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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 특성으로 최강 네크로맨서-76화 (76/415)

76화. 교류회 그리고 참관 수업

그레이스의 말에 안 그래도 좋지 않던 분위기가 점차 심각하게 흘러갔다.

그런 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레이스는 여전히 입을 놀렸다.

“이 몸께서 직접 네 녀석에게 마법 결투를 신청하는 바이다! 감히 겁먹고 도망치지는 않을 테지?”

안 그래도 좋지 않던 분위기에 그레이스가 기름을 부었다.

비록 나, 개인에게 하는 말이었지만 그전에 있었던 일을 모르는 로들렌 측 학생들로서는 그저 시비를 거는 모습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나 보다.

“쟨 뭐야?”

“한 번 해보자, 이거냐?”

한 마디씩 내뱉는 로들렌 학생들로 인해 미르코 학생들도 단단히 긴장을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내가 눈 여겨 보고 있는 케슈른조차 이걸 어쩌지 하는 표정으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케슈른은 마음이 약한 캐릭터니까. 하여간 지금은 그레이스부터 처리해야겠네.’

점차 무르익어 가는 분위기의 한가운데서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결투를 원하신다면 받아 드리죠.”

“으흐흐. 좋다. 당장 결투를 시작하지.”

그는 곧바로 자신의 품에서 새하얀 지팡이를 꺼내더니 내게 겨누었다.

저놈이 미쳤나. 내가 아무리 너를 두들겨 패고 싶다지만 여기서 결투를 할 정도로 급하지는 않아.

“여기서 이러지 말고 대련을 위한 장소로 가죠.”

“하! 혹시 겁먹은 건가? 하긴 그럴 수밖에 없겠지. 고작해야 초급 마법사인 주제에 이 그레이스 메이른 님에게 덤볐으니. 이제 와서 후회해 봐야 소용없다! 내 ‘여명의 포효’ 앞에서 잿더미가 되거라!”

까먹고 있었는데 저 녀석의 지팡이가 네임드급 아이템이었지.

도대체 어떻게 주인으로 인정받은 건지 게임 속에서도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확실한 건 녀석이 쓰기에는 과분할 정도로 좋은 아이템이라는 것이다.

‘그건 그거고. 여기서 싸웠다가는 학칙에 위반되는데.’

다행인 점은 주변 사람들이 많아 알리바이는 충분하다는 거다.

상대가 지팡이를 든 시점부터 내가 공격하더라도 정당방위가 성립되겠지.

우우웅.

이윽고 상대의 마법이 발현되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는 그 소리를 듣자마자 검을 뽑았는데 검을 뽑은 나를 보며 그레이스가 외쳤다.

“네 이놈! 나는 분명 ‘마법’ 결투를 신청한다고 했다! 어디 감히 신성한 마법 결투에 검을 뽑느냐!”

“제가 언제 마법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했습니까. 제 지팡이는 이 검입니다.”

“뭐라고?”

화르륵―!

갈락슈르가 불꽃에 휩싸였다.

그리고 사람들의 눈길이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저게 무슨!”

주변의 경악성이 들려오고, 동시에 상대방의 마법이 완성되었다.

나는 그레이스가 만들어 낸 화염 마법을 검으로 갈라냈다.

그리고 이제는 익숙해진 검풍에 불꽃을 담아 휘둘렀다.

화아악―!

“이, 이놈!”

여명의 포효로도 마법의 완성이 늦은 그레이스가 다급하게 몸을 굴렀다.

그 모습이 마치 도축되지 않으려 발버둥 치는 돼지의 모습과 같았다.

일부러 크게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 살살 휘둘렀는데 그런 검풍조차도 제대로 못 피한 그레이스의 옷에 불이 붙었다.

“으아악! 살려 주어라!”

패닉 상태에 빠진 그레이스가 바닥을 구르며 불을 끄려고 했다.

하지만 마나로 만들어진 불꽃은 쉽사리 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저러다 진짜 큰일 나겠는데.’

설마 저 정도의 공격도 대처하지 못할까 생각했기에 조금 당황스러웠다.

돼지 멱따는 소리를 내는 그레이스가 정말 죽을 듯이 울부짖자 나는 그에게 다가가 불을 끄려 했다.

촤아아악!

푸쉬이이.

그러나 누군가가 한발 앞서 마법으로 그레이스에게 물을 끼얹었다.

불이 꺼지자 그레이스는 숨을 헐떡이며 대자로 뻗어 버렸다.

“…….”

잠시 어색한 공기가 스쳐 지나가고 뻘쭘하게 서 있자 뒤늦게 불을 끈 마법사가 내게 물었다.

“방금 그건 대단하군요. 정말 마법이었습니까? 아니면 아티팩트로 만들어진 검?”

이제 보니 케슈른 비올가였네.

그는 바닥에 쓰러진 그레이스를 잠시 살펴보다 그가 멀쩡하다는 걸 확인하고 곧바로 내게 질문을 해 오기 시작했다.

기대하고 한 일은 아니었지만 어찌 됐든 케슈른과 말을 트게 됐군.

“마법입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역시 소문의 마검사! 혹시 다시 한 번 볼 수 있을까요?”

“예.”

애초에 너랑 친해지고 싶어서 참가한 건데 원하는 건 다 말해 봐라.

해 줄 수 있는 건 다해 주마.

화르륵.

어느새 연회장에 모인 사람들은 그레이스의 존재는 잊고 내가 보인 새로운 형태의 마법에 관심을 표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검을 사용하는 탓에 마법학부 학생들뿐만 아니라 기사학부 학생들도 내게 관심을 표해 왔다.

“실전에서 사용할 수 있는 건가?”

“신기하군! 오러의 색에 따라 마법의 색도 변하다니! 무슨 원리인지 연구해 보고 싶어.”

“따로 불편한 점은 없을까? 검을 휘두르는 동시에 마법을 계산해야 하니 힘들겠지?”

로들렌의 학생과 미르코의 학생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내가 다시 보여 주는 융합 마법을 감상하며 한 마디씩 내뱉었다.

그러더니 이내 자기들끼리 토론을 하며 대화의 장을 열었다.

‘역시 상위권 학생들이라 그런가. 서로 경계할 때는 언제고 금방 이성적으로 의견을 나누네.’

역시 분위기 환기에는 매타작만 한 것이 없다.

아니지. 매타작은 안 했지.

원래였으면 진짜 두들겨 팼어야 하는데 예상치 못한 반응에 기회를 놓쳐 버렸네.

나는 아직도 드러누운 채 눈을 감고 기절한 척 연기하는 그레이스를 보았다.

부디 기가 좀 꺾였길 바란다.

* * *

아카데미 직원들이나 교사들이 없는 동안 벌어진 일이라 나와 그레이스의 ‘마법’ 결투는 조용히 넘어가게 되었다.

일련의 사건으로 분위기가 한 번 환기가 된 덕분인지 그레이스를 제외한 모두는 화기애애하게 교류회를 즐길 수 있었다.

위이잉.

“자! 이게 바로 ‘별의 회전’입니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은 한 마법학부 내의 마법진과 관련된 강의.

오늘은 교류회 이틀 차로 교류회 학생들 중에서도 마법사인 학생들만 함께 하게 되었다.

교수가 단상에서 보여 준 마법진에서 동그란 구체가 두둥실 떠오르고 그 주위를 자잘한 구체가 돌아다녔다.

공전과 자전을 보여 주는 그 작품은 비록 시대 배경은 중세이지만 행성이 둥글다는 것과 공정과 자전을 발견했음을 암시하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60도 부근에 있는 회전과 관련된 주문에 역전 주문을 함께 새겨 넣는 겁니다.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최대한 마나를 컨트롤해서 뭉개지지 않게 조심하세요.”

미르코의 학생들은 로들렌의 강의를 집중해 들으면서도 타 학생들에 대한 관심도 감추지 않았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큰 관심과 이목을 집중 받는 것은 당연히 디에네 알븐이었다.

명문 마법가 출신이자 작년 토너먼트 우승자.

이 두 개의 타이틀만으로도 웬만한 학생들은 전부 다 씹어 먹었다.

첫날에 있었던 나에 대한 관심도 지금은 태양 앞에 반딧불처럼 사그라들 정도였다.

그녀는 도도한 표정으로 시선 따위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강의를 듣고 있었는데 난 저게 다 표정 관리를 하는 중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아무렴. 내가 직접 플레이 해 본 캐릭터의 성격도 모르겠는가.

“자, 그럼 이제 한 번 다 같이 해 볼까요?”

교수의 말과 동시에 우리에게 종이가 쥐어졌다.

강의에서 알려 준 주문을 토대로 자유롭게 마법진을 만들어 보라고 하는데 뭘 해야 할지 솔직히 감이 안 왔다.

‘회전과 역전 주문이라.’

슬그머니 디에네를 보자 그녀는 이미 무언가를 거침없이 그려 나가고 있었다.

다음으로 마법진의 천재라 불리는 케슈른을 보니 그는 디에네와 달리 고민하는 기색이었다.

‘게임 속에서는 없었던 이벤트라 그런지 뭔가 흥미진진하네. 디에네와 케슈른의 마법진 대결이라.’

둘 다 마법에 관해서는 천재라 불리는 이들이기에 서로에게 영감을 줄 수도 있겠다고 생각됐다.

‘잠시만. 영감? 내가 저 둘한테 줄 수도 있는 거 아니야?’

내가 마법에 재능이 없지 마법진 구축에 재능이 없나!

이래 봬도 수많은 게임 경험으로 온갖 마법진을 섭렵한 나다.

물론 실제로 마법진을 그리는 것과 게임 속에서 그냥 클릭 한 번으로 되는 건 달랐지만 그 아이디어나 종류에 관해서 만큼은 빠삭했다.

‘회전만 사용되거나 역전만 사용되던 마법진은 꽤 많이 다뤘던 거 같은데…….’

둘 모두를 사용하는 것 중에 뭐가 있었지?

역전의 의미는 해석하기 나름이라 고민이 되었다.

교수가 보여 준 것처럼 그저 역행 운동을 보여 주기 위한 회전의 반대 개념으로 보여 줄 수도 있었지만 회전 자체를 반대시키는 것보다 다른 의미의 역전이 좋을 듯한데.

‘씁, 조금 어려울 것 같은데.’

한번 해 보고 실패하면 어쩔 수 없는 거고.

어차피 평가가 아닌 그저 단순한 강의의 일환이었기에 천천히 주문을 그려 넣기 시작했다.

시간이 흘러가고.

천천히 마법진을 그려 나가던 나는 갑자기 들려오는 탄성에 고개를 들었다.

“우와!”

“역시 디에네 알븐. 저게 학생 수준으로 가능한 거야?”

디에네의 앞에는 교수가 마법진을 그리라며 나눠 준 종이가 공중을 부양하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물과 관련된 주문을 적었는지 종이 위로 마치 비가 쏟아지는 것처럼 물방울이 내리고 있었는데 그렇게 떨어져 내린 물방울은 종이를 그대로 지나치고 내려가, 어느 지점에서 다시 중력을 거스르고 위로 올라갔다.

물방울에는 색이 입혀져 마치 별똥별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듯한 아름다운 형태였다.

‘디에네다운 마법진이네.’

그렇게 한껏 이목을 끈 디에네는 도도하게 자신의 작품을 보다가 돌연 나를 돌아보았다.

시선이 마주친 내가 감탄했다는 듯 박수를 쳐 주자 그녀의 콧대가 더욱 높아지는 것 같은 착시 현상이 보였다.

디에네를 시작으로 학생들의 마법진이 하나둘 완성되어 가기 시작했다.

그때마다 웃음과 환호가 터져 나왔는데, 드디어 케슈른의 차례가 다가왔다.

“제 마법진은 조금 크게 만들어 봤습니다. 종이가 조금 더 컸으면 더 완벽하게 만들 수 있었을 텐데 아쉽군요.”

케슈른의 말에도 사람들의 반응은 그저 그랬다.

다만 미르코 아카데미의 학생들만이 기대하는 눈빛으로 그를 보고 있었는데 나도 케슈른이 무슨 마법진을 만들었을지 기대가 되었다.

우웅.

마나를 주입하자 빽빽하게 새겨진 마법진이 빛을 발했다.

그와 동시에 갑자기 주변의 풍경이 천천히 바뀌어 나가기 시작했다.

“미친…….”

누군가의 나직한 경악성이 흘러가고 강의를 담당한 교수조차 입을 벌리고 놀란 듯한 표정으로 케슈른이 만들어 내는 풍경을 보고 있었다.

“회전과 역전을 이용해 만든 미로입니다. 조금 단순해서 탈출하기에는 문제가 없을 거예요.”

실제로 경험해 보니 정말 미쳤다는 이야기밖에 할 수가 없었다.

고작 자그마한 종이에, 그것도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린 것도 아닌데 이런 환상 마법을 만들어 내다니.

‘역시 보조 마법과 마법진에 있어서는 따를 캐릭터가 없겠군.’

아마 마법진에 한해서는 바하트와 엇비슷하지 않을까 싶었다.

여기서 성장하게 되면 금세 바하트도 뛰어넘겠지.

“정말, 대단해.”

천하의 디에네조차 감탄한 기색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녀의 마법진조차 이 미로에 비하면 사소하게 보일 정도였다.

물론 직접적인 전투 능력에 있어서는 그녀가 케슈른보다 우위에 있을 테지만 각자 다른 영역에서 재능을 발휘하는 거겠지.

‘생각해 보면 디에네는 천재들 중에서도 중간이지. 전투 능력으로 따지면 나중에 병을 치료한 루시아가 압도적이고 보조 마법이나 마법진은 케슈른이 혼자 다 해 먹으니.’

그래도 디에네는 디에네만의 장점이 있다.

그건 바로 공간과 시간에 관한 마법.

물론 한참이나 성장한 후에 빛을 보게 될 마법들이어서 지금 당장은 저 둘에게 밀리는 것처럼 보이긴 한다.

그렇게 우리는 케슈른의 환상 마법진을 구경하며 그의 안내에 따라 마법을 빠져나왔다.

마법을 빠져나오자 언제 그랬냐는 듯 멀쩡한 강의실에 돌아와 있는 게 꼭 귀신에 홀린 느낌이었다.

너무나 압도적인 재능 차이 때문일까.

그 뒤로 이루어진 다른 학생들의 마법진은 별 볼 일 없게 느껴지고 본인들도 부끄러운 듯 고개를 들지 못했다.

하필이면 케슈른의 다음 순서였던 게 화근이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지. 힘들게 완성한 거긴 한데…….’

나름 신경 써서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케슈른이 보여 준 환상의 스케일이 너무 컸기에 상대적으로 초라해 보였다.

그렇게 차례가 점점 넘어오고 드디어 나의 차례가 왔다.

“아드리아스 크롬웰 학생. 학생이 만든 마법진을 한번 볼까요?”

거의 마지막 차례라 그런지 수많은 시선이 내게 몰려 있었다.

나는 어색하게 코를 매만지며 이내 마법진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꽃?”

그건 한 송이의 꽃이었다.

그것도 채 피지 못하여 봉오리만 맺힌 상태였다.

정말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뜻밖의 마법에 바라보는 모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푸르른 꽃봉오리는 마법진 위에 살짝 뜬 채 그저 존재하기만 할 뿐이었다.

“흠. 아드리아스 학생. 제가 회전과 역전의 주문을 넣으라고 했는데 이 작품에서는 확인할 수가 없군요. 혹시 설명을 해 줄 수 있을까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입을 열어 말을 꺼내려는 순간.

“아.”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 케슈른이 내 꽃을 향해 다가왔다.

그리고 떨리는 눈빛을 내게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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