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화. 재능 획득
창과 같이 생긴 돌조각들이 허공에 떠올랐다.
곧이어 그 돌조각들에 하나씩 불이 붙기 시작했다.
“천천히. 이제 유지하세요. 마나 배열 흐트러지지 말고, 지금 불길이 약해지고 있어요. 조금 더 마나를 일정하게 불어넣는다고 생각하고…….”
베리얼의 말이 안 그래도 복잡한 머릿속을 흔들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건 마나의 유지와 힘의 분배.
“흐읍.”
최대한 버텼다.
흑마법의 경우 수재의 재능이 있기에 더블 캐스팅도 가능했지만 원소 마법의 경우 마법에 마법을 섞는 합성 마법조차 힘들었다. 물론 이것도 마나 재능이 없었다면 시도조차 해 보지 못했을 훈련이었다.
“자, 잘하고 있어요. 이제 여기서 술식을 더해 볼 겁니다.”
“예?”
순간 집중이 깨져 락 스피어가 흔들렸다.
하지만 급하게 다시 집중을 부여잡았다.
“아직 마나에는 여력이 남아 있을 겁니다. 천천히 남은 마나로 윈드커터의 술식을 그리세요. 따로 그리지는 말고 지금 떠 있는 마법들에 덧붙인다는 식으로 천천히 그려 보시면 됩니다.”
말로는 쉽지 저게 말대로만 되면 누구나 상급 마법사가 됐을 거다.
하지만 일종의 훈련이라 생각하고 천천히 새로운 술식을 덧대기 시작했다.
‘우선은 마나 배열을…….’
푸쉬익.
불이 꺼져 버렸다.
역시 무리였나.
개별로 사용하는 멀티 캐스팅보다는 훨씬 쉬운 난이도의 합성 마법이었지만 아직은 내 마법 숙련도의 부족함이 나타났다.
“이러면 곤란합니다. 다시 시작하세요.”
이 피도 눈물도 없는 학부장은 가만 보면 적당히라는 말을 몰랐다.
분명 베리얼의 눈에는 직접 가르쳐 보니 내가 눈에 차지 않겠지.
하지만 어쩌겠냐. 네가 하고 싶다고 한걸.
“하면서 잘 들으세요. 마나를 배열할 때 굳이 순서대로 배열하지 않아도 됩니다. 결국 그에 맞는 형태로만 완성이 되면 되기 때문에 일단은 아드리아스 학생이 본능적으로 쌓기 쉬운 부분부터 파악한 후에 마나를 쌓아도…….”
의외로 베리얼은 본인이 천재인 것에 비해 눈높이 교육을 잘했다.
가르침에 있어서도 탁월한 재능을 보인다고 해야 할까.
마법에 있어서 범재에 가까운 나조차도 그의 설명을 듣다 보면 영재가 된 기분이었다.
―띠링!
[재능 ‘원소 마법(범재)’를 획득하셨습니다.]
[재능 ‘원소 마법 물 계열(둔재)’가 삭제됩니다.]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진화가 가능한 개체가 탐색되었습니다.]
다시 한 번 조금 전의 합성 마법을 시도하던 도중 묘한 소리와 함께 시야가 가려졌다. 갑자기 튀어나온 상태창에 집중이 깨지고 마법이 취소되었다.
“아드리아스 학생. 오늘따라 집중력이 떨어지는군요.”
“죄송합니다.”
나는 얼른 사과부터 하고 떠오른 문구를 마저 읽었다.
[아드리아스 크롬웰의 재능: 원소 마법(범재)의 진화 가능성 30%]
[진화를 하시겠습니까?]
지렸다.
드디어 내게도 마법 관련 메이저 재능이 생겼구나.
거기다 그동안의 경험이 쌓여 있었던 건지 벌써부터 진화 가능성이 30%를 넘기고 있었다.
나는 곧바로 실험을 위해 마법을 사용해 보았다.
원소 마법(범재) 재능이 생기자 원래 있던 마나 재능과 어우러지며 조금 전에는 실패했던 합성 마법이 수월하게 만들어졌다.
“…….”
갑자기 베리얼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이상하겠지. 그래도 그가 보는 가운데서 해낸 거라 특이한 점을 발견하지는 못했을 거다.
“학부장님. 이게 맞을까요?”
“훌륭합니다. 가르치는 보람이 있어요.”
그는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끄덕이며 내가 만든 마법을 보았다.
그리고는 품속에서 회중시계를 확인하고 고개를 들었다.
“아드리아스 학생. 제가 오늘은 약속이 있어서 먼저 가 봐야겠습니다. 교습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죠.”
“예. 감사합니다.”
갑작스러운 파투였지만 자주 있었던 일이기에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슬슬 끝낼 시간이긴 했다.
‘마법을 성공시키자마자 교습을 끝낸 건 너무 눈에 보이지만.’
워낙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니 그냥 그러려니 해야지.
어차피 나도 이제 루시아와의 약속이 잡혀 있었다.
내가 마저 인사를 하고 헤어지려는데 베리얼은 순식간에 자신의 오리지널 마법을 사용하더니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저 갑작스러운 행동만 없어지면 조금 적응할 수 있을 텐데.
“굳이 적응할 필요도 없지.”
베리얼한테 적응해도 좋은 일 하나 없다.
나는 생각을 그만두고 루시아가 기다리고 있을 연구실동으로 향했다.
* * *
“디에네?”
미리 약속했던 내 개인 연구실 앞에 도착하자 내가 내뱉은 한마디였다.
연구실 앞에는 여전히 졸린 듯한 눈을 한 루시아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던 디에네가 함께 있었다.
“아, 선배. 오셨어요.”
루시아가 먼저 아는 척을 해 오고 이름이 불린 디에네가 도도하게 고개를 돌려 나를 돌아보았다.
“아드리아스 크롬웰. 왜 이렇게 늦게 온 거야.”
“죄송합……이 아니라, 디에네가 여기에는 왜 계신 거예요.”
“우연히 루시아를 만났는데 이야기를 들었거든. 둘이서 같이 무슨 연구를 한다면서? 궁금해서 따라와 봤어.”
내가 루시아에게 시선을 돌리자 그녀는 난처한 듯 배시시 웃어 보였다.
그렇게 웃는다고 넘어갈 줄 알아?
“괜찮겠어?”
나는 루시아에게 연구를 보여 줘도 괜찮냐는 의미로 물어보았다.
아무래도 그녀의 치료제를 개발하는 일이다 보니 그녀의 의사가 중요했다.
루시아는 살며시 디에네의 눈치를 살피더니 내게 다가와 까치발을 들고 귀에 속삭였다.
“디에네 선배한테 도움받으면 더 빨리 되지 않을까요? 거기다 마탑주님이 아버지시잖아요. 혹시라도 마탑주님에게 알려지면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루시아가 몸을 기대 오며 속닥거리자 귀가 간지러웠다.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지.
그래도 나름 디에네도 마법에 조예가 깊고 바하트야 뭐, 말해 봐야 입만 아픈 대마법사이니.
“뭐야. 둘이서만. 나 왕따시키는 거야?”
“아니에요. 선배님. 같이 들어가시죠.”
루시아가 헤실헤실 웃으며 디에네에게 아부를 떨었다.
저런 모습은 또 처음 본다.
저렇게 언제든 굽힐 줄 아는 게 더 무서워 보이기도 하고.
“근데 생각해 보니까 내 개인 연구실인데…….”
말 한마디 꺼내기 무섭게 두 여인의 시선이 꽂혀 들었다.
나는 어색하게 시선을 돌리고 곧바로 연구실의 문을 열었다.
“정리 좀 해야겠는데.”
디에네가 들어서자마자 연구실의 내부를 보며 팔을 걷어붙였다.
확실히 지난 한 달간 루시아의 개인 용품과 쓰레기들 그리고 정리되지 못한 재료들이 여기저기에 널브러져 있었다.
나도 딱히 정리에 연연하지 않는 성격이라 그냥 놔두고 연구만 했는데 디에네는 곧바로 청소와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와, 디에네 선배랑 같이 오기 잘했네요.”
“내가 청소부야? 빨리 너네도 정리해!”
디에네의 말에 나와 루시아도 함께 정리하기 시작했다.
잠시 뒤, 깔끔하게 정리된 연구실을 보며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는 디에네와 벌써부터 녹초가 된 것처럼 늘어진 루시아가 대비를 보였다.
“이제 해 볼까. 연구하던 거 기록이랑 일지 좀 보여 줄래?”
늘어졌었던 루시아가 벌떡 일어나며 쪼르르 일지를 들고 왔다.
루시아의 치료제에 들어가는 재료는 이미 다 알고 있으니 디에네가 왔다고 다이나믹하게 성과가 드러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똑똑한 일꾼이 들어왔다는 게 주목할 만하다.
‘결국 계속해서 경우의 수를 구해야 하니까 한 명이라도 더 있으면 좋기는 하지.’
게다가 이미 한 달 동안 꽤 성과를 보였다.
이제 조금만 더하면 내 포션 재능이 감을 잡고 치료제를 만들 수 있을 터.
일지를 훑어본 디에네가 고개를 끄덕였다.
“특이한 포션을 만드네. 일종의 치료제인가? 재미있어. 바로 시작하자.”
똑 부러지는 디에네가 오니까 연구실이 완전해진 기분이다.
그런 기분은 나만 느낀 게 아닌지 루시아의 두 눈이 초롱초롱하게 빛나며 디에네에게 기대감 어린 눈빛을 보내왔다.
그렇게 연구를 시작한 우리는 밤이 다 되어 가도록 연구에 몰두했다.
디에네 한 명이 추가된 것뿐인데 연구에 대한 몰입도가 차원이 달랐다.
“오늘은 이쯤 할까.”
디에네가 말을 꺼내자 루시아가 살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기지개를 켰다.
지금 누구 치료제를 만들고 있는 건데 네가 그런 표정을 짓냐.
“아드리아스.”
“예.”
“이번 평가는 어때. 자신 있어?”
“그냥 최선을 다해야죠.”
최선을 다해서 꼭대기까지 클리어한다.
너희 고조할아버지께서 남기신 보물은 내가 챙겨 가마.
물론 디에네나 알븐 가문에는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그러니 맘 놓고 꿀꺽할 수 있는 거지.
‘벌써 내일인가.’
조금만 더 하면 원소 마법의 재능도 진화시킬 수 있었는데 그건 좀 아쉽다.
그래도 미리 평가를 위해 각종 새로운 포션들을 만들어 놔서 다행이지.
루시아의 치료제를 만드는 도중에 나온 부산물들이었는데 포션 재능이 영재로 진화해서 금방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디에네는 내 두루뭉술한 대답에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너라면 그렇게 대답할 줄 알았어. 이제 그만 들어가자. 나 배고프네.”
“아! 그러면 저희 회식해요. 저랑 아드리아스 선배도 일주일마다 회식했었거든요.”
루시아의 말에 디에네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나와 루시아를 번갈아 보았다.
“둘이서만? 너네…… 아니다. 내가 뭐라 할 건 아니지.”
무슨 말을 하려던 거지?
별로 중요한 건 아니겠지.
그렇게 우리는 새 연구 맴버인 디에네를 데리고 알븐 스트리트로 향했다.
* * *
휘익!
날카로운 기운이 서린 검이 흔들림 없이 내리그어졌다.
그 모습이 마치 검을 쥔 자의 단단한 마음을 나타내고 있는 듯했다.
“후우.”
루이스 아트만은 천천히 검을 거두며 자세를 바로 했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자 꽤 많은 학생들이 각자 훈련을 하고 있는 게 보였다.
‘오늘도 안 나왔네.’
언젠가부터 세레나와 크리스가 보이지 않았다.
세레나는 언제나 함께 훈련을 하고 싶어 했고 크리스는 자신이 보라는 듯 과시하기 일쑤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공용 단련장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아드리아스 선배랑 대련을 했다고 했지.’
궁금했던 나머지 세레나에게 이유를 물었던 적이 있는데 아드리아스와의 대련 이후로 개인 단련실을 사용한다고 했다. 그녀가 개인 단련을 하게 된 원인도 궁금했지만, 아드리아스와 붙어 봤다는 사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내가 한 신청은 받아 주지 않았었지. 세레나와 크리스의 2대1 대련을 받아 주었다고 했으니 나도 두 명이서 갔었으면 받아 줬을까?’
듣기로는 두 명이 상대했는데도 처참하게 패배를 했다고 한다.
세레나와 크리스 둘이라면 루이스조차도 이길 생각이 들지 못하는데 그런 둘을 가볍게 이겼다고 하자 역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도전하던 당시에 느껴졌던 위험한 감각은 사실이었다.
‘그래도 곧 아드리아스 선배를 만나게 되니까. 다시 한 번 말을 걸어 봐야지.’
내일은 중간 평가가 있는 날.
우연인지 운명인지 하필이면 4학년 마법학부 학생들과 함께 하게 되었다.
4학년 마법학부에는 무려 토너먼트 우승자인 디에네 알븐과 최근 연달아 화제를 몰고 온 마검사, 아드리아스 크롬웰이 포진되어 있었다.
‘정말 기대된다.’
교류회를 겪으며 마주쳤었지만 아쉽게도 각 학부별로 나눠졌었기에 교류할 기회는 생각보다 적었었다. 그러나 이번 평가에서는 운이 좋으면 그 기간 동안 함께 할 수도 있었기에 기대가 되었다.
정확한 것은 평가의 내용이 나오고 난 다음에야 알겠지만 루이스는 희망을 잃지 않았다.
‘내일을 위해서라도 오늘은 일찍 들어가야지.’
루이스가 들어갈 준비를 하자 주변에서 단련을 하던 다른 기사학부 학생들의 시선이 몰렸다. 그도 아카데미의 유명인이라 시선이 끌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 사람들을 향해 일일이 정중하게 인사를 한 루이스는 먼저 기숙사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