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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 특성으로 최강 네크로맨서-87화 (87/415)

87화. 자퇴

언제나 그렇듯 습관처럼 굳어진 포커페이스는 상대에게 일말의 여지도 보여 주지 않았다. 나는 표정 변화 하나 없이 그저 고개만 저었다.

“그럴 리가요. 흑마법은 미친 사람들만 익히는 것 아닌가요?”

“글쎄요. 당장 이번에 일어난 사건만 해도 아무도 카일러 교수가 흑마법사라는 걸 몰랐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저는 흑마법사에 대한 편견이 없어요. 결국은 같은 사람이잖아요?”

살짝 뜨인 베리얼의 실눈이 마치 뱀의 시선처럼 나를 얽혀 들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그러네요. 당장 저도 카일러 교수의 강의를 들었었는데 의심한 적이 없었죠.”

“아드리아스 학생.”

베리얼이 뒤를 돌았다.

그리고는 주변에 솟은 나무들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약간의 시간이 흐르고 베리얼이 말을 이었다.

“전 당신이 흑마법을 익혔든 말든 신경 안 씁니다. 그런 건 제게 있어서 별로 중요치 않아서요. 물론 아드리아스 학생이 흑마법을 익히지 않았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그냥 가정입니다, 가정. 그에 준하는 결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상관없다는 이야기를 해 주고 싶었을 뿐이에요.”

“오로지 능력만 보신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렇죠. 설령 당신이 교칙을 어겨서 퇴학을 당하게 되더라도, 아니면 당신이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르는 범죄자가 되더라도, 그런 건 제게 아무 의미가 없어요. 전 그저 당신이 만들어 낼 오리지널 마법을 보고 싶을 뿐입니다.”

고개를 돌려 다시 내게 향한 그의 눈은 범인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감정이 내비쳐지고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광기였다.

“전 당신의 마법진에서 가능성을 봤어요. 아드리아스 학생이라면 오리지널 마법을 만들 수 있겠구나 하는.”

“저보다 더 뛰어난 인재가 있을 텐데요? 이번 토너먼트 우승자만 해도 12년 만에 나온 마법학부 우승자입니다. 그런 인재를 두고 굳이 저를 선택하신 저의를 모르겠습니다.”

“물론 디에네 알븐은 뛰어난 마법사입니다. 그녀는 혼자서도 충분해요. 하지만 당신은 다르죠. 당신은 제 도움이 필요할 겁니다.”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

디에네는 알아서 할 거니 나를 봐주겠다고?

그 말을 지금 믿으라고 하는 소리냐.

그러나 내게 딱히 선택권은 없어 보였다.

게다가 베리얼의 개인 교습은 불안하다는 점만 빼면 내게 도움이 될 건 확실했다. 누가 뭐라 해도 베리얼은 최연소 워록이라는 칭호가 붙을 정도의 천재임은 틀림없었으니.

결국 나는 고개를 숙였다.

“잘 부탁드립니다. 학부장님.”

“역시 아드리아스 학생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런 신중한 성격, 나쁘지 않습니다.”

베리얼이 입꼬리만 올려 미소 짓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기묘한 개인 교습이 시작되었다.

* * *

‘실패…….’

루시아 에버라스트는 벌써 1,000번에 가까운 실험 횟수를 기록하며 실패를 곱씹었다.

문제는 그 횟수를 채우는 동안 진전이 없었다는 것.

루시아는 자꾸만 몰려오는 잠을 참으며 자신의 팔뚝을 꼬집었다.

그리고 떠올렸다.

‘아드리아스 선배랑 할 때는 뭔가 실마리가 보였던 것 같은데.’

그녀도 나름 자존심이 있었기에 그동안은 별말 없이 혼자서 해내려 했다.

하지만 저번에 있었던 아드리아스와의 대화로 인해 그가 자꾸만 떠올랐다.

‘내가 부탁하면 도와주지 않을까?’

아드리아스는 분명 자신을 소중하다고 했다.

그런 소중한 사람의 부탁인 만큼 들어주지 않을까?

“……바보 같네.”

문득 자신의 처지가 처량해진 기분이라 힘 빠진 웃음이 나왔다.

타인의 대한 기대는 더 이상 하지 않기로 해 놓고 틈만 나면 아드리아스를 찾는 요즘이었다.

‘어느새 그렇게 편해진 걸까.’

저번 주에 만나 대화를 나눴을 때부터?

흑마법 포션을 먹은 복용자로부터 구해졌을 때부터?

이런 식으로 거슬러 올라가자 애초에 처음부터 그랬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가 자신을 괴짜로 생각하고 거리를 둘 때, 혼자만 잘 보이려 무리해서 밥까지 샀었던 신입생 시절부터.

‘보고 싶어.’

루시아는 자신도 모르게 연구실을 정리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깨달았음에도 손을 늦추지 않았다.

오히려 빨리 정리하고 아드리아스에게 가고 싶었다.

그가 자신의 치료제를 만들기란 불가능에 가깝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아드리아스는 분명 재능이 있었지만 자신이 평생에 걸쳐 노력한 치료제를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이때에 만들어 낼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저 지금은 그와 대화하고 싶었다. 조금이라도 더 이야기를 나누고 추억을 만들고 싶었다.

똑.

“아.”

방울방울 떨어지는 눈물이 테이블 위로 별처럼 박혔다.

루시아는 애써 눈가를 비비며 웃었다.

“아직 안 죽어.”

괜찮아.

아직까지는 버틸 수 있어.

일단은 아드리아스 선배를 찾아가자.

그리고 일단 만나서 어리광을 부리자.

연구실의 정리를 끝낸 루시아는 곧바로 태블릿을 들어 아드리아스에게 연락을 했다. 최근 돈이 많아진 아드리아스가 새로 태블릿을 장만했기에 가장 먼저 연락처를 얻었다.

‘선배. 어디?’

메시지를 보내고 잠시 기다리자 곧바로 답장이 왔다.

‘연구실. 왜?’

루시아는 답장을 읽자마자 아드리아스가 있을 개인 연구실 쪽으로 향했다.

마침 같은 연구동이라 거리는 가까웠다.

아드리아스의 개인 연구실이 어딘지는 알았기에 문 앞에 도착한 그녀는 문부터 두드렸다.

끼익.

“루시아?”

문이 열리며 치렁치렁한 머리카락이 흔들렸다.

그 미역 같은 머리카락을 보자 루시아는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어 아드리아스의 머리카락을 만졌다.

“뭐 하냐?”

“미역.”

아드리아스는 잠시 그녀에게 머리를 내준 채 가만히 있었다.

붉게 충혈된 눈가, 어딘지 멍해 보이는 눈동자.

그 사이에 잠시 루시아의 상태를 살펴본 그가 말했다.

“배고프네. 배 안 고파?”

“갑자기요?”

“뭐 좀 먹으러 가자.”

딱히 생각은 없었지만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아드리아스와 도착한 곳은 알븐 스트리트였다.

밤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문을 연 가게가 얼마 없었는데 아드리아스는 돌연 맥주 집에 들어갔다.

“선배?”

“왜.”

“맥주 마시게요?”

“가끔은 마시는 것도 나쁘지 않더라고.”

루시아는 눈을 게슴츠레 뜨며 아드리아스를 노려보았지만 그는 꿈쩍 않고 가게로 들어갔다. 평일 저녁이라 손님이 많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온기가 느껴질 만큼은 있었다.

아드리아스는 자리를 잡자마자 양고기 꼬치와 맥주를 시키며 루시아에게 물었다.

“너도 마실 거지?”

“네? 전…….”

잠시 당황하는 루시아를 제쳐 두고 아드리아스는 곧장 그녀의 몫도 시켰다.

처음에는 뭐라 하려던 루시아는 그냥 포기한 채 발로 그를 툭툭 건드렸다.

“요즘 소문이 자자하던데. 좀 어때요, 학부장님 개인 교습은?”

“배우는 것도 많고 좋지.”

“좋겠네요. 선배는. 근데 정말 신기한 게 왜 예전에는 바보 행세를 하고 다닌 거예요? 지금은 이렇게 학부장님한테 개인 교습을 받을 정도면서.”

“바보 행세를 하고 다닌 게 아니라 진짜 바보였으니까.”

말하는 사이 맥주가 먼저 나왔다.

아드리아스는 맥주를 받자마자 그녀에게 들이댔다.

“짠.”

“일단 시켰으니까 마시긴 할 건데 이상한 생각하지 마요.”

“뭐? 크흠.”

순간 어이가 없어 웃음이 터질 뻔한 아드리아스는 헛기침으로 무마시키고 고개를 저었다. 괜히 웃음을 터트려 루시아와 싸우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 조심할게.”

술을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자 안주가 나왔다.

그렇게 둘 모두 오랜만에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며 맥주를 마시자 어느새 몇 잔이나 마시게 된 루시아가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선배.”

“어.”

“너무 좋네요.”

졸린 눈으로 빨갛게 얼굴이 물든 루시아가 중얼거렸다.

그러더니 배시시 미소 지었다.

“고마워요. 선배.”

“그래. 나도 고맙다.”

둘 모두 뭐가 고맙다는 건지 몰랐지만 그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이제 슬슬 자리에서 일어나야 할 시간이 된 것 같아 계산을 하고 나왔다.

선선한 바람이 불며 맥주로 인해 덥혀진 몸을 식혔다.

열차를 타고 기숙사가 있는 곳으로 돌아온 둘은 루시아가 있던 기숙사부터 향했다.

아드리아스가 옆에서 배웅하는 모습을 보며 루시아가 말했다.

“선배. 매일까지는 바라지 않아도 가끔은 이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그러네. 일주일에 한 번씩 이렇게 야식이나 할래?”

“좋아요! 헤헤.”

조금 취한 모양인지 눈이 반달을 그리며 웃는 루시아가 귀여워 보였다.

원래도 외모로는 귀엽기 그지없는 루시아가 얼굴을 발갛게 물들인 채 미소 짓는 건 정말 볼만했다.

아드리아스는 자신의 여동생을 떠올리며 말했다.

“루시아. 혹시라도 힘든 일 있으면 언제든 말해. 부담 갖지 않아도 되니까.”

“네에.”

어느새 루시아의 기숙사 앞에 도착한 그들은 이별을 고했다.

“계단 조심해서 올라가고.”

“네. 걱정 마요!”

아드리아스가 손을 흔들며 몸을 돌렸다.

그렇게 아드리아스가 뒤돌아 사라질 때까지 루시아는 제자리에 선 채 계속 지켜보았다.

별것 아닌 일이었지만 뭔가 마음이 포근해졌다.

그리고 그로 인해 확실히 느꼈다.

‘난 살고 싶어. 살아서 이 행복을 더 오래 느끼고 싶어.’

아드리아스와 함께 매일을 보내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살아야만 했다.

‘살려면 치료제가 필요해.’

지금 하고 있는 연구가 있었지만 확신이 없었다.

아드리아스에게 도움을 구할 수도 있었지만 솔직히 회의적이었다.

그러니 지금의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살렘 예디디아.’

진리를 쫓는 악마.

제국 최대의 현상 수배범 중 하나이자 대륙의 최강자.

저번 만남에서는 갑작스러운 사제 제의라 거절했었다.

하지만 오늘 느낀 행복으로 그녀는 삶의 갈망이 더욱 커졌다.

살렘 예디디아라면 자신의 병을 고쳐 줄 수 있지 않을까?

‘살렘의 제자가 된다면 살아남을 확률이 높아져. 그렇게 되면 아드리아스 선배 곁에 더 오래 남아 있을 수 있어.’

그의 제자가 된다면 아카데미를 나와야 했기에 잠시 동안은 아드리아스를 보지 못하게 될 거다.

그건 조금 아쉬웠지만 더 오래 보기 위한 희생이라고 생각했다.

“살아남을 거야.”

그녀의 간절한 소망이 나태했던 그녀의 마음을 지워 냈다.

* * *

[이름 없는 중화제(상급)을 제작하였습니다.]

드디어!

드디어 만들어 냈다.

비록 이걸로 루시아의 병을 완전히 치료할 수는 없었지만 병세가 악화되는 걸 막고 고통을 줄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번 시간으로 진짜 치료제를 만들면 루시아의 고민은 해결.

[아드리아스 크롬웰: 포션 제조 버프 계열의 진화 가능성 76%]

[진화를 하시겠습니까?]

게다가 이번 연구로 포션 제조 재능의 경험치도 많이 차올랐다.

이번에 진화시키면 아마 루시아의 치료제에 한 걸음 더 다가가게 될 것 같았다.

‘흑마법 재능의 진화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끝나자마자 바로 진화시킨다.’

우선은 이 좋은 소식을 루시아에게 알려야지.

나는 곧바로 태블릿을 이용해 루시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어디야?’

그렇게 메시지를 보내 놓고 연구실을 나오자 점심시간이라 북적이는 거리를 볼 수 있었다.

“일단 같이 밥이나 먹을까.”

근데 왜 이렇게 답장이 늦는 거야?

태블릿을 확인해도 답장이 없었다.

그러던 중 눈에 띄는 문구를 발견했다.

태블릿에는 아카데미 내에서 일어나는 온갖 가십거리도 다뤄졌는데 우연히 눈길이 닿은 곳에 생각지도 못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특종! 루시아 에버라스트, 자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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