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화. 루나 펜드래곤
“선배…… 왜?”
주위는 온통 시산혈해를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전부 내가 알고 있는 얼굴들이었다.
“이게 대체…….”
나는 잡고 있던 검의 손잡이를 급하게 놓았지만, 그 검이 찌르고 들어간 인물이 바뀌는 것은 아니었다.
“루시아.”
갈락슈르에 가슴이 꿰뚫린 루시아가 허망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선배, 왜, 저를.”
그녀의 시선이 바닥으로 향하자 그곳에는 비비안의 시신이 있었다.
그리고 그 바로 옆에는 에이미도 쓰러져 있었다.
“다 선배가 죽인 거예요. 다, 모두 다.”
이게 현실일 리 없다.
침착하자.
내게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레테의 신전, 검은 연기?’
* * *
“하아.”
정신이 들었다.
주변을 둘러보자 언젠가 보았던 그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돌려줘!”
“싫은데? 뺏어 보든지!”
아이들의 외침이 들려오고 곧이어 이어지는 끔찍한 기억에 몸서리쳤다.
내가 알고 있던 이들이 모두 죽어 있던 악몽.
‘이래서 반복되는 악몽…….’
검은 연기에 휩싸이면 이렇게 되는 건가.
나태의 결계로 이것과 비슷한 상황을 한번 경험을 해 본 게 아니었으면 꽤 크게 데였을 것 같았다.
차라리 깔끔하게 죽고 다시 회귀하는 게 나을 정도인데?
잠시만. 그렇다면 루나는?
루나가 날아왔어야 할 하늘을 올려다보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잠시 그녀를 기다려 보았지만 여전히 찾아올 기색이 없자 불안감만 커져 갔다.
‘충격이 심한가. 아니면 다른 무슨 일이 생긴 건가?’
결국 직접 찾아 나서기로 한 나는 루나가 보였었던 방향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끼익!
“룰프.”
생각지도 못한 룰프가 나를 먼저 찾아왔다.
루나는 어디 가고 이 녀석만 오는 거지?
―끼익! 끽!
룰프는 내 몸을 타고 오르더니 어딘가를 가리키기 시작했다.
녀석의 의도를 알아본 나는 룰프가 알려 주는 방향으로 걸었다.
골목의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음산해지기 시작했다.
마냥 활기차 보이던 도시도 음지가 있는 모양이었다.
마치 도시의 한 부분만 잠든 것처럼 고요한 곳이었다.
모두가 잠든 듯 적막에 싸인 거리에서 나는 그저 조용히 발걸음을 뻗었다.
‘루나의 시작 지점은 이곳인가?’
썩 좋은 곳에서 시작하지는 않네.
그건 그렇고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무슨 문제가 생긴 건 아닐지 걱정을 하던 와중에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졌다.
어린아이들이었다.
‘정반대군.’
내가 시작한 거리에서 뛰놀던 아이들과 달리 경계심이 가득하고 비루한 모습이었다. 그런 아이들의 시선을 받아넘기며 계속해서 걸어가던 그때.
“아, 아저씨!”
나를 불러오는 한 아이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혹시 화룡 원정에서 돌아오신 건가요?”
뜬금없는 물음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저어 주었다.
“아니. 난 거기 끼지 않았어.”
“아, 그, 그렇구나.”
잔뜩 실망한 것처럼 보이는 아이의 표정에 오히려 내가 궁금해졌다.
“왜 물어본 거야?”
“네? 아, 저희 아버지가 끌려가셔서요. 혹시나 하고…….”
끌려가? 징집?
용병들하고 기사들만 참가하는 게 아니었나?
그러고 보니 묘하게 싸늘하기는 했다.
아무리 빈민가라고는 해도 인적이 너무 드물었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이에게 다시 질문을 던졌다.
“여기 있던 사람들은 다 끌려간 건가?”
“네. 어른들은 다 원정대에 참가했어요.”
소년의 대답에 나도 모르게 눈살이 찌푸려졌다.
화룡 원정의 결과가 대충 어떻게 흘러갈지 아는 나로서는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실패했겠지. 그러니까 이 도시가 화룡이 죽은 장소가 된 거고.’
화룡의 원정이 성공했으면 크리브마허가 여기까지 와서 죽었을 리 없다.
그것도 이 던전의 초자연적인 힘에 의해 죽었을 확률이 높았으니 이 도시 사람들도 전부 죽거나 잿더미…….
나는 생각을 멈추고 잠시 아이에게 시선을 보내다 이내 발걸음을 뗐다.
‘기분만 잡쳤네.’
이미 그들이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들이 아님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개같은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도대체 이 도시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왜 던전이 된 거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 때, 룰프가 갑자기 내 어깨에서 내려와 어디론가 뛰어갔다.
갑작스러운 행동이었지만 루나가 근처에 있다는 행동으로 받아들인 나는 곧바로 룰프의 뒤를 따라 뛰었다.
“루나.”
밤과 같이 칙칙한 그림자가 진 한구석.
별을 머금은 듯 빛나는 머리카락이 흐트러져 있었다.
루나 펜드래곤.
그녀는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 * *
기억이라는 것을 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언제나 자신은 외톨이였다.
‘루나 펜드래곤. 저주와 축복을 동시에 받은 아이.’
그것이 처음으로 기억하는 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에도…….
이미 낙인이 찍히듯 박혀 버린 정체성.
“왜……?”
알 수 없었다.
그저 그렇게 태어났을 뿐.
그러나 이렇게 태어난 자신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오직 죽은 자들만이 주위를 배회하고 있었다.
“엄마…….”
가족은 없었다.
유일하다시피 한 혈육인 엄마는 항상 같이 있는 일이 드물었고.
마치 감춰지듯, 숨겨지듯 지내야 했던 고통 속에서.
그저 태어났기에 살아 있었다.
“루나, 이 지독한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강해져야 한단다.”
어느 날부터인가 엄마에게 마법이라는 것을 배우기 시작했다.
엄마를 대하는 건 여전히 어려웠지만 그녀와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실력이 성장을 하고, 익혔던 마법은 자신의 특별한 능력과 함께 빛을 발하고 있었다.
“잘했어, 역시 내 딸이구나.”
엄마에게 처음으로 칭찬을 받았던 날.
너무나 기쁜 마음에 잠조차 이루지 못했던 밤이었다.
그렇게 조금씩 성장하며, 어떨 때는 집회라는 모임에 참가하며 처음으로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구경하기도 했던 어느 나날.
엄마가 죽었다.
쏴아아.
그날은 유독 비가 많이 내렸다.
은신처가 있는 아데르얀 습지의 모든 것들이 비에 물들었을 때.
평소에도 창백한 안색이었던 엄마는.
짙게 깔린 안개와 같이 뽀얀 얼굴로.
숨을 거둔 채 나타났다.
“당신이 루나 펜드래곤이군요.”
에반 폰 오를레옹을 만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양손으로 공주님을 안듯 죽은 엄마를 안고 찾아온 그는.
아무 설명도 해 주지 않았다.
엄마가 어떻게 죽었는지, 누구에게 죽은 건지, 어디서 죽은 건지.
그저 조용히 엄마를 침대에 눕혀 놓고는 애틋하게 머리를 쓰다듬어 줄 뿐이었다.
“살아남으려면…… 강해져야 합니다.”
안타까운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에반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누군지도 몰랐고, 어째서 그가 자신의 엄마를 안고 왔는지 몰랐기에.
마지막으로 마치 주문을 걸듯 나직하게 말한 그는 빗속을 뚫고 사라졌다.
그렇게 마지막 남은 혈육이 세상을 떠나고.
이 세상에 오직 혼자만 남겨졌다는 절망과 함께 눈물을 쏟으며 밤을 지새웠다.
“영혼 각인.”
이대로 보낼 수 없었다.
다행히 아직 그녀의 영혼이 떠나지 않았음을 볼 수 있었고.
신중하게 사용하라던 영혼 각인을 사용했다.
“이제 엄마는 영원히 함께야.”
손이 떨려 오며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졌다.
자신은 바보가 아니었다.
죽은 사람은 죽은 것.
영혼은 그저 잔재일 뿐임을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사무치도록 버틸 수 없는 외로움에 엄마를 놓아줄 수가 없었다.
그게 그녀를 고통스럽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철없는 자신은 혼자서 이 세상을 버틸 수가 없었기에.
그렇게 엄마의 영혼을 각인하자…….
세상은 자신을 워록급 마법사라며 두려워했다.
“루나 펜드래곤, 자신의 어머니 영혼을 사령하는 극악무도한 흑마법사!”
애써 웃어넘겼다.
어차피 엄마만 있으면 돼.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상관없어.
이 외로움만 달래 준다면 누가 뭐라고 하든…….
웃는 얼굴로 속내를 감추고 살아왔다.
그렇게 그저 살아 있기에 살아가던 나날들에서.
그를 만났다.
“당신들은 저를 죽일 수 없습니다.”
처음에는 그에게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저 나태의 페이지를 찾았다는 말에 이 외로움을 달랠 만한 장난감이 생길 수도 있겠다는 기대가 전부였다.
그러나 이후에 그가 보여 주었던 행동들.
매일 외롭다며 징징대면서도, 차마 죽을 용기는 없던 자신과는 상반되게.
그 누구보다도 삶에 대한 의욕이 불타오르면서도 서슴없이 자신의 가슴에 칼을 박아 넣는 그 모습에서 불꽃이 보였다.
‘아드리아스 크롬웰.’
그는 자신의 목숨을 불사르며 삶을 짊어졌다.
어쩌면 자신이 동경했던 것은 저런 인물이 아니었을까.
만남은 짧았지만 그 강렬한 인상은 은신처에 돌아오고 나서도 한동안 지속되었다.
연결 고리가 전혀 없었기에 금세 잊었지만.
‘아, 드리아스, 크롬, 웰.’
우연히 부탁받은 일로 오랜만에 은신처 밖으로 나왔을 때.
카일러를 죽인 사람이 아드리아스라는 걸 알게 되자 인연이 닿았음을 느꼈다.
그와 친해지고 싶었다.
이 일을 계기로 그에게 다가가 보고 싶었다.
그의 곁에 있는다면, 자신도 그처럼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정말 어쩌면…….
그의 곁에서 외로움을 잊을 수 있지 않을까?
세상 전부가 자신을 따돌리고.
집회라고 불리는 속이 검은 사람들의 견제를 받으며.
그저 이렇게 태어났을 뿐인 자신을 증오하는 사람들 속에서.
제발.
날 구원해 줘.
더 이상 이런 괴로운 생각은 하기 싫어.
제발.
누군가가 나를…….
“루나.”
누구……?
“루나 펜드래곤.”
이제는 그 누구보다 익숙해진 목소리.
그 목소리의 주인은.
“돌아가요, 같이.”
미소가 지어졌다.
‘친구.’
* * *
따뜻했다.
이 포근한 상태에서 깨어나기 싫어 바둥거렸지만 결국 천천히 쓸어내리는 손길에 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
천천히 뜨이는 눈꺼풀 안쪽은 은하수가 자리하고 있었다.
“잘 잤어요?”
“친구…….”
그 은하수와 같은 눈동자에 가득 담기는 한 사내로 인해 루나는 해맑게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돌아왔어.”
“기다렸어요. 무사해서 다행입니다.”
자신을 걱정해 주고 기다려 주는 사람이 있었다.
이제는 혼자가 아니다.
이 사실만으로도 루나는 행복해졌다.
남들에게는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 경험이어도, 그녀는 은신처에서 나와 아드리아스를 찾아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을 하며 그의 무릎에 누운 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새로 생긴 친구이자 유일한 친구.
―끽!
“룰프! 너도 있었지!”
이 현실이 너무나 행복했기에.
오히려 이곳에서 영원을 반복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지만 애써 고개를 저었다.
‘친구가 힘들어하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아.’
머리에 닿은 아드리아스의 온기를 느끼며.
루나의 은백색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언젠가는 분명 이 기묘한 장소에서 벗어나야겠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영원토록 지속되기를 바라는 루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