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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 특성으로 최강 네크로맨서-98화 (98/415)

98화. 30층

눈앞으로 보이는 계단을 올랐다.

벌써 29번째로 올라가는 계단이자 공식적으로는 마지막 계단이었다.

‘드디어 올라왔다.’

30층.

화면이 공유되는 마지막 층.

그렇기에 끝이라고 알려져 있는 층.

올라오자마자 보이는 풍경은 음침한 분위기의 녹빛 풍경.

탑 안이라고는 생각되지 못할 온갖 식물들과 이끼들이 곳곳에서 자라고 있었다.

그리고 한가운데에는 거대한 나무가 자리하고 있었다.

‘괴수목 글라시르.’

30층의 보스였다.

그 크기가 20층의 보스였던 그라니보다 컸다.

덩치가 덩치인 만큼 단숨에 죽이기는 어려웠고, 공략에 따라 차근차근 공격하는 게 정석이었다.

‘정석대로 가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시간이 오래 걸리면 변수가 많아진다.

정석이라고 항상 안전한 방법인 것은 아니었다.

이럴 줄 알고 미리 밖에서부터 준비해 온 물건이 있었다.

‘루시아의 치료제를 만들면서 겸사겸사 만들어 낸 1회용 촉매들.’

포션병에 담겨 있었지만 엄연히 마법진을 만드는 데 사용하는 촉매였다.

촉매라고 해서 포션과 크게 궤를 달리하는 건 아니라서 내 영재급 포션 재능으로 금방 만들어 냈다. 마법진의 크기를 짐작하며 거의 100병 가까이 만들었는데 혹시 몰라 조금 넉넉히 만들었다.

그그극.

방에 침입자가 들어온 걸 눈치챈 글라시르가 깊은 잠에서 깨어나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우으으.

거대한 나무의 몸체, 그러나 인간과 같은 머리를 가진 글라시르는 낮은 목소리로 자신이 깨어났음을 알려 왔다. 동시에 사방으로 뻗친 그의 잔뿌리가 날뛸 준비를 하고 있는 게 보였다.

나는 준비해 왔던 포션병의 뚜껑을 열고 촉매를 바닥에 뿌리면서 글라시르의 주위를 크게 돌기 시작했다.

휘이익―!

촤앙!

뿌리가 마치 채찍처럼 날아오며 날 공격했다.

나는 달리는 것을 멈추지 않고 검으로 막아 내며 계속해서 촉매를 바닥에 흘렸다.

휘릭―!

휘이익―!

갈수록 날아오는 뿌리의 양이 많아지고, 나는 오러로 불꽃을 피워 내며 뿌리들을 불태웠다.

총 8개의 촉매를 흘리는 동안, 드디어 가장 큰 외곽 한 바퀴를 다 돌았다.

외곽은 쉬웠지만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글라시르에게 가까워질수록 난이도가 급격하게 높아지지. 하지만 마법진을 그리려면 안쪽으로 들어가야 한다.’

대신 마법진이 완성되는 순간 승리는 보장할 수 있었다.

애초에 게임에서도 이 방법을 강구해 낸 이후, 계속해서 써 왔던 공략법이니 성능은 확실했다.

게다가 정 안되면 정석대로 때려눕혀도 상관없었다.

마법과 검을 둘 다 쓸 수 있으니 선택지도 한 가지가 아니었다.

팡! 팡!

내가 안쪽으로 다가가기 시작하자 무언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글라시르의 몸에서 몬스터들이 태어나기 시작했다. 마치 포자와 같이 날아오는 그 몬스터는 달라붙게 되면 성가시기 짝이 없는 괴물이었다.

“흡.”

쿠아앙―!

검풍을 윈드 커터와 융합시켜 터트렸다.

압도적인 속력으로 날아간 검풍이 날아오는 포자 몬스터들을 휩쓸었다.

모두 죽이지는 못해서 그저 바람에 휩쓸려 나간 몇몇 녀석들은 바닥에 떨어진 채 엉금엉금 기어 오기 시작했다. 속도는 느렸지만 그 수가 무시할 정도로 적은 것도 아니었기에 나는 부지런히 몸을 움직였다.

‘이제 4분의 1인가?’

그래도 이 정도 속도면 양호하다.

조금만 더 빨리 그리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글라시르의 견제가 꽤나 빡셌다.

휘익― 쾅! 콰앙!

휘릭― 쾅!

점점 가까워지자 글라시르의 움직임이 격해지며 수십 개의 뿌리가 내 곁을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웬만한 공격들은 모두 달리면서 피해 내고 간간이 검을 휘둘러 막으면서 글라시르의 몸통 쪽으로 다가갔다.

―끼리릭.

슬슬 새로운 몬스터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녹빛의 몬스터는 고블린과 같은 크기였지만 그 모양새가 식물에 조금 더 가까웠는데, 대뜸 내 곁으로 다가와 자폭을 하기 시작했다.

콰앙!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터라 어스 실드를 만들어 막아 냈지만, 글라시르의 근처에서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자폭 괴물들을 보자 인상이 찌푸려졌다.

‘조금 무리해야겠어.’

포자 괴물만 해도 번거로운데 자폭 괴물까지 합세하자 정신이 없었다.

거기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새로운 괴물들도 양산하게 되는데 그 전에 마법진을 완성시켜야 했다.

‘완성만 되면 2페이즈랑 3페이즈를 한 번에 넘기고 바로 마지막 페이즈.’

그 마지막 페이즈도 그리 길지 않을 것이다.

아마 칼침 몇 번, 마법 몇 방 갈겨 주면 끝나겠지.

물론 조심은 해야겠지만.

―우으으.

글라시르가 낮게 울었다.

의문이 담긴 듯한 소리였는데 이상하게 느껴지긴 할 거다.

글라시르의 눈에는 내가 그저 녀석의 외곽을 빙빙 돌며 이상한 액체를 바닥에 쏟고 있을 뿐이니.

덕분인지 녀석의 뿌리 공격이 점차 느슨해지고 있었다.

‘이건 예상하지 못했는데.’

물론 좋은 의미의 예상 밖이었다.

게임에서는 내 행동과 상관없이 시간이 지날수록 공격이 거세지는 데 비해 실제로는 이런 식으로 방심을 불러올 수가 있군.

어느새 마법진은 3분의 2가 완성된 상태.

지금부터가 가장 힘든 구간이었는데, 글라시르의 몸체에 달라붙다시피 해야 했다.

―우오오오.

역시나 이 이상 가까이 다가가는 것은 방심하고 있는 글라시르조차 다시 긴장하게 만들었다. 글라시르는 그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마치 사람의 팔과 같이 생긴 거대한 가지들을 휘둘러 왔다.

후우웅.

나는 마치 곡예를 부리듯 때론 밟아 넘어가고, 때론 갈락슈르로 빗겨 막기도 하며 계속해서 마법진을 이어 나갔다.

혼이 쏙 빠질 정도로 정신이 없었지만 조금이라도 실수를 하면 그대로 탈락이라 집중력을 최대로 끌어올렸다.

―키리릭!

콰앙!

후우웅―! 쿵―!

온갖 방해를 뚫어 내고 드디어 마법진을 완성시켰다.

그래도 오로지 회피와 막아 내는 데만 신경을 써서 성공했지, 이 와중에 글라시르까지 공격해야 하는 상황이었으면 도저히 해내지 못했을 거다.

‘이제 밖으로 다시 물러나야 한다.’

마법진의 발동은 마법진의 바깥에서 해야 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지금 여기서 마법진을 가동하면 나까지 휘말리게 되어 자살하는 것과 마찬가지.

밖으로 나가는 건 일직선으로 달리면 충분했기에 금방이었다.

―우어어어.

간신히 몸통 쪽으로 다가가 놓고 도망치는 나를 보며 글라시르가 의문의 울음소리를 내었다.

걱정하지 마, 이제 곧 화끈하게 만들어 줄 거니까.

마법진의 밖으로 물러나자 내게 닿는 뿌리도 얼마 되지 않았다.

나는 가볍게 불꽃을 담은 오러로 뿌리들을 불태우며 마법진이 그려진 땅에 손을 댔다.

‘조금 큰 마법진이지만 밖에서 이미 몇 번이나 연습해 봤으니까.’

밖에서 치료제 연구만 하고 있던 건 아니다.

모드라스의 탑에 대한 대비도 철저히 하고 있었지.

마법진은 전부 그려 냈지만 마나의 배열은 또 별개의 문제였다.

술식은 마법진으로 대처가 가능했지만 워낙 큰 마법진이다 보니 마나 배열에도 시간이 좀 걸렸다.

휘익―!

팟!

뿌리 하나가 날아와 간신히 고개를 돌린 내 뺨을 긁고 지나갔다.

마나를 배열하고 있는 중에는 자리를 옮길 수 없기에 어쩔 수 없었다.

이후로도 자잘한 뿌리 공격이 날아왔지만 약간의 생채기가 날 정도로 그쳤고 드디어 마법진이 가동되며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위이이잉.

마법진의 발동은 금방이었다.

의아한 눈길로 빛나는 바닥을 바라보고 있던 글라시르는 심상치 않은 마력의 기운을 느꼈는지 몸을 크게 흔들며 움직이려 했다.

하지만 늦었다.

30층의 대부분을 뒤덮은 마법진은 단순하지만 거대한 화염의 기둥을 세웠다.

쿠아아앙―!

화르르륵!

―우어어억!

절규와 같은 글라시르의 비명이 공동을 가득 메우고 여전히 힘을 잃지 않은 마법진은 계속해서 불의 기둥을 뿜어냈다.

‘마법진의 가동 시간은 30초.’

28, 27,…… 3, 2, 1.

타닥.

나는 불기둥이 사라지자마자 앞으로 달렸다.

글라시르가 가장 약해져 있는 지금 공격해야 그나마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클리어가 가능했다.

‘이미 마법진을 가동한 시점부터 내가 이긴 건 확실하지만.’

혹시 모를 변수를 위해서라도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방심하지 않는 게 철칙이니까.

까맣게 타들어 가 볼품없는 모습으로 변한 글라시르는 내가 다가오는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고통에 부르짖었다. 이내 내가 글라시르의 몸을 타고 올라감에도 여전히 신경 쓰지 못하는 눈치였다.

금세 머리 꼭대기까지 올라간 나는 글라시르의 머리 한가운데를 밟고 올라서서 검에 오러를 담았다.

‘한 번에 터트린다.’

갈락슈르에 실린 오러의 기운이 변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언젠가 스승님이 보여 줬던 것과 비슷한 기운.

‘폭발하는 검.’

스승님처럼 검풍을 날려 터트리는 건 아직 시도도 못 하지만 이 상태로 박아 넣고 터트리는 건 가능했다.

콰직!

검게 탄 글라시르의 머리를 뚫고 검이 박혔다.

그제야 내가 자신의 머리에 올라탔다는 걸 눈치챈 글라시르가 몸을 뒤척이며 가지들을 내게 뻗어 왔다.

그러나 검이 박힌 시점부터 이미 늦었다.

콰아앙―!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충격이 전해져 왔다.

사용하는 나조차도 반동으로 피해가 올 정도의 거대한 폭발.

나는 폭발의 충격으로 튕겨져 나갔지만 아슬아슬하게 글라시르의 몸통에 검을 박아 넣으며 추락을 막을 수 있었다.

위를 보자 변화하는 검으로 터트린 글라시르의 머리가 반쯤 부서져 내린 게 보였다.

마법진으로 인해 바삭하게 익었던 탓에 손쉽게 부서졌다.

―그윽.

글라시르는 그 한 번의 단말마의 소리를 끝으로 숨을 거두었다.

나는 글라시르의 공격과 조금 전의 충격으로 피투성이가 된 얼굴을 슬며시 닦아 내며 밑으로 내려왔다.

계단이 보였다.

‘해냈다.’

그 어느 때보다 스펙이 높은 상태로 도전한 거라 당연히 자신은 있었지만 게임과는 다르게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았기에 조마조마했던 것도 사실이다.

나는 남은 포션을 마저 마시고, 상처가 난 몸에 덕지덕지 발랐다.

지체할 생각은 없었다.

나는 곧바로 31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밟았다.

* * *

“깼어…….”

“뭐야, 그럼? 모드라스의 탑을 다 깬 거야?”

“말도 안 돼.”

환호성보다는 웅성거림이 더 많은 탑 앞에 공터는 그 어느 때보다 어수선했다.

이제는 더 이상 놀랄 힘도 없다는 게 올바른 말일 거다. 애초에 20층도 깨지 못할 거라 생각했던 이들로서는 지금의 상황이 믿기지가 않았다.

20층부터 한 층, 한 층 올라갈 때마다 경악성을 내뱉었지만 이제는 뭐, 감흥조차 느껴지지 않는 기이한 현상으로 보일 정도였다.

“나쁘지 않네.”

화면을 보고 있던 미누스의 여동생, 그레타 모하임이 흥미로운 눈빛으로 말했다.

그녀로서는 오기 싫었던 것을 억지로 와서 관람을 하게 된 터라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왜 자신의 오빠가 억지로 자신을 불러들였는지 알 것 같은 남자였다.

“그래도 나는 좀 더 덩치 있는 사람이 좋은데.”

“일단 얘기라도 해 봐라. 나도 강요는 안 해.”

미누스의 말에 그레타는 고개를 끄덕였다.

천외천이자 진정한 괴물이라 불리는 막시민조차 25층이 끝이었다.

그렇다면 30층까지 정복한 아드리아스가 어디까지 성장할지 기대가 되는 건 당연한 이야기.

미누스가 주변을 둘러보자 어느새 부랴부랴 달려온 황제의 부하들과 공작가의 하수인들, 그리고 여러 단체의 스카우터들이 눈에 띄었다.

‘바하트 영감도 있고, 싱클레어 아저씨는 안 왔군.’

타국의 인사도 방문할 예정이라고 들었는데 아마 그쯤이면 결판은 나 있을 거다.

미누스 본인만 하더라도 아드리아스를 놓치고 싶은 마음은 없었으니.

“근데 왜 아직도 안 나오지?”

학생들 중에서 누군가가 의문을 제기했다.

그제야 사람들은 30층까지 깬 아드리아스가 바깥으로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그리고 그 사실은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어떠한 가정을 만들어 냈다.

‘30층이…… 끝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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