베리엘에게 휘몰아쳤다.
저 괴물은 검은 연기를 두르고 있으니 언데드들에게 맡기고 나는 베리엘을 처리하기로 했다.
“내가! 내가 어떤 마음으로 이 도시를 유지하고 있는지 아느냐! 감히 침입자 주제에, 감히!”
“베리엘.”
콰지지지직!
베리엘이 두른 투명한 보호막에 검이 막혔지만 이내 금이 갔다.
급하게 뒤로 물러나는 베리엘을 따라붙으며 말했다.
“난 네 사연 따위 궁금하지 않아. 이해해 주고 싶지도 않고.”
“닥쳐라! 이 불온한 종자야!”
콰아앙―!
하얀 광선이 술식도 없이 마나 배열만으로 쏘아졌다.
저번에도 느꼈던 거지만 처음 보는 형태의 마법이었다.
역시 고대 시대라는 건가?
‘하지만 너무 단순해.’
파괴력은 강하지만 바보도 아니고 저런 거에 맞아 줄 사람은 잔챙이밖에 없겠다.
“대충 짐작은 간다. 네가 꼬드긴 화룡 원정대, 아마 실패했겠지. 그리고 화가 난 화룡이 이 도시를 덮친 거고.”
“아…….”
“그리고 이 공간을 덮은 힘은 아마 레테의 힘일 거야. 네가 싸지른 똥을 치우려고 레테한테 뭐라도 한 모양인데…….”
콰직! 콰아앙―!
보호막이 부서지며 베리엘의 흔들리는 눈빛이 시야에 들어왔다.
“너도 이렇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겠지?”
“그, 그렇지 않아. 이, 이건……!”
“나도 안다. 신이란 건 우리가 이해하기 힘든 존재지. 네가 계속해서 그 말을 에반한테 외치는 이유를 어느 정도 동감해. 아마 넌 순수하게 화룡의 공격으로부터 벌어진 도시의 참상을 되돌리려고 한 거겠지.”
어차피 지금 베리엘을 죽인다 해도 그는 회귀할 거다.
그렇기에 멍하니 서 있는 상대를 굳이 공격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레테는 정말 곧이곧대로 들어줬을 테고. 전혀 배려 없는 형식으로 네 기도를 이루어 줬겠지. 내 말이 맞아?”
베리엘은 말없이 피눈물을 흘렸다.
“레테의 힘으로 만든 결과가 결국 이 공간. 영원히 반복되는 도시의 하루, 그것도 하필이면 화룡의 습격이 있기 직전. 아마 내 추측이 맞을 것 같은데.”
100번까지는 셌었던 회귀 횟수.
그동안 아무 생각 없이 회귀만 한 건 아니었다.
이유나 원인을 분석해 봤다.
게임 속의 경험으로 이미 고대 시대와 관련된 유적이나 던전도 몇 번 클리어 해 봤기에 신이란 존재도 대충 어떤지는 안다.
최근에 직접 경험해 보기도 했고.
‘나태.’
특수 기술, 나태.
나태를 사용하고 느꼈던 초월적 감정 상태가 아마 신들이 느끼고 있는 감정이 아닐까 짐작해 보았다.
그렇다면 이런 성의 없고, 배려 없는 형식의 던전이 말이 되지.
“빈민가 골목에서, 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봤다. 넌 본 적 있어?”
“그게…… 어쨌다는 거냐.”
“매일 같은 시간을 반복한다. 부모가 돌아오지 않을까 하며 매일을 말이야. 단순히 환영이면 아무 상관없어. 근데 너도 알 거 아니야?”
베리엘은 대답이 없었다.
“저 검은 연기들은 환영이 아니라 진짜 영혼이라는 걸. 살아 있는 게 아니라 그저 영원히 갇혀 있기만 하는 영혼들이 불쌍하지도 않냐?”
“닥쳐라. 내가 아니었으면 저들은 존재할 수조차 없었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힘이 없다.
그래도 완전히 미친 건 아닌 건가?
콰과과광!
쿠드드드드―!
화려한 빛이 번쩍이며 에반이 오러 비기로 크리브마허를 썰고 있었다.
드래곤이라고는 하지만 자아도 없이 그저 조종당하는 녀석은 에반의 상대가 되지 못하고 있었다. 에반이 오러 마스터 중에서 특히 강한 것도 한몫했다.
이브 또한 영혼과 관련된 전문가라 그런지 검은 연기들을 잘 막아 내고 있었다.
과연 이 던전의 핵이 드래곤 하트인지, 아니면 언데드들이 상대하는 저 조각상 괴물인지는 몰라도 결국은 우리가 이길 듯했다.
베리엘도 그러한 기색을 읽었는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닉스의 사제가 이곳에 온 건, 운명인가. 하하.”
뭔가 내려놓은 듯 홀가분하게 웃었지만 피눈물 자국으로 기괴하게 보였다.
“침입자여, 네 말이 맞다. 그래! 네 말이 모두 옳아! 내 무리한 판단으로 모두를 죽이고, 끝내는 레테께 기도를 드렸건만 결과는 이것이다. 이것도 그냥 얻어 낸 기적이 아니야. 수천 명분의 영혼을 바치고 이뤄 낸 기적이라고.”
그는 흐느끼듯 토해 냈다.
“그런데, 감히 내가 어떻게 이 도시를 저버릴 수 있겠나? 그들을 희생시키고, 결국에는 의미 없는 반복이 지속되지만, 내가 어떻게 포기할 수 있겠냐고.”
“징징대지 마라. 네가 자초한 일이니까.”
루나라면 저 말에서 연민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난 아니다.
쓸데없는 아집과 고집. 앞으로 나아갈 줄을 모르고 제자리에만 머물러 있는 그 모습이 사고 직후의 나와 겹쳐 보여 혐오감을 불러일으켰다.
일단 던전 핵만 부순다면 그때 처리할 거다.
핵이 부서지기 전에 이 녀석이 회귀를 한다면 어찌 될지 모르니 변수를 통제해야 했다.
“그래, 모두 내 잘못이지. 그렇기 때문에 내가 책임질 거다. 침입자들이 나설 일이 아니야.”
마력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다.
만약 베리엘이 기사였다면 단전을 으깨 놓을 텐데 하필 마법사와 같이 심장에 마나가 있어서 막을 수도 없었다.
‘그냥 죽여?’
그가 회귀를 하게 되면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하면 지금과 같은 기회가 다시는 안 올 수도 있다.
물론 이 모든 게 내 착각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일단 죽이고 본다.’
회귀에 대한 불안감이 있었지만 위험 요소는 없앤다.
쇄애액―!
오랜만에 사용하는 본 소드가 채찍처럼 늘어지며 베리엘을 쫓았다.
날카로운 가시와 같은 뼈들이 순식간에 베리엘의 몸뚱이를 찢었다.
“커헉!”
그와 동시에 더블 캐스팅으로 인한 본 익스플로전이 터졌다.
콰아아아앙―!
실수인가.
아무 저항도 없이 죽은 것처럼 보여 뭔가 애매했다.
‘아니야. 애초에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도 있는데 굳이 나한테 죽어 줄 필요가 없지.’
그런데 도대체 뭘 하려고 했기에…….
꾸드득, 푸슥!
역시 뭔가 있었나 보다.
베리엘의 살점이 부서져 내리더니 검은 연기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순식간에 조각상 괴물에게 빨려 들어갔다.
―#$^@$&!!!!
언데드들을 상대하던 괴물은 이내 괴성을 지르더니 점차 쭈글쭈글해지기 시작했다.
“저건 또 뭐야.”
마치 속이 비어 가듯 껍데기만 남은 괴물 위로 풍선과 같던 배꼽에 연결된 무언가가 꿈틀거리더니 이내 알을 깨고 나오듯 부서지기 시작했다.
[슬로스 팬텀(전설)이 나태를 사용하고자 합니다.]
[슬로스 팬텀(전설)과 나태의 쿨타임을 공유하게 됩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갑자기?
니켈의 감정이 전해져 왔다.
강렬한 적대감과 함께 위급함이 느껴졌다.
‘저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평소의 니켈을 생각하면 믿어 주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단지 내 강력한 패를 소모한다는 게 마음에 걸렸지만 지금의 내게는 하나의 패가 더 있었으니.
내가 수락을 하자 귀기 어린 푸른 마나가 니켈을 에워쌌다.
어깨에 걸친 도복이 펄럭이고, 언젠가 보았던 오러 비기를 망설임 없이 사용한다.
정직한 내려 베기.
휭!
마치 공간이 세로로 어긋난 듯한 착시가 일어나고…….
그 사이에 있던 알 수 없는 무언가는 풍선에서 빠져나오기도 전에 반으로 갈렸다.
―끄어어어어억!
고막을 찢는 비명과 함께 검은 연기가 쏟아져 내렸다.
그와 함께 이브가 맡고 있던 검은 연기들도 날뛰고, 크리브마허도 미친 듯이 춤을 췄다.
‘된 건가?’
일단은 거리를 벌렸다.
혹시라도 저 검은 연기에 닿게 되어 회귀를 한다면 말짱 도루묵이었으니.
파앙―!
콰아아아앙―!
언데드들을 다시 집어넣고 터져 나오는 폭음에 고개를 돌리자 에반이 드디어 드래곤 하트를 깨부순 모양이었다.
순간 마력이 폭사하며 주변에 충격을 주었고 도시 전체가 울렁이기 시작했다.
―고오오오오!
“루나 펜드래곤! 베리 샌더…….”
에반의 외침이 메아리치며 어느새 사라졌다.
그가 사라진 곳을 보자 마치 포털처럼 보이는 빛무리가 뭉쳐 있었다.
“클리어!”
던전 클리어의 증거였다.
이제 저 포탈을 타고 나가면, 게임에서는 보상을 주는 방으로 이어져 있었는데 여기서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확실한 건 여기서 탈출할 수 있다는 것.
‘에반은 그냥 휩쓸려 버렸군.’
드래곤 하트를 깨는 게 정답이었던 건가?
아니면 운 좋게 기믹을 순서대로 깬 건가?
지금은 생각을 제쳐 두고 빠져나가야 할 시간이었다.
왜냐하면 아직도 검은 연기들이 사라지지 않고 기승을 부리고 있었으니.
“이브!”
내가 힘껏 외쳐 보았지만 검은 연기에 싸여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가 않았다.
살짝 불안해지는 마음을 억누르던 그때.
“친구…….”
흐릿한 미소를 지은 루나가 얼핏 보였다.
이제 보니까 이브의 강림이 풀린 모양이다.
“루나! 이제 끝났어요. 빨리 빠져나와요.”
“친구, 괜찮아. 먼저 가.”
어딘가 이상함을 느꼈다.
왜 빠져나오지 못하는 거지?
“루나!”
“미안해, 친구.”
뭐가 미안하다는 거야?
“벗어날 수가 없어, 헤헤.”
어색한 웃음이 루나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벗어날 수가 없다고? 그게 뭔 개떡 같은 소리야.
검은 연기들은 갈 곳을 잃고 마치 자석에 끌린 철 가루처럼 루나가 있는 곳으로 뭉쳤다.
언뜻언뜻 루나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지만 그 모습이 위태위태했다.
“루나…….”
“친구, 정말 고마웠어. 나, 정말로…….”
루나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정말로! 행복했어! 그러니까! 친구가 무사했으면 좋겠어! 난 놔두고 빨리 나가!”
“뭔 개 같은 소리를!”
저게 미쳤나!
내가 왜 널 놔두고 가?
“빨리 나가! 출구가 없어져!”
루나의 말대로 포털의 빛무리가 서서히 흐려지고 있었다.
저런 현상도 게임에서 겪어 본 적 없었는데.
“난 괜찮으니까…… 그러니까 친구는 빨리 도망쳐. 난 괜찮아!”
눈물로 얼룩진 모습 그대로 해맑게 웃는 루나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난, 괜찮아. 익숙하니까. 그리고 룰프도 있고…….”
루나의 목소리가 점차 희미해진다.
아직도 다 온 게 아닌 모양인지 검은 연기들은 끝없이 몸집을 불리고 있었다.
“고마웠…… 그니까…… 괜찮…….”
“저 씨발.”
욕을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다.
난 내 자신보다 내 행복이 더 중요하다.
이대로 루나를 두고 밖으로 나가면 과연 내가 행복할 수 있을까.
누군가는 말하겠지. 행복이 뭐가 그리 중요하냐고.
하지만 누가 뭐라 해도 내겐 가장 중요했다.
내 행복이,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의 행복이.
그게 김진환, 그리고 아드리아스로 살면서 얻은 나만의 결론이었다.
“듣고 있는 거 알아. 지금 이 상황도 알고 있지?”
아무도 없는 주변에 소리쳤다.
“그러니까 당장 내놔. 루나를 구하게, 지금 당장!”
[“욕심이야.”]
아이와 같은 목소리가 뇌리를 울렸다.
역시 듣고 있었군.
원죄.
“어차피 난 루나를 구하기 전까지 나가지 않을 거야. 내가 여기서 그냥 썩어 문드러져도 상관없어? 너한테도 좋은 이야기는 아닐 텐데?”
[“욕심은 나쁘지 않아. 난 나쁘다고 말한 적 없어.”]
가슴이 갈라졌다.
하지만 고통은 없었다.
[“오히려 ‘탐욕’에 어울리는 멋진 생각이지!”]
검은 왕관이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