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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 특성으로 최강 네크로맨서-92화 (92/415)

92화. 모드라스의 탑

새벽 운동을 끝내고 기숙사에 들르지 않은 채 곧바로 어딘가로 향했다.

오늘은 중간 평가, 그중에서도 기사학부 1학년과 함께 치러지는 합동 평가의 조를 짜는 날이었다.

‘모드라스 알븐의 탑.’

초대 알븐 가주인 모드라스 알븐이 황궁에 있는 진짜 ‘탑’을 경험하고 만든 열화판.

알븐 가문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공간 마법을 창시한 이답게 그가 만든 탑은 스케일이 굉장했다.

‘실제 탑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그걸 감안해도 대단한 결과물이다.’

모드라스의 탑의 입장은 10팀씩 이루어진다.

10팀씩밖에 입장이 불가했기에 앞선 팀이 공략에 며칠씩이나 걸리면 그만큼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대부분 하루, 이틀 안에 끝나지.’

지금까지 모드라스의 탑을 끝까지 깬 이는 없다.

황궁에 있는 ‘탑’보다 난이도가 낮음에도 그 끝을 본 자는 없었다.

모드라스의 탑은 창립자인 모드라스가 입장 제한을 걸어 놓았다.

25년 이상을 산 생물은 입장조차 불가하게 만들어 놓았기에 순수하게 학생들만 이용이 가능했다.

‘그래서 교수들이 확인 차 들어가지도 못하지.’

대신 모드라스의 탑 내부에는 화면 공유 마법이 걸려 있었기에 내부를 볼 수는 있었다. 이는 교육용 목적을 위해 설계한 모드라스가 교수들로 하여금 학생들의 모습을 보며 평가를 매길 수 있게 만들어 놓은 장치였다.

덕분에 총 서른 개의 층이 있다는 것은 확인할 수 있었지만 그 누구도 30층까지 올라간 적도, 깬 적도 없었다.

천천히 조깅을 하듯 뛰어가자 저 멀리 모드라스의 탑이 보였다.

그 앞에는 이미 학생들이 모여 있었는데 지각을 한 건 아니었지만 내가 제일 늦게 도착한 걸로 보여 시선이 몰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저 사람이 아드리아스 크롬웰?”

“제일 마지막에 오네. 주인공 등장인가? 하하.”

기사학부 신입생들은 대체로 나를 보며 흥미와 호기심이 동한 눈빛을 보내왔다. 하긴 나라도 신기하긴 하겠다. 마법과 검을 동시에 다룰 수 있는 사람은 평생 한 번 보기도 힘들 테니.

“뻔뻔하네. 뭐하다가 이제 오는 거지?”

“쟤가 저러는 게 한두 번이야? 원래 저런 놈이었잖아.”

신입생들과 반대로 내 동기들은 날 그다지 좋게 보지는 않는 듯했다.

그동안 자신보다 훨씬 아래라고 깔보았던 녀석이 어느 순간부터 잘 나가서 그렇겠지.

물론 모두 저러는 건 아니고 8할 정도가 저런다.

‘업보를 쌓아 놓기는 했지.’

이전의 나도 썩 좋은 성격이 아니었기에 내 잘못도 조금은 있겠지.

근데 어쩌라고. 아니꼬우면 나보다 강하면 된다.

“아드리아스 크롬웰.”

내가 동기들에게 다가가자 마치 모세의 기적이 일어난 것처럼 갈라졌다.

나랑 가까이하기 싫어하는 기색이 대놓고 드러났는데, 그런 사람들 사이로 디에네가 손을 흔들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디에네.”

“어. 어제 하던 거 마저 마무리 지었어?”

“예. 정리해 뒀습니다.”

최근에 함께하는 연구에 재미가 들렸는지 하루도 빠짐없이 참석하는 디에네였다.

평가 때문에 공부하기도 바쁠 텐데 굳이 짬을 내서 와 주는 게 고맙기도 하고 조금 안쓰러워 보이기도 했다.

그녀에게 이 일은 연구라기보다 일종의 친구들과의 모임처럼 느껴지는 모양이다.

그만큼 외로움을 잘 타고 실제로 외롭다는 증거겠지.

‘인간관계에 서툴러서 은근히 정에 약하고 잘 휘둘리는 게 디에네의 특징 중 하나.’

디에네가 계속해서 조잘대자 그런 그녀를 불안한 눈으로 보는 이가 한 명 있었는데 디에네의 단짝, 유리히 칼츠였다.

그녀는 디에네의 옆에 서서 무언가 아니꼬운 눈빛을 내게 보내고 있었다.

마치 어미 고양이가 천적을 경계하는 모양새였다.

‘내가 디에네를 뭐, 잡아먹기라도 하냐.’

조금 김빠지는 표정으로 유리히를 일견하고 아직까지도 조잘대는 디에네를 보았다.

“……그래서 내가 어제 생각해 봤는데 마가니아 잎을 조금 더 넣어야 할 것 같아.”

“오늘 조 편성되는 거 보고 급한 순서가 아니면 그렇게 한번 해 보죠.”

“좋아.”

만족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디에네를 보자 은근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그녀의 외모는 이전의 아드리아스가 생각했던 이상형에 가까웠기에 이런 생각이 어색하지는 않았다.

‘그건 그렇고 아까부터 엄청 쳐다보네.’

시선을 돌려 이번에는 기사학부 쪽을 보았다.

특히나 눈에 띄는 3명의 인물이 모두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루이스, 세레나, 크리스.’

루이스는 내가 못 봐줬으니 넘어가고 나머지 둘은 얼마큼 성장했으려나.

기대가 될 수밖에 없는 게 내가 한 차례 지도해 준 것도 있었지만 저 둘은 흑마법 포션을 먹은 토들론을 직접 상대했었다.

이는 분명 저 둘에게 훌륭한 경험치가 되어 줬을 터.

‘평가에서 같은 조가 된다면 좋겠지만, 그럴 리는 없겠지.’

조 편성의 기준은 성적순으로 균등하게 짜였다.

아마 저 셋이 흩어지는 것은 물론, 나와 디에네도 약한 엑스트라들과 한 조로 짜일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니 저들이 모드라스의 탑에 입장하면 중계 화면이나 봐야겠다.

다행히 중계 화면은 교수들만 보는 게 아니라 학생들에게도 오픈되어 있었다.

“모두 모였군요.”

어느새 나타난 이번 평가 담당의 마법학부 케일린 호세가 말했다.

그리고 그녀의 옆으로는 기사학부 교수 오르테 메리골드가 서 있었다.

둘 다 중년의 교수들이었는데 특히 오르테의 경우 오스왈드 후작가의 하얀 매 기사단 전(前) 부단장이었던 화려한 전적이 있었다. 한쪽 눈을 잃은 백발의 교수였는데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근육을 자랑하는 실력 있는 교수였다.

케일린이 곧바로 평가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이번 평가는…….”

나는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여기 모여 있는 학생들도 이미 짐작은 하고 있었을 거다.

모드라스의 탑 앞에서 모인 것도 짐작의 이유로 충분했지만 거의 매년 연례행사처럼 이루어지는 평가였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부터 미리 편성된 조를 호명하겠다.”

설명이 모두 끝나자 오르테가 입을 열었다.

조를 편성한다는 말에 모두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1조! 미카엘, 세바스찬, 막심…… 97조! 길버트, 브리트니, 안젤로, 아드리아스…….”

한 조당 7명, 기사학부 5명에 마법사 2명이었다.

근데 하필이면 마지막 조에 배정이 되었다.

‘오히려 잘된 건가?’

어차피 히든 피스를 챙겨야 하는 내게는 관심이 적을수록 좋았다.

마지막 조이니 아마 평가를 다 마친 학생들로서는 관심이 덜 할 확률이 높았다.

학생들은 조별로 모여서 간단히 통성명을 하고 있었다.

나도 내 조원들을 찾아갔다.

‘다 쩌리들이군.’

아무래도 내가 본선 진출자라 그런지 다 고만고만한 녀석들이 조원으로 뽑혔다.

1학년 트리오와 디에네도 내 예상대로 전부 뿔뿔이 흩어져 있었다.

조원들은 하나같이 나를 보며 기대감 어린 눈빛을 보내왔는데 그 모습이 마치 병아리들 같았다. 나는 옆에 있는 내 동기를 한 번 보고, 그가 쭈뼛거리고 있는 걸 확인한 후에 먼저 입을 열었다.

“아드리아스 크롬웰. 마법학부 4학년이다.”

소개를 하기 전에 이미 다 아는 눈치였지만 통성명을 했다.

그러자 내 옆에 있던 동기가 기다렸다는 듯 자신도 입을 열었다.

“전 빈센트 베가. 아드리아스랑 같은 4학년 마법학부 학생입니다.”

스토리에 등장도 하지 않는 엑스트라였다.

그래도 동기들의 이름은 모두 외우고 있었기에 알고 있는 정도였다.

우리 쪽에서 먼저 통성명을 하자 신입생들도 금방 자신들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하나같이 빈센트처럼 영향력 없는 엑스트라들이었는데 루이스의 동기들이라 이름은 전부 알고 있었다.

“아드리아스 선배님이랑 같은 조가 될 줄은 몰랐어요!”

그들은 내게 호기심이 가득 담긴 눈빛을 보내왔는데, 특히 내 허리춤에 달린 갈락슈르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아드리아스 선배님, 소문으로 들은 건데 정말 크리스를 검술만으로 이기신 건가요?”

조원 중에서 유일한 홍일점인 브리트니가 물어보았다.

나는 그녀의 질문에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어디서 들은 이야기인지 모르겠지만 의미가 없는 질문이야.”

“의미가 없다니요?”

“난 아직 제대로 된 검을 휘두르지 못하니까.”

진심으로 하는 이야기다.

승패로만 따지면 크리스를 이길 자신은 있었지만 검술 자체로만 따지면 크리스의 검이 내 검보다는 수준이 더 높았다.

내 검은 극도로 전투 재능에 기대는 성향이 있어서 아직까지는 검술이라기보다 전투술에 가까웠다.

하지만 내 이야기를 들은 신입생들은 그리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역시 본선 진출자인가. 여유가 있어.”

“겸손하시네요.”

“저도 언젠가 한번 대련을 해 보고 싶습니다!”

뭔가 착각들을 하고 있는 모양인데 딱히 해명하지는 않았다.

동기인 빈센트조차 나를 감탄하는 기색으로 바라보는 게 뭔가 불편했지만 여기서 말을 덧붙이는 것도 괜히 어색했다.

조원들과 대충 대화가 끝나자 마침 오르테 교수가 다시 입을 열었다.

“방금 케일린 교수님이 말씀하셨듯이 1조부터 10조까지 지금 먼저 모드라스의 탑에 입장하도록 하겠다. 11조부터 20조까지는 대기하고 그 외의 조는 해산해도 된다. 차례가 오면 태블릿으로 메시지가 갈 거니 그동안 볼일을 보도록.”

마지막 순서라 적어도 오늘까지는 우리 순서가 오지 않을 것 같았다.

그 시간 동안 연구나 마법 훈련을 해야겠다 싶었는데 생각해 보니 첫 번째로 입장하는 학생들 중 세레나와 루이스가 있음을 떠올렸다.

‘조금은 구경해 볼까.’

다른 학생들도 대부분 나와 같은 생각이었는지 해산할 생각보다 탑 입구에 설치된 10개의 거대한 화면으로 다가갔다.

모드라스의 탑은 기본적으로 황궁에 있는 ‘탑’을 베껴 온 것이기에 모드라스가 직접 탑을 등반하며 겪은 경험들이 녹아 있었다.

지금까지 나름의 데이터베이스가 쌓여 학생들 사이에서 은밀하게 공략본이 흘러 다녔는데 그래 봤자 고작 10층까지였다.

분명 그 후로 등반을 한 이들도 있었지만 숫자가 너무 적고 공략이라 부르기도 애매하게 전멸을 간신히 면하며 깬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의미가 없었다.

“아!”

탄성이 흘러나와 보니 이제 막 입장한 조들 중에서 벌써부터 탈락자가 나오는 게 보였다.

기본적으로 모드라스의 탑은 교육용이었기에 목숨이 위협받을 정도의 상황이 되면 자동으로 탑에서 튕겨 나오는 방식이었다. 튕겨져 나온 이는 손에 몇 층에서 탈락했는지 적힌 패가 들린 채 밖으로 나오게 된다.

“아, 너무 긴장했나 보다.”

탈락이 되어 밖으로 나온 학생은 분한 마음을 터트리며 출구로 나와 자신의 팀원들을 화면으로 확인했다. 평가는 기본적으로 점수를 매기는 방식이었는데 7명의 조원들이 튕겨져 나온 층수를 모두 더한 값이 곧 점수였다.

“와, 야! 저거 봐봐.”

“혼자 다 하네. 역시 루이스야.”

화면에는 루이스의 화려한 활약상이 생중계되었다.

어떤 이는 태블릿으로 그 화면을 찍으며 실시간으로 중계하고 있었다.

‘어디, 세레나는…….’

세레나는 내 조언을 들었는지 이제 더 이상 대검을 고집하지 않았다.

그러나 갑자기 바뀐 무기 때문인지 루이스처럼 화려한 활약을 펼치지는 못했고 그저 구성원의 일인으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2층이다.”

“2층이 고블린이 나오는 층이었지?”

기본적으로 모드라스의 탑에 나오는 몬스터들과 함정들은 전부 환상이었다. 이것도 전부 공간 마법의 대가인 모드라스가 아니었으면 엄두도 못 냈을 결과물이긴 하다.

“아드리아스 크롬웰.”

화면을 구경하고 있던 나는 옆에서 들려오는 디에네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디에네가 열망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내게 말했다.

“우리 내기하자.”

“내기요?”

“어. 이 탑을 누가 더 오르나. 어때?”

내기를 하자는 것도 놀랐지만 설마 디에네가 나한테 이런 제안을 할 줄은 몰랐는데.

요즘 들어 나를 대하는 태도가 조금 변하기는 했는데 나를 그 정도로 높게 쳐주는 건가?

공정함과 정의를 숭상하는 디에네가 나를 자신보다 낮게 생각하면 내기를 제안할 리가 없었다.

‘나를 자신과 동급으로 생각해서 하는 제안이겠지?’

저번 토너먼트가 계기인가?

어찌 됐든 나야 상관없었다.

어차피 끝을 볼 생각이었는데 나름 승부욕도 생기고 좋지.

“좋습니다. 어떤 걸 걸까요?”

“소원 한 개 들어주기. 어때?”

“예?”

조금 당황했다.

아니, 많이 당황스러웠다.

소원이라니, 그건 너무 막연하고 광범위하지 않은가?

“왜, 자신 없어?”

“그건 아닌데…….”

“그럼 하는 거지. 뭐 그렇게 말이 많아.”

그렇게 말한 디에네는 그대로 손을 흔들며 어디론가 사라졌다.

모드라스의 탑을 반드시 깨야만 하는 이유가 또 하나 생기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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