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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 특성으로 최강 네크로맨서-108화 (108/415)

108화. 강령술

접경 지역은 현재 전시 상황이나 마찬가지여서 운행하는 마차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루나와 함께 말을 몰고 가게 되었는데, 하필이면 루나가 승마를 몰라 내 앞에 태우고 가야만 했다.

루나의 덩치는 작았기 때문에 불편하지는 않았지만 껄끄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만에 하나라도 나를 아는 사람이 내가 루나와 함께 이동하는 걸 보고 제국에 제보할 수도 있는 일이니.

그래서 혹시나 싶은 마음에 검은 두건으로 하관을 가리고 치렁치렁한 머리카락도 말총머리로 묶어 정체를 숨긴다고 숨겨 보는 중이었다.

“지루해.”

벌써 말을 타고 달린 지 3일이나 지났다.

처음에 승마를 즐거워하던 루나는 하루 만에 몸이 결려 온다며 투덜댔고, 이틀이 지나자 지루하다는 이야기를 1시간마다 반복했다.

“이제 곧 있으면 바야트라 요새입니다. 조금만 기다려요.”

“빨리 가서 오크 죽이고 싶다.”

영혼과 관련된 기술을 사용하는 루나의 특성상, 네크로맨서처럼 다수의 전장에서 더욱 강력한 힘을 보이고는 했다.

그래서인지 전장에 가까워질수록 진해지는 전운에 서서히 광기를 보이고 있었다.

‘확실히 느껴지긴 하네.’

보이지 않는 전쟁의 기운이 여기까지 느껴졌다.

어쩌면 내 예상보다 상황이 심각할 것 같아 인상이 찌푸려졌다.

그 말은 곧, 내가 대수림 안쪽으로 들어가기 힘들다는 뜻이니.

그렇게 짙어지는 광기 어린 기운을 느끼며 말의 속도를 높이자 험악한 지형 한가운데에 세워진 요새와 마침 괴성을 지르며 요새로 다가가는 오크 부대가 저 멀리 보였다.

“오크!”

루나가 내 품에서 버둥거리며 벗어나려 했다.

나는 자칫 그녀가 다치기라도 할까 봐 급하게 말을 멈췄다.

“친구! 오크야, 오크!”

“예, 오크군요.”

멀리서도 보이는 전투에 살이 떨렸다.

다대다의 전투를 직접 보고 느끼는 건 처음이라 전투 경험이 많은 나조차 압도되는 분위기였다.

“아셰메, 트로간디후슈르.”

갑자기 땅에 내려선 루나가 헛소리를 중얼거렸다.

그리고 나는 그 헛소리가 루나 특유의 주문을 외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루나?”

다짜고짜 뭘 하려고?

루나의 주문이 길어질수록 강대한 마력이 느껴졌다.

이내 그녀의 주위로 희끄무레한 무언가가 유영하기 시작했다.

“일단 친구 먼저.”

그녀는 자신의 주변에서 떠도는 무언가를 하나 집더니 내게 건넸다.

―띠링!

[‘전장의 사냥개, 드와울’의 영혼이 강림을 원합니다.]

[허락하시겠습니까?]

메시지로 뜨네.

루나의 복불복 능력인 강령술.

신기하게 그녀는 타인에게도 강령술을 사용해 줄 수 있었다.

‘내가 알기로 부작용은 없었다.’

이런 능력 때문에 루나는 강력한 전천후 버퍼라고 보면 됐다.

심지어 자신은 따로 사령하고 있는 강력한 영혼이 있기에 어느 상황에서도 대처가 되는 뛰어난 강령술사였다.

마법이 필요한 상황에서는 마법사의 영혼을, 근접전이 필요하면 기사의 영혼을 마음대로 스위칭할 수 있는 게 루나 펜드래곤이었다.

[‘전장의 사냥개, 드와울’의 영혼이 강림합니다.]

[일시적으로 스탯이 상승합니다.]

[‘전장의 사냥개, 드와울’의 특성 ‘목표 추적’을 일시적으로 획득합니다.]

루나가 괜히 유명한 게 아니지.

비록 일시적이긴 해도 아무 부작용도 없는 스탯 상승에 더불어 강림된 영혼에 따라 특성까지 딸려 오니 이보다 사기적인 캐릭터는 드물었다.

“먼저 가! 난 좀 고르고 갈래.”

나한테는 아무거나 줘 놓고 자기는 좋은 영혼을 고르겠다는 말이 살짝 괘씸했지만 일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요새의 상황을 보자 어느새 오크들이 성벽 가까이에 접근한 것을 확인했는데, 나는 그제야 오크 부대에 샤먼이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피! 전장! 살육!

내게 강림한 드와울의 영혼이 떠들었다.

나는 그런 드와울의 말을 무시하고 전세(戰勢)부터 살폈다.

‘샤먼이 이곳까지 올 정도라니 조금 전에 느껴졌던 불길함이 이거였나?’

샤먼 개인의 전투력은 별 볼 일 없었다.

하지만 번식력이 좋은 오크들의 특성상 무리를 짓는 일이 많았는데, 오크 샤먼은 그런 무리의 힘을 상승시켜 주는 매우 무서운 존재라고 볼 수 있었다.

대충 상황을 보자 마법사들의 마법이나 화살과 같은 투사체가 샤먼의 방어막으로 약화되고 있는 게 보였다.

무릇 공성전에 있어서 수성이 유리함은 당연한 이치였는데, 수성의 이점 중 하나인 원거리 공격이 막히자 애를 먹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샤먼부터 죽여야겠군.’

오크는 아무리 많아도 무섭지 않았다.

물론 아드리아스로 살면서 한 번도 상대해 본 적은 없었지만 게임에서의 경험상 게릴라전으로 농락할 자신이 있었다.

만약 오크 워리어나 족장급의 오크 그리고 오크 로드가 있었다면 이야기는 달라졌겠지만 살펴본 바로는 샤먼과 일반 오크밖에 없었다.

[‘전장의 사냥개, 드와울’의 ‘목표 추적’을 사용합니다.]

신경이 날카롭게 벼려졌다.

그와 동시에 이 먼 거리에서도 오크 샤먼의 위치가 특정되었다.

‘하나? 하긴 이런 후방까지 샤먼이 온 것만 해도 대단하지.’

아마 지금쯤 전방은 바쁘게 돌아갈 거다.

바야트라 요새는 그나마 후방에 속해 있어서 고작 몇백의 오크 떼지, 앞쪽은 수천 대 수천으로 치고받고 싸우고 있겠지.

위치를 안 이상 내가 할 일은 한 가지밖에 없었다.

전세를 단번에 뒤바꿀 카드.

‘샤먼을 암살한다.’

수백의 오크를 뚫고 지나가는 무모한 행동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게 또 의외로 어려워 보이지는 않았다.

지금 오크들의 이목은 전부 요새에 향해 있는 상태.

이런 상황에서 오크들이 뒤를 신경 쓸 틈은 없었다.

마침 오크 샤먼도 후방에 위치해 있었기에 뒤치기를 한다면 대여섯 마리의 오크만 뚫고 암살할 수 있었다.

‘루나는…….’

루나는 아직도 영혼들을 살피며 어떤 걸로 날뛸지 고민하는 기색이었다.

굳이 기다릴 필요는 없겠지.

일단은 가볍게 샤먼만 죽이고 빠져나오기로 했다.

‘속도가 중요하다.’

스승님에게 배운 무아검의 성취는 현재 레벨 3.

10렙이 ‘만렙’이니 아직 한참 남았다.

만약 무아검의 성취가 더 높았다면 스승님이 보여 주셨던 그 괴이한 몸놀림도 가능했겠지만 지금으로서는 빠르게 내달리는 게 최선이었다.

마나를 온몸으로 내뻗은 나는 전력으로 달렸다.

휘이익!

마주쳐 오는 바람의 저항이 강렬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내달린 나는 드와울의 영혼으로 발동된 ‘목표 추적’을 따라 멈춤 없이 나아갔다.

‘저기군.’

오크 샤먼은 호위로 보이는 오크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는데 공성전이 시작된 참이라 뒤쪽으로는 신경도 쓰지 않고 있는 모습이었다.

덕분에 나는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고 그대로 샤먼이 있는 곳으로 직격할 수 있었다.

퍼버벅!

순식간에 샤먼의 곁에 있는 오크들이 도륙되고, 뒤늦게 내 존재를 확인한 샤먼의 동공이 커다랗게 뜨였다.

―하카!

그게 샤먼의 단말마의 비명이었다.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으나 샤먼의 수급은 그대로 떨어져 나가며 바닥을 굴렀다.

―크하!

―카하누마!

샤먼의 죽음은 곧바로 효과를 드러냈다.

광폭화 주문이 풀린 오크들이 공성을 하다 말고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소란을 일으켰다.

“지금이다!”

성벽 위에서 우렁찬 함성이 들려오며 마법과 화살이 쏟아졌다.

샤먼의 보호막이 사라진 오크들은 비명을 지르며 사다리에서 굴러떨어지거나 마법에 터져 나갔다.

광폭화마저 풀린 탓에 전과 같은 야성이 보이지도 않았다.

―크라하!

뒤편에 있던 오크들은 전부 나를 쳐다보며 투박한 칼을 휘둘러 왔다.

하지만 한숨이 나올 정도로 수준 낮은 모습에 칼째로 오크를 베어 넘겼다.

“너무 많아.”

아무리 수준이 낮다고는 해도 오크는 오크.

평범한 인간에 비하면 그 괴력이 심상치 않았다.

게다가 그 수가 수백을 넘어가니, 우선은 뒤로 빠지며 오크들을 상대했다.

포위되었다가는 아무리 하찮게 보는 오크여도 낭패를 볼 수 있었다.

“개문 명령이다! 개문!”

그때 요새의 문이 열리며 성안에 있던 병력들이 나왔다.

해자의 다리는 올라가 있는 상태였기에 문이 다시 닫히고 앞에 있는 작은 공간에 도열한 병력들은 이내 다리가 내려가자 오크들과 맞부딪혔다.

대부분 오러를 다룰 수 있는 병력들인 데다 공황 상태에 빠졌었던 오크들이 대부분이었기에 그들은 분쇄해 나가듯 오크들을 쓸었다.

‘잘됐다.’

나를 쫓아오던 오크들도 뒤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눈치채고 몸을 돌리기 시작했다.

“전부 처죽여라!”

오크들은 요새에서 나온 병력들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샤먼이 있었다면 광폭화로 이야기가 달라졌겠지만 광폭화가 없는 일반 오크들은 오러를 두른 인간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전쟁은 기세 싸움이었다.

한번 기세에서 밀리기 시작하자, 오크들은 본인들의 괴력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목을 내주기 시작했다.

서걱―!

당연하지만 나를 상대하는 오크들도 전의를 상실한 채 내게 목숨을 잃어 갔다.

나는 아예 확실히 분위기를 잡아야겠다는 생각에 쉼 없이 오크들을 죽였다.

“처음 뵙는 분이시군요.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요새에서부터 오크들을 처리하며 올라온 병력들이 어느새 내가 있는 곳까지 도착했다.

나에게 말을 건 인물은 게임 속에서 몇 번 본 기억이 있는 낯익은 얼굴이었다.

‘바야트라 요새의 성주, 션 대이커.’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고 주변의 오크들을 쓸어버렸다.

수백의 오크는 어느새 전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었다.

간신히 살아남은 몇몇 오크만이 뒤늦게 도망을 치다 요새에서 쏘아지는 화살과 마법에 고꾸라졌다.

“뭐야! 왜 벌써 끝난 거야!”

뒤늦게 루나가 기가 찬다는 표정으로 다가왔다.

한 손에 반투명한 낫을 들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루나의 트레이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오러 마스터의 영혼을 강림시킨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이번 전투에서는 그녀의 강령술이 꽤 도움이 되었다.

스탯의 향상은 둘째 치고 ‘목표 추적’이 없었으면 이렇게 쉽게 샤먼을 잡아내지는 못했을 거다.

‘아무렇게나 걸린 게 뽑기 운이 좋았네.’

루나가 툴툴거리고 있을 무렵, 요새 밖으로 나와서 싸우던 이들과 성주인 션이 다가왔다.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하마터면 위험에 처할 순간이었는데, 덕분에 무사히 넘겼습니다.”

곁에 있던 병사들과 용병들도 감탄한 기색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용병 하나가 루나를 가리키며 놀랐다.

“루, 루나 펜드래곤!”

그제야 루나를 알아본 이들이 호들갑을 떨며 침을 삼켰다.

저 낫까지 들고 있으니 모를 수가 없겠지.

“역시 평범한 사람은 아니었어. 루나 펜드래곤의 일행이라니.”

“저 정도의 실력자에다 루나 펜드래곤까지 합세하면 전쟁의 판도도 바뀌겠는데?”

사람들의 반응이 적응하기 힘들었다.

그간 제국에서만 지내 오며 흑마법사라면 학을 떼는 게 당연한 반응이었는데…….

이곳에서는 오히려 환영을 받고 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요새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션의 초대에 일단 요새 안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보니까 상황이 예상보다 심각한 것 같은데 전황이나 알아봐야지.

전후 처리를 병사들에게 맡긴 션의 뒤를 따라 영주관으로 들어왔다.

요새 안에도 전쟁으로 인한 물자 준비나 이런저런 일로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었는데, 루나의 화려한 외모로 인해 시선이 몰려들 수밖에 없었다.

“루나 펜드래곤이다.”

“저 옆에 계신 분이 샤먼을 죽인 분이시지?”

“루나 펜드래곤하고 같이 다니며 수백의 오크 무리를 뚫고 샤먼을 죽인 거면 유명한 사람이 분명해.”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자 얼굴을 가린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블러디 댄의 가면을 쓸 수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루나에게 보여 주고 싶은 마음은 없었기에 이런 식으로 정체를 숨겼다.

‘괜히 정체가 알려져서 좋을 건 없지.’

루나와 같이 다니느라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영주관 내부도 정신없기는 마찬가지였는데, 최전방의 요새들과 연락을 하며 바삐 뛰어다니는 행정관들부터 전후 처리를 위해 행정 업무를 보고 있는 사람들까지 모두가 바빴다.

“이제 막 전투가 끝난 터라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만 하고 와도 되겠습니까? 손님들을 모셔다 놓고 실례가 많습니다.”

“괜찮습니다.”

나는 덤덤하게 말했다.

그러면서 고개를 돌려 루나를 보자, 그녀는 여전히 오크들을 상대하지 못한 게 불만인지 뚱한 표정으로 따라오고 있었다.

응접실에 안내받고 자리에 앉은 나와 루나는 잠시 차를 대접받으며 기다렸다.

이제 막 전투가 끝나서인지 성주인 션도 바빠 보였다.

이내 금방 볼일을 마치고 온 션이 우리에게 고개를 숙였다.

“조금 더 편안한 환경에서 맞이했어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그는 사과를 하고 맞은편에 앉더니 얼굴을 반쯤 가린 나를 유심히 바라보다 옆에 앉은 루나에게 시선을 주었다.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오크 샤먼을 빠르게 처치해 주신 덕분에 피해가 전무했습니다. 혹시 성함을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베리 샌더스.”

가명을 말하자 루나가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눈치 좀 챙겨라.

“베리 샌더스 님, 그리고 루나 펜드래곤 님. 이렇게 도우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전방으로 가시던 중이셨을까요?”

“응! 오크 로드 목을 따 버릴 거야!”

루나의 오색찬란하게 빛나는 눈이 부담스럽게 초롱초롱했다.

션도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말하는 루나를 보고 살짝 몸을 뒤로 물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큰 도움이 될 만한 소식입니다. 안 그래도 이번에 발생한 오크 로드는 저번에 나온 개체와는 여러모로 다르거든요.”

“조금 자세히 설명해 주실 수 있습니까.”

션은 굳은 표정으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오러 마스터 오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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