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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 특성으로 최강 네크로맨서-99화 (99/415)

99화. 정복

계단을 올라가자마자 보인 것은 마치 시계탑의 꼭대기와 같은 외형의 방이었다.

화려하게 펼쳐진 마법진들이 마치 시계태엽이 서로 얽힌 것처럼 연결되어 유기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는데 가히 마법진의 정수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수준이었다.

게임 속에서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디테일이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나는 올라온 목적도 잠시 접어 두고 마법진을 훑어보았다.

‘따라 하지도 못하겠어.’

그리는 것과 별개로 엄청난 계산이 들어갔다.

상상만으로도 토가 나올 것 같은 복잡함에 진저리가 쳐졌는데, 이를 모드라스 알븐이 혼자 설계하고 축조했다고 생각하자 존경심마저 피어났다.

그렇게 마법진들을 뜯어본 후 드디어 방 한가운데에 위치해 있는 보상을 보았다.

그것은 마치 교탁처럼 서 있는 구조물이었는데 투명한 유리 진열장이었다.

‘탑의 열쇠.’

조심히 유리 진열장을 열고 열쇠 모양의 물건을 집었다.

[욕심의 열쇠]

[‘탑’의 30층을 최초로 정복한 자에게 주어지는 열쇠.]

[‘탑’에서 사용할 수 있다.]

설명은 이게 끝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 열쇠의 용도와 그로 인한 보상도 알고 있었다.

‘탑의 보상을 두 개로 늘려 주지.’

황궁에 존재하는 탑.

신화시대의 유적지로 자격을 갖춘 인원에 한해서 한 번만 입장할 수 있는 곳.

모드라스의 탑의 모체가 된 곳이자 올라간 층수에 따라 보상이 주어지는 신비한 곳이었다.

‘실제로 신화시대의 신들이 사용했던 아이템들도 드롭된다.’

아무리 높은 층수를 올라도 한 명당 하나의 아이템만 주어지는데, 그것을 두 개로 늘려 주는 게 이 열쇠의 효과였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사기적이라고 할 수 있는 아이템이었다.

내가 열쇠를 집어 들고 얼마 있지 않아 교탁 모양의 유리 진열장이 바닥 밑으로 꺼졌다. 곧이어 그 자리에서 마나의 기운이 뭉치며 희끄무레한 무언가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모드라스 알븐.”

정확히는 그 사념체.

모드라스는 뿌연 형상을 갖추더니 이내 내게 인사를 건넸다.

“로들렌 아카데미의 학생이여, 이곳까지 도달한 것을 축하한다.”

어차피 실제로 살아 있는 것도 아니니 대답 없이 듣기만 했다.

“과묵한 청년이로군. 그래, 여기까지 온 것도 인연이니 내 이야기를 좀 해 주겠네.”

그 뒤로는 이미 열 번은 넘게 들어 본 모드라스 탑의 설립 이유와 자신이 애써 황궁의 탑에서 얻어 낸 열쇠를 후대에 양보했음을 강조하는 말들을 늘어놓았다.

이뤄 낸 업적과는 다르게 언행이 가벼운 모드라스는 한참을 이야기하다 드디어 기다려 왔던 말을 꺼냈다.

“이제 슬슬 마나가 다 떨어져 가는군. 나는 오직 최초로 이곳에 방문한 자에게만 모습을 드러내기에 자네가 나를 보게 되는 처음이자 마지막 인물이 될 거야.”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모드라스의 사념체가 마나를 끌어올리는 게 보였다.

“하지만 이렇게만 끝나면 재미없겠지. 자네를 한번 시험해 보겠네.”

언제 그 얘기를 꺼내나 한참을 기다렸다.

나는 곧바로 갈락슈르를 뽑아 들고 달려들었다.

“하하, 과묵한 것에 비해 너무 성급하군!”

살아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게 자꾸만 거슬리네.

검을 휘둘렀지만 어느새 공간 이동을 한 모드라스가 손끝으로 마력을 모았다.

수십 다발의 마나 에로우가 순식간에 발사되었다.

콰과과과광―!

방의 외곽을 크게 돌며 공격들을 피해 내고 나도 검풍을 날렸다.

윈드 커터가 섞인 검풍은 엄청난 속도로 모드라스에게 다가갔지만 상대는 그저 손짓 한 번에 내 검풍을 공간 이동시켜 버렸다.

‘압도적이다.’

아마 지금도 본 실력을 드러내지 않고 봐주는 걸 거다.

그는 누가 뭐래도 워록급의 대마법사였으니.

곧이어 거리를 좁히려는 내게 모드라스가 한 번 더 손짓하자 순식간에 내 위치가 바뀌어 그의 손아귀에 목이 잡혔다.

“자, 이제 어떻게 할…….”

이때만을 기다려 왔다.

순식간에 늘어난 내 그림자가 모드라스를 붙잡고 그의 등 뒤에서 불길한 기운이 일렁였다.

“흑마법……?”

푸욱!

모드라스는 너무 놀란 모양인지 제대로 대처도 못 하고 니켈의 검에 찔렸다.

니켈은 아주 깔끔하게 상대의 심장을 찔렀는데 내가 다칠까 봐 관통하지 않고 정확하게 상대의 심장만 헤집어 놓았다.

‘끝이 아니야.’

상대는 살아 있는 인간이 아닌 그저 사념체.

심장을 찔렸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니켈도 내 마음을 읽고 다시 순식간에 연달아 공격을 가했지만 이미 그는 공간 이동으로 자리를 벗어난 뒤였다.

“하하하! 마법과 검을 동시에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신기한데 흑마법이라니! 대단한 인재가 나타났군!”

비꼬는 건지 진짜로 감탄하는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확실한 건 방금 있었던 니켈의 공격이 제대로 먹혔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뿌옇던 모드라스의 사념체는 이전보다 희미해져 있었다.

‘어쩌면 처음으로 이겨 볼 수도 있겠어.’

사념체에 불과한 만큼 실제 모드라스보다는 약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사념체만으로도 저 정도의 공간 마법을 사용하는 게 놀라웠다.

쉴 틈은 없었다.

나는 곧바로 니켈과 함께 달렸다.

“내가 죽은 이후로 세상이 변한 건가? 어찌 흑마법사가 로들렌 아카데미의 학생을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구나.”

모드라스는 말을 하면서도 여유롭게 나와 니켈의 공격을 회피하고 반격을 가했다. 간단한 마법 조합이었지만 무식하다 싶을 정도의 빠른 캐스팅 속도로 공수를 완벽히 대응하고 있었다.

‘이대로 시간만 끌어도 이길 것 같은데.’

혹시 모르니 확실하게 이겨야겠다.

공간 이동으로 계속해서 거리를 벌리고 있는 모드라스의 옆에서 거대한 아공간이 생겨났다.

“음?”

아공간에서 튀어나온 거대한 팔이 순식간에 모드라스를 후려쳤다.

퍼엉!

덩치가 큰 루도를 전부 소환할 수는 없어서 신체의 일부만 밖으로 꺼내 본 건데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활용이었다.

주먹에 맞은 모드라스의 앞으로 니켈이 달려들었다.

모드라스가 황급히 공간 이동을 했지만 이미 대충 눈치채고 있던 내가 한발 앞서서 루도의 팔을 소환했다. 이번에는 거대한 검을 든 루도의 팔이 공간 이동을 해 온 모드라스를 내리 찍었다.

쾅!

모드라스가 다급히 마법을 사용해 루도의 대검을 막아 냈지만 뒤를 이어 소환된 티무르가 거대한 포효를 내지르며 정권을 내질렀다.

뻐억!

“크흠.”

갑작스럽게 소환된 티무르의 일격은 깔끔하게 들어갔다.

그냥 대충 내지른 것처럼 보여도 나름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오러 마스터.

남들이 볼 수 없는 무리가 주먹에 담겨 있었다.

핀 포인트로 찔렀던 니켈의 공격과는 다르게 대미지가 컸는지 황급히 공간 이동을 하는 모드라스였지만 이미 방 안은 나와 내 언데드들이 전부 선점하고 있었다.

‘끝이다.’

내 옆으로 공간 이동의 조짐이 보이자 나는 그대로 검을 휘둘렀다.

미리 휘두른 검은 모드라스가 나타나자마자 깔끔하게 상대의 목을 가르고 지나갔다.

툭.

“하, 하…….”

목이 떨어졌음에도 여전히 소리를 낸 모드라스가 말했다.

“방심했구나. 설마 나를 상대로 전력을 숨겼을 줄이야.”

나도 나름 감개가 무량했다.

그동안 한 번도 이기지 못했던 모드라스의 사념체를 잡았다고 생각하자 루이스나 다른 캐릭터들보다 강함이 증명되는 것 같아 조금은 기뻤다.

“모름지기 시련을 통과한 자에게는 보상이 주어지는 법. 자네가 흑마법사라 하더라도 후대의 일에 내가 신경 쓸 필요는 없겠지.”

서서히 흩어져 가는 모드라스가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지금 저 말은 따로 보상을 해 주겠다는 건가?

“부디 세상을 이롭게 하거라.”

흑마법사한테 하는 부탁치고는 희한했지만 나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리고 마침내 모드라스가 사라졌다.

[‘업적: 모드라스의 인정을 받은 자’를 달성했습니다.]

“아.”

있는지조차 잊고 지냈던 업적 달성이 시야를 가렸다. 그동안 한 번도 모드라스를 이겨 본 적이 없기에 이런 업적이 숨겨져 있을 줄은 몰랐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보상이라 그 기쁨은 배가 되었다.

그리고 업적 달성 보상과 더불어 모드라스가 사라진 자리에 무언가 반짝이는 게 남아 있는 게 보였다.

‘이건……?’

* * *

후웅.

요사한 빛을 뿌리는 검이 허공을 갈랐다.

그러자 건너편에 있던 기괴한 형태의 몬스터가 반으로 갈라졌다.

―끼이익!

몬스터가 죽은 걸 감흥 없이 바라본 황제는 옆에서 다가와 수건을 건네는 시종을 물리치고 검을 검집에 집어넣었다.

“시시하다.”

황제의 말에 사색이 된 시종이 어찌할 바를 몰라 하던 도중, 누군가가 조심히 입장했다. 입장한 기사는 반으로 갈라져 죽은 괴이한 몬스터에 시선도 주지 않고 조심히 한쪽 무릎을 꿇었다.

“무슨 일인가.”

“폐하, 헥토르 카자프 공작이 도착했습니다.”

“들라 하라.”

기사가 곧바로 일어나 밖으로 뒷걸음질 쳐 나갔다.

곧이어 카자프 공작이 여유롭게 입장했다.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오셨소, 헥토르 공.”

황제는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비치된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아무리 황제라지만 재상을 대하는 태도치고는 지극히 오만한 눈초리와 행동이었다.

“부디 내 흥미를 끌 만한 이야기를 가져왔길 바라오.”

“케인 크롬웰의 아들, 아드리아스 크롬웰이 모드라스의 탑 30층을 정복했다는 소식입니다.”

“저번에 직접 가서 확인해 봤다고 들었는데, 좀 어땠소?

황제 본인이 직접 압력을 넣어 자신을 갔다 오게 해 놓고 하는 말치고는 조금 뻔뻔했지만, 카자프 공작은 그저 고개를 조아릴 뿐이었다.

“정보를 취합하느라 조금 늦은 점 송구하옵니다. 지금까지의 정보를 종합해 보았을 때, 아드리아스가 원죄를 가졌을 확률이 상당히 높은 것으로 사료됩니다.”

“원죄는 흑마법사만 다룰 수 있소. 아드리아스가 흑마법사라는 말이오?”

“가능성만 따지자면 그렇습니다. 솔직히 원죄의 기능이나 성능으로 보았을 때, 아드리아스의 폭발적인 성장이 설명되지 않습니다. 사실 원죄는 그 자체만으로는 거의 아무 성능이 없다시피 하는 기물에 불과해 아드리아스의 성장과는 별개로 보입니다.”

“그럼 어째서 녀석이 원죄를 가졌을 확률이 높다고 하는 것이오.”

“아드리아스 크롬웰이 갑자기 검을 사용했던 시기가 저택을 구입했던 시기와 묘하게 겹칩니다. 원죄의 경우 저희도 모든 능력을 알고 있지는 않은 터라 만약 숨겨진 능력으로 인해 검과 마법을 동시에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하면 설명이 충분합니다.”

“결국 확실한 건 없다는 소리군.”

황제의 싸늘한 말에도 카자프 공작은 그저 무표정하게 서 있었다.

그런 카자프 공작을 보며 피식 웃음을 터트린 황제는 자신의 맞은편을 가리켰다.

“왜 그렇게 불편하게 서 있소? 앉으시오.”

겉치레가 담긴 감사 인사를 뱉으며 자리에 앉은 카자프 공작을 향해 황제가 말했다.

“어찌 됐든 나쁘지 않은 일이오. 만약 녀석에게 원죄가 있다면 굳이 힘들게 찾을 필요도 없으니. 굳이 급하게 생각할 필요 없이 필요할 때 배를 가른다고 생각하고 놔두도록 하겠소.”

“폐하, 노파심에 하는 말이지만 아드리아스는 막시민 크로넬조차 도달하지 못한 30층을 정복했습니다. 만약을 대비해서라도 미리…….”

“헥토르 카자프.”

황제가 미소 띤 얼굴로 그저 조용히 카자프 공작의 이름을 불렀다.

그저 조용히 속삭이듯 내뱉은 이름.

그러나 그 한 마디에 천하의 카자프마저 포커페이스가 무너지며 식은땀이 관자놀이 근처에 맺히기 시작했다.

“그까짓 녀석이 뭐가 그리 무섭다고 벌써부터 빌빌 기는 거요? 내가 공을 그렇게 보지 않았는데 재평가를 해야겠소.”

“황송하옵니다, 폐하.”

지극히 오만한 황제다운 말이었다.

카자프 공작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간 황제의 오만에 조금 걱정이 되었지만 일견 황제의 말도 타당하다고 생각되어 애써 속으로 자기 합리화를 했다.

‘그래, 어차피 어디 도망갈 녀석도 아니니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지.’

게다가 뭣하면 아드리아스를 흑마법사로 몰아갈 수도 있기에 가진 패는 충분했다.

원죄를 지니지 않았다고 해도 황제 측은 전혀 손해될 게 없었기에.

“지금은 우선 다른 죄악들을 찾는 게 우선이오.”

“정보국에서 쉴 틈 없이 찾고 있으니 금방 소재를 파악할 수 있을 겁니다.”

“헤이겔 경이 북부에서 소재를 파악했다고 하는데 과연 어느 쪽이 먼저 발견하게 될지 기대하고 있겠소.”

흑마법사와 비교되는 것이 수치스러웠지만 카자프 공작은 그저 고개를 조아렸다.

“반드시 먼저 찾아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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