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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 특성으로 최강 네크로맨서-114화 (114/415)

114화. 이브 밀레니엄

알-구르드의 죽음은 실감이 나지 않을 정도로 가벼웠다.

발을 동동 구르며 지켜보고 있던 엔데버의 사람들은 믿기지 않는 눈으로 등 뒤로 검이 튀어나온 알-구르드를 바라봤다.

“이긴, 건가?”

“하, 하하! 이겼어! 막아 냈다고! 이제 전쟁은 끝이야!”

누군가가 기쁨의 함성을 내지르자 요새의 성벽 위에서 지켜보고 있던 병사들도 함께 소리를 질렀다.

“이겼다! 우리의 승리다!”

“엔데버의 승리다! 만세! 베리 샌더스 만세!”

엄청난 환호성이 이제는 텅 비어 버린 전장을 울렸다.

오크들은 전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고 가까스로 살아남은 몇몇 오크들만 대수림으로 도망쳤다.

무엇보다도 오크들의 구심점이 되어 준 오크 로드가 죽은 이상, 엔데버 요새는 물론 그랑디스 왕국의 국경선 일대가 평화를 되찾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재료가 생겼다! 좋은 재료!”

루나가 강령술을 풀며 싱글벙글 아드리아스에게 다가갔다.

아드리아스는 몸으로 받치고 있던 알-구르드의 시신을 천천히 바닥에 내려놓으며 검을 뽑았다.

그러자 진짜로 알-구르드가 죽었다는 게 실감이 났는지, 구경을 하던 이들이 몰려와 위대했던 오러 마스터 오크의 시신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루나.”

“응!”

“각인에는 다른 자잘한 재료도 필요하죠?”

“엉! 지금 바로는 못 해.”

아드리아스는 다른 사람들처럼 알-구르드를 구경하던 도슨을 향해 물었다.

“알-구르드의 시신은 제가 가져도 되겠습니까.”

“원래는 왕궁에 보고를 해야 하지만…….”

도슨은 주변에 선 인물들에게 일일이 시선을 보내고 이내 씨익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알-구르드의 시신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걸로 하지. 우리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네.”

“그렇습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못 봤습니다!”

사람들의 호응에 아드리아스는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그러자 루나가 옆에서 아공간 아티팩트에 알-구르드의 시신을 흡수했다.

“자네는 이곳, 엔데버뿐만 아니라 그랑디스 왕국의 영웅일세. 이 일은 내가 상세히 왕궁으로 보고를 올리도록 하지.”

도슨의 말에 기뻐해야 할 아드리아스 대신에 오히려 주변 사람들이 소리쳤다.

“베리 샌더스! 엔데버의 영웅! 네크로맨서의 왕! 오크 로드를 죽인 자!”

“저 젊은 나이에 어떻게 저런 검술 실력과 흑마법을 익힐 수 있던 거지? 아니, 애초에 검과 마법을 동시에 사용하는 게 가능한 일이었어?”

“딱 보면 모르겠냐! 저건 가짜 얼굴이겠지. 넌 살면서 베리 샌더스라는 이름을 들어 봤어? 유명한 흑마법사가 정체를 숨긴 게 분명해. 안 그러면 말이 안 된다고.”

그렇게 기사들끼리 저마다의 의견을 내고, 때로는 아드리아스를 칭송하기도 하며 티격태격하는 사이 도슨이 다가와 말했다.

“전쟁은 끝나지 않았지만 그대들의 할 일은 끝났소. 그러니 부디 영주 성에서 편히 휴식을 취하기를 바라오. 전공에 관해서는 내가 곧바로 상부에 보고를 올려 빠른 시일 내로 보상이 나오게 하지.”

“알겠습니다.”

전쟁은 끝났지만 전쟁보다 힘든 과정이 될 수도 있는 전후 처리가 남아 있었다.

가만히 놔두면 전염병이 창궐하거나 여러 문제들이 생길 게 뻔했기에 쉬고 있을 수 없었다.

다행히 그런 전후 처리 과정에서는 벗어난 아드리아스와 루나는 영주 성으로 돌아와 몸에 묻은 이물질들과 먼지를 씻어 내고 여유를 가졌다.

당장 대수림으로 떠날 생각은 없었기에 아드리아스는 이왕이면 그랑디스 왕국에서 주는 보상을 얻은 뒤 이곳에서 루나에게 영혼 각인까지 마무리하고 출발할 생각이었다.

‘예상보다 험난했군.’

대수림으로 들어가는 길이 이리도 길어질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만약 전쟁이 조금만 더 길어졌으면 드래곤의 무덤으로 가 보지도 못하고 복귀를 해야 했을 거다.

‘하지만 전화위복이 됐지. 안 그래도 강화 특성이랑 에이미의 사업 때문에 돈이 많이 필요했는데 마침 잘 됐어.’

알-구르드의 시신으로 영혼 각인까지 해결되니 이번 여행은 여러모로 이득이었다.

일단은 보상을 황금으로 받고 싶다고 전달해 놓은 참이라 그걸로 영혼 각인에 필요한 재료들을 구입하고 강화도 좀 진행할 생각이었다. 남은 돈은 에이미를 지원해 주는 것도 나쁘지는 않아 보였기에 강화에 전부 사용할 생각은 없는 아드리아스였다.

“친구, 기분 좋아 보이네?”

“루나, 몸은 괜찮습니까?”

“응! 좋아.”

루나는 여리여리한 몸에 비해 단단한 내구성을 지니고 있었다.

체력도 좋은 모양인지 알-구르드와 전투를 치렀음에도 생생한 모습에 주변 사람들이 놀랄 정도였다.

조금 전까지 오러 마스터와 싸웠다는 게 거짓말인 듯, 두 눈을 빛내는 루나가 외쳤다.

“대수림 기대된다. 나도 가 보는 건 처음이야!”

“내일쯤이면 영혼 각인을 위해 주문한 재료들하고 왕국에서 주는 보상이 도착하니까 내일까지는 쉬었다 가죠.”

“그래!”

* * *

군수용 마차가 여기저기 전복이 되어 있었다.

주변으로는 채 마르지 않은 피가 흩뿌려져 있었고 전투의 함성과 단말마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크륵!

피 끓는 소리를 내며 숨을 거둔 오크를 차가운 눈으로 일견한 순백의 기사는 시선을 들어 올려 주위를 훑어보았다.

그가 막 현장에 도착했을 때보다는 현저히 줄어든 오크의 숫자는 이 전투에서 인간이 승리했음을 보여 주고 있었다.

간신히 살아남은 병사들은 모두 순백의 기사에게 존경 어린 시선을 보냈고 그에게 말이라도 걸어 보기 위해 다가서는 순간, 부대의 지휘관이 소리쳤다.

“본대에서의 전보다! 엔데버 요새에서 오크 로드를 잡았다!”

“적의 총사령관 사망 소식이다! 전쟁은 우리 그랑디스 왕국의 승리다!”

“우와아아아!”

전혀 생각지도 못한 소식은 병사들의 환호성으로 화답 되었다.

목표를 추격하던 중에 합류하게 된 순백의 기사, 에반 폰 오를레옹은 의외라는 표정을 지으며 소식을 전한 지휘관에게 다가갔다.

“그 소식은 확실한 겁니까?”

“아! 에반 경! 그렇습니다. 방금 막 도착한 정보로 아마 확실할 겁니다.”

“제가 듣기로 오크 로드는 오러 마스터라고 들었습니다만.”

“아직 누가 죽였는지까지는 공문이 올라오지 않았습니다. 다만 최근 바야트라 요새에 루나 펜드래곤이 방문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는데, 그 뒤로 그녀가 엔데버 요새에 지원 갔을 확률이 높습니다. 아마 루나 펜드래곤이 격살한 것은 아닐까 추측하고 있습니다.”

“흐음,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에반 경. 경께서 합류하지 않으셨으면 저희 부대는 꼼짝없이 몰살당했을 겁니다. 이 정도 소식을 전해드리는 거야 아무 일도 아니지요.”

고개를 숙이는 지휘관에게 자신이 한 것은 별로 없다며 겸손을 드러낸 에반은 검에 묻은 오크의 피를 털어 내며 천천히 갈무리했다.

“흠, 예상치 못한 상황이군요.”

지휘관이 병사들과 전후 처리를 하러 가자 혼자 남은 에반은 다시 조용히 길을 떠났다.

바야트라 요새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기에 여기서 엔데버 요새까지는 며칠이 걸렸다.

그 사이에 루나가 길을 떠나 버리면 낭패였지만 조급해지지 않기로 했다.

이번 임무의 목적은 분명 루나 펜드래곤이었지만 에반은 그녀에게 큰 악감정이 없었기에 그다지 사명감이 크지는 않았다.

애초에 원래부터 그가 맡았던 목표는, 지금은 죽고 없어진 이브 밀레니엄.

평생의 숙적이었던 이브가 죽은 이상 루나는 그가 죽여야 할 목표라기보다 애증의 느낌이 훨씬 컸다.

“흥미롭군요, 루나 펜드래곤. 성장하신 겁니까?”

알 수 없는 묘한 감정이 전해져 왔다.

혼잣말을 중얼거린 에반이 흐릿한 미소를 지으며 하늘에 뜬 태양을 바라보자 언제나 그렇듯 꺼질 일 없는 찬란한 빛이 그곳에 존재했다.

오늘도 빛은 세상을 덮고 있었다.

* * *

“세르기오스 전하께서 직접 전달하지 못해 많이 아쉬워하셨습니다.”

금덩이가 든 궤짝을 내 앞에 내려놓은 필리온이 말했다.

이번 전공으로 얻게 된 포상은 총 73억 윌.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양의 돈이었다.

‘진짜 부자들에 비하면 별것 아니지만.’

솔직히 요새 하나를 구한 것치고는 적은 금액이라 할 수도 있었지만 애초에 보상은 정해져 있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그렇다고 굳이 드잡이를 하기에는 시간도 없고 정체를 숨기고 싶은 나에게는 좋지 않았다.

‘그냥 보너스 정도로 생각해야지.’

받게 될 포상을 전부 금으로 달라고 했는데 부피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강화에 조금 사용하고 갈 생각이었다.

“아, 그리고 이건 어제 말씀하신 재료들입니다. 최대한 빠르게 주변을 수소문해서 구했는데 모두 구하지는 못했고 나머지는 시일이 좀 걸릴 것 같습니다.”

“이거면 됐습니다. 당장 내일이면 떠날 생각이라 나머지는 괜찮습니다. 대신 고생해 주셔서 감사하군요.”

“엔데버의 영웅이신데 이 정도 일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더 편히 쉬다 가시지 못하는 게 아쉽습니다.”

이야기를 마치고 옆에서 같이 보상을 받은 루나에게 말했다.

“이거면 가능할까요?”

“응, 나도 가지고 다니는 재료가 있어서 충분해.”

장소를 옮긴 우리는 넓은 공간에 알-구르드의 시신을 꺼내 놓았다.

전날 죽은 알-구르드는 마치 자고 있는 것처럼 평온한 모습이었다.

‘언데드로 소환해도 좋겠지만…….’

내 기본적인 스펙을 올리는 게 훨씬 좋지.

아무리 소환수가 강해도 내가 죽게 되면 아무 소용이 없으니까.

“조금만 기다려! 오래 안 걸려.”

루나는 이내 아공간 아티팩트에서 이것저것 꺼내더니 복잡한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 마법진은 지금까지 봐 온 것과는 전혀 다른 형태였기에 꽤 흥미로웠다.

‘그러고 보니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네. 게임에서도 루나가 사용할 수 있다는 것만 알았지, 받아 본 적도 사용하는 걸 본 적도 없으니까.’

그만큼 영혼 각인의 비술은 알려진 게 없는 특이한 기술이었다.

일인 전승으로 전해지는 기술이니 당연한 이야기였다.

루나는 생각보다 많이 연습해 본 모양인지 복잡한 마법진을 금방 만들어 냈다.

그 이후로도 여러 과정과 마법이 들어가고 마침내 3시간 정도가 지나자 모든 준비가 끝났다.

“여기 서서 기다려. 내가 금방 해 줄게! 하나도 안 아파! 아니, 조금 아플 수도 있는데 괜찮을 거야! 아마도.”

뭔가 횡설수설 이상한 말을 하니 조금 불안해졌지만 그까짓 고통은 충분히 견딜 자신이 있었다.

루나가 말한 자리에 자리를 잡고 서자 이내 마법진이 공명하기 시작했다.

내 바로 옆에는 알-구르드의 시신이 놓여 있었다.

우우웅.

꽤 강대한 마력이 느껴지고 루나가 특유의 주문을 외자 마법진이 점차 강렬해졌다.

그런 루나의 모습을 바라보자 다채로운 색으로 빛나는 눈이 너무도 아름답게 느껴졌다.

‘외모 하나는 진짜 대단하군.’

아름답다는 표현으로는 충분한 설명이 되지 않았다.

마치 인간이 아닌 듯한 신비로움이 느껴지는 루나는 이내 강령을 시도했다.

“이브 밀레니엄.”

설마 이브 밀레니엄을 이때 강령할 줄은 몰랐다.

알-구르드와 싸울 때조차 사용하지 않던 영혼을 이때 사용할 줄이야.

우와아아앙―!

이브 밀레니엄이 강령되자 엄청난 기세가 터져 나오며 마법진이 흔들렸다.

이내 내 옆에 있던 알-구르드의 시신이 조금씩 부서져 내리더니 이내 붉은 형상의 무언가가 되어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아슈륵, 케메디오두슈타바…….”

주문을 외며 점차 가까이 다가온 루나는 이내 내 이마에 손을 얹었다.

“바히라지그로휴완…… 아가야, 넌 이 세상 사람이 아니구나?”

갑작스런 루나의 말에 깜짝 놀라 그녀의 얼굴을 보자 빛을 내뿜고 있는 눈동자가 나를 직시하고 있었다.

“그게 무슨……?”

그때 따끔한 통증이 이마를 관통하고 이내 온몸이 비틀어지는 듯한 격통이 퍼져 나갔다.

“으음…….”

애써 참아 냈지만 고통보다는 조금 전에 루나, 아니 이브 밀레니엄이 한 말이 신경이 쓰였다.

알고 말한 건가? 아니 애초에 어떻게 안 거지?

후웅―!

점차 강렬해지는 마법진의 반응과 함께 고통도 늘어 갔지만 버텨 냈다.

그리고 허공을 떠다니던 알-구르드의 붉은 형상이 내 몸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동안의 통증은 애교였다는 듯 통증이라 말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고통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마치 영혼에 문신을 새겨 넣는 듯한 통증이었다.

“크읍.”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자신만만했던 내가 바보같이 느껴질 정도다.

“이렇게까지 버티는 사람은 네가 처음이다. 역시 우리 딸이 보는 눈은 있구나.”

어렴풋한 의식 안에서도 이브의 말은 또렷하게 들려왔다.

덕분에 기절하지 않고 버텨 낼 수 있었다.

“흐흥, 재밌어. 도저히 인간의 정신력이라고 보기 힘들구…….”

갑자기 말을 멈춘 이브 밀레니엄의 안색이 심각했다.

그리고는 얼굴을 들이대더니 내 눈동자를 빤히 바라봤다.

“어째서 공간이 남는 거지?”

무슨 소리야?

그 전에 이 고통은 대체 언제 끝나는 거야.

그러나 그런 내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브는 경악을 토해 냈다.

“어째서 하나의 영혼을 받아들였음에도 공간이 남는 게냐? 인간이 맞는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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